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완의 ‘헤드윅’은 진짜 의외의 캐스팅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약간 의외예요. 왜 한다고 했을까.(웃음) 제가 미쳤었나 봐요. 하하하.
그 전에도 <헤드윅>이라는 작품에 대해 알고 있었죠? 출연을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는 뭐예요?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었어요. 어려워 보이기도 했고, 뮤지컬 배우들이 하는 것 이상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진 않아서요. 그래서 뮤지컬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헤드윅>이라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런 거예요. 스카이다이빙에 대한 막연한 기대나 호기심이 있잖아요. 해보고는 싶은데 하긴 좀 무섭고. 그런데 친구가 “해볼래?” 그러면 “어, 갈래” 하고 해볼 거예요. 그런 마음하고 비슷해요.
그러면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망설인 시간이 없겠네요?
없어요. 고민되는 거면 안 했겠죠. 확신이 서도 될까 말까인데 고민이 되면 그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헤드윅>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는 누구한테 제일 먼저 했어요?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는데요.
그럼 지인들도 기사를 통해 소식을 들었겠네요? 사람들에게 뭐라고 연락이 오던가요?
다 축하해줬어요. 그게 <헤드윅>이 가지고 있는 힘이겠죠.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하지만 감히 못하는 작품. 그런데 정말 아무나 못하겠더라고요. 단지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걸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
연습을 시작한 지 3주 정도 됐다고 했죠? 연습 해보니 어때요?
하면 할수록 더 주눅이 드는 것 같아요. 굉장히 부담스러운 게 연출 선생님이 저에게 메소드 연기를….(웃음) 과하게 표현하지 않고 그 안에 숨어있는 걸 보여주길 기대하시는 것 같아 부담이에요. 한 가지 다행인 건 산전수전 다 겪은 트랜스젠더라 격하게 날뛸 필요가 없다는 건데, 통통 튀었던 사람의 20년 후의 모습을 연기하는 거니까, 그래서 또 어려워요.
연습하면서 제일 어려운 건 뭐예요?
성실함이 없다는 거?(웃음) 저는 스스로를 믿는 구석이 있어요. 내가 아무리 못해도 그렇게 못하진 않겠지, 하는 믿음.(웃음)
그러다 정말 못하는 사람도 많이 봤는데….
사실 말은 이렇게 해도 직업병이 있어서 한단 말이에요. 안 그래도 스스로를 괴롭히기 때문에 ‘괜찮아, 잘하고 있어, 이만큼만 하면 돼’ 이렇게 자꾸 훈련하는 거예요. 괜찮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안 괜찮은 마음과 싸우고 있는 거니까.
<헤드윅>의 넘버 중에서 나와 가깝게 느껴졌던 곡은?
‘위그 인 어 박스(Wig in a Box)’. 연예인으로서 많이 공감했어요. 우리는 아무리 괴롭고 죽고 싶은 순간에도 메이크업을 하고 옷을 입고 무대에 서면 잠시 힘든 걸 잊게 되니까. 그게 잊어야 하니까 잊는 게 아니라 그냥 잊게 되거든요. 이번 OST에서 제가 그 노래 불러요. ‘위그 인 어 박스’랑 ‘슈가 대디’.
공연에서 ‘슈가 대디’ 부를 때 관객한테 카워시해야 하는 거 알고 있어요?
저 그거 그저께 알았어요. 팬들이 “김동완이 카워시하는 장면을 상상하니 끔찍해요” 그러기에 뭘까 하고 찾아봤더니 동영상이 있더라고요. 음, 깨끗이 씻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하하.
헤드윅의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으로는 어느 시기를 고를래요?
어렸을 때 오븐 속에서 노래를 듣던 시간들. 저도 어릴 때 들었던 음악들을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거 보면, 처음 음악을 접하게 되고 같은 곡을 수백 번씩 반복해서 듣는 그 시기가 중요한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좋아하는 노래 중에서 <헤드윅>에 넣으면 좋을 것 같은 곡을 뽑아 보자면?
라디오 헤드의 ‘크립(Creep)’, 너바나의 ‘올 어폴로지(All Apologies)’. 나른하고 시니컬한 노래들.
루터와 함께 미국으로 가기 위해 성전환 수술을 결심한 한셀을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어요?
일단 (성기를) 자르지 말고 생각을 좀 해봐라, 그렇게 말할 것 같아요.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뭐라 해줄 말이 없어요. 헤드윅의 배경이 너무 복잡하기도 하고, 나는 비슷한 고민도 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조언을 하겠어요. 저 잔소리하는 거 되게 좋아하지만 이런 큰 문제는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아니까 자기 생각대로 흘러갈 수 있도록 옆에서 봐줘요.
한셀은 인생을 바꿀 만한 결정을 한 거잖아요. 동완 씨도 연예인이란 직업을 택하면서 그런 결정을 해본 셈이고요. 보통은 큰 굴곡 없이 살아가니까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만한 결정을 한다는 건 어떤 경험일까 궁금해요.
복이죠. 결정을 하고 성공하기도 어렵지만 실패하지 않기도 어렵잖아요. 중간만 가는 것도 어려운데 전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성공한 사람들이-전 제가 성공했다고 생각 안 하지만-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물론 그게 완벽히 운만으로 되는 건 아닌데, 알 수 없는 부분은 운에 맡기고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가는 것 같아요.
왜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제 나름의 목표가 있으니까. 배우로서 인정받고, 흥행성을 인정받는 게 제 목표예요. 그러려면 열심히 해야 하는데 열심히 하지도 않고. 제기랄.(웃음)
개인 활동을 하다 보니 배우라는 목표가 생긴 거죠?그런데 배우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껴서 인정을 받고 싶은 거예요, 아니면 뭘 하든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큰 거예요?
저는 연기가 저한테 맞는 것 같아요. 노래를 좋아하고, 무대를 좋아했기 때문에 가수는 ‘워너비’였던 거고, 배우는 왠지 내가 꼭 해야 될 것 같은 직업이에요. 결코 삶의 안정성을 찾기 위해 하려는 건 아니고요. 사실 저희 정도로 사람들이 알아보는 가수들은 가수만 하는 게 더 편하게 먹고 살아요. 요즘 아이돌들은 연기를 해야 수익이 더 크다는데 저흰 안 그래요.(웃음) 아시아를 돌아다니면서 공연하는 게 쉬는 날도 많고 훨씬 안정적이죠. 근데 연기는 진짜 재미있는 작업이니까.
연기의 어떤 점에서 재미를 느끼는데요?
텔레비전에 제 얼굴이 나오잖아요. 단독 샷으로. 하하. 내가 어떤 인물에 최면이 걸려 있는 걸 사람들이 보면서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고, 울고 그러는 게 진짜 짜릿해요. 그리고 가끔은 실컷 울어보고 싶지 않아요? 그런 걸 할 수 있잖아요. 실컷 웃고 울어보고, 누군가에게 상처도 줘보고, 사람을 실컷 패볼 수도 있고. 굳이 실제 상황에서 해보지 않더라도 그런 여러 가지 감정을 겪어 볼 수 있어서 스트레스가 풀리죠.
배설의 의미가 있네요. 연예인이라서 평소에 할 수 없었던 것들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으니까 방송이 정말 스트레스 해소의 장이 되기도 하겠어요.
그렇죠. 그리고 요즘에 느끼는 건데, 내가 이상해질수록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더 이상해져야지.(웃음) 그렇다고 4차원이 되겠다는 말은 아니에요. 참고로 저는 4차원이라는 말 되게 싫어해요. 제 생각에는 미성숙한 자아를 감추기 위해서 엉뚱한 행동을 계속하는 사람을 그렇게 부르는 것 같거든요. 자기만의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세계에서 잘 안 나오는데 4차원인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한테 4차원을 종용하잖아요. 난 그게 별로에요. 뭐, 저보고 4차원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자, 끝으로 각오 한 말씀해주세요.
각오는, 그저 대본을 다 외워서 할 수 있기를. 이렇게 말해놓고 퍼펙트하게 잘하면 보는 사람들이 얄밉겠죠? 하하하. 제가 열심히 안 해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는데 전 체득하게 되길 기다리고 있어요. 아, 이번 각오. 역대 헤드윅들만큼은 못하겠지만 저만의 헤드윅을 보여드릴게요. 이게 제 각오입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2호 2011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