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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멤피스> MEMPHIS [No.139]

글 | 조연경 런던 통신원 사진 | 사진 | Johan Persson 2015-04-29 10,317

소울 있는 성장의 무대 

멤피스는 미국 동남부 테네시 주에 있는 도시로 블루스가 탄생한 곳이며 엘비스 프레슬리의 고향이다. 뮤지컬 <멤피스>는 동명의 이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공연 포스터에는 아름다운 흑인 여성과 장난스러운 표정의 백인 남성이 마이크 앞에 서서 활짝 웃고 있다. 1950년대의 흑인 여가수와 백인 남성 DJ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공연을 보기 전에는 사실 별로 매력적이지 않아 보인다. 간결한 제목은 투박하고, 포스터의 구도는 흔하다. 게다가 가수가 주인공인 뮤지컬은 수도 없이 많다. 유명 밴드에 바치는 주크박스 뮤지컬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제작되고, 가수를 꿈꾸는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도 흔하다. <멤피스>는 수십 가지 뮤지컬의 향연 앞에서 행복한 고민을 하는 관객을 단숨에 끌어들일 만큼 매력을 발산하는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일단 관객들을 극장 안에 들이기만 하면 끝까지 책임지고 만족시키는 뒷심이 있다.



순수하고 곧은 DJ의 성장담

보통 이런 이야기에서는 당연히 가수가 되려고 하는 캐릭터가 주인공이다. 뮤지컬은 가난한 환경을 딛고 세간의 무시를 넘어 차별을 견디고 스타가 된 디바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멤피스>에서는 펠리시아가 바로 그 디바다. 인종차별이 심한 1950년대의 멤피스에서 나고 자란 펠리시아는 가수의 꿈을 품고 있지만 감히 세상에 나설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녀의 오빠는 노래 실력이 뛰어난 여동생을 위해 클럽을 만들어줬고, 펠리시아는 오빠가 만들어준 둥지 안에서 마음껏 노래한다. 그리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뉴욕에 가서 성공을 거머쥐고, 멤피스로 금의환향하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펠리시아가 아니라, 그녀가 용기 낼 수 있도록 자신감을 심어주고, 머뭇거리는 손을 잡아끌어 주고, 세상에 목소리를 들려줄 기회를 마련해 준 백인 청년, 휴이 칼훈이다. 


<멤피스>의 휴이 칼훈은 1950년대 멤피스에서 활동한 디스크자키, 듀이 필립스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듀이 필립스는 그 당시 라디오에서 최초로 흑인 음악을 내보낸 DJ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백인 라디오에서 흑인 음악을 방송하는 것, 쉽지만 어려운 이 일은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청취자들과 함께 듣고 싶었던 한 DJ의 작은 바람에서 시작됐다. 한 돌연변이가 세상을 바꿔놓을 단초를 마련한 것이다. 


어느 날, 흑인들이 모이는 클럽에 아무렇지도 않게 한 백인 청년이 걸어 들어온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걸 모르는 건지, 신경 쓰지 않는 건지 백치미가 철철 넘치는 휴이는 매사에 자신만만하고 저돌적이다. 노래가 좋다고 펠리시아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바라보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레코드 가게의 사고뭉치 점원에 불과하지만 휴이는 클럽에서 펠리시아를 만난 순간, 그녀에게 네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게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리고 펠리시아를 향해 전속력으로 곧게 질주한다. 그녀를 좋아하니까, 노래하는 모습이 멋지니까, 그 노래를 혼자 듣긴 아까우니까, 좋은 건 함께 들어야 하니까.


레코드 가게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물건 깨부수는 게 일상인 휴이는 해고 위기에서 사장에게 제안을 한다. 자기가 잘하는 일을 시켜달라고, 레코드판을 팔아보겠다고. 사장은 밑져야 본전이라며 평소 하루 판매량인 다섯 장보다 많이 팔지 못하면 즉시 해고라고 통보한 뒤 자리를 뜬다. 휴이는 레코드 가게에서 DJ처럼 음악을 틀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무려 스물아홉 장을 판매한다. 하지만 사장은 휴이가 일으킨 소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기어이 휴이를 해고한다. 그 뒤 휴이는 DJ가 되려고 무작정 지역 라디오 방송국을 돌아다닌다. 그중 한 방송사의 사장인 시몬스는 휴이의 소문을 들었다며, 진정한 DJ가 뭔지 구경이나 하라고 스튜디오를 견학시켜 준다. 하지만 DJ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휴이는 라디오 부스를 탈취하고, 제멋대로 방송을 시작한다. 시몬스는 기겁해서 당장 휴이를 쫓아내려 하지만, 삽시간에 휴이에게 매료된 10대들의 전화가 빗발치는 걸 보고, 시험 삼아 그를 써보기로 한다. 며칠 후 시몬스는 휴이에게 라디오 광고를 부탁하며, 제발 종이에 쓰여 있는 대로만 읽으라고 신신당부한다. 문맹이었던 휴이는 클럽에서 알고 지내던 흑인 청소부에게 뭐라고 쓰여 있는지 읽어달라고 부탁해서 외우지만, 금세 잊어버리고 자기 식대로 바꿔서 광고를 한다. 시몬스는 불같이 화를 내며 휴이를 해고하려 했지만, 광고한 물건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전화를 받고 어안이 벙벙해진다. 최신 트렌드를 이해할 순 없지만, 일단 이익이 되니까 하고 싶은 대로 놔두는 시몬스의 지원 아닌 지원에 힘입어 휴이의 라디오 청취율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그의 라디오를 듣는 백인 청소년들은 흑인 음악에 서서히 물들게 된다.



최초의 역사를 쓰다

자기만의 라디오 방송이 생긴 휴이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성격대로 거침없이 나아간다. 펠리시아는 오빠의 도움으로 자신의 노래를 녹음한 레코드를 만들고, 휴이에게 약속대로 라디오에서 틀어달라고 부탁한다. 둘의 애정은 깊어져 가지만 휴이의 엄마의 반대에 부딪히고, 레코드판도 부서지고 만다. 겨우 용기를 낸 한 걸음이 벽에 가로막혀버리자 펠리시아는 좌절한다. 하지만 휴이는 포기하지 않고 펠리시아에게 무조건 방송국으로 오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렇게 휴이는 다시 한 번 최초에 도전한다. 라디오 방송국의 마이크를 스튜디오 밖으로 연결해서 펠리시아의 노래를 라이브로 방송한 것이다. 흑인이 어떻게 라디오 방송에 출연할 수 있냐는 시몬스의 반대를 무시하고 밀어붙인 휴이 덕분에 펠리시아는 용기를 내서 최고의 공연을 선사하고, 그녀의 노래가 방송을 통해 울려 퍼지면서 인기를 얻게 된다.


휴이는 최초의 라디오 공개방송까지 추진한다. 거침없는 휴이의 행보에 멤피스 사회가 들썩인다. 백인 청소년들은 휴이가 말한 대로 흑인 음악을 듣고, 흑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흑인 교회에 가기 시작한다. 휴이의 인기에 힘입어 시몬스와 휴이는 텔레비전 쇼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휴이는 자신이 진행하는 쇼에서 최초로 흑인 댄서들을 방송에 출연시키고, 흑인 음악을 소개한다. 백인과 흑인 사이를 이어주는 괴짜 방송인이 된 휴이는 지역사회의 핫한 아이콘이 된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은 인기에 취해 휴이의 자신감도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어느 날 펠리시아와 휴이는 거리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만나고, 펠리시아가 심한 폭행을 당한다. 순항하는 듯했던 둘의 사랑도 어색한 국면을 맞는다. 성공하려면 멤피스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펠리시아와 영혼의 고향인 그곳을 떠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휴이의 갈등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펠리시아는 자신의 한계를 극명하게 느끼고, 멤피스에서는 안전하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휴이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펠리시아가 자신과 함께 있어주기만을 바란다. 시간이 지나면 차별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라고 낙관한다. 작품은 이 문제를 깊게 파고들지 않는다. 심각한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휴이 칼훈 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1950년대 미국 남부에서 횡행했던 인종차별과 증오 범죄를 진지하게 다루기보다 시대적 배경 정도로 간단히 언급하고, 펠리시아와 휴이 사이를 가르는 장애물로 이용한다.


연일 히트를 기록하며 성큼성큼 최초의 행보를 보여주던 휴이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는다. 최초로 시장을 개척했지만, 이제는 모두 그를 따라 같은 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휴이는 최초일지 몰라도 유일하진 않게 된다. 그리고 그게 그의 발목을 잡는다. 실패를 모르고 달려왔지만, 자신의 영혼을 담은 고향 멤피스는 그에게 등을 돌린다. 


시대를 재현하는 음악과 무대

주크박스 뮤지컬이 넘쳐나는 시대에 오리지널 음악을 내세운 뮤지컬은 도리어 신선하게 다가온다. 본 조비의 키보드 연주자인 데이비드 브라이언이 작곡한 음악은 로큰롤, 소울, 블루스, 가스펠을 넘나들며 적재적소에 알맞은 선율을 들려줬다. 그 시대의 음악을 기대하고 온 관객들은 추억의 음악을 듣지 못해 아쉬움을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 음악이라는 설정으로 작품 중간에 삽입된 음악들은 추억의 노래 못지않게 좋았다. 휴이가 레코드 가게에서 음반을 틀며 홍보할 때, 레코드판을 바꿀 때마다 가수가 무대 위로 미끄러져 들어와 짧고 굵게 한 소절을 뽐냈다. 단순히 듣는 음악이 아니라 보이는 음악으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시대상을 잘 보여줬다. 클럽에서 흑인들이 부르는 노래와 군무는 관객들도 함께 어깨를 들썩일 만큼 신이 났고, 펠리시아의 히트곡 ‘Someday’는 과연 히트곡이라며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귀에 쏙 들어왔다.


무대는 단출해서 빠르게 장면을 전환할 수 있었고, 거기에 화려한 조명이 덧입혀져 볼거리를 더했다. 무대 위에 있는 밴드는 클럽과 텔레비전 스튜디오에서는 직접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상을 활용하여 극의 이해를 돕기도 했다. 휴이가 DJ 최초로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알리는 뉴스 영상이 나오면 백인 청소년들이 어느 정도로 흑인 음악에 빠져 있는지, 휴이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휴이가 스튜디오에서 녹화를 할 때는 무대 위의 구식 카메라가 그를 촬영하고 있는 앵글 그대로 영상으로 보여주어 텔레비전 쇼를 실제로 보고 있는 듯이 생생했다.


<아이 러브 유>와 <폴링 포 이브>로 유명한 조 디피에트로가 <멤피스>의 극작과 가사를 맡았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기발한 역발상과 재치 있는 대사는 <멤피스>에서도 빛을 발한다. 단순한 이야기 구조지만 신 나는 음악에 정신없이 휩쓸리다 보면 승승장구하다가 한순간에 추락하고 마는 백인 DJ와 어려움을 딛고 성공하는 흑인 디바의 뻔한 이야기는 별로 거슬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흔한 사랑 이야기라는 예상을 비껴가서 해피엔딩이 아니라 애매하게 막을 내리는 결말이 황당하면서도 참신하게 느껴졌다. 


이 작품이 중요하게 내세우는 가치는 사랑이 아니라 자신감이다. 처음부터 자신감이 넘쳤던 휴이 칼훈은 빠르게 성공을 거머쥐었고, 펠리시아에게도 그 에너지를 나눠 준다. 외모와 실력, 모든 걸 갖춘 준비된 스타였지만 자신감이 없어 머뭇대고 있던 펠리시아는 결국 용기를 내 뉴욕으로 가고, 스타가 되어 자신 있게 멤피스로 돌아온다. 그리고 옛날, 자신을 정신적으로, 실질적으로 도와줬던 휴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준다.



스타의 존재감

200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멤피스>는 2010년 토니어워즈 최고 작품상을 거머쥐었고,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던 브로드웨이의 몬테고 글로버는 펠리시아 역할을 통해 스타로 발돋움했다. 반면 웨스트엔드에서는 처음부터 스타를 캐스팅해 화려하게 <멤피스>의 막을 올렸다. <보디가드>의 여주인공을 맡아 성공적으로 웨스트엔드 데뷔 무대를 마친 유명 보컬 비벌리 나이트가 펠리시아 역을, <커미트먼츠>의 밴드 보컬로 시원한 노래 실력을 뽐낸 킬리언 도넬리가 휴이 칼훈 역을 맡았다. 최고의 소울 싱어라고 칭송받는 비벌리 나이트는 노래는 물론이고 생기 넘치는 펠리시아의 젊음까지 부족함 없이 표현해내고 있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소울 넘치는 보컬을 선보였던 킬리언 도넬리는 아일랜드 사투리를 벗고 금세 멤피스 토박이로 변신했다. <커미트먼츠>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황당한 성격이지만 노래 실력 하나만큼은 출중한 데코 역의 킬리언 도넬리는 누구나 사랑할 법한 자신만만한 멤피스 청년 휴이 칼훈을 사랑스럽게 표현한다. 순수한 열정과 우스꽝스러운 백치미가 가득한 휴이 칼훈은 거의 무대 위에서 내려가지 않고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모든 배역들과 소통하며 극을 유기적으로 이끌어 나간다. 펠리시아 역의 비벌리 나이트에 밀리지 않는 노래 실력과 고음 처리는 휴이 칼훈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조연을 맡은 배우들의 역할도 크다. 펠리시아의 오빠 역할을 맡은 롤란 벨은 비벌리 나이트와 킬리언 도넬리의 괴물 같은 가창력에 버금갈 만한 실력을 뽐낸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동생을 지키는 오빠의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잘생긴 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어쩌다 보니 말려들어 계속 휴이를 지원해 주는 허술한 사장 시몬스의 코믹한 연기는 일품이다. 아메리칸 흑인의 소울을 살려주는 앙상블과 댄서들도 극을 살려주는 필수 요소다. 런던 한복판에서 즐기는 1950년대 미국 흑인 문화는 관객들이 이 공연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멋진 밤을 만들어줬다.

성공적인 전국 투어 중에 고향 멤피스를 찾은 펠리시아는 청취자가 한 명뿐인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는 휴이를 만나서 자신의 무대에 함께 오르자고 권유한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펠리시아의 콘서트 무대, ‘Steal Your Rock 'n' Roll’은 모두를 치유하는 무대다. 펠리시아는 자신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고향과 당당하게 마주하고, 좌절과 슬럼프에 젖어 있던 휴이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이름을 크게 외친다. 그리고 그 빛나는 무대는 바로 커튼콜로 이어져 밝은 피날레를 맞이한다. 앙코르로 이어지는 신 나는 커튼콜 무대가 이 공연을 선택해서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의 돈과 시간을 아깝지 않게 해준다. 


런던은 웨스트엔드와 런던 전역에 흩어져 있는 프린지 극장, 펍시어터 등에서 하루에 수백 개의 공연이 열리는 각축장이다. 그 공연장을 가득 메우는 관객들은 그만큼 입맛이 까다롭다. 웨스트엔드의 오픈 런 공연이라 하더라도 1년을 넘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멤피스>가 공연 중인 샤프츠베리 극장도 한 해 동안 여러 번 간판을 바꿔 달아야 했다. 브로드웨이 작품이라 해도 안이하게 들여와서 올리면 금세 외면받는다. <멤피스>는 익숙하면서도 핫한 웨스트엔드의 스타들을 캐스팅해서 일단 눈길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재미있다는 입소문을 타고 큰 무리 없이 순항하는 중이다. 속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한 고음과 신 나는 군무, 흥겨운 리듬을 갖춘 ‘브로드웨이식 쇼 뮤지컬’을 보고 싶을 땐 자신 있게 <멤피스>를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9호 2015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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