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苦戰)을 면치 못한 고전(古典)의 뮤지컬 옷 입기
‘일반적인’ 난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뮤지컬로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대하는 마음은 크지 않았다. 호방한 스케일의 고전 소설을 소재 삼은 대극장 뮤지컬이라. 지금껏 그런 부류의 공연은 적잖았건만 그 야심에 버금가는 성과를 거둔 작품이 있었던가? 글쎄, 잘 생각나지 않는다. 실패의 원인은 비슷비슷했다. 일단 이야기의 압축 실패. 그 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요약하는 것도 대부분 벅찼더랬다. 물론 그런 시도 자체는 의미가 있다. 검증된 고전 작품의 문학성을 뮤지컬의 감성으로 번역해냄으로써 고전의 수용 지평을 확장하고 새로운 뮤지컬 콘텐츠를 개발하는 일석이조의 효과!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런 효과를 얻으려면 줄거리는 단순 요약이 아니라 뮤지컬의 시공간에 맞는 플롯으로 재구성되어야 할 터. 플롯을 담아내는 뮤지컬의 방법은 다양하다. 물 흐르듯 잘 흘러가는 이야기를 중심 삼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음악을 통해 각각의 장면을 완결시킬 수도 있다. 공연다운 창작의 상상력이 발휘되어야 할 지점이다.
문제는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개인의 이름을 빌려 몇 세대와 한 시대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대하 서사를 공연에 알맞도록 다듬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이런 원작의 경우 주인공의 삶 전체를 다루는 경우가 많고, 게다가 그의 삶은 시대의 흐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인이 주인공이라면 시대는 그 주인공과 대결하는 반(反)주인공인 셈이다. 시대는 주인공을 삶의 밑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주인공은 그런 시대와 정면으로 갈등하고 충돌한다. 미시적인 개인의 삶이 거시적인 역사를 바라보는 현미경의 렌즈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인공을 둘러싼 시대와 역사를 어떻게 생동감 있게 묘사할 것인가의 해결점은 단순한 원작 추종주의나 역사 고증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주인공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며, 주인공보다 더 구체적으로 그려져야 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이것이 잘 묘사된 작품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더 어려운 것은,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뚜렷해지려면 반드시 이런 요소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건이 성격을 드러내고 성격 때문에 사건이 벌어지는, 이러한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서만 등장 인물은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으며 소설의 기시감은 무대의 생동감으로 새롭게 번역될 수 있다. 원작을 모르는 사람이 공연을 본다 해도 충분히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무대의 시공간에서 타당한 논리를 획득해야 함은 당연지사. 이야기건 캐릭터이건 기계적으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구축되어야 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제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이런 일반적인 난제를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넘어설 수 있을까? 이 작품이 프랑스 뮤지컬이라는 데 일말의 기대를 가질 수도 있겠다. 음악을 단위 삼아 장면을 완결하고, 그 장면의 연속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제시하는 ‘프랑스식’ 무대 화술은 대하드라마를 소화하기에 어쩌면 가장 적절한 방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일이 줄거리를 설명하고 나열하느니, 시공간을 압축하는 음악을 중심으로 극을 꾸려 나가는 방식이야말로 실로 뮤지컬다울 것이다. 장면의 완성도만 확실하다면 그 여운이 만들어낸 감정의 언어가 듬성듬성한 이야기 틈새를 메울 수도 있고, 아니면 다시 확인하고 싶은 반복 관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놓친 것과 붙잡은 것의 일방적인 기울기
하지만 막상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고 나니, 이 작품의 문제는 ‘일반적인 난제’에 있지 않음이 분명해지더라. 솔직히 일반적 난제를 운운하는 것조차도 이 작품에는 지나쳐 보인다. 형상화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역량의 문제보다 이 작품에서 더 심각한 것은 도대체 이 작품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지 않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시작과 끝이 보여주는 기가 막힌 엇박자는 이 작품의 모호한 목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례이다. 시작을 여는 음악은 생뚱맞게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유명한 음악 ‘타라의 테마’이다. 영화의 서사와 등장인물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의도적인 설정인가보다 했다. 그런데 스칼렛의 첫 노래 가사를 듣자하니 익히 알아왔던 스칼렛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거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사실은 고독하고 외로운 여자, 나 스칼렛 오하라’란다. 초장부터 이렇게 설정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이 작품의 관심사는 스칼렛의 내면에 중점을 둔 새로운 접근에 있나보다 했다. 그런데 스칼렛과 레트의 가슴 아픈 이별 뒤에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엔딩송의 가사를 듣자하니, ‘이 미친 세상, 우리의 비명도 자유의 외침도 왜 듣지 못하나’란다. 노예 제도와 전쟁에 대한 비판이었나, 이 작품의 주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가 갈 곳은 안드로메다뿐.
이렇게 혼선이 빚어진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거다. 첫째는 원작의 내용을 모두 아우르려는 과욕이다. 이 작품의 관심은 오로지 소설과 영화의 내용을 온전히 요약하는 데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연의 시공간에 맞는 압축이라면 환영할 일이지만, 요약의 방식이 모든 장면과 에피소드를 대사 한마디로 처리하는 식으로 어이없게 간단하다. (스칼렛이 처음에 어떻게 과부가 되는지 이 작품만 보고 알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이렇게 엉성하게 줄거리를 요약하니 정작 중요한 것을 다 놓쳐버리는 건 당연한 결과이다. 스칼렛과 레트를 비롯한 등장 인물들의 개성이나 그들의 욕망,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는 이 작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아니, 스칼렛 오하라와 레트 버틀러만큼 성격 강한 인물들도 없을 텐데 이 작품에서는 개성은커녕 행동의 동기도 이유도 찾을 수 없는 기계적인 인물이 돼버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스칼렛조차 극의 구심점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퀼트 조각 꿰매듯 얼기설기 엮인 사건은 연결 고리도 없이 공허하게 떠돌 뿐이다.
스타일의 불일치도 여기서부터 비롯된 것일 게다. 이것이 혼선을 빚은 두 번째 이유일 텐데 그 양상은 몇 가지로 나타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노예들의 군무 장면이다. 원작의 배경인 노예 제도와 전쟁을 이야기하자니 서사 속에 녹여내긴 힘들고 아예 독립시켜 함축적인 장면의 화술로 넘어간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이 흑인 노예보다 <노트르담 드 파리>에 나오는 클로팽의 집시 무리를 연상시켰던 건 단지 그들의 의상과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늘디가늘게 이야기의 맥을 타고 작품이 진행되다가 노예들의 군무와 합창이 등장하면서 극의 흐름은 갑자기 서사극의 거리 두기로 바뀌어버린다. (스칼렛의 유모 마마는 왜 거기 끼어있는 걸까!) 변화는 다채롭기도 하다. 레트의 술집 내연녀의 카바레 쇼가 펼쳐지면 극의 분위기는 갑자기 브로드웨이 쇼로 바뀌고, 저택 하인들의 현대적이면서도 경쾌한 춤에 스칼렛과 레트가 빚어내는 그나마 어두운 분위기는 저 멀리 날아가 버리니 말이다. 삽입되는 다양한 장르의 춤과 비장한 군중 장면도 극의 맥락과 상관없기는 마찬가지인 셈이다.
하지만 이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꽉 붙잡고 놓치지 않는 게 있다. 원작의 아우라를 고스란히 재현할 수 있는 바로 그 장면과 그 대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상징과도 같은, 붉게 번진 노을을 배경으로 스칼렛의 허리꺾기 신공이 돋보이는 레트와의 키스신은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연출된다. 붉게 번진 노을 앞에 검게 부조된 두 사람의 실루엣은 (극의 흐름으로 보자면 정말 뜬금없는데도!) 마치 영화 포스터의 라이브 버전처럼 아름답다. 스칼렛의 잊을 수 없는 명대사, ‘살인을 하더라도 굶지 않겠다’라는 악에 받친 절규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니까’ 같은 질긴 희망의 대사도 마찬가지다. 맥락 없이 스쳐가듯 나오지만 그 대사를 놓칠 순 없다. 어떻게 보면 이 장면과 이 대사를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의 목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이 작품의 고갱이니까. 하, 갑자기 허무해진다.
작품의 구성이 헐겁다 해도 그것을 자기만의 해석으로 메우지 못한 연출의 무능과, 얼마 안 되는 대사마저 알아듣기 힘들게 말하고 힘겹게 노래하는 배우의 한계와, 세련되지 않게 번역된 가사에 애매한 영상까지,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숭숭 뚫린 빈틈은 여기저기 눈에 띈다. 그래도 이 작품이 주는 위안이 있다면 우리 창작뮤지컬의 수준이 얼마만큼 성장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 그런 생각이 들자 기분이 좋아졌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7호 2015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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