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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TAFF] <곤, 더 버스커> 박용전 [No.137]

글 |안세영 사진 |심주호 2015-03-11 6,009

다양성에 대한 믿음  

박용전이라는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를 달아야 할까?  극작가, 작사가, 작곡가, 연출가, 제작자…… 
어떤 것을 써도 충분치 않고, 어떤 것을 써도 틀리지 않다.  지금껏 그가 만든 모든 뮤지컬에서 앞서 나열된 역할이  몽땅 그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온전히 그로부터 탄생한  작품 두 편이 공연을 앞두고 있다. 
2007년 초연 이후 롱런 중인 <오디션>과  지난 1월 시범 공연을 마치고 정식 공연에 들어가는  신작 <곤, 더 버스커>가 그것이다. 



신작 <곤, 더 버스커> 얘기부터 해보자. 버스킹(거리 공연)을 소재로 삼은 점이 특이한데, 어떻게 구상한 작품인가?
나 자신이 5년 전부터 간간이 버스킹을 해왔다. 두 달간 기타를 들고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버스킹을 한 적도 있다. 하루는 케냐 마사이마라에서 우연히 열기구 관광 사업을 하는 한국인을 만나 술을 마시는데, 이 아저씨가 술김에 ‘한국에서 온 뮤지션이 내일 여기서 공연할 것’이라고 선포를 해버린 거다. 다음 날이 되니 진짜 사람이 많이 모였더라. 그 앞에서 두 시간 동안 노래하고 짧은 영어로 가사 설명도 해주며 재밌게 놀았다. 그때 사귄 캐나다인 벌룬 파일럿과 열기구도 타고! 그렇게 버스킹으로 친구도 사귀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한국은 버스킹을 하기가 너무 힘든 나라다. 소리 잘 울리는 청계천 다리 밑에서 기타라도 치고 있어 봐라. 바로 혼쭐난다. 공연 계획서를 제출하고 허가를 받아야만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규제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버스킹을 할 만한 곳은 이태원, 인사동, 홍대, 삼청동의 몇몇 장소로 한정돼 있다. 그나마도 이태원은 완전히 향락의 거리가 되어 시끄럽고, 사람들은 지나가다 동전만 던져주고 가는 식이다. <곤, 더 버스커>에 그런 대한민국 버스킹의 현실을 담고 싶었다.


악기와 음악도 버스킹에 주로 쓰이는 것을 택했다고 들었다.
버스커들의 악기는 통기타, 스트릿 드럼, 아코디언, 미니 베이스, 첼로 등 실제로 버스킹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것들로 구성했다. 가장 큰 축인 곤의 음악은 포크와 모던록을 기반으로 한다. 기타를 치며 마음 가는 대로 부르기 좋은, 즉흥성이 강한 음악을 표현했다. 극 중에 곤이 즉흥적으로 부르는 노래가 두 번 나오는데, 실제로 나도 밖에 나가 기타를 치다가 즉흥적으로 노래를 만들곤 한다. 반면 방송국 장면에는 어느 정도 양식이 정해진 음악이 사용됐다. 곤의 음악에 버스킹의 현실성을 살리기 위한 제약이 있었다면, 방송국이나 다른 캐릭터의 음악은 오히려 마음껏 자유롭게 썼다. 레게도 해보고, 뽕짝도 해보고.


3인조 밴드 ‘스트라다킹’의 존재감도 강렬하다. 배우들 연주 실력이 굉장하더라. 원래 밴드 활동을 하던 멤버들인가?
데빈은 밴드 ‘넥스트’ 출신 기타리스트이고, <오디션>을 2년 넘게 같이한 내 친한 친구다. 김성구 씨도 밴드에서 활동했던 프로 건반 연주자다. <오디션>에서 주인공들이 합주를 할 때 사운드를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 백 스테이지에서 건반을 쳐주는데, 6년 동안 그 역할을 담당했다. 이종현 씨는 약간의 비트박스 특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무대에서 써먹을 수 있을 만큼 계속 다듬고 키웠다. 


그러고 보면 <오디션>과 <곤, 더 버스커> 모두 배우들이 직접 밴드 멤버로 악기를 연주하는 작품이다. 배우를 캐스팅할 때 연주 실력을 얼마나 보나.
처음부터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을 뽑기도 하고, 생초짜가 들어와서 죽기 살기로 배우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드러머 포지션이라면, 드럼을 못 치더라도 일단 박치가 아닌지, 기본적인 리듬감이 있는지를 본다. 


밴드라는 소재에 특별히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있나?
밴드는 하나의 유기체다. 드럼, 베이스, 기타 등 개별 뮤지션들의 연주가 합쳐져 하나의 음악이 된다. 그 유기적인 집단은 다른 어떤 예술 공동체와도 느낌이 다르다. 나 역시 20대에 밴드 활동을 했다. 결국에는 생활고로 와해되고 말았지만, 여전히 내게는 소중한 기억이다. 밴드와 함께했던 내 20대를 하나의 이야기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해 만든 작품이 <오디션>이다. ‘세상에는 자기 밴드를 가져본 사람과 가져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밴드란 정말 굉장한 경험이다. 


그동안 소극장 작품에 주력해온 것과 달리 <곤, 더 버스커>는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탭댄스, 마임 등 퍼포먼스도 강화됐다.
배우의 디테일한 연기를 감상할 수 있어 소극장을 선호하는데, <곤, 더 버스커>에서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한국은 아직 버스킹 문화가 생소해서 기타치고 노래하는 버스커가 대부분이지만, 버스커란 개념이 음악 하는 사람만 가리키는 건 아니다.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버스커고, 행위예술을 하는 사람도 버스커고, 저글링, 마샬아츠, 스포츠 활동을 통해 버스킹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폭 넓은 버스킹 문화를 풀어내고 싶어 탭댄스와 마임을 집어넣었다. 버스킹에 쓰이는 악기도 여러 가지를 보여주려다 보니 필요한 인원이 많아졌다. 버스커 쪽 인원과 밸런스를 맞추면서 방송국 쪽도 식구가 늘었고. 


버스커들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방송국이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 의식이 강하게 드러난다.
<곤, 더 버스커> 안에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특정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이 사회가 예술을 소비하는 시각, 시스템이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대변한다. 서바이벌 오디션은 하나의 틀을 놓고 대결을 붙여 더 잘하는 사람을 가려내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굉장한 고음과 초절 기교를 보고 소름이 끼치는 것만이 감동은 아니다. 예술가마다 개성이 다르고,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지점도 다 다르기 마련이다. 또 그 가치를 깨닫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있다. 그 자리에서 꺼내놓고 누구 빵이 더 큰지 비교할 수 없다는 얘기다. 심사위원 역시 현재 활동하고 있는 한 명의 예술가일 뿐인데, 그들은 심사를 하는 입장으로, 참가자들은 심사를 받는 입장으로 분명하게 나뉜다. 근본적으로 참가자들을 예술가로 인정하지 않는 시각이다. 음식으로 치면 삭힌 홍어도 먹는 사람이 있지 않나. 먹는 이에게 해로운 음식을 내놓지 않기 위한 예술가의 자기 검열이 중요할 뿐, 예술에서 더 잘하는 것과 덜 잘하는 것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예술 활동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그런 열린 시각을 갖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방송이 정화될 필요가 있다.




<오디션> 역시 오디션을 준비하는 밴드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의 오디션은 무엇을 의미하나?
<곤, 더 버스커>의 서바이벌 오디션과 <오디션>의 오디션은 단어만 같다고 보면 된다. 오디션은 사람을 뽑고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필요한 시스템이다. 우리 인생에 얼마나 많은 오디션이 있나. 그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방향성이 문제가 된다는 거다. 게다가 <오디션>의 드라마 안에서 오디션은 아주 작은 재료일 뿐이다. 등장인물들이 오디션에 붙고 떨어지는 결과는 중요치 않다. 다만 그들이 밴드 뮤지션으로 20대를 보내며 함께 꿈을 꾸는, 그 순간의 찬란함에 초점을 맞춘다. 나는 모든 여행이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꿈꿨던 목적지에 도달하고, 최고가 되는 것만이 행복은 아니다. 누군가는 꿈이 없을 수도 있고, 또 꿈이 있다가도 흐려지거나 바뀔 수 있다. 그렇다고 그가 걸어온 길이 모두 의미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 여행길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면, 원했던 목적지에 도착한다 해도 행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뮤지컬 창작자 박용전은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나?
정규 교육을 받아서 하고 있는 일은 없다. 원래 글 쓰고 곡 붙이는 건 어릴 적부터 좋아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내가 만든 유치한 합창곡으로 우리 반이 합창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중학교 때까지 꿈은 록 밴드 보컬이었는데, 우연히 보게 된 오페라 <파르지팔>이 신세계를 열어줬다. 와, 배우들이 무대에서 연기하면서 노래도 하다니! 이런 걸 해야겠다! 그리고 스무 살 무렵 공연계에 발을 들여 조명 스태프, 음향 스태프 등 온갖 일을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작곡과는 아주 잠깐 다녔고 연출도 현장에서 어깨너머로 배웠다.


만드는 작품마다 극작, 작사, 작곡, 연출을 전부 직접 도맡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런 작업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뭔가?
나란 사람이 원체 한 가지 일만 하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내가 만든 이야기에 음악을 붙이는 것까지 합쳐서 하나의 창작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작업 순서에 대해 많이들 궁금해하는데, 뒤죽박죽이다. 장면과 가사를 먼저 써놓고 거기에 어울리는 곡을 만들 때도 있고, 문득 떠오른 멜로디가 마음에 들어서 나중에 장면과 가사를 끼워 맞출 때도 있다. 어떤 때는 가사를 쓰는 동시에 흥얼거리며 멜로디를 만들기도 한다. 가사와 음악과 드라마가 내 안에서 굉장히 유기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그걸 분리해내기가 더 어렵다. 


2006년 설립한 제작사 ‘오픈런 뮤지컬 컴퍼니’의 대표이기도 하다. 제작사 대표로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나?
앞서 얘기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얘기를 다시 꺼내자면, 그런 프로그램도 물론 한두 개쯤 있을 수 있다. 자극적인 음식도 독한 술도 가끔 즐기면 좋으니까. 문제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차지하고 대세가 되면서, 자신들의 예술 활동을 대중과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거다. 예술가들을 격투장으로 끌어내고, 안 그러면 살길이 없게끔 만들고 있다. 그렇게 천편일률적으로 가다 보면 언젠가 생태계가 깨지기 마련이다. 다양성을 지킨다는 개념이 없으면 나중에는 싫어도 그 자극적이고 독한 음식밖에 먹을 게 없어지는 순간이 온다. 오픈런 뮤지컬 컴퍼니의 목표도 다양성의 한 부분을 지켜 나가는 것이다. 최근에 한 배우가 내게 ‘대표님은 대형 라이선스 작품은 안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만 만들어도 한 작품에 이렇게 몇 년씩 걸리는데 다른 데 쓸 시간과 돈이 어디 있냐고. (웃음) 대중이 열광하는 크고 화려하고 환상적인 뮤지컬도 물론 좋고 필요하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그렇지 않은 뮤지컬도 있어야 한다. 창작자로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꺼낼 출구가 필요하다는 것, 또 모두가 같은 작품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게 내가 이 컴퍼니를 하고 있는 이유다. 물론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건 재밌는 작품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과 즐기는 일이지만, 그 작품들로 인해 다양성을 인정하는 시각이 조금이라도 더 자리 잡는다면 예술가이자 제작사 대표로서 훨씬 보람을 느낄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7호 2015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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