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마다 꿈
<드림걸즈>는 가수가 되고 싶은 세 소녀의 꿈 이야기다. 한때 꿈꾸는 소녀였을 윤공주와 박혜나.
그들도 드라마 속 디나와 에피처럼 순수했고, 간절했고, 좌절했으며,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꿈이 있었기에 가능한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들.
한 무대에서 만나게 된 윤공주와 박혜나는 실제로 묘하게 닮은 점이 많았다.
연습과 공연으로 반복되는 일상에도, 그 흔한 불평 한마디 없이 그저 이 순간이 즐겁고 행복할 뿐이라고 말하는 두 배우.
그들 또한 디나와 에피만큼이나 아름다운 드림걸즈였다.
처음 그대로의 진심
윤공주
그동안 윤공주의 무대들을 되돌아보니 이 말이 떠올랐다. ‘한결같다.’ 한 번쯤은 흔들릴 법도 한데, 그녀는 참 굳건하다. 어떤 역할을 맡아도, 자연스레 윤공주의 것이 되었으니. “제 장점이자 단점은 단점을 잘 안다는 거예요. 그런 만큼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계속 생각하고, 그 점을 보완하려고 노력해요. 그래야 무대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전작보다 그다음이 나을 수 있도록. 이번에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그리드보다 <드림걸즈>의 디나가 더 좋다, 이 말을 들을 수 있게 노력해야죠.”
최근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그리드로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윤공주. 인생 배역이라 지칭될 정도로, 그녀의 마그리드는 특별했다.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게 적정선을 유지하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윤공주는 항상 그 중심을 잘 잡는다. 그리고 그런 장점이 마그리드와 딱 맞아떨어졌다. “마그리드는 생각만 해도 슬퍼요. 공연마다 울었어요. 연습 땐 너무 울어서 말을 못할 정도였고.” 마그리드에 동화된 만큼, 그녀는 자신을 좀 더 편안하게 표현해냈다. “많은 분들이 제가 여성스럽고 얌전하다고만 생각하는데, 친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제 모습은 또 달라요. 마그리드의 모습이 제 안에 정말 많아요. 저도 불의를 보면 못 참거든요. 마그리드를 통해 제 안에 잠재되어 있는 것들을 무대 위로 많이 끌어낼 수 있었죠.”
이제 곧 정들었던 마그리드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인물을 맞이해야 할 차례. <드림걸즈>의 디나는 그녀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디나는 긍정적이에요. 내가 못하는 것도 인정하고, 남이 잘하는 것도 인정하죠. 꿈을 갖고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걸 꼭 해요. 이런 점이 저랑 비슷해요.” 실제로 그랬다. 대화 내내 그녀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냈는데, 무대에서 그러하듯 그것은 과하지 않아 더 좋았다. 그만큼 상대를 편안하게 만드는 기분 좋은 에너지를 갖고 있다.
디나 역의 어려운 점을 이야기할 때도, 그녀의 표정은 밝았다. “마그리드를 만나면서 자신감이 확 올라갔거든요. 그런데 사실 <드림걸즈>는 조금 걱정이 돼요. 흑인 소울을 표현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다른 디나와 에피들은 노래를 정말 잘하거든요. 겸손이 아니라, 그래서 진짜 제가 잘해야 돼요.” 하지만 걱정도 잠시, 그녀는 곧 긍정적인 모습으로 돌아왔다. “후회 없는 선택이 되게끔 최선을 다해야겠죠?”
윤공주만의 디나 존스! 그녀에게 어떤 매력으로 다른 캐스트들과 차별화할지 묻자, 명료한 단어가 제시됐다. “원숙미! 하하하” 그 말을 듣고 상상해보니, 그녀의 디나 존스는 풍부한 색채를 띨 것 같은 기대가 든다. 흥미로운 건, 그녀가 말하는 원숙미가 노련미와는 다른 차원이라는 것. “나이가 들수록, 공연을 많이 할수록, 노련할 수밖에 없죠. 근데 전 오히려 너무 노련해지고 싶진 않아요. 물론 디나도 마찬가지죠. 첫 등장할 때 그녀는 열여덟 살이에요. 풋풋하고 순수하게 접근하고 싶지, 노련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아요. 가수를 꿈꾸는 소녀의 뜨거운 열정을 순수하게 보여주려고 해요. 그리고 이후 7~8년이 지난 디나의 모습에선 성숙함을 담아내고요.”
<드림걸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바로 ‘꿈’. 윤공주와 디나가 가장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아마 꿈일 것이다. 가수가 되고 싶었던 디나가 꿈을 이루었듯, 무대를 향한 꿈을 현실로 이룬 윤공주. 끊임없이 꿈을 향해 가는 디나처럼, 그녀 또한 변함없는 마음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뮤지컬이 제 일부냐고요? 제 삶의 전부예요. 저는 진짜 행복한 사람이에요.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노력이 쏘아 올린 비상
박혜나
지난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인 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박혜나가 아닐까? 모두가 알다시피 그 첫 포문을 연 것은 바로 <위키드>. 혜성처럼 나타나 엘파바 역을 거머쥔 듯 보였지만, 사실 그녀는 차곡차곡 무대 경험을 쌓아온 준비된 배우였다. 그래서일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순간, 그 눈부심에 취할 법도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배우로서 그저 묵묵히 주어진 길을 걸어갔다. “박혜나란 인간이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였어요. <위키드>가 쉬운 공연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었어요. 스스로 부족함을 깨닫고, 성장하게 되고, 어려움을 딛고 이겨내면서 점점 더 강해지고. 또,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죠. 얻은 게 정말 많아요. 잃은 건 하나도 없어요.”
<위키드> 이후의 행보 또한 그녀다웠다. 엘파바의 이미지를 싹 지우고, 그 반대편 꼭짓점에 있는 인물을 선택한 것. 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기 위해, 창작뮤지컬 <셜록홈즈: 앤더슨가의 비밀>의 제인 왓슨 역으로 돌아왔다. “<위키드> 하면서 이거보다 더 어려운 작품은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지금도 그 힘으로 버티고 있는데, 산 넘어 산이더라고요. (웃음) 대사만 해도 상대의 말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어요.” 물론 이 무대 역시 그녀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위키드>의 에너지가 워낙 크잖아요. 한동안 엘파바에 젖어 있었죠. 그런데 <셜록홈즈>는 굉장히 이성적이어야 했어요. 감정적으로 다가가면 안 됐죠. 그래서 엘파바에서 박혜나로 돌아오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디테일하게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아지면서, 박혜나란 인물도 좀 정리가 됐고.”
그리고 이젠 <드림걸즈>의 에피가 그녀를 반긴다. “오디션 보기 전날, TV를 켰는데 영화 <드림걸즈>가 나오는 거예요. 그것도 딱 비욘세가 ‘Listen’을 부르는 장면이어서 신기했죠. 이건 뭐지? 오디션이 잘되려나? 근데 다음 날 가보니 오디션 곡이 ‘Listen’이더라고요. 정말 열심히 불렀죠.” 박혜나와 <드림걸즈>의 만남은 이미 예견된 듯했다. “항상 이런 생각해요. 이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어떻게 머무를까? 무엇을 남기고 갈까? 요즘 정말 신나요. 시간이 모자란 게 아쉬울 정도로.”
노래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에피에게 박혜나란 이름이 더해지니, 자연스레 기대가 더해진다. “배우로서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었던 건, ‘노래’의 힘이 컸어요. 저는 타고난 끼가 있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연습하고 또 연습해야 하는 사람이죠. 그런 제게 버틸 수 있는 힘을 준 것이 바로 노래였어요.” 이미 ‘노래’만으로도 그녀와 에피는 하나인 듯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좀 달랐다. “큰 도전이에요. 아직 에피는 저 멀리에 있죠. 인종부터 시작해서, 정서, 목소리 톤, 다 달라요. 음악도 제가 시도해보지 않은 장르이기 때문에 연습을 진짜 많이 해야 할 거 같아요.” 내적인 부분뿐 아니라 외적인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는 그녀는 천생 노력파 배우였다. “에피는 체구가 좀 커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흑인 소울을 내려면 어느 정도 힘이 있어야 하잖아요. 조금이라도 캐릭터에 접근하고 싶어서, 요즘 열심히 먹고 있어요.(웃음)”
일 년 전, ‘중력을 넘어서(Defying Gravity)’를 부르며 멋지게 하늘을 날았던 박혜나. 2015년엔 <드림걸즈>로 또 한 번 그녀의 멋진 비상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다 관객들 덕분이에요. <위키드> 때 진짜 그랬어요. 무대에 못 설 것 같은 날도 있었죠. 첫 등장할 때 그냥 무대에 내던져진 느낌! 그런데 관객들의 눈빛을 보니, 힘이 나서 저도 모르게 노래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세 시간이 훅 갔어요. 이젠, 에피의 길로 한번 가봐야죠. 최선을 다하면 후회는 없으니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7호 2015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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