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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파리넬리> 루이스 초이 [NO.139]

글 |안세영 사진 |김호근 2015-05-06 6,830

꿈에서 꿈으로 이어지는 길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전설적인 카스트라토 파리넬리! 그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파리넬리>의 가장 큰 숙제는 그 천상의 목소리를 어떻게 재현하느냐에 있었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카운터테너 루이스 초이다. 가성으로 여성의 높은 음역을 노래하는 남성 성악가 카운터테너는 대중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존재. 하지만 지난 1월 공연에서 그의 신비로운 음성을 접한 관객들은 너나없이 홀린 듯 빠져들었다. 언젠가 파리넬리로 무대에 서는 것이 꿈이었다는 루이스 초이. 오페라가 아닌 뮤지컬에서 그 꿈을 이룬 지금, 그에게는 또 다른 꿈이 생겼다고 한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

시작은 테너였다고 들었어요. 카운터테너로서의 재능을 발견한 건 언제예요?
대학에서 2년 동안 테너로 공부하면서, 제가 다른 이들보다 가성이 더 발달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호기심에 가성을 훈련해 본 것이 나중에는 가성만으로 한 곡을 완창할 정도가 됐죠. 그런데 한 지인이 ‘너처럼 여자 소리로 노래하는 남자를 TV에서 봤다’는 거예요. 때마침 독일의 유명한 카운트테너 안드레아스 숄이 한국에서 독창회를 가졌던 거죠. 그걸 보고 카운터테너라는 전문 분야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럼 본격적인 공부는 어떻게 시작한 건가요?
수소문 끝에 독일에서 카운터테너를 가르쳤다는 소프라노 교수님을 찾아갔죠. 그리고 말씀드렸어요. 제가 진성도 나고, 가성도 나는데, 한 곡을 두 가지 발성으로 불러볼 테니 뭐가 더 나은지 평가해 주십시오. 교수님께서 들어보시더니 ‘너는 진성보다 가성이 훨씬 낫다’고 딱 정해 주시더라고요. 혼자 연습했음에도 기존 카운터테너보다 소리가 높고 힘이 있다면서요. 다음 날 당장 학과장님을 뵙고 교수진을 바꿔달라고 설득했어요. 하지만 당시에는 국내 클래식계조차 카운터테너에 대해 무지했죠.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안 하는 걸 왜 굳이 하려느냐고 다들 만류했어요. 그래도 전 해야겠더라고요. 결국 그때 찾아뵌 교수님 밑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나중에는 독일 유학도 다녀왔죠.

카운터테너도 음역에 따라 소프라노, 메조 소프라노, 알토로 나뉜다던데, 루이스 초이 씨의 음역은 어떻게 돼요?
카운터테너의 90% 정도는 알토나 메조 소프라노예요. 여성의 음역대로 봤을 때 낮은 소리에 해당하는 거죠. 하지만 저는 소프라노 음역을 가졌어요. 사실 저 같은 남성 소프라노를 부르는 전문용어는 따로 있어요. ‘소프라니스트’, ‘소프라니스타’ 혹은 영어로 ‘메일 소프라노’라고 하죠. 파리넬리 역시 정확히는 카운터테너가 아니라 남성 소프라노였던 거고요.

카운터테너에 대한 인지도가 낮다 보니, 남성이 여성 음역의 노래를 부르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시선도 있었을 것 같아요.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한 10년간은 그랬죠. 무대에서 노래를 시작하면 모두가 수군거렸어요. 멀쩡하게 생겨서는 왜 여자 소리를 내느냐며 나쁜 소리도 많이 들었고. 음대 교수님들조차 만류했는데 대중들은 오죽했겠어요. 하지만 요새는 많은 분들이 카운터테너에 대해 알고, 카운터테너의 노래를 그냥 신기하고 소름 끼치는 묘기가 아니라 하나의 음악 작품으로 받아들여 주시는 것 같아요. 예전과 비교하면 정말 좋아진 거죠.

독일에서 활동할 때는 어땠어요? 국내와 환경이 얼마나 다른가요?
유럽에서는 카운터테너들의 인지도가 높고, 이들이 설 무대도 굉장히 많아요. 특히 바로크 시대 오페라나 성가곡을 복원하기 위해서 카운터테너가 꼭 필요하죠. 그래서 보통 카운터테너는 오페라 전공자와 성가곡 전공자로 나뉘어요. 저는 독일에서 오페라를 전공하고 6년쯤 활동하다가 한국에 왔죠. 그런데 국내에 올라가는 오페라는 한정돼 있잖아요. <라 트라비아타>, <라 보엠>처럼 올라가는 작품만 계속 올라가고 바로크 오페라같이 생소한 것은 고음악 페스티벌 때나 단발성으로 공연되기 때문에 제가 설 자리가 없는 거예요. 결국 대중들이 재미없어 한다는 뜻이었죠. 그래서 저는 좀 더 대중에게 다가가기로 마음먹었어요. 레퍼토리를 클래식 외의 것으로 확장하고, 발성법도 쉽게 다듬었죠. 그래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봐요.

그런데 독일에서의 데뷔작이 오페라가 아닌 뮤지컬이에요.
네, 독일에서 오페라를 하기 이전에 데뷔는 뮤지컬 <미오, 내 아들(Mio, Mein Mio)>로 했어요. 담당 교수님께서 카운터테너의 소리를 필요로 하는 뮤지컬이 있다고 소개해 주셔서, 오디션을 보고 40회 공연에 섰죠. 마법에 걸려 흑조가 된 아이 역할이었어요. 카운터테너는 원래 영혼과 관련된 역할을 많이 해요. 천상의 목소리, 영혼을 담은 목소리라는 이미지가 있거든요. 동시에 카운터테너의 노래를 듣다 보면 왠지 모르게 슬퍼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흑조 역을 저에게 맡긴 것 같아요.





샛길에서 실현된 꿈

<파리넬리>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이렇게 딱 맞는 작품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운명! 정말 운명적으로 만났죠. 대표님이 창작산실 지원용 가이드 음악이 필요해 고민하던 찰나, 지인이 제 음반을 건네주셨대요. 그 음반을 들어보시곤 제게 연락을 해서 가이드 녹음을 부탁하셨죠. 클래식 외의 장르에서 제 소리를 인정해 주었다는 것도 감사하고, 재밌는 경험이 될 것 같아서 흔쾌히 하겠다고 했어요. 그게 인연이 돼서 리딩 공연과 1월 본 공연까지 함께하게 된 거죠. 제작진 분들이 저를 신뢰해 주신 덕분이지만, 파리넬리 역으로 무대에 서는 건 제 오랜 꿈이기도 했어요. 머릿속으로만 해왔던 상상이 이렇게 실현되는구나 싶어요.

오페라를 하다가 뮤지컬을 해보니 생소한 점은 없었어요?
제일 큰 벽은 연기였어요. 오페라 같은 경우는 모든 드라마가 노래로 표현되잖아요. 근데 뮤지컬은 노래 외에도 드라마적인 요소가 정말 많은 거예요. 물론 오페라에도 연기적 요소가 필요하지만 일상적이고 사실적인 뮤지컬의 연기와 모든 핵심이 음악으로 표현되는 오페라의 연기는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여기서 오페라 경험을 가지고 내 주장과 자존심을 세우는 것보다는, 그냥 모든 걸 내려놓고 백지 상태에서 다가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연출님과 상대역 배우들도 제가 해낼 때까지 많이 기다리고 격려해 주셨죠. 처음 경험하는 뮤지컬 세계에서 혼자 적응하지 못하고 고립되기 십상이었는데, 감사하게도 파트너들을 정말 잘 만났어요. 정말 한 가족 같았거든요. 특히 연출님은 제겐 어머니 같은 분이세요. 연기라곤 아무것도 모르는 제게서 기쁨, 슬픔, 광기 같은 인간의 모든 감정을 끌어내 주셨죠.

8일간 했던 지난 1월 공연에서 기억에 남는 공연을 꼽는다면?
감기에 걸려 공연 10분 전까지 소리가 안 난 적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예민하게 굴었나 봐요. 연출님이 제 눈빛을 보고 다가와서 ‘너 무슨 일 있지?’ 하시는데 순간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그제서야 ‘저 소리가 안 나요. 어떡하죠?’ 하고 털어놨는데 연출님이 ‘너 내 눈 봐. 무조건 올라가. 할 수 있어.’ 그러면서 절 다독여 들여보내셨어요. 그러고 나서 무대에 섰는데 거짓말처럼 안 났던 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때는 정말 제가 아니라 파리넬리가 된 것 같았죠. 공연이 끝나고 연출님을 보자마자 날카로웠던 감정이 삭 풀어지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연출님도 ‘네가 이겼구나’ 하고 제 볼에 키스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셨어요.

파리넬리를 연기하며 이건 정말 내 얘기 같다고 느꼈던 부분이 있나요?
그럼요. 제가 작품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파리넬리의 삶이 꼭 제 삶 같았기 때문이에요. 무대에서 관객들의 환호를 받는 제 모습 이면에는 저만의 외로움이나 고통도 있어요. 하지만 감기에 걸린 채 무대에 섰던 날처럼, 프로란 내가 힘들고 아프고 하기 싫을 때도 내 역할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형과 아버지의 욕심 때문에, 돈 때문에 카스트라토가 됐던 파리넬리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 같아요. 또 공연을 하면서 느꼈던 게 인간은 매 순간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동물이라는 거예요. 극 중에서 파리넬리는 돈이냐 명예냐, 죽음이냐 사랑이냐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죠. 제 인생에도 그런 갈림길이 있었고, 관객들 역시 그 부분에 공감하실 것 같아요.

파리넬리는 그 갈림길에서 어떤 걸 선택한 인물이라고 보세요?
관객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데, 제 경우엔 결국 음악의 힘과 사랑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에 엔딩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아요. 저희 연습 과정을 돌아봐도 앙상블과 합창단을 합쳐 50여 명의 출연진이 서로 참 사랑했거든요.

연습실의 분위기가 극에도 배어나는군요.
맞아요. 사실 분위기가 정말 좋아서 생긴 어려움도 있어요. 처음에 리카르도랑 파리넬리는 사이가 좋고 행복하잖아요. 그런 장면을 연습하다 보니 리카르도가 정말 좋아지는 거예요. 문제는 극이 진행되면서 점점 리카르도를 증오해야 하는데, 이미 너무 사랑해서 미워할 수가 없더란 거죠! 결국 몰입을 위해 리카르도 역의 이준혁과 잠깐 연락을 끊고, ‘우리 형은 나쁜 사람이야!’ 하고 스스로를 세뇌시켜야 했어요. (웃음)

연기에 푹 빠지셨나 봐요.
요즘 연기하는 게 정말 재밌어요. 공연을 할 때 처음에는 관객의 시선이 의식되고 어색했는데, 나중에는 관객이 안 보이고 정말 무대 위에 있는 캐릭터들만 보이더라고요. 공연 중간중간 상수에서 다음 장면을 준비할 때도 막 헉헉대거나 힘들어하지 않았어요. 웃으면서 ‘아, 재밌어!’ 이런 식이었죠. 그래서 스태프들이 절 부르는 별명이 있었어요. 진정한 ‘뮤배’ 탄생이라고. (웃음) 4월 공연에선 꼭 발전된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연기 외에도 비주얼적으로 신경 쓸 게 많은 작품이잖아요. 카스트라토의 화려한 옷차림이 불편하거나 어색하진 않았어요?
화려한 의상과 짙은 화장은 오페라에서도 많이 해왔던 거라 익숙해요. 단지 제가 경험 못 해봤던 건 탈색과 하이힐. (웃음) 탈색은 정말 고민을 많이 했는데, 막상 하고 나니 클래식 쪽 지인들까지 잘 어울린다고 칭찬하더라고요. 평소에는 노란 머리이고 공연 때는 여기에 핑크색 왁스를 바르죠. 하이힐도 생각보다 금방 적응해서 나중에는 즐겼어요. 그게 굽이 10cm예요. 의상디자이너가 이런 옷에는 높은 굽이 예쁘다고 하시기에, 제가 먼저 최대한 높여달라고 한 거죠. (웃음) 아름다워야 하는 역할이니까요. 익숙해지기 위해 공연 전부터 그 구두를 신고 연습을 진행했어요.





새로운 길, 새로운 꿈

지난 공연 이후 루이스 초이 씨에 대한 뮤지컬 관객들의 관심이 대단해요. 갑자기 이렇게 많은 팬이 생긴 소감이 어때요?
우선 놀랐어요. 첫 공연부터 관객들이 전석 기립해서 브라보를 외치는 거예요. 뮤지컬은 원래 이런가 보다 했는데, 끝나고 다른 배우들이 그러더라고요. 유명 스타도 없는 창작 초연작의 첫 공연에서 전석 기립이 나오는 건 처음 봤다고. 더 충격적이었던 일은, 그렇게 첫 공연으로 소위 대박을 터뜨리자마자 다음 공연들이 주르륵 매진되더라는 거예요. 클래식 공연은 보통 한 번 보고 나면 끝이잖아요. 근데 뮤지컬 쪽에는 좋아하는 작품을 보고 또 보는 마니아층이 형성돼 있더라고요. 솔직히 지금도 어안이 벙벙해요. 그저 감사할 따름이고, 그만큼 4월 공연을 잘해야겠다는 책임을 느껴요. 부담 반, 설렘 반!

마지막으로 앞으로 꿈이 있다면?
클래식을 할 때 이런 질문을 받으면 교수가 되어 국내 카운터테너의 육성에 이바지하겠다고 답했어요. 제가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서 활동을 계속하는 이유도 그거거든요. 사람들이 종종 물어요. ‘카운터테너의 소리는 얼마 못 가죠? 앞으로 얼마나 더 노래할 수 있어요?’ 그런 분들한테는 이렇게 얘기하죠. 내가 국내 1세대다. 내가 늙어봐야 알 것 같으니 기다려 봐라. (웃음) 내 젊음과 목소리가 허락하는 한 계속 카운터테너로 무대에 설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카운터테너만의 메리트를 만들어서, 내 후배와 제자 들에게 길을 만들어 주리라. 여기까지가 제가 클래식 했을 적의 대답이었죠.

지금은 대답이 달라졌나요?
글쎄요, 그때는 뮤지컬이라는 길을 생각도 못했거든요. <파리넬리>라는 작품을 오래전부터 꿈꿨지만, 오페라에서 나오리라 생각했지 뮤지컬에서 나올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이렇게 뮤지컬 무대에 배우로 서고 보니 이 드라마가 참 좋은 거예요. 드라마에 내 삶을 반영하고, 평상시 고여 있던 울음보가 드라마를 통해서 터지고. 억눌렸던 감정들이 자유롭게 표출되는 공간이 무대인 것 같더라고요. 그게 오페라보다 뮤지컬을 했을 때 더 절절하게 느껴졌어요. 결국에는 꿈이 바뀌었어요. 앞으로 다른 뮤지컬 작품을 계속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파리넬리>와 함께 최대한 오래가고 싶어요. 그리고 그런 저를 통해서 카운터테너 후배들이 이제는 뮤지컬이라는 길도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 좋은 선례가 되는 것이 지금 저의 목표예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9호 2015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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