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을 위해 고양이에 관한 시를 쓴 T.S. 엘리엇은 훗날 엉뚱한 곳에서 두고두고 자신의 이름이 회자될 거라고 예상했을까.
1939년에 발간된 T.S. 엘리엇의 우화집인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를 바탕으로 만든 <캣츠>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뮤지컬로 꼽힌다.
최고의 히트작이 된 명작
1980년대 브로드웨이는 침체기에 빠져 있었다. 1970년대를 전후로 록 뮤지컬 <헤어> (1968)나 컨셉 뮤지컬 <컴퍼니>(1970), 춤이 작품의 중심을 차지하는 <시카고>(1975) 같은 혁신적인 작품이 무대로 쏟아졌다면, 실력파 창작자들이 공백기를 가졌던 1980년대 초중반의 브로드웨이에는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었다. 침체돼 있던 브로드웨이에 활력을 불어넣은 작품은 바로 국내에서 ‘세계 4대 뮤지컬’로 지칭되는 웨스트엔드의 대형 뮤지컬이다. ‘뮤지컬계 최고의 미다스 손’이라 불리는 캐머런 매킨토시가 제작한 영국산 뮤지컬 <캣츠>, <레 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은 1982년부터 차례로 브로드웨이로 건너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드라마틱한 이야기와 웅장한 음악, 화려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무대 세트. ‘메가 뮤지컬’ 시대의 서막을 알린 <캣츠>는 당시 작곡가로 승승장구하고 있던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T.S. 엘리엇의 시를 좋아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그의 시에 멜로디를 붙이는 작업을 하며 공연을 구상하기 시작했는데, 캐머런 매킨토시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뮤지컬로 탄생하게 된 것. 두 거장의 첫 합작품은 1981년 웨스트엔드의 뉴 런던 시어터에서 개막해 그해 열린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즈에서 올해의 뮤지컬상을 받는 영예를 안는다. 런던 오리지널 프로덕션은 2002년 5월 11일에 막을 내리기 전까지 장장 21년 동안 8,950회를 공연하며 티켓 판매로 1억 3천6백만 파운드(당시 환율로 2천5백억 원)라는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였다.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한 후 이듬해 윈터 가든 시어터에 올라간 <캣츠>의 브로드웨이 프로덕션 역시 큰 성공을 거뒀다. 1982년 10월 7일 브로드웨이에 상륙한 <캣츠>가 토니상에서 가져간 트로피는 무려 일곱 개. 최우수 작품상, 음악, 극본, 연출 등 주요 부문의 상이 다 <캣츠>에게 돌아간 것이다. 흥행 기록 역시 화려하다. <캣츠>는 개막 15년 후인 1997년에 당시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오랜 기간 공연한 <코러스라인>을 제치고 최장 뮤지컬의 자리에 등극했고, 2006년 <오페라의 유령>이 기록을 경신하기까지 부동의 1위를 유지했다. 1982년부터 2000년까지 18년간 7,485회 공연이라는 기록을 세운 <캣츠> 브로드웨이 공연은 2015년 현재까지 최장 기간 공연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차트에서 3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캣츠>에 관한 사소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
+ <캣츠>의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은
각각 오리지널 캐스트가 참여한 앨범을 발매했는데,
두 음반 다 그래미 어워즈에서 베스트 뮤지컬 시어터
앨범 상을 받았다. <캣츠>가 탄생시킨 많은 명곡
가운데, 가장 큰 사랑을 받은 대표곡은 ‘메모리’.
영국에서 TV와 라디오에서 ‘메모리’가 소개된
횟수는 무려 46,875번이라고.
유명 아티스트들이 부른 ‘메모리’의 레코딩 버전은
약 150개가 있다.
+ 1988년에 개막한 <오페라의 유령>은
2006년 1월 9일 7,486회째 공연으로
<캣츠>를 제치고 ‘최장기 뮤지컬’ 자리에 올랐다.
<오페라의 유령> 역시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캐머런 매킨토시 콤비의 작품. 이를 기념해 열린
<오페라의 유령> 특별 공연에서는 고양이 분장을 한
배우가 팬텀 마스크를 쓴 배우에게 지휘봉을
건네주는 깜짝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 <캣츠>의 세트 번호판에는 ‘NAP’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무대디자이너 존 내피어를
지칭하는 말이다. 존 내피어는 <캣츠>에
참여하기 전까지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에
소속돼 주로 연극에서 활동하던 디자이너였다.
첨단 기술을 동원한 실험적인 디자인이
그의 장기. 새 삶을 얻는 고양이로 선발된
그리자벨라가 타이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엔딩 신은 하이테크 기술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 지금까지 <캣츠>를 관람한 관객은
약 7천3백만 명. 1981년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한 이래 30여 나라, 300여 개 도시에서
공연하는 동안 동원한 관객 수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렇게 많은 도시에서
다양한 언어로 공연됐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제목이 번역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멕시코 투어 공연 당시 프로듀서가
제목을 자국어로 바꾸려고 했지만, 관객들의
의견에 따라 영어 제목을 그대로 썼다.
+ 선지자 고양이 올드 듀터러노미는
1막이 끝나도 퇴장하지 않고 무대에 앉아 있다.
젤리클 고양이들의 놀이는 중간 휴식 시간에도
계속되기 때문. 해외 공연에서는
중간 휴식 때 무대에 올라 올드 듀터러노미에게
사인을 받을 수 있는데, 한때 웨스트엔드
프로덕션은 올드 듀터러노미에게 사인 받길
원하는 관객들이 모두 사인을 받아야
공연을 시작하는 전통이 있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9호 2015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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