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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LOSE UP] <러브레터> 기억과 현실이 교차하는 곳 [No.137]

사진 |김수홍 사진제공 |김만식(무대디자이너) 정리 | 안세영 2015-02-27 6,893

<러브레터>  김만식 무대디자이너 



뮤지컬 <러브레터>와 김만식 무대디자이너의 만남은 가히 운명적이었다. 
영화 <러브레터> 속 설경에 반해 오타루를 여러 번 방문한 그는, 

영화에 나왔던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자연스레 그것들이 무대로 옮겨지면 어떨지 상상해보게 됐다. 

작년에는 겨울이 아닌 봄에 오타루를 찾기도 했다. 눈에 덮이지 않은 온전한 거리의 모습을 자료 삼아 찍어 오기 위해서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며칠 만에 거짓말처럼 무대 디자인 의뢰가 들어온 거예요. 그때 생각했죠. 야, 이건 팔자구나!” 

현재 <러브레터>가 공연 중인 동숭아트센터의 극장장이기도 한 김만식 무대디자이너, 

그에게 특별했던 이번 무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오타루의 풍경을 담다                                                     

삿포로에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오타루는 메이지 시대부터 활발한 무역 활동을 해온 항구도시이다. 그래서 오타루에는 근대화 초기에 세워진 서양식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다. 독특한 점은 그것들이 한 가지 건축 양식으로 통일돼 있지 않고, 제각각 미국, 영국, 포르투갈 등 다양한 국가의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다는 점. 건물이 세워질 당시 주로 교류했던 국가가 어디냐에 따라 복제해온 건축 양식도 달라진 것이다. 대부분 청사나 창고로 지어진 건물인데, 지금은 주택이나 카페, 유리 공방(오타루는 유리공예로 유명하다) 등으로 개조되었다. 이런 서양식 건물 사이사이에는 일본식 전통 가옥도 섞여 있어 더욱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러브레터>의 무대에도 이런 오타루만의 복고적이고도 동화적인 풍경이 반영돼 있다. 무대 양옆의 벽체는 오타루의 서양식 석조 건물을 참고한 것이다. 동숭아트센터는 객석에서 무대 바닥이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벽체 디자인에 집중적으로 신경을 기울였다. 창문과 벽돌은 그림으로 그려 넣는 대신 조명이 비치면 그림자가 생기게끔 입체적으로 만들었고, 페인트칠의 느낌을 살리는 데도 공을 들였다. 반면 중앙에 자리한 이츠키의 집은 벽체와 다른 일본식 목조 가옥이다. 극 중에 묘사된 것처럼 ‘무너질 듯 오래된 집’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 집의 2층은 목재 뼈대로 가려져 있다가 나중에야 드러나는데, 이 뼈대는 일본 전통 가옥의 구조를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무대 뒤편의 아치형 세트는 오타루 역 플랫폼의 모습을 본뜬 것이다. 이곳 플랫폼에는 철도 위로 사람이 건너갈 수 있는 연결 통로가 세워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나무로 지어졌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오타루 역에 처음 내렸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그 구조물이었다. 그 모습을 오타루의 상징물로 무대 위에 재현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연기 구역                                                

<러브레터>는 고베와 오타루,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며 펼쳐지는 이야기다. 그러나 컷마다 자유로이 공간을 넘나든 영화와 달리, 뮤지컬은 그 많은 장소를 한정된 무대 공간 안에 옮겨놓아야 했다. 그래서 제작 팀과 첫 회의를 할 때부터 내용 구성 순서를 무대에서 풀어 나가기 좋게 바꿔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결과 장면이 단계별로 넘어가도록 각색이 잘됐고, 나는 대본상의 장면들이 매끄럽게 연결되도록 연기 구역을 짜는 일에 전념했다. 우선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소인 이츠키의 집을 중심으로 무대를 2층 구조로 나눴다. 그리고 집 외부에서 일어나는 회상 장면은 모두 1층에서 정리했다. 과거에서 다시 현재로 돌아올 때는 이츠키의 집으로 동선이 연결돼, 장면이 여기서 저기로 휙 건너뛰는 일 없이 자연스레 연결되도록 했다. 두 개의 층을 연결하는 계단은 학생들이 방과 후에 앉아 떠들곤 하는 학교 스탠드처럼 디자인했다. 그 밖의 전환 세트는 도서실과 유리 공방만으로 최소화했다. 대본상으로는 총 20여 곳의 장소와 30여 번의 장면 전환이 필요하지만, 현재 무대는 총 8개 구역에서 이 모든 걸 소화하고 있다. 


무대 디자인이라 하면 단순히 멋진 비주얼을 만들어내는 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무대는 어디까지나 배우의 연기를 뒷받침할 뿐, 그 자체로 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연기 구역을 생각하지 않고 비주얼적인 요소부터 욕심껏 집어넣다 보면 오히려 배우를 방해하는 무대가 나오고 만다. 이번 <러브레터> 공연을 두고 ‘무대가 예쁘다’는 말이 나왔을 때도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세트를 너무 과하게 집어넣은 건 아닐까, 색상을 더 죽여야 하는 건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작품과 배우의 연기보다 세트가 먼저 기억되는 것이 내가 바라는 바는 아니기 때문이다. 작품이 필요로 하는 연기 구역을 정확히 확보하는 것, 그것이 무대 디자인에서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7호 2015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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