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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Mini SPECIAL] <지킬 앤 하이드> 지킬·하이드 캐스트 비교 [No.137]

글 |안세영 사진제공 |오디뮤지컬컴퍼니 2015-03-02 9,427

가면 속의 또 다른 나

‘지킬은 선(善), 하이드는 악(惡)’.  지킬과 하이드를 설명할 때 흔히 따라붙는 이분법이다. 
하지만 인간의 이중성을 어찌 단순히  ‘선’과 ‘악’의 구도로 단순화시킬 수 있으랴.  지킬의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억압된 이면인 하이드도 얼마든지 달라진다. 
10년간 작품의 흥행을 선도해온 조승우, 류정한과  이번 시즌 새로이 합류한 박은태가 표현하는  지킬과 하이드는 어떤 모습일까.



소년의 상처, 조승우                                                                                                

조승우는 매우 열정적인 동시에 아직 미숙함이 남아 있는 순수 청년 같은 지킬을 보여준다. 이사회 앞에서 연설을 하기 전에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입술을 핥는 등 긴장된 기색을 내비친다. 억지로 끌려온 클럽에서도 괜히 이것저것 만지작대다가 둘 곳 잃은 시선을 하늘로 향한 채 한숨을 폭 내쉬는 등 다른 지킬들보다 더 어색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다. 그 수줍고도 공손한 태도는 곱게 자라 공부만 한 ‘범생이’ 도련님의 이미지 그대로다. 클럽 남자에게 ‘봉’이라는 말을 듣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만, 동시에 그동안 남자들의 욕정 어린 시선에만 익숙했던 루시가 그 순수함에 이끌리는 것이 다분히 이해된다. 


조승우의 지킬이 아이처럼 보이는 또 다른 순간은 그가 아버지를 언급할 때이다. 첫 장면에서 누워있는 아버지에게 ‘날 쳐다봐요, 제발 눈을 떠요’ 하고 노래할 때나, 초상화 앞에서 예전의 아버지를 회상할 때 그가 보여주는 슬픔과 외로움의 깊이는 남다르다. 유독 그만이 이 고된 연구의 목적이 아버지의 쾌유(‘그대 향한 내 길’)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듯하다. 이사회의 반발에 부딪혔을 때, 세 지킬 가운데 유일하게 자존심을 버리고 무릎을 꿇는 간절함을 보여주는 것도 그런 이유에선지 모른다.  


부모를 잃은 아이의 고독. 조승우의 하이드는 마치 그 결핍에서 비롯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의 하이드는 힘에 넘치기보다 오히려 지치고 우울해 보인다. 드러내는 감정도 매우 인간적이다. 살인의 과정을 즐기기보다 그동안 자신을 외면하고 무시했던 이들에게 쌓였던 감정을 그대로 분출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떠나려던 루시에게 ‘작별인사도 없이 날 떠나려고?’ 하고 묻는 어조에는 서글픔마저 읽힌다. 루시를 살해하기 전 ‘넌 내 곁에 있어, 날 버리지 마, 내 사랑’이라고 속삭이거나, 살해한 후 혼잣말로 ‘거짓말’이라고 책망하는 등의 소름끼치는 애드리브는 오직 조승우의 하이드에서만 볼 수 있다. 그 장면에서 하이드의 감정은 마치 애정의 상대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모습을 보느니 아예 내 손으로 없애버리고 말겠다는 비틀린 집착처럼 느껴진다. 착한 아이의 모습 아래 억눌린 부정적인 감정, 어둡고 상처받은 내면, 외로움을 그대로 드러내는 존재가 조승우의 하이드다. 


하이드에게서 인간적인 모습이 강조된 만큼, 다른 두 배우에 비해 변신의 진폭은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대신 ‘미워하긴 힘들죠, 나니까’라는 지킬의 노랫말처럼 궁극적으로 서로가 별개의 인격이 아닌 한 사람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느끼게 한다. 자살을 택하는 최후의 순간까지 조승우의 지킬은 ‘아버지!’를 외치며 쓰러진다. 



신사의 광기, 류정한    

류정한은 세 명의 배우 중 가장 연장자이자 클래식한 성악 발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가 표현하는 지킬은 좀 더 어른스럽고 권위가 있는 느낌을 준다. 이사회 앞에서도 그는 서두르거나 머뭇거리는 일 없이 당당하고 안정된 태도로 연설에 임한다. 말끔하게 다듬어진 신사적인 행동거지는 기득권과 대립하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순간에조차, 그가 태생적으로 귀족이며 뼛속부터 상류 사회의 일원으로 자라온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그랬던 지킬이 하이드가 되면 유난히 기괴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변신 직후 팔다리의 관절을 접은 채 비틀대는 하이드의 모습은 위압적이기에 앞서 그로테스크하다. 밑바닥에 깔려 구겨져 있던 무언가가 갑자기 밖으로 끄집어내진 느낌이다. 또한 저음으로 노래하다가 어느 순간 급격히 고음으로 치솟으며 흥에 겨운 괴성을 내지르는 류정한만의 창법은 향락적이며 충동성이 강한 그의 하이드를 대변한다. 그는 살인에 앞서 꾸며낸 목소리로 이죽대거나, 어터슨 앞에서 정체를 드러내며 히히대는 등 하이드로서 해방감을 마음껏 누린다. 루시와 ‘나도 몰랐던 나’를 부를 때도 혀를 날름거리며 더 끈적하게 달라붙는 걸 볼 수 있다. 거리낌 없이 욕망을 드러내고 즐기는 본능에 충실한 하이드. 그래서 그의 하이드는 셋 중 가장 ‘돌아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반면 하이드가 등장한 이후의 지킬은 눈에 띄게 무너져내린다. 전반부에 보여줬던 안정된 모습 때문에 이 후반부 무너짐의 낙차는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통제력을 상실한 그의 모습은 어터슨의 노래 속 ‘불안한 눈, 낯선 표정’ 그대로다. 루시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에도 행여 자신의 정체를 들킨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불안에 떠는 기색이 역력하다. 가장 어른스러웠던 지킬이 가장 나약한 지킬로 급격히 퇴행해버리는 것이다. 


이때 그가 느끼는 처절한 감정은 유난히 신사적인 지킬과 유난히 원초적인 하이드의 조합이 낳은 산물이다. 지킬이 느끼는 감정은 그처럼 추악한 자신을 발견한 것에 대한 당혹감을 드러내는 듯하다. 알고 보니 나 역시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는 위선자였음을, 자신이라고 믿어온 것이 허상이었음을 깨닫고 흔들리는 느낌이다. 그래서 루시를 살해한 뒤 다른 지킬들이 ‘세상에, 안 돼!’를 외치는 데 반해, 류정한의 지킬은 ‘아니야. 난 아니야!’하고 강하게 부정하는 말을 내뱉으며 허둥지둥 도망친다. 



과학자의 분노, 박은태                                
                                                                           
박은태의 지킬은 가장 반골 기질이 강한 아웃사이더다. 남들이 뭐라던 자신의 연구에만 매진하는 외골수 과학자의 전형이다. 결코 타협하지 않는 완고한 성격으로, 이사회 앞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딱딱하고 공격적으로 밀어붙인다. 그러다 결국 퇴짜를 맞고 읊조리는 ‘저들이 의학을 알아요? 죄다 쓰레기들이에요’라는 한 마디가 그의 지킬과 가장 잘 어울리는 대사다. 사실상 그의 관심은 아버지나 환자를 치료하는 것보다는 종교와 도덕의 구시대적이고 편협한 논리에 맞서 과학적 진실을 밝혀내는 것에 가 있는 듯하다. 


박은태의 호리호리한 체형과 높은 톤의 미성 역시 그를 주변 귀족 사회에 섞이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로 느끼게 하는데, 이는 하이드와의 차이를 극대화시키는 부분이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중저음인 다른 두 배우와 달리, 미성의 박은태가 섬뜩한 저음의 하이드로 변신할 때 그 충격은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다. 몸집을 거대하게 만들어주는 하이드 복장 때문에도 마른 체형의 지킬일 때와 대비가 더 뚜렷하다. 하지만 지킬 때의 결벽적인 성격은 이어진다. 꼿꼿한 자세로 음산한 웃음을 날리는 그의 하이드는 광인보다는 섹시한 느와르물 악당 보스를 보는 것 같다. 익숙히 봐온 뜨거운 하이드들과는 다른 쿨한 하이드다. 


그의 하이드를 가장 잘 설명하는 극중 대사는 ‘비열한 세상에 대한 복수심을 갖고 탄생’했다는 부분이다. 하이드는 그가 지킬일 때 주류 사회에 드러냈던 분노를 그대로 물려받는데, 특이하게도 그 분노가 매우 이성적으로 표현된다. 살인을 하고 있는 하이드의 모습은 어떤 사적인 감정이나 충동, 쾌락에 이끌린 살인마가 아니라 오히려 정확한 계산에 따라 악인을 처단하는 냉혹한 사형집행관, 그만의 정의를 행하는 동정심 없는 재판관처럼 그려진다. ‘나도 몰랐던 나’ 때는 직접 욕망을 드러내는 일 없이 루시가 먼저 몸이 달아 다가오게 만드는 고단수이기도 하다. 세 명의 하이드 중 가장 인간적인 면을 느낄 수 없고, 오히려 초월적인 존재의 느낌을 주기 때문에 다른 하이드들보다 더 ‘악마’같이 보일 수 있다. 


한편 하이드가 나타난 뒤에도 지킬은 그를 통제하며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가려고 애쓴다. 하이드의 탄생은 실험의 한 과정일 뿐이며, 조금만 더 가면 진실이 보일 거라고 믿는 듯하다. 루시의 죽음 직전까지도 그는 ‘아직까지는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 더 방점을 찍는다. 그래서 끝내 비극적인 결말에 도달하고 말았을 때, 한 선량한 개인의 몰락에 대한 동정심을 남기는 여타 지킬과 달리, 지나친 외고집으로 자멸의 길을 걸은 과학자의 말로를 보는 듯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7호 2015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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