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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아가씨와 건달들> 김영주 - 그녀만의 탁월함 [No.93]

글 |배경희 사진 |심주호 2011-06-07 5,358

“어떤 역에 누가 캐스팅되느냐 보다는 누가 캐스팅돼서 어떻게 그 역할을 소화해내느냐가  중요한 거예요. 예를 들어 제가 루이자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루이자의 옷을 입고, 루이자의 마음을 가지면, 루이자처럼 보이는 거죠.” 이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가씨와 건달들>의 아들레이드다. 이번에도 그녀는 자신을 더욱 빛나게 할 새로운 이력을 하나 추가할 것이다. 

 

“으엉, 빵! 너무 좋아. 너-무 맛있겠다. 어머어머.” 여기는 즉석 베이커리 카페. 우리는 근처의 스튜디오에서 사진 촬영을 마치고 인터뷰를 위해 이제 막 카페에 들어섰다. 김영주는 진열대에 전시된 이름 모를 다양한 빵을 보면서 거의 탄성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마치 처음으로 장난감 가게에 온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체면을 차리기 위해 점잖게 사양하거나 얌전을 빼지 않는 그 모습이 얼마나 신선하던지.
“요즘 사람들이 김영주의 제2의 전성기인 것 같다고들 하던데요?” 자리를 잡고 나서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네자 뜻밖의 선답이 돌아온다. “그렇게 봐주시면 나야 감사한 거죠. 근데, 전성기라는 말은 좀 웃긴 것 같아요. 아직 마침표를 찍은 게 아니고 과정 중에 있고 옛날엔 요때, 지금은 이때에 있는 건데 사람들은 잘 모르나봐. 모를 수도 있죠. 제가 유명한 큰 작품을 많이 안 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해야지. 안 그래요?” 그럼 이쯤에서 던지는 구태의연한 질문.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싶은 욕심은 없었어요?” “그런 마음은 기본적으로 있죠. 물론 있는데, 주목을 못 받아서 안달이 나는 건 아니에요. 공연하는 그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공연이 끝났을 때 박수와 환호를 받는 것, 나는 그게 좋은 거지.” 그러고 나서 이렇게 덧붙인다. “옛날에는 일에 목숨을 걸고 했는데 이제는 아니에요. 그러니까 마음이 편한 거죠.”
어떤 가수는 한창때 동료가 자기가 입은 옷과 똑같은 옷을 입고 나오면 숍으로 달려가 옷을 찢는 객기도 부렸다는데, 그녀에게 그건 그저 다른 세계의 이야기일까? “어렸을 때는 왜 안 그랬겠어요. 혈기왕성하고, 내가 제일 잘났는데. 내가 너무 하고 싶은 작품을 나보다 못한 애가 하고 있어. 그럼 쟤보다 내가 못해? 내가 왜! 왜에에에에!!! 혼자 난리 치고 그랬죠.” 내친 김에 그 치기 어린 시절에 이 작품이 너무너무 욕심나서 이렇게까지 해봤다 싶은 일화는 없는지 물었다. “근데 난 성격이, ‘떨어지면 마는 거지’ 이런 성격이라서 뭘 위해서 죽도록… 아, <렌트> 할 때는 그렇게 연습했구나. 물론 연습은 정말 많이 해요. 하지만 오디션 장에서 오버는 안 해요. 넘치는 건 진짜 못 봐줘요.” 그녀는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오디션 장에 왜 한복을 입고 와요? 푸흐. 너무 지나치면 옆에서 보기에는 웃긴 거죠.”

 


지난여름 그녀가 <톡식 히어로>에 출연하고 있을 때 이재준 연출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김영주가 고개만 살짝 돌려도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데 그건 김영주라는 배우의 힘이라고. 그 말에 대해선 백 퍼센트 동의하는 바이다. 그녀에게 김영주는 김영주고, 김영주만이 할 수 있는 무엇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 “으악! 진짜?” 소리를 지르며 용수철처럼 튕겨나가듯 기뻐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연출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배우는 연출가를 끝까지 믿고 따라가야 돼요. 간혹 연출자가 배우보다 나이가 어리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있어요. 근데 난 윤호진 선생님한테 처음 배웠잖아요.(그녀의 데뷔작은 <명성황후>다.) 나이가 어떻건, 경력이 어떻건 간에 인정하고 선장을 믿고 따라가야 돼요.”
<톡식 히어로>와 <브로드웨이 42번가>에 이어 나로 하여금 김영주를 다시 한번 주목하게 한 건 그녀가 <몬테크리스토>에 출연했을 때다. 그녀가 맡은 루이자가 어떤 배역이냐 하면 에드몬드의 탈출을 돕기 위해 강렬하게 등장한 다음, 그러고 나서 한두 장면정도 더 나오던가? (물론 그 장면은 확실히 분위기를 띄우는 신이지만) 인터뷰에서 듣는 가장 미심쩍은(?) 이야기 중 하나가 정상에 있는 배우들이 아무리 비중이 작은 배역이라도 극에 필요한 역할이라면 주저 없이 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주연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그게 쉬울까? “초연 때 같이하자고 했는데 다른 공연 때문에 못 했어요. 그래서 막연히 이건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막상 보니까 나오는 장면이 너무 없는 거야! 뭐냐고오 이게.” 김영주는 비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투정 부리듯 말했다. 그럼에도 그녀가 루이자를 선택한 건 해적이라는 캐릭터 때문이라고 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역할이잖아요. 무대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거, 정말 재미있거든요.”
그녀가 연기한 루이자는 꼭 악당 고양이처럼 보였다고 연기에 대한 소감을 말하자 말이 끝나기 전에 짜릿한 답이 이어진다. “어! 맞아요. 난 캐릭터를 맡으면 이 여자는 어떤 동물에 가까울까를 생각해요. 루이자는 고양이과 동물을 생각했어요. (눈을 가늘게 뜨고) 먹이를 찾아서 쏴-악 가는 거야.” 그리고 배역을 맡았을 때 그녀가 상상해 보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는데 그건 그 캐릭터의 걸음걸이다. “이 사람은 어떻게 걸을까? 요렇게 사뿐사뿐 걸을까? 아니면 이렇게 축 늘어져서 터벅터벅 걸을까? 걷는 모습을 떠올리면 캐릭터가 선명하게 다가오죠. 무대에서는 제대로 걷는 것이 기본인데 이제 시작하는 배우들이 그 중요성을 몰라요.”

 


다시 루이자를 선택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녀에게 역할의 비중에 연연하지 않는 진짜 배우로 성숙한 게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하자 그녀는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는 듯 대답했다. “어느 시점엔가 내가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네, 그럴 때 성장하게 되는 거죠.”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속이 상하고 우울증이 생기는 거예요. 나는 솔직히 요만큼인 사람인데 이만큼을 하고 싶거든. 나이 들고 때가 되면 엄마 역을 해야 되는 게 맞는데 엄마 하기 싫거든. 그런데 노래나 춤이나 연기나 다 나 자신을 내가 인정할 때 늘어요. 안 그럼 아무것도 안 늘어요. 혼자 다락방에서 연기할 거 아니잖아요?” 또 다시 반전. “근데 내가 성숙했나아~ 모오르겠어요~”
‘(화들짝 놀라며)’ ‘(옆으로 픽 쓰러지면서 흐느낀다)’ ‘(뛸 듯이 좋아한다)’ 같은 지문들이 자동으로 떠오르게 하는 커다란 체스처나, ‘아학’ ‘어응’ ‘으힝’과 같은 창의적인 추임새를 넣어 말하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상대의 말에 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알게 된다. 말하자면 김영주는 내가 아는 배우 중 가장 배우 같은 배우다. “우리 조카도 그래요. 이모는 항상 뮤지컬을 하고 있는 것 같아.” 그녀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배우라는 직업에 합당한 태도와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그런 습관이 일상생활에서도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지금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늘 새롭게 반응할 수는 없는 법.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어른이 된다는 건 모든 것에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지는 것 아닌가. “무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늘 처음인 것처럼, 그게 실제 상황인 것처럼 받아들여야 하니까 아무래도 평상시에도 감정적으로 극대화돼 있는 것 같아요.”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받아들이기 위해 잔혹하고 자극적인 것들을 의도적으로 멀리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배우는 누구든 어느 한 부분에 대해서 결핍증이 있는데 자신은 숫자에 대한 개념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아마 그런 것들이 나이를 잊고 살게 하는 것 같다면서 말이다.
우리는 뮤지컬과 연기에 관한 몇 가지의 사소한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연기하는 건 항상 즐겁다는 말을 종종 듣지만 사실 사람인데 그렇지 않은 순간들도 있을 테죠. 그럴 때 나에게 자극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어머, 누가 그래요? 거어짓말쟁이. 어응. 당연히 있죠. 사람인데 어떻게 만날 똑같아. 오늘은 정말 하기 싫은 거야, 하기 싫어~ 그런 날이 있어요. 그럴 때는 『성격 구축』이라는 책을 봐요. 아저씨가 머리에 손을 짚고 인상을 쓰고 있는, 표지만 봐도 피곤한 책이 있어요. 그 책에 그런 말이 써있어요. 연기하기 싫을 때 이 책을 다시 한번 펼쳐 봐라.” 그녀는 스스로 생각해봐도 그 상황이 웃긴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걸 보면서 (반쯤 체념한 듯) 그래그래, 맞아 맞아 맞아! 다시 마음을 잡고 공연하러 가는 거죠.”
‘겹치기 출연’과 ‘더블 캐스트’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그녀는 두 공연에 겹치기 출연을 하는 것은 서로에게 민폐가 되는 일이라고 말했고, 더블 캐스트에 대해선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김영주에게는 경쟁 심리라는 게 없다는 것. “이 사람이 나 못 이겨요.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서로 너무 다르기 때문에요. 같은 캐릭터를 맡았을 뿐인데 상대를 이기려고 하면 내가 피곤해서 못해.” 그리고 이렇게 부언했다. “최근에 『탁월함은 무엇인가』라는 책을 봤는데 거기에 그런 얘기가 나와요. 상대적인 우위가 아닌 절대적인 가치에서 탁월함을 추구하라고. 얼마나 편하고 멋진 말이에요? 그래! 난 절대적으로 가야겠다.” 자신만의 탁월함을 발휘할 줄 아는 배우, 김영주. 경력 15년 차 배우에게 그의 앞으로의 모습이 지금보다 더 기대된다고 하면 실례일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3호 2011년 6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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