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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바다 [No.136]

글 |송준호 사진 |배임석 스타일링 | 정기빈 헤어·메이크업 | 이지혜(엠오드) 2015-02-09 6,606




격동의 시대에서 성장하는 그녀


이제껏 바다를 대표하는 캐릭터는 ‘에스메랄다’와 ‘카르멘’이었다. 에너지를 100% 소진하는 열정적인 무대 스타일과 캐릭터의 관능미가 시너지를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런 바다가 ‘스칼렛 오하라’와 만났다. 넘치는 자신감과 매력으로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는 점은 집시 캐릭터들과 비슷하지만, 사랑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개척한다는 점에서 스칼렛은 다르다. 바다는 통제 불가능한 이 천방지축 아가씨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강한 여자, 스칼렛 

비비안 리가 표현한 스칼렛 오하라는 자신의 욕망에 무섭도록 충실한 여자였다. 소설이나 영화를 못 봤어도 인터넷에 있는 비비안 리의 사진을 보면 스칼렛의 성격과 가치관을 짐작할 수 있다. 그건 도도하다 못해 오만한 미녀의 전형이다. 어린 시절 영화로 처음 스칼렛과 만난 바다도 비슷한 감상이었다. “그땐 공주병 환자가 거친 남자를 만나 연애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20대에 다시 봤을 때는 ‘저 여자 참 피곤하다’고 생각했죠. (웃음)” 


하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자기밖에 모르던 철부지가 격변기를 거치면서 자신의 인생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눈에 들어왔다. “전쟁이 일어나고, 남편과 아이를 잃고, 심지어 사랑하는 존재도 떠나요. 그런데 이 여자는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끝까지 노력하고 견뎌내요. 그건 의아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녀 입장에서는 가장 자신다운 결정이에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거죠.” 그래서 바다에게 스칼렛은 더 이상 단순한 공주병 환자나 말괄량이가 아니다. 그런 철부지였다면 감당하지 못했을 힘든 현실에서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긍정과 낙관으로 단단히 무장한다. 유명한 마지막 대사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도 이런 ‘외강내강’형 성격을 압축한 것이다. “전 ‘How does it get better than this’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더 나아지기 위한 방법을 계속해서 찾는 거거든요. 그래선지 스칼렛을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이런 해석에는 인물에 대한 바다의 애정과 동일시가 전제돼 있다. ‘내가 스칼렛이라면’이라는 가정을 넘어 ‘스칼렛인 나는’의 차원에서 바다는 말하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작품은 스칼렛에 무게 중심이 있는 만큼 배우에게 주어진 과제가 크다. 아시아 초연이라는 영광도 동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바다는 스칼렛처럼 이런 상황과 부담감을 즐긴다. “솔직히 전 이렇게 극의 중심이 되는 게 체질에 맞아요. (웃음) 모노 뮤지컬 <텔 미 온 어 선데이>나 <미녀는 괴로워>, <카르멘> 같은 원톱 작품을 하면서 깨달은 건, 집중할 부분을 확실하게 정하면 그다음은 쉬워진다는 사실이죠.” 


바다가 처음부터 이런 노하우를 알았던 건 아니다. 가수에서 뮤지컬 배우로 ‘전직’한 처음에는 어떻게든 혼자서 대본을 분석하고 나름의 해석과 디테일을 고민해 연기에 반영했다. 그래서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도 손에서 떠나지 않는 ‘배우 노트’는 모든 공연 전후 과정에서 필수품이 됐다. “처음에는 남들 몰래 소심하게 노트를 했어요. 그리고 집에서 혼자 들여다봤는데, 지금은 선배들에게 공개적으로 조언을 구하면서 하고 있어요.” 특히 이번 스칼렛은 내면에 단단한 카리스마가 있지만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은 이전의 집시 캐릭터들과 다르다. 그래서 캐릭터의 표현에 대한 객관적 반응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스스로 해결이 안 될 때만 그랬는데, 지금은 상대의 반응을 물어보고 의견을 받아들이는 게 편해졌어요. 그런 과정에서 혼자 생각했던 컨셉이 바뀐다 해도 괜찮아요. 그게 맞으니까요.” 바다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처럼 상황을 인정하고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태도의 변화는 다른 배우들에게도 눈에 띄게 다가온다. 특히 <노트르담 드 파리>를 함께했던 김법래는 ‘바다가 예전과 달라졌다’고 칭찬하기도 한다. 바다가 연기력뿐만 아니라 한 배우로서 성장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늘 깨어있는 배우를 향해

바다는 항상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춤추고 노래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바다’라는 브랜드가 10여 년 동안 무대에서 살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성실함과 노련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바다는 그런 성실함에서도 만족하지 못한다. 좋은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더 성실해질 필요가 있다고 스스로를 채근한다. “아무리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열심히 해도 원했던 무대가 안 나올 때가 있어요. 그래서 더 엄격하고 냉정하게 저 자신을 몰아붙여서 분발하게 하는 거죠. 그래야 가끔씩이라도 ‘놀라운 무대’라는 평을 들을 수 있어요.” 강박은 좋지 않지만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몸이 적응하기 마련이다. “피곤한 성격이지만 그게 몸에 배어서 이제는 익숙해요. 조금만 나태해지면 다시 부지런해지기 어려운 것 같아요. 전 항상 깨어있고 싶거든요.” 


이런 삶의 철학은 그녀의 SNS 프로필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오늘 죽을 것처럼, 영원히 살 것처럼’이 그것이다. “사실 ‘오늘 죽을 것처럼’은 별로예요. 지금도 충분히 가혹한데 이 말까지 하면 좀 무섭잖아요. (웃음)” 그래서 그녀에게 와 닿는 건 ‘영원히 살 것처럼’이다. “어느 순교자가 했던 말인데,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도 아닌데 욕심을 부리잖아요. 그래서 전 무대에 설 때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전투적으로’ 살고, 평소에는 차 마시고 시집을 읽으면서 여유를 부려요. 휴대폰이 없던 시절의 글을 읽는, 아늑한 시간들이 좋아요.”





이렇듯 바다에게 ‘에너지’라는 키워드는 매우 중요하다. 물론 SES 활동을 했던 20대에도 바다는 변함없이 열심히, 성실하게 무대를 누볐다. 하지만 그때는 뭔지 모르고 ‘무조건 열심히’ 했다는 게 바다의 회상이다. 아티스트로서 자아를 다지고 있는 지금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거기까지의 과정도 생각하게 됐다. “모두가 날 좋아할 수 없다는 현실까지 받아들이면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도 없어지더라고요. 그걸 성숙하게 받아들이는 게 더 나은 삶의 태도인 것 같아요.” 그래서 바다는 일할 때가 아니면 자신만의 평온한 시간을 보내거나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를 갖는다. 그런 태도가 무대에서의 활력에 도움이 되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걸 ‘성실함의 엑기스’라고 할까요. 제가 원하는 일을 계속하려면 필요할 때 집중해서 성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결국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선 내려놓을 부분은 내려놔야 한다는 현실을 깨달은 셈이다. 


선택과 집중의 문제는 바다가 배우로서 자각을 하고 무대 위의 삶에서 즐거움을 찾게 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제가 몇 점짜리 배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아직도 뮤지컬 무대에 있다는 사실은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증명이 되는 것 같아요.” 바다는 <텔 미 온 어 선데이>를 할 때 이지나 연출로부터 ‘너처럼 노래 못하는 뮤지컬 배우는 처음 봤다’라는 말을 들었다. 물론 그건 다른 방식의 칭찬이었다. “마흔여덟 곡을 모두 연기를 하면서 불러야 했는데 목 상태가 안 좋은 날엔 노래와 연기 중 어느 것에 치중할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있거든요. 그런데 연출님이 “너는 노래보다 연기를 잘하는 것 같아”라고 하시는 거예요. (웃음) 그 순간 제가 배우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현실을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바다와 스칼렛은 닮았다. 하지만 바다에게는 또 하나의 책임감이 있다. 바로 아이돌 최초 뮤지컬 배우라는 역할이다. “뮤지컬에서는 아직도 아이돌 가수라는 편견이 존재한다는 게 아쉬워요. 제가 오죽하면 ‘아뮤즈(아이돌 가수 출신 뮤지컬 배우)’라는 용어까지 만들었을까요. 앞으로는 ‘아뮤즈’라서 오히려 믿고 볼 수 있는 시선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바다조차도 뮤지컬 배우로서 인정받는 데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또 아직까지도 ‘가수 바다’의 이미지를 기대하며 오는 관객들의 존재는 바다에겐 더 열심히 해야 할 과제로 다가온다. 그래서 그녀는 2015년은 다시 한 번 ‘배우 바다’로서 인정받는 해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6호 2015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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