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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INTERVIEW] <유리동물원> 이승주·정운선 [NO.137]

글 | 나윤정 사진 | 배임석 2015-02-26 7,074

나로부터의 이야기



지난해 한태숙 연출이 선보인 <유리동물원>은 경쾌하면서도 깊이 있게 원작의 본질을 담아내 호평받은 작품이다. 주인공들의 흔들리는 영혼처럼, 비스듬히 놓인 무대. 그 곳곳을 누비는 톰과 제자리를 지키는 로라는 각자의 자리에서 빛났는데, 그 빛을 발화시킨 것은 바로 이승주와 정운선이었다. 최근 들려온 <유리동물원>의 재연 소식이 반가운 건, 초연 배우 그대로 공연된다는 사실. 다시 톰과 로라로 만나게 될 이승주와 정운선. 각자의 자리에서 한 무대로 돌아온 두 배우는 이제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까?



다시 그곳을 향해



아직 연습 전이라고 들었어요. 요즘 어떻게 지내요?
이승주 책 읽으면서 쉬고 있어요. (조금 전에도 읽고 있던데, 어떤 책이에요?) 아인 랜드의 『파운틴헤드』라는 책인데, 최근에 선물 받았어요. 선물해준 분이 읽어보면 좋을 거라고 했는데, 정말 재밌더라고요.
정운선 저도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끝나고 잘 쉬고 있어요. 특히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냈고, 그동안 못 본 친구들도 만났죠.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강수진 씨가 쓴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좋아하는데, 요즘 다시 꺼내 읽고 있어요. 새해를 맞아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들더라고요.

두 분은 무대 말고 또 뭘 좋아해요?
정운선 음악을 진짜 많이 들어요. 아침에 눈 뜨면 음악부터 들어요. 또 자연 풍경 보면서 걷는 것도 좋아해요. 그날의 하늘, 바람, 매일 다른 색감을 볼 수 있잖아요. 습도 때문에 느껴지는 향도 다르고, 시간대에 따라 햇빛에 비치는 것도 다르고, 그런 걸 보는 것만으로도 큰 치유가 돼요. 이렇게 느끼며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해요.
이승주 전 여행 좋아해요. 오늘 밤엔 통영에 가요. 원래 여행지를 정해놓고 가진 않는데, 오늘은 통영에 가려고요. 멀리 떠나고 싶었는데, 지도를 보니깐 비행기를 타지 않고 제일 멀리 갈 수 있는 곳이 통영이더라고요.

<유리동물원> 재연 소식에 반가워하는 관객들이 많아요. 배우에게도 재연의 의미는 남다르죠?
이승주 사실 재연이 처음이에요. 항상 생각은 했어요. 이 공연들을 한 번 더 했으면 좋겠다. 재연에선 조금 더 다른 색깔을 그려내지 않을까? 변화를 줄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호기심과 기대가 있었죠. 그런데 막상 재연을 하게 되니 걱정이 조금 앞서더라고요. 짧은 기간을 두고 재연을 하다 보니, 그만큼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했잖아요. 하지만 일단은 가보지 못한 길을 간다는 것, 그 자체가 기대돼요.
정운선 전 몇 작품 출연 안 했지만, 재연을 많이 했어요. <목란언니>, <내 마음의 풍금> 등. 그런데 항상 재연도 새로운 공연을 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물론 멤버들이 바뀌기도 했지만요. 초연 배우 그대로 재연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기대돼요. 그만큼 더 짙은 농도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초연 배우들 그대로 재연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정운선 그동안 재공연 제의를 받을 때마다 했던 말이 있어요. 멤버가 똑같아요? 하지만 아쉽게도 똑같은 멤버가 재연을 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이번에도 물었죠. 초연 멤버 그대로 가는 거죠? 그렇다면 저도 당연히.
이승주 한태숙 선생님과 다시 작업한다는 것이 정말 좋아요. 물론 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다만, 초연 때 연기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그 잔상들이 조금씩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때처럼 내적으로 방황하는 시간이 또 오면 어떡하지? 그런 두려움이 있었지만, 다시 이 작품을 선택하는 것에 의심은 없었어요.

얼마 전 승주 씨는 <사회의 기둥들>, 운선 씨는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을 공연했잖아요. 그 작품들의 경험이 이번 무대에 어떤 영향을 줄 것 같아요?
정운선 본의 아니게 두 인물 다 개인적인 아픔이 컸어요. <유리동물원>의 로라는 다리가 불편하고, 실비아는 청력을 잃었고. 이런 부분을 연기할 때 경솔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녀의 아픔을 내가 너무 쉽게 표현하지는 않았나? 두 인물들을 통해 제가 정말 좁은 시야로 살았음을 많이 느꼈죠.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했고요. 이번엔 조금 더 진중하게, 깊고 진한 그 무언가에 다다를 수 있도록 몰두하고 싶어요.
이승주 <사회의 기둥들>은 지금까지 제가 맡은 작품들과 많이 달랐어요. 뢰를룬은 완전히 결이 다른 인물이었죠. 접근해보지 못한 방식의 연극이었기 때문에 흥미롭고 재밌었어요. 김광보 연출님이 제게 많은 부분을 맡겨줘서 해보고 싶은 것을 원 없이 해봤고, 인물을 막 스케치해 나가는 쾌감을 느꼈죠. 그때 <유리동물원>에서의 아쉬웠던 부분들이 생각나더라고요. 막상 지금은 그런 부분을 어떻게 고쳐 나가야겠다는 구체적인 생각은 없어요. 그냥 더 열심히 집중하고 싶어요.




내 안의 공감



한태숙 연출과의 작업은 어때요?
이승주 경외심이 들었어요. 공연 때는 당장 눈앞에 닥친 과제들이 많았어요. 해내야만 하는 것들, 해내지 못했을 때의 엄청난 고통, 조금씩 찾아가면서 얻게 되는 행복. 이런 것들에 취해 있다 보니 잘 보지 못했는데, 공연 끝나고 나니 선생님에 대한 경외심이 더 커졌어요. 정말 연극을 사랑하시구나! 이 경험이 앞으로 연극 배우로 살아가는 데 큰 지표가 될 것 같아요.
정운선 <아워타운>과 <유리동물원>, 이번 재연이 선생님과 세 번째 작업이에요. 경외심이 든다는 말이 딱 맞아요. 선생님이 얼마나 깊고 진하냐면, 공연 끝나고 난 뒤의 잔향이 굉장해요. 선생님과 작업은, 배우와 연출가의 만남을 떠나서 한 인간으로서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게 해줘요. 정운선이란 사람이 그동안 보지 못한 것들을 느낄 수 있게 하거든요. 연극에 대한 사랑과 따뜻함의 범위가 커서, 그로 인한 잔향이 엄청나요. 그래서 이번 재연을 또 어떻게 작업하실지 기대돼요. <단테의 신곡> 재연도 새로운 무대가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와, 우린 어떻게 될까?

톰과 로라에게, 각각 희망과 절망은 뭐였을까요?
이승주 초연 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톰에게 엄청난 희망이자 삶의 원동력은 이상이었다. 그리고 절망은 현실이었다.’ 절름발이 누나, 어머니, 집, 이 모든 것들이 그 친구에겐 절망이었죠. 근데 그래서 희망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정운선 비슷한 생각이에요. 이들에게 희망이자 절망은 동일한 것 같아요. 로라에게 희망은 아만다, 톰, 절망도 아만다, 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예요.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큰 희망이 되기도, 반대로 가장 큰 절망이 되기도 하잖아요.

초연 당시 이 작품에서 새롭게 발견한 게 있어요?
이승주 1930년대 미국과 지금 우리의 현실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굉장히 특별하지도 않고. 한태숙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 작품은 특별히 어떠한 비극적인 일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작품보다 비극적이다.” 전적으로 공감해요.
정운선 우리 사는 이야기와 똑같잖아요. 시대를 떠나서 어느 가정이나 있을 수 있는 문제, 상처, 아픔. 누구나 이런 것들에 공감했을 거예요. 우리 엄마가 하는 소리네. 내 동생이 저기 있네.

특히 나 같음을 느낀 장면은요?
정운선 너무 많아서 한 가지를 꼽긴 어려워요. 톰이 엄마와 부딪치는 것도 결국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거든요. 로라, 톰, 아만다, 다들 각자의 사랑의 방식이 있는데, 그것이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일그러진 형태로 다가오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인물들이 정말 이해됐어요. 때론 아만다를 보면서 나 같다는 생각도 들고. 공연 내내 그랬죠. 그러다 보니 이 작품을 통해 시야가 좀 달라졌어요. 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 사랑의 방식에 대한 생각들. 그만큼 공감을 많이 한 작품이죠.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나요?
이승주 의구심이 든 건 있어요. 각각의 인물들이 타인에게 뭔가 기대하고, 의지하잖아요. 톰, 로라, 아만다뿐 아니라 짐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톰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음에도, 결국 자기 삶을 살지 못해요. 왜 자기 삶을 살지 못하지? 세상은 끊임없이 자기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이기적이라고 하지만, 전 그 반대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자신의 삶을 살지 않고, 타인에 의해 휘둘리는 네 명의 인물들이 굉장히 이기적으로 느껴졌어요. (실제론 어떤 편이에요?) 제 삶을 살려고 노력해요. 근데 쉽진 않죠. 살다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그 중심엔 제가 있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해요. 그게 결국 타인을 배려하는 거고.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뭐예요?
이승주 찾아가고 있어요. 그걸 찾고 싶어 연극을 하는 거고. 지금은 뭐가 중요한지 모르겠지만,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찾아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느 순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듯 한순간에 딱 알게 될 수도 있고, 천천히 계속 걸어가도 모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제가 찾고자 하는 길에 연극이 굉장한 도움을 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에요.
정운선 제일 중요한 건 건강한 행복이에요. 지금 이 순간! 과거에 얽매이는 것도, 미래만 바라보는 것도 싫어요. 기쁨이면 기쁨인 대로, 슬픔이면 슬픔인 대로.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해요. 벗어나려고 부정하기보단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면서 매 순간 충실히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가장 큰 행복인 것 같아요.

그런 가치들을 통해, 배우로서 꿈꾸는 이상향은요?
정운선 글쎄요. 어릴 때는 미사여구를 붙여서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무엇보다,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괜찮은 배우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이고, 충실하게 살아간다면 좋은 배우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겠죠.
이승주 전 그냥 연극을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7호 2015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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