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겐 특별한 이름이 필요하답니다.
독특한 이름, 좀 더 위엄 있는 이름,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리 꼬리를 꼿꼿이 세울 수 있을까요?
오직 한 마리 고양이를 위한 단 하나의 이름
고양이 혼자만 알고 있을 뿐, 절대로 말해주지 않는 이름
고양이가 심오한 명상에 잠겨 있는 걸 발견하신다면
그것은 늘 같은 이유
바로 깊은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
자신의 이름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음미하는 시간
말할 수 없는, 말로 하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고 불가해한 단 하나의 이름
럼 텀 터거는 유별난 고양이
생쥐를 주면 큰 쥐를 달랠 거고
큰 쥐를 주면 생쥐를 찾아나서네
잔소리를 해도 소용없다네
그는 자기가 해오던 대로
그대로만 할 거니까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네
미스터 미스토펠리스를 빼고 넘어갈 순 없죠!
그는 독창적인 마술사 고양이
부디 제 말을 귀담아들으시고 비웃지 마시길
그의 모든 발명은 혼자 힘으로 이룬 것
이 대도시에 그런 고양이는 달리 없습니다.
젤리클 고양이는 달빛 눈을 가졌네
아침 시간에는 한없이 얌전하고
오후에도 한없이 얌전하여
춤출 힘을 아꼈다가
젤리클 달이 떠오르면 춤을 추지
젤리클 고양이들이 오늘 밤 온다네 젤리클 고양이들이 모두 온다네
젤리클 달이 밝게 빛나네 젤리클들이 젤리클 무도회에 오네
T.S. 엘리엇 저, 김승희 역, 『캣츠』
(문학세계사, 2003)에서 발췌
20세기의 대표 시인 엘리엇의 우화 시집으로 원제는 ‘노련한 고양이에 관한 늙은 주머니쥐의 책’이다. 유머와 재치 넘치는 15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기 다른 이름과 개성을 지닌 고양이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 군상을 상징적으로 풍자한다. 엘리엇의 시가 지닌 독특한 리듬과 불규칙적이면서 흥분을 고조시키는 매력은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에게 큰 영감을 주며, 뮤지컬의 탄생을 이끌었다. 원작에서는 아름다운 시어로 선지자 고양이 올드 듀터로노미, 극장 고양이 거스, 마법사 고양이 미스터 미스토펠리스 등을 만날 수 있는데, 단 뮤지컬의 대표 캐릭터 그리자벨라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자벨라 역시 엘리엇이 초고를 쓸 때 구상해놓았던 캐릭터. 엘리엇의 미망인 발레리 엘리엇이 남편의 원고 더미 속에서 외로운 그리자벨라를 소개하는 8줄의 시구를 찾아냈고, 그것이 뮤지컬 <캣츠>의 결정적인 조각이 되어 무대를 완성시켰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8호 2015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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