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한국인 아티스트
지난 2월 2일 뉴욕 다운타운에 위치한 유서 깊은 클럽이자 공연장인 조스 펍(Joe’s Pub)에서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창작진과 배우들의 공연이 열렸다. 조스 펍은 뉴욕 퍼블릭 씨어터의 일부로, 장르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젊고 실력 있는 예술가들이 다양한 재능을 선보이는 공연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날 열린 공연의 이름은 <서울 오브 브로드웨이(The Seoul of Broadway)>. 서울(Seoul)과 소울(Soul)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한국에서 브로드웨이로 온 사람들의 정신’이라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한국계 미국인들이 TV나 영화뿐만 아니라 공연계에서도 활동하는 건 이제 그리 드문 일이 아니나,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한국 국적의 사람들이 뉴욕 공연계에 성공적으로 발을 딛는 일은 여전히 극히 드물다. 그러므로 한국인 창작진과 배우가 중심이 되어 열린 <서울 오브 브로드웨이>는 한국인으로 뉴욕 공연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어려움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관객들로 가득 찬 뜻깊은 공연이었다.
한국인 창작진들이 개발 중인 뮤지컬에 실린 곡을 김소향, 차형진, 임규진 등 미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선보이는 쇼케이스 형식으로 진행된 이번 공연은 뉴욕대학교 뮤지컬 씨어터 창작 대학원 과정에서 함께 공부한 작곡가들의 작품이 대다수를 이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공연에서 선보인 곡 중에 한국인으로서 뉴욕에 발을 디딘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흥미롭게 활용하는 창작물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건 어쩌면 이번 공연에 선보인 열 곡의 노래 중 한국인 작사가가 참여한 곡이 드물었다는 점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작사가들의 이름으로 미루어 보면 거의 대부분이 미국인이었는데, 이 때문에 단순히 현재 미국인 작가, 작사가와 개발 중인 작품의 쇼케이스에 가까운 인상을 받았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이 기획의 중심인 공연이었던 만큼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면 더 흥미로운 공연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이번 <서울 오브 브로드웨이>를 기획하고 제작한 김치영 작곡가와 공연에 참여한 배우 차형진, 임규진과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퍼블릭 씨어터에서 한국 공연이 끝난 후 한국인 아티스트와 한국 매체가 인터뷰하는 게 무척이나 색다른 풍경이었다.
MINI INTERVIEW
우선 공연을 축하한다. 소감이 어떤가?
김치영 이제 드디어 잠을 잘 수 있겠다. (웃음) 사람들이 많이 올까 걱정도 많이 했고, 조스 펍이라는 공연장이 쉽게 대관할 수 있는 곳이 아닌데, 다행이었다. 연출을 맡아준 샤키나 나이팩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차형진 한국적인 정서를 공유하는 작곡가들이 쓴 노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배우로서 마음이 따뜻하고 좋은 공연이었다.
임규진 이렇게 한국인 창작진이 뉴욕에 모여 공연을 연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일 거다. 현재 브로드웨이에 자리를 잘 잡은 동양인들은 대부분 필리핀계인데, 요즘은 한국계 동양인들이 점점 눈에 띈다. 물론 한국계 교포들이긴 하지만 뉴욕대학교 뮤지컬과에서 공부한 한국 학생들의 커뮤니티가 점점 더 생기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뉴욕 공연계에서 활동하게 됐는지 소개해 달라.
김치영 한국에서 작곡을 전공했고, 뮤지컬 창작소 ‘불과 얼음’에서 창작 아카데미를 수료했다. 그 후 뉴욕대의 ‘Musical Theater Writing’ 대학원 과정에서 공부하기 위해 뉴욕으로 건너왔고, 작년에 졸업해서 현재 뉴욕에서 활동 중이다.
차형진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원래는 비즈니스 전공을 생각했는데, 비보잉 댄스와 현대무용을 하다가 연기를 시작하게 됐다. 학부와 대학원 모두 뮤지컬을 전공한 뒤 졸업 후 뉴욕에 왔다.
임규진 어렸을 때 <브로드웨이 42번가>를 정말 감명 깊게 보고 뮤지컬 배우를 꿈꿨다. 대학교 때 뮤지컬을 공부하러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이번 공연을 연 취지가 무엇이었나?
김치영 뉴욕대 뮤지컬과를 졸업한 한국인들이 이제 서른 명 정도 된다. 현재 한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고성일, 최종윤, 이지혜, 이나오 작곡가가 다 여기 출신이다. 하지만 나처럼 이제 막 졸업한 사람들은 무언가를 할 기회가 많지 않다. 미국인들은 자기들끼리 무언가 할 게 많지만, 나 같은 외국 학생들은 아무래도 그런 게 적다. 또한, 임규진이나 차형진처럼 한국에서 뉴욕으로 건너와 활동하는 배우들도 무대에 설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같은 꿈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우리만의 무대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뉴욕에서 뮤지컬을 공부한 경험은 어땠나?
김치영 내가 느끼기에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공부한다는 것이다. 서른 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곡을 발표하면, 비슷한 스타일의 곡이 정말 단 한 곡도 없다. 그만큼 각자의 스타일을 존중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정한 길을 믿고 걸어 나갈 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뉴욕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차형진 한국에서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왔는데, 체류 문제가 만만치 않다. 규진이 같은 경우는 올해 올라가는 <왕과 나>에 비중 있는 역할로 캐스팅됐는데,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결국 하차해야만 했다.
임규진 나뿐만 아니라 당시 캐스팅됐던 동양인 배우 중 몇 명은 같은 이유로 끝내 하차한 것으로 알고 있다.
차형진 뮤지컬계는 영화나 방송 쪽과 비교했을 때 보수적이다. 관객층도 다른 매체에 비해 보수적인 성향이 있어서 아무래도 동양인 배우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한정적인 게 사실이다. 지금 뉴욕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한국인(한국계가 아니라 한국 출신의 한국 국적) 배우는 나하고 임규진밖에 없는 것 같다. 계속 도전하다 보면 기회가 조금씩 생기지 않을까. 그게 우리 다음에 도전할 사람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일 것 같고.
미국에서 뮤지컬을 공부하거나 활동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임규진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언어 문제다. 열심히 도전했다가 결국 포기하고 돌아간 사람들의 공통점은 영어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차형진과 나는 평소에 한국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차형진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과 열정도 중요하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보다는 열정과 꿈을 가지고 자신 있게 하는 사람들에게 더 끌리는 건 어딜 가나 비슷하다.
임규진 아무리 힘들어도 서울에 돌아가지 않고 여기서 도전하는 이유가 있다. 이 도전이 내겐 무척 재미있다. 우리보다 영어 잘하고 재능 있는 배우들이 많지만, 열정을 좋게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8호 2015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