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ae Uck 독특한 존재감을 가진 배우 김재욱의 이력은 남다른 데가 있다. 태어나자마자 특파원인 아버지를 따라 도쿄로 이주해서 7년을 살았고, 한국어보다 일본어를 먼저 배웠다. 고등학생 때 모델로 데뷔했고 그 무렵부터 밴드의 보컬로 무대에 섰다. 휴대폰 광고 속 성별 미상의 화려한 외모는 영화 <앤티크>에서 ‘마성의 게이’ 민선우를 연기한 후 대중들이 그의 성정체성에 짓궂은 호기심을 품는 이유가 되었다. 게이 역을 한 것 때문에 캐스팅에 불이익이 있었을 것이라는 뒷이야기까지 돌았다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경계심이 들 법도 한데, 그는 실패한 트랜스젠더 헤드윅의 가발을 쓰는 데 스스럼이 없었다. 김재욱은 ‘자유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이라는 슈미츠 부인의 대사를 좋아하고, 그 말의 의미를 아주 잘 알고 있다.
현해탄 너머의 흉흉한 소식과 함께 서울에도 방사능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고가 전해진 우울한 밤, 한 방문객이 이지나 연출의 집을 찾았다. 곱게 화장을 한 금발의 미인은 180센티가 넘는 장신이었고, 머리에는 꽃을 꽂고 있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환상소설의 한 장면을 연출한 기묘한 청년은 그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김재욱이었다.
무대에서 여장을 하는 것과 여장을 하고 외출을 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일 텐데, 엉뚱하네요.
저는 아직 무대에 서 본 적이 없으니까 궁금하기도 했고, 몸으로 먼저 익숙해지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요즘 집에서는 계속 힐을 신고 다니는데 이제는 꽤 편해요. 자세가 곧아지더라고요. 워킹도 자연스럽게 여자 모델들처럼 하게 되는 게 재밌어요.
부모님께는 뭐라고 했어요? 이 작품을 한다니까 어떤 반응을 보이시던가요.
‘이러이러한 작품을 하고, 거기서 난 트랜스젠더니까 보러 오지 마.’ 이미 한 번 (동성애자 역으로) 상처를 입힌 적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개방적인 집도 아니고, 좀 포멀한 역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걸 아니까요. ‘넌 늘 그러더라’ 라고 하셨어요.
그러고 보면 다수가 좋아할 만한 역을 맡아본 적이 없지 않아요?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에서 쾌락을 못 느껴요. 제가 가진 기본적인 성향인 듯한데, 돈이나 명성이 싫다는 게 아니라, 소수가 좋아하는 것을 했을 때의 희열이 저한테는 훨씬 커요.
연습은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고 있어요?
지금 좀 방치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사실은 3월 말부터 몸이 많이 안 좋았고, 지금도 다 회복이 되지는 않았어요. 연습을 계속 못 가다가 이지나 선생님께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고 말씀 드렸는데, 열흘 동안 잠만 자라고, 대본도 보지 말고 음악도 듣지 말고 쉬라고 하시더라고요. 처음에 4킬로그램을 찌우라고 하셨는데 도리어 4킬로그램이 빠져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걸 죄다 못 지키고 있는데 혼내지를 않으시니까 불안하네요.(웃음)
원래 <헤드윅>의 팬이라고 들었어요.
저는 그 사람이 꾸역꾸역 살아가는 게 좋아요. 저에게 헤드윅은 멋있는 사람이에요. 가엾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헤드윅>은 몇 십 번을 봐도 그때마다 달랐어요. 하지만 어쨌든 가장 크게 다가오는 건, 그가 자기 문제들을 모두 이겨냈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계속 살아간다는 거예요.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매력을 잘 모르면서도, 내가 언젠가 뮤지컬을 하게 된다면 그건 <헤드윅>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와 같이 밴드하는 형(김태현)이 앵그리 인치 밴드에서 드러머로 100회 넘게 공연을 했어요. 가서 본 적은 없는데… 음, 그게 이상한가요?
이상하다기보다는, 보통 그러지 않죠. 헤드윅과 토미의 관계는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토미의 성향이나 살아가는 방식을 보면 ‘저 사람은 이렇다’라고 이해하고 카테고리화 할 수가 있어요. 제가 이미 알고 있는 유형의 사람이니까요. 헤드윅은 그렇지 않죠. 그런데 헤드윅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을 생각하면서 저런 사람은 적어도 이 정도는 되는 상대에게 반할 거야라는 기준은 사실 별 의미가 없어요. 토미가 가진 것들… 자기를 바라봐주는 그 파란 눈이라든가, 그가 하는 이야기들의 뉘앙스, 그리고 타인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갈구한다는 것 자체가 헤드윅에게는 한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을 거예요. 첫 만남부터 되게 당돌하잖아요.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걸 일부러 보여준다거나 계속 질문을 하는 게 귀엽기도 하고. 저는 관록 있는 멋진 여배우들이 아직 덜 자라서 자기 느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어린 아이돌을 언급하면서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는 걸 종종 보는데 처음에는 어째서일까 의문이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완벽하게 이해를 해요.
그런데 ‘오리진 오브 러브’의 가사에 처음 반으로 나뉜 후 다시 그를 만났을 때, 그 얼굴에 나와 같은 피가 묻어 있었다는 부분이 있잖아요. 환상이죠. (차갑네요?) 요새 제가 좀 그래요.
내가 잃어버린 진짜 반쪽이 아니라, 그렇다고 믿는 것에 의미가 있다는 건가요?
‘진짜를 알아본다’… 제가 아직 그런 사람을 못 만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물음표를 지울 수가 없어요. 비단 사랑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누구나 그런 의문을 갖지 않나요? 내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100퍼센트로 주고받는다는 것을 확인할 방법은 없으니까. 단지 자기 믿음을 믿고, 사랑하는 자기 마음을 사랑스러워하는 것밖에는. 이런 게 좋거나 싫다는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다고 느껴요.
‘미드나이트 라디오’를 끝으로 객석을 통해 걸어 나가는 헤드윅의 얼굴은 관객들에게 정말 의미심장하게 다가오죠. 그때 어떤 표정을 할 것 같아요?
일반적인 교육이나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정말 특수한 상황에서만 생겨나는, 피 흘리는 고통을 통해서 간신히, 아주 조금 맛볼 수 있는 어떤 감정이 있을 거예요. 제가 일방적인 계산으로 알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무대에서 관객들과 소통하면서 찾아가게 되겠죠. 무대에서 연기를 해본 적은 없는데 어렸을 때부터 무대에서 노래를 해서 관객들과의 호흡이 잘되었을 때 뭘 느낄 수 있는지는 알지만… 어떤 얼굴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공통 질문이에요. 헤드윅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적인 순간은 언제라고 생각해요?
토미가 부르는 ‘위키드 리틀 타운’을 들었을 때가 아닐까 싶어요.
내 이야기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곡은?
지금은 하루 종일 ‘Lament’만 듣고 있어요. 노래라기보다는 모놀로그에 가깝지만. 그런 곡은 계속 바뀌는데 유일하게 ‘티어 미 다운’은 제일 좋아해본 적이 없는 넘버에요.
<헤드윅>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누구한테 제일 먼저 했고, 그 사람의 반응은?
(주)지훈이 형한테 했고요. 질투하던데요.(웃음) ‘에이, 그래, 네 거다’ 그랬어요. 형은 나중에라도 하려고 할 것 같아요. 저만큼이나 이 작품의 팬이거든요.
수술을 앞둔 한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수술은 비싼 데 가서 받아라.
제대로 수술을 받았다면 헤드윅의 인생은 달라졌을까요?
아, 적어도 ‘앵그리 인치’라는 이름의 밴드는 생기지 않았겠죠.
기묘한 밤의 방문객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 여장한 그를 본 순간, 제인 버킨이 눈앞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는 이지나 연출의 감탄이 아니라도, 그가 어떤 얼굴과 분위기를 가진 배우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대략 하나의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예민하면서도 초연하고, 약간은 비현실적이고 비등점이 높은 헤드윅. 물론 정말로 보게 될 것이 무엇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는 지켜보는 사람들이 걱정스러울 만 큼 느리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무대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우리는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증오하게 될까. 지금은 그저 어느 쪽이든 그가 다르지 않게 받아들이리라는 것만을 알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2호 2011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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