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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쓰루 더 도어> 오소연 [No.138]

글 | 송준호 사진 | 배임석 2015-04-13 6,362

행복의 문을 통과하는 여자

아담한 체구와 가녀린 이미지의 선한 여성은  한국 뮤지컬에서 활용 빈도가 높은 캐릭터다.  청순한 여인이나 여학생, 주인공의 딸 등  여주인공은 대개 이런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소연 역시 그런 전형의 수혜를 받은 배우였지만,  다른 이들과는 차별되는 특징이 있었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당돌한 눈빛이 그것이다. 
‘보니’와 ‘나’로 그런 기질을 입증하며 연기 폭을 넓힌 그녀는,  이제 샬롯으로 또 하나의 관문을 통과한다.


                                              
현실의 이면, 판타지의 세계

원래 다작을 하는 편이 아니잖아요. 전작이 끝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일찍 돌아왔어요.
사실은 이 작품을 못한다고 예전에 말씀을 드렸어요. <레베카>를 하면서 긴 시간 너무 힘들었고 오래 못 쉬어서 이번에는 좀 휴식기를 가지려고 했거든요. 한 달을 쉬었는데 여행할 힘도 없어서 집에서 그냥 ‘집순이’처럼 지낼 정도였어요. 그때 다시 러브콜이 왔어요. 즐겁게 할 수 있을 거라는 말씀을 듣고 참여하게 됐어요. 


외모에 맞는 캐릭터들이 참 잘 어울리고 실제로 잘해 오기도 했죠. 하지만 더 다양한 역을 해보고 싶었을 것 같아요. 기존 역들에서 실제 성격과 안 맞는 부분도 있었을 테고.
원래 성격은 좀 급하고 추진력이 있어요. 그래서 야무지고 똑부러진 캐릭터를 만나면 편해요. 남의 옷 같지 않아 연기하기 쉽고 재밌어요. 반면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캐릭터를 만나면 답답해요. ‘왜 이럴까 나라면 이렇게 안 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죠. 


이번에 맡은 샬롯이란 인물은 어때요?
친구도 없고 소설가라 항상 집에만 있는 캐릭터예요. 글 쓰는 사람이다 보니 상상력도 풍부하고 감수성도 예민해요. 소심한 성격이거나 대인기피증은 아니에요. 혼자 자기 감정이나 속마음을 굉장히 많이 얘기하는 캐릭터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저랑 비슷한 부분을 많이 찾을 수 있어요. 남편 아닌 다른 남자와 외도 아닌 외도를 하는 부분은 힘들겠지만요. (웃음)  


판타지가 부각됐지만, 결국 자아를 찾고 싶은 욕망에 관한 현실적인 이야기 같아요.
다용도실 문을 열었는데 상상도 못하던 세계가 있고,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시대와 왕자님이 나와서 동화적일 것 같잖아요? 그런데 대본을 보니 그렇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굉장히 무거운 주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아기자기하게 풀지 않았나란 생각도 해봤어요. 현실이 권태롭고 힘겨우면 벗어나고 싶고 다른 길을 찾고 싶은 생각이 들잖아요. 그런 욕망이 다용도실 문으로 표현되는 거죠. 그건 물리적인 ‘문’이 아니라, 굳게 닫힌 내 마음의 문일 수도 있고,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도전이나 선택일 수도 있어요.


배우 생활을 하면서 그 다용도실 문처럼 탈출구가 있었나요. 
탈출구는… 없었죠. 이 직업을 버리지 않는 이상 도망갈 곳은 없어요. 반항도 해본 적 없는 것 같아요. 한예슬 씨처럼 그런 건(웃음) 전 절대 안 돼요. 생각보다 겁이 많아요. 


본인이 쓴 소설 속 세계로 들어가서 펼쳐지는 이야기인데, 만약에 그렇게 모험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장르의 소설을 쓰고 싶어요?
일단 스릴러나 미스터리, 호러물은 안 쓸 것 같아요. 무서운 거 되게 싫어하거든요. 전 귀신이 그렇게 무서워요. (웃음) 아마 저도 판타지를 쓰지 않을까 싶어요. 


남편은 아내와의 시간을 포기하고 일에만 매진하고, 아내는 그런 남편의 사랑을 갈구한다, 이건 현실에도 있는 얘기잖아요. 실제로 결혼해서 이렇게 된다면 어떨 것 같아요?
저도 똑같이 결핍을 느낄 것 같아요. 극 중에서 남편이 잠만 자고, 대화도 거의 없어요. 보통 그런 거 가지고 많이 싸우잖아요. 연인끼리도 마찬가지죠. ‘왜 기억을 못해?’, ‘나한테 관심이 없어?’ 뭐 이런 식으로요. 


방금 그 말은 마치 경험에서 우러나온 듯한 느낌인데요? (웃음)
실제로 제가 했던 말이니까요. (웃음) 그런 경우 여자들은 백이면 백, 다 서운해하니까. 샬롯도 밖에서 활발히 일하는 사람이면 결핍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되겠지만, 집에만 있으니까 누군가가 필요하겠죠. 이 경우엔 그게 남편이고요. 저라면 남편의 부재를 대신할 뭔가를 찾을 것 같아요. 자기 계발이나 뭔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바쁘게 살았을 거예요. 


싱글인 지금은 다행히도 그런 상황이 아니죠. 지금 생활에 만족해요?
훗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배우 생활도 계속한다면 그때는 정말 100% 만족할 것 같아요. 아마 그때는 일 말고도 중요한 것들이 더 많아질 거예요. 일을 한다는 것 자체에 감사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은 아직 꿈과 도전할 게 있으니까 100% 만족한다고는 할 수 없죠. 


만약 배우 생활마저 포기할 수 있는 어떤 가치가 있다면, 그건 뭘까요.
가족이요. 누군가를 위해 사는 게 오히려 더 행복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남편을 위해서 내 일을 접고 내조를 한다거나 아이를 위해서 사는 전업주부의 삶이 그렇겠죠. 사람들은 왜 그렇게 희생을 하느냐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진짜 원해서 하는 거라면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엔 그런 생각을 못했어요. 배우라는 직업이 저의 모든 게 되어버렸고, 그게 너무 괴로웠어요. 캐릭터에 따라 성격이 바뀌는 게 심해져서 생각도 사라지고 기분까지 좌우됐거든요. 그때 주문처럼 외웠던 게 ‘배우를 하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라는 거였어요. 어디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니, 결국엔 내 사람, 내 가족, 내 주변 친구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거죠. 나이에 3자를 다니까 이러네요. (웃음)



       
더 나은 삶을 위한 새로운 도전

언젠가 규칙을 좋아한다는 말을 했어요. 그럼 체제 순응적이어서 규칙을 누군가가 정해 놓으면 가급적 거기에 맞추려고 하는 스타일인가요?
누가 정해 놓은 규칙은 별로 안 좋아해요. 스스로 계획을 짜서 생활하고 통제하는 걸 즐기는 것 같아요. <레베카> 때 투입되자마자 일주일 만에 대사를 다 외워서 런스루를 했어요. 시간이 너무 부족했지만 그게 제 규칙이었던 거죠. 그 짧은 시간에 그 많은 분량을 외워서 해냈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대단해요. 

스스로 규칙을 세우고 알아서 매일 지키는, 일종의 ‘루틴’이네요. 
그런 것 같아요. 제 계획에 짜여진 대로 안 되면 화가 나요. 연습을 할 때도 제가 너무 열심히 하면 주변에서 ‘조급해하지 마. 아직 한 달이나 남았잖아’ 식의 조언을 하는데, 사실 모든 게 제 계획에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남들 눈에는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보이나 봐요. 


좋은 의미에서 욕심이 많아 보여요. 그게 완벽주의로 보이기도 하고요.
처음에 이 직업을 선택할 때는 유명한 배우가 되고 싶었죠. 그런데 막상 이 일을 시작해 보니까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이걸 잘해서 유명해질 거야’가 아니라, 나한테 주어진 것을 잘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조그마한 문제도 자책을 많이 해요. 그건 지금도 약간 그래요.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안주하지 않는다는 건 좋은 습관이에요. 30대에 들어서 새롭게 생긴 욕심도 있겠죠?
지난 2년간은 좀 안주하면서 여유롭게 보낸 것 같아요. 이제 새로운 것들을 찾아서 삶의 모든 부분의 나사를 조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다시 20대 초반처럼 달리고 싶어요. 지금의 저를 만든 게 20대 초반이거든요. 그때 했던 걸로 지금까지 버티는 것 같아요. 앞으로 멋진 40대를 맞으려면 지금 다시 기반을 만들어놔야 할 듯해요. 


그러기 위해 가장 보완해야 할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공부도 더 많이 해야 하고, 다시 부지런하게 여기저기 관심을 많이 둬야 할 것 같아요. ‘집순이’ 생활을 너무 오래 하다 보니 시야가 많이 좁아졌어요. 공연 끝나고 사람들과 술 한잔하면서 얘기하는 거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공연 끝나면 바로 집이고, 다음 날 공연 있으면 밖에 안 나가고 말도 안 해요. 다양한 사람도 겪어보고 여행도 다니면서 신선한 경험을 할 필요가 있어요. 지금은 새로운 사건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지금 이 시점에서 기대하는 새로운 사건이 있다면?
(웃음) 얼마 전에 처음 경험한 게 있어요. TV 단막극 촬영을 하나 했거든요. 추워서 동상에 걸릴 뻔했지만 정말 재밌었어요. 그동안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다가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니까 신 나더라고요. 마치 샬롯처럼요. 다시 심장이 막 뛰는 거예요. 현장의 모든 게 놀이터 같았어요. 예전에 처음 뮤지컬 할 때의 느낌이에요. 무뎌진 것들이 다시 깨어나니까 재밌었어요. 그런 경험들이 단순한 탈출구가 아니라 앞으로 다양한 창작 활동 차원에서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좋았어요. 


다른 배우들처럼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고 싶은 생각도 있겠죠?
2년 전부터 영화에 흥미가 느껴졌어요. 처음에는 노래가 좋아서 뮤지컬을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까 연기가 무척 재밌는 거예요. 연기만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죠. 영상 쪽이 또 그런 매력이 있잖아요. 카메라 앞에서 눈썹 하나만 찡긋해도 표현되는 게 매력이 있더라고요. 


조금씩 연기 지평이 넓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앞으로 어떤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어요?
두 가지예요. 우선 <미녀와 야수>의 ‘벨’ 같은 로맨스의 주인공을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어요. 다른 하나는 악역이에요. 여태까지 맡은 역할이 다 정의롭고 착하기만 해서요. <레베카> 때도 제 성격은 댄버스 부인에 가까운데 ‘나’를 하고 있으니 좀 그랬죠. 그런 사악한 역할을 꼭 해보고 싶어요. 물론 아무도 저한테 ‘쫄’지 않겠지만요. (웃음)


지금까지의 배우 경력, 잘 흘러가는 것 같나요?
굉장히 만족해요. 제 이미지가 필요한 곳에서 절 불러주고 거기서 제 몫을 다하는 게 좋아요. 사실 저는 작품이 주는 메시지나 교훈에서 굉장히 많이 배워요. 그래서 작품 끝나면 그걸 제 자신에도 대입해 봐요. 제가 주로 선한 역할들을 맡고, 옳은 말들을 대사로 많이 하니까 하면서도 스스로 배우거든요. 멀리서 배우는 게 아니라 일 속에서 깨달아가면서 제 삶이 바로잡아지는 과정을 여태까지 거쳐왔더라고요. 앞으로도 그렇게 제 자신과 배우라는 직업이 작품과 혼연일체가 되어서 많이 느꼈으면 좋겠고, 또 제가 느낀 걸 작품에 녹여내면서 살면 재밌을 것 같아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8호 2015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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