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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REVIEW] 창작산실 <주홍글씨>[No.137]

글 | 김주연(공연 칼럼니스트) 사진제공 | 문화예술위원회 2015-02-26 5,146

모두가 단죄자가 된 세상



한아름이 쓰고 서재형이 연출한 창작뮤지컬 <주홍글씨>에는 주조연을 통틀어 총 28명의 배우들이 등장한다. 작품의 스케일로 보나 등장인물 수로 보나 대극장 뮤지컬을 떠올리게 하는 규모지만, 놀랍게도 이 작품은 처음부터 소극장 무대를 생각하며 만들어졌다. 서재형 연출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객석의 중간 한 줄을 통째로 비우고, 무대와 가까운 양쪽 좌석 역시 상당 부분 비워놓았다. 표를 구하지 못한 관객들을 생각하면 빈 좌석들이 유난히 아깝게 느껴지지만, 막이 오르고 공연이 시작되면 왜 이런 무대 운용이 필요했는지 이유가 명확해진다.

나타니엘 호손의 원작 소설 『주홍글씨』가 여주인공 헤스터와 딤즈데일 목사, 그리고 헤스터의 남편 칠링워스의 단죄와 속죄, 그 과정에서 갈등하는 개인의 심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창작뮤지컬 <주홍글씨>는 이보다는 이들을 둘러싼 마을사람들의 심리와 사회의식에 방점을 두고 있는 작품이다. 헤스터의 간통은 분명 당대 사회의 윤리적·도덕적 잣대로 볼 때 비난받아 마땅한 죄지만, 뮤지컬은 그녀를 향한 군중의 비난이 ‘도’를 넘어서는 순간, 즉 정당한 비난을 넘어 다수의 폭력으로 변하는 순간을 주목한다.

원작에는 없는 헤스터의 공개재판 장면(이 장면에서 배우들은 비어있는 객석에 앉아 무대 위의 헤스터를 향해 욕하고 물건을 던진다), 마녀로 몰린 히빈즈와 리베의 체포 장면 등은 모두 이러한 군중심리와 폭력성을 부각시키는 장면들이다. 몇몇 주조연을 제외한 등장인물 대부분의 명칭이 ‘마을사람’인 것에서도 작품 안에서 이들 코러스가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를 느낄 수 있다.

개인이 저지른 죄의 댓가를 종교적 윤리나 사회적 법에 맡기지 않고, 모두가 단죄자이자 법의 집행자가 되어 그 개인을 몰아세우고 윽박지르는 ‘마을사람들’의 모습은 <주홍글씨>가 쓰여지기 150여 년 전, 이 이야기의 배경인 매사추세츠 세일럼에서 일어났던 ‘마녀재판’이 재현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또한 이러한 사회 구성원들이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폭력성이 비롯되고, 그 뒤에는 이러한 군중심리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권력층(극중 판사와 지사 등)이 있다는 사실은 이 작품을 단순한 고전 명작이 아니라 동시대적 의미를 지닌 ‘현대’의 이야기로 만들어주는 부분이다. 실제로 이러한 ‘마녀사냥’ 식의 단죄는 요즘 뉴스와 인터넷을 통해 매일같이 접할 수 있는 사회문제 중 하나니까 말이다.

이제 뮤지컬 <주홍글씨>에 왜 그렇게 많은 ‘마을사람들’이 등장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왜 굳이 무대가 아닌 ‘객석’에 앉아 헤스터를 비난하고 단죄하는지 이유는 분명해졌다. 이들은 극중 세일럼의 마을사람들인 동시에 이 공연을 바라보는 관객의 연장선상에 있는 인물들이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것이다. 수 세기 전 자그마한 마을 세일럼에서 일어났던 한 사건이 오랜 세월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듯이, 조그마한 소극장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주홍글씨’ 사건은 효과적인 무대 운용을 통해 객석으로 확장되고, 배우들을 넘어 관객들에게까지 이어지며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긴다. 묵직한 힘이 느껴지는 박정아 작곡가의 선율과 배우들의 단단한 존재감 역시 작품의 무게감을 더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7호 2015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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