2막 2장
지난해 10월 막을 내린 <위키드>를 끝으로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던 김선영이 단독 콘서트로 관객과 만난다. 지난 2009년에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콘서트를 연 이후 이번이 두 번째 단독 콘서트다. 오는 5월 열리는 콘서트 준비로 벌써부터 바쁜 고민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선영을 만났다.
네, 사실 <위키드>를 하기 전부터 이렇게 쉴 계획을 세웠어요. 그동안 너무 쉬지 않고 달려온 것 같아서요. 그것도 주로 세고 강한 캐릭터들만 하면서 험하게 달려왔죠. (웃음) 더욱이 <위키드>의 엘파바는 제가 생각하는 가장 힘든 캐릭터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공연을 잘 마무리한 다음에 공연에 대한 강박을 잠시 내려놓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배우로서, 또 인간 김선영으로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싶었죠. 제 삶이 건강해야 무대 위에서 건강할 수 있으니까.
쉬는 동안 어떻게 시간을 보냈어요?
공연하는 기간 중에는 시간이 있어도 쉬기 바빠서 뭔가를 해볼 여유가 없어요. 그래서 이번에 공연하는 동안 못했던 걸 하면서 시간을 보냈죠. 운동도 하고, 노래 레슨도 받고, 여행도 다니고. 특히 집에서 바쁜 시간을 보냈어요. 저는 밖을 돌아다니는 건 별로 안 좋아하는데, 집 안에서 돌아다니는 건 좋아해요. (웃음) 집에 있으면 가만히 있질 않고 계속 움직여요. 집안일이 없을 땐 하다못해 얼굴에 팩을 하는 걸로라도 몸을 움직여야 해요. 그게 성격인가 봐요. (웃음) 얼마 전부터는 콘서트 연습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요.
5월에 예정돼 있는 콘서트 연습을 이렇게 빨리 시작해요?
아, 저 혼자 하는 연습이요. 마음의 준비 기간도 필요하고. (웃음) 저는 노래 부를 때 가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내용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노래를 잘 못 부르겠어요. 이번 콘서트에서는 뮤지컬 넘버 외에 가요하고 팝송도 부를 예정인데, 그 전에 자세히 알지 못했던 노래 가사의 뜻을 이해하려고 연습하고 있죠. 어제도 어떤 곡 가사를 하나하나 해석해 보는데 ‘이 노래가 이런 내용이었어?’ 하고 새삼 감동받아서 혼자 울었어요. (웃음) 노래를 듣고 제가 느낀 감정을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요즘 그런 고민 중이에요.
이번 콘서트는 어떻게 준비하게 된 거예요?
콘서트를 하자는 제의는 예전에 받았어요. 그런데 공연할 때는 다른 걸 할 여력이 없으니까 콘서트는 엄두도 못 냈죠. 제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못해요. 사실 이번에 콘서트 얘기를 다시 들었을 때 처음엔 ‘웬 콘서트?’ 하고 고사했어요. 저 혼자 콘서트를 어떻게 하나 싶어서요. 그런데 인생의 다음 장으로 내디디려는 시점에 콘서트를 하면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쉬고 있을 때 아니면 영영 콘서트를 못할 것 같기도 하고, 좋은 추억이 될 이벤트를 만들어 보자고 마음먹었죠.
여배우의 길
오랜만에 하는 콘서트라 아무래도 부담되는 부분이 있었겠죠?
그럼요. 무엇보다 LG아트센터에서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죠. (웃음) 콘서트를 LG아트센터에서 할 거란 얘기를 들었을 때, “아이, 뭐, 대관이 되겠어?” 그랬거든요. 좋은 극장에 어울리는 콘서트를 할 수 있을까, 큰 극장을 어떻게 채우지, 처음엔 걱정했죠. 그런데 그런 부담은 이제 안 갖기로 마음먹었어요. 콘서트는 어차피 하기로 한 거고, 관객 반응에 대해 부담을 느낀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많이 고민하고 열심히 연습해서 좋은 공연을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여배우가 몇 명의 남자 배우 몫을 해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게 한다면 더 바랄 게 없겠고요. (웃음)
콘서트를 하기로 결정했을 때, 아무래도 2009년에 했던 데뷔 10주년 콘서트가 생각났을 것 같아요. 예전 콘서트 포스터를 보니까 스키니 진에 롱부츠를 신고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사진을 찍었더라고요.
나름대로 파격적이었죠. (웃음) 그때는 혈기가 넘쳤을 때니까 얼마나 의욕이 앞섰겠어요. 지나고 보니 배우 생활을 10년 했다는 게 그리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닌데, 10주년 콘서트를 했다는 게 조금 창피했어요. (웃음) 미숙한 상태에서 무대포로 공연했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콘서트 제안을 받았을 때, 더 망설였던 것 같아요. 이번엔 너무 많은 걸 보여주려고 애쓰지 않고 자연스러운 제 모습을 편하게 보여드리고 싶어요.
특별히 구상하고 있는 그림이 있어요?
처음에 했던 생각은 김선영이라는 개인이 도드라져 보이기보다 한 편의 드라마 안에 저란 사람이 녹아 있는 콘서트였어요. 뮤지컬처럼 콘서트를 본 관객들이 무언가를 마음에 담고 갈 수 있었으면 해서요. 노래 잘한다, 콘서트 재밌다, 이런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좀 더 의미 있는 자리가 되길 바라는 거죠. 그런데 혼자만의 예술 세계에 빠져 이상한 길로 가면 안 되니까, (웃음) 스태프들과 미팅하면서 절충점을 찾고 있어요. 어떤 노래를 부를지도 아직 논의 중인데,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저를 추억할 수 있는 노래 위주로 콘서트를 구성할 것 같아요. 그 노래를 들으면 제 자신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노래들이요.
어렸을 때 어떤 노래를 좋아했어요?
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집에서 첫째일 것 같다고들 하는데, 저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세 오빠들 밑에서 자란 막내 중의 막내예요. 근데 셋 다 우수 짙은 감성적인 남자들이었어요. (웃음) 다들 글 쓰는 거 좋아하고, 노래 듣는 거 좋아하고. 어렸을 때 오빠들이 들국화 노래를 자주 들었거든요. 자연스레 그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그것만이 내 세상’이나 ‘사랑한 후에’ 같은 들국화 노래를 들으면서 쓸쓸함과 고독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 감정이 뭔지도 몰랐을 때요. 쓸데없이 조숙했죠. (웃음)
자신과 관련 있는 노래를 선곡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난 시간을 복기하게 됐을 것 같아요.
그럼요, 처음으로 오디션 봤던 것도 생각나던걸요. (웃음) 90년대에 <캣츠>가 대대적인 오디션을 치러놓고 공연을 안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저도 오디션 봤거든요. 그게 제가 처음으로 본 뮤지컬 오디션이에요. 뮤지컬이 뭔지 모르고 호기심 삼아 오디션에 지원했던 거라 심사 곡으로 휴트니 휘스턴 팝송을 준비해 갔어요. 오디션장에서 사람들이 스트레칭 하는 거 보고 ‘저 사람들은 뭐하는 거지?’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무지했죠. (웃음) 되돌아보면 시간이 너무 금방 지나간 것 같아요. 크게 후회되는 건 없지만, 특정한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작품을 못하고 지나온 건 좀 아쉬워요. 예를 들면, 청춘물 <그리스> 같은 거요. <그리스>에서 터프한 리조를 했으면 어울렸을 텐데. (웃음) 사실 이번 콘서트에서 인연이 안 됐던 작품의 노래를 부르는 것도 생각은 해봤는데,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콘서트에서 다른 작품의 뮤지컬 넘버를 부른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지네요. 그런데 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르는 건 공연 때와는 느낌이 다르죠?
일단 콘서트는 저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보러 오는 거잖아요. 저를 응원하는 관객들 앞에서 온 마음을 다해 노래를 부르고 난 후에 받는 박수는 공연 때와는 또 다르게 짜릿해요. 이래서 가수들이 콘서트 하는 걸 좋아하는구나 싶더라고요. 그리고 공연을 하다 보면, 순간적으로 그 인물에 훅 몰입하게 될 때가 있거든요. 개인적인 욕심으론 그 순간에 느껴지는 느낌을 더 표현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드라마의 균형이 깨질 수 있으니까 제 감정대로 하면 안 되죠. 그런데 콘서트에서는 작품 속의 캐릭터가 아닌 김선영으로 노래를 부르는 거니까 좀 더 제 색깔을 표현할 수 있어요. 온전히 제가 느끼는 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희열이 있죠.
콘서트를 위해 따로 준비하고 있는 게 있나요?
처음 회의에서 공연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저만의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와서 아예 곡을 만들었어요. 작곡은 프로 작곡가 분이 해주셨고, 가사는 제가 썼어요. 고등학교 때 심심해서 혼자 노랫말을 끼적거리던 거 이후에 처음 가사를 써봐요. 이십몇 년 만에. (웃음) 발라드풍의 노래에 전형적인 사랑 노래 가사를 쓰고 싶지 않아서 고민하다 남편의 도움을 조금 받았죠. (웃음) 한 남자를 향한 한 여자의 마음에 관한 노래인데, 그 남자는 연인이 될 수도 있고, 남편이 될 수도 있고, 아빠가 될 수도 있어요. 늘 내 곁을 지켜줬던 사람이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내가 함께할 거라고 상대를 보듬어주는 내용이에요. 삶에 지친 남성들을 위로해 주는 곡이랄까. (웃음)
이런 특별한 자리를 통해서 기존의 이미지와 다른 모습을 보여줄 생각은 없어요? ‘여왕’ 같은 무거운 이미지를 좀 내려놓고 말이죠. (웃음)
제가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더라도 기존의 이미지와 다른 모습을 보게 될 수밖에 없어요. 거리 여자 같은 강하고 센 캐릭터를 주로 해서 그렇지, 저는 털털하고 소박한 사람이거든요. 적당히 촌스럽고. (웃음) 인간 김선영의 모습을 보여드릴 기회가 별로 없으니까, 관객 분은 그런 걸 잘 모르시겠죠. 이번에 콘서트를 보러 오시면 ‘아, 김선영은 옆집 언니 같은 사람이구나’ 하고 느끼실 거예요. (웃음)
콘서트 이후에 정해진 계획이 있어요?
차기작은 아직 없어요. 올해는 개인적인 계획이 있기도 하고, 저하고 맞는 작품을 못 만났거든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저한테 편하게 다가오는 걸 하고 싶어요. 제 경력과 제 나이에 어울리는 작품이요. 사실 지금까지 작품을 연이어 하며 앞으로 달려오는 데 익숙했지 지금 같은 휴식기를 가져본 적이 없거든요, 만약 제가 혼자였다면 지금 같은 선택에 갈팡질팡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동반자가 있으니까 편한 마음으로 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웃음) 물론 너무 여유를 부려선 안 되겠지만 그래도 무리해서 뭔가를 하진 않으려고요.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제 길을 가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9호 2015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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