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세 번째 출연인데 출연 결정에는 망설임이 없었나요?
기대감에 대한 부담감이 좀 있지만 아직도 이 작품에 대해서는 목이 말라요. <헤드윅>을 100퍼센트 이해하기에는 아직도 어리고 부족하지만, 이런 생각들 때문에 다시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헤드윅>이라는 작품을 알게 된 그 순간을 기억하나요?
2005년이었나, 영화로 먼저 접했어요. 영화를 보고 이 작품에 반해서 정보를 찾아보다 존 카메론 미첼이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다가 영화로 만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요. 그런데 그런 <헤드윅>이 우리나라에 상륙한다는 거예요. 그때가 제가 <그리스>를 하고 있을 때였거든요. 나도 하고 싶다는 열의를 가지고 시간을 내서 <헤드윅>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뚝 떨어졌죠.
그럼 다음 시즌 오디션을 다시 본 거예요?
아, 그때 기획사에서 전화가 왔기에 ‘혹시?’ 하고 기대를 했거든요. 근데 <헤드윅>이 아닌 <벽을 뚫는 남자>라는 작품을 같이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벽을 뚫는 남자>를 하게 됐는데 쫑파티에서 대표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정석 씨, <헤드윅> 시즌3 합시다.” 그때는 정말 날아갈 것 같았어요.
왜 <헤드윅>에 욕심이 났던 거예요?
누군가를 사랑하고, 버림받고, 용서하고, 치유되는 그런 감정을 무대에서 실현시킬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제 안의 여성스러운 섬세함이 저를 더 자극시켰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일반적인 작품이 아니잖아요.
정말 매일매일 신나서 연습실에 갔겠어요?
그때 당시 <헤드윅>은 배우 조정석한테 굉장히 큰 작품이었잖아요. 염려하는 분도 있고, 기대된다는 분도 있고, 반응이 천차만별이었는데 저는 그런 게 정말 즐거웠어요. 연출 선생님이나 음악감독님한테 혼나더라도 난 진짜 좋았어요. 그런 게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즐겁게 연습하면서 작품을 준비했던 것 같아요.
정석 씨한테는 귀여운 막내아들 같은 이미지가 있잖아요. <헤드윅>을 한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뭐라고 하셨어요? 아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셨을 것 같아요.
그렇죠. 이 작품에 대해 전혀 모르셨다가 제가 한다고 해서 알아보시고 공연도 보러 오셨죠. 깜짝깜짝 놀라셨어요. 제 친구들도 그렇고.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들은 워낙에 저란 사람을 잘 아니까 그 전에 했던 작품을 볼 때는 무대 위에 내 친구, 내가 아는 정석이가 있는 것 같았는데 <헤드윅>을 보면서 그게 깨졌다고 하더라고요. ‘아, 정석이가 배우지’ 그런 생각이 들었대요. 그때 진짜 좋았어요.
연기에 대해서 들었던 이야기 중에 기억에 남는 말 있어요? 집에 가서 되새겨봤던 말 같은 거요.
무대 위에서의 싸움은 집중력 싸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하루는 뭐랄까, 내가 생각했던 헤드윅을 무대 위에서 정확히 실현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왜 그분이 오셨다고 하잖아요. 그날 친한 선배님이 공연을 보러 왔는데 자신이 생각했던 헤드윅 그대로를 네가 연기하고 있었다고 이야기해주시더라고요. 그게 정말 와 닿는 거예요. 왜냐하면 정확히 내가 생각하는 헤드윅을 실현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이야기해주시니까요.
공연을 하면서 그분이 온다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우리는 무대 위에서 어떤 인물을 연기하는 거잖아요. 근데 이게 깨질 때가 있어요. 내가 연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안 들 때가 있는 거죠. 연기는 정말 완벽한 계산인데 그 계산이 어느 순간 없어질 때가 있어요.
그런 경험을 하면 정말 짜릿하겠어요. 헤드윅이 부르는 노래 중에서 나하고 가장 가깝게 느껴진 곡은 뭐예요? 루터에게 버림받고 부르는 ‘위그 인 어 박스’요. 누군가에게 버림받고, 누군가가 기억 속에서 나를 지우려고 할 때, 그런 감정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느낄 수 있잖아요. 그 감정선이 굉장히 많이 와 닿았죠. 그랬던 기억이 있으니까.
헤드윅은 여성 디바들에게 연대감을 느끼잖아요. 평소에 유대감을 느끼고 존경하는 여성, 만약 여자로 살게 된다면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예요?
저는 여자로 태어나면 순종적인 여자가 될 것 같아요. 제가 약간 마초 기질이 있어요. 그래서 내가 여자로 태어난다면 나라는 남자가 좋아할 만한 여자가 될 것 같아요. 존경하는 여성상은… 글쎄요. 저는 되게 왔다 갔다 해요. 어떤 때는 자신감 넘치는 여자가 멋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부드럽고 상냥하고 말 그대로 여성스러운 여자가 매력이 있을 때도 있고. 누가 절 잘 안다고 그러면 전 너무 웃겨요. 왜냐면 나도 나를 모르는데 그 사람이 나를 안다고 하니까. 그런 것처럼 저도 저를 잘 몰라서 여성상, 이상형 이런 게 없어요.
어렸을 적 엄마 화장품으로 화장 놀이를 해본 적 있어요?
있죠. 여기 오른쪽 이마에 상처가 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큰누나네 집에 놀러가서 세 살 어린 조카하고 누나 화장품으로 서로 화장해주고 매니큐어도 발라보고 그러다가 누나가 저 멀리에서 그걸 발견한 거예요. 그래서 다락방으로 도망가다가 떨어져서 팔도 부러졌어요. 그게 화장의 첫 기억이에요.(웃음)
도망을 갔다는 건 내가 혼나겠다는 생각이 있어서잖아요. 그 이유가 누나의 물건을 함부로 건드려서, 아니면 남자인데 화장을 하고 놀아서 혼나겠구나 하고 생각한 거예요?
두 가지 다인 것 같아요. 저한테 누나가 굉장히 무서운 존재라 누나의 물건을 건드려서 혼날까봐, 그리고 사내놈이 이런 거 가지고 장난쳤다는 게 약간 창피하기도 하고, 그런 거 보고 누나가 뭐하는 짓이냐고 할 것 같기도 하고. 두 가지 다였어요.
헤드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언제인 것 같아요?
토미에 대한 애증을 놓는 순간이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 나의 반쪽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놓아주는 건 힘든 일이거든요. 그래서 그 순간에 진짜 헤드윅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진정한 록커 헤드윅이요. 헤드윅은 트랜스젠더이기 전에, 누군가의 반쪽이기 전에 록커거든요. 그래서 저한테는 ‘미드나이트 라디오’가 굉장히 중요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2호 2011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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