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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킹키부츠> 김무열 [No.135]

글 |배경희 사진 |김호근 스타일링|신지혜 헤어|성제(라뷰티코아) 메이크업|경령(라뷰티코아) 2015-01-06 6,568
지금 모습 그대로 just be! 

무대 위 멋진 남자의 아이콘 김무열이 2년간의 공백을 깨고 뮤지컬 <킹키부츠>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본격적인 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뮤지컬’을 선택한 이유는 딱 하나.  무대가 그에게 가장 편안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가 맡은 역할은 여장 남자 롤라와 함께 ‘킹키부츠’라는 혁명적인 신발을 만들어  스러져가던 공장을 되살려내는 이십대 청년 찰리 프라이스다. 
“프라이스 앤 선은 지금까지 남성을 위한 다양한 신발을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세기에는 다양한 남성을 위한 다양한 신발을 만들 겁니다.” 
김무열이 벌일 떠들썩하고 유쾌한 혁명이 궁금하다면, 지금부터 그의 이야기에 주목하시라.  


“연기를 하면서 열정을 갖게 됐어요.”



“중학교 때 두 살 위 동네 형이 머리를 기르고 오락실에 나타난 거예요. ‘형, 머리 어떻게 길렀어?’ 그랬더니 안양예고라는 데가 있는데 거길 가면 머릴 기르게 해준대요. 그날 엄마한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예고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연극 학원에 보내주셨어요. 그 형이 제 인생의 ‘롤라’였던 것 같아요. 그 형은 지금 뭐하고 살려나.(웃음)” ‘격렬히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며’ 꿈 없이 건조하게 살아가던 찰리에게 아주 센 펀치 한 방을 날려준 롤라 같은 인물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분명 농담 같은 말이었지만, 그때 김무열이 머리를 기르기 위해 예고에 진학하기로 결심한 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공연 업계 사람들에겐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그 누구보다 김무열 자신에게 그렇다. 따분한 인생을 살던 찰리에게 신발이 열정을 느끼게 해준 것처럼, 방황하던 청춘 김무열에게 열정을 찾게 한 건 연기였으니까. “스무 살 때, 제대로 바닥을 쳤어요. 마음을 완전히 닫고 모든 걸 다 포기하려고 했죠. 그러다 연기를 하게 되면서 열정을 갖게 됐어요. 제가 찰리하고 비슷한 부분이 꽤 있어요. 좀 애 같은 것도 닮았고. (웃음)” 언제나 반듯한 모범적인 청년이며, 때때론 나이보다 지나치게 어른스러워 ‘애늙은이’라는 말을 들어 왔던 김무열에게 애 같은 면이 있다고? “네, 누구에게나 다 그런 면이 있지 않나요?” 김무열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에게 딱 맞는 신발을 신고 자기만의 길을 간다는 <킹키부츠>의 철학이 좋아요. 이런 이야기를 성적 소수자인 여장 남자 롤라를 통해서 전달하는 것도 정말 좋고요.”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와 연습에 빠져 있는 그는 이번 작품 앞에 ‘김무열의 복귀작’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복귀작이라고 하니까, 처음엔 괜한 부담감이 느껴졌어요. 뭔가 더 해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연습실에 가기 전에 원작 영화도 많이 보고, 음악도 많이 들었어요. 근데 신기한 게 연습실에 가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내가 이 일을 오래 하긴 했구나, 싶었죠. (웃음)” 그의 말대로 복귀작이라는 말은 거창하게 들리지만, 2005년 하이틴 로맨스 <그리스>로 뮤지컬계의 떠오르는 배우가 된 후 빼곡하게 채워져 가던 그의 작품 목록이 한동안 2012년에 멈춰 있었던 게 사실이다. 군 복무로 인한 2년간의 공백기.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예외 없이 치러야 할 의무를 다한 것이지만, 그에게는 그 과정이 유난했다. “대중 속에 던져지면서 제 삶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우리나라에서 배우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도요. 사실 제 개인 삶에 관심이 집중되는 게 여전히 좀 힘들긴 해요. 그런데 요즘엔 점점 배우의 모습보다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길 원하잖아요. ‘난 특별할 게 없는데 어쩌지’, 겁이 날 때도 있었는데, ‘난 그냥 작품을 열심히 해서 연기하는 배우로서 대중 앞에 서야겠다’ 그렇게 결론을 내렸어요.” 200명 정도 되는 중대에 뮤지컬을 접해본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아직 공연 시장이 무궁하다는 희망적인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며 유쾌하게 군대 이야기를 마무리했지만, 뮤지컬 배우에서 영화배우로 당당히 활동 영역을 넓혀가던 시점에 브레이크가 걸렸던 당시 상황을,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저 좋은 시간이었다고 회상하긴 힘들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747만 관객 동원이라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한 <최종병기 활>(2011)과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화제작 <은교>(2012)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이후 많은 역할들이 쏟아져 들어왔을 테니까. 게다가 군대에 있는 동안 그보다 뒤늦게 영화계로 뛰어든 동료 뮤지컬 배우 조정석이 영화 속 주연 배우로 자리매김해가는 걸 보면서 조금은 복잡한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신경이 전혀 안 쓰였다면 거짓말이겠죠(김무열은 이 이야기할 때 극도로 조심스러워했다). 그렇지만, ‘배우 인생’은 장기전이니까 지금부터 길게 오래 하면 되죠.” 또 다시 김무열다운, 그러니까 좀체 속마음을 알 수 없는 모범적인 답변이네,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몇 해 전 TV 드라마 <일지매>에 출연하면서 조금씩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때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자꾸 욕심을 안 가지려고 노력해요. ‘평생 이 짓 할 테니 당장 욕심 부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생각하죠. 굵고 길게 가고 싶어요.” 그러니까 배우 생활이 장기전이라는 그의 말은 오래 전부터 품고 있는 진심인 것이다.



“배우 인생은 장기전이니까 
지금부터 길게 오래하면 되죠.”



일련의 개인사에 대해 뜨문뜨문 말을 이어가던 김무열은 지금은 공연 연습에 매진하느라 가십에 신경 쓸 새도 없을뿐더러 지난 일로 자신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힘든 일을 겪고 나서 오히려 마음이 조금 더 편해졌다는 것을 빼면 말이다. “계속 제 자신을 채찍질하는 건 여전한데(그가 끔찍한 노력파라는 건 유명한 이야기다), 이상하게 뭐가 잘 안 되도 마음이 편해요. 이거 아닌가? 아님 말고. 아니면 미안하다고 하면 되지, 뭐. 예전엔 제가 뭔가를 못하는 상황에 대해 겁먹었거든요. 지금은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어진 것 같아요.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얼굴이 두꺼워져서 그런가. (웃음)” 그는 그저 농담처럼 웃었지만, 지난 시간이 그에게 <킹키부츠>의 가장 큰 메시지,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해준 게 아닐까. 어쨌든 그의 ‘아님 말고’ 정신은 재밌고 따뜻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선택한 <킹키부츠>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저희 작품이 밝고 즐거운 작품이다 보니 대본에 여기가 펀치 라인이다, 꼭 웃겨줘야 한다, 이런 코멘트가 많아요. 근데 전 애드리브를 잘 못해서…. 그리고 코미디가 어려운 게 이거 재밌겠다 싶어서 사람들한테 딱 보여줬는데, 안 웃으면 움찔하게 되거든요. 분명히 어제 공연에선 이 멘트에 관객들이 웃었는데 오늘 관객들은 안 웃으면 사람들이 나한테 화났나, 이런 생각도 들고. 하지만 이번에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관객들이 안 웃으면 그냥 마는 걸로! 하하.” 자신이 한 말이 웃겼다고 생각했는지 큰 목소리로 웃던 김무열이 웃음을 멈추고 다시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코미디 코드를 드라마 속에 잘 녹여내면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웃을 수밖에 없어요. 어떻게 하면 관객들을 웃길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죠.” 


“가끔 미치도록
‘아, 연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시 하고 있잖아요.
행복하죠.”



김무열은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뉴욕으로 생애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일 때문에 일본에 가본 적은 있어도 해외여행은 처음이었거든요. 큰 꿈을 안고 갔는데, 와, 역시 세상은 넓더라고요. 뉴욕에서 본 <킹키부츠> 오리지널 공연은 제가 하는 작품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재밌었어요. 특히 여장 남자들의 화려한 퍼포먼스가 정말 근사했죠. 솔직히 그땐 저 여장 남자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웬걸. 우리 엔젤들(여장 남자 캐릭터), 정말 예뻐요.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걸 보고 있다 보면 넋이 나간다니까요. 하하. 어쩜 다들 그렇게 하루하루 예뻐지는지 신기해요.” 공연계에 여장 남자 코드의 작품이 넘쳐나는 요즘, 혹시 그렇다면 가까운 시일 안에 김무열이 여장 남자로 무대에 오르는 걸 보게 되는 날도 있을까? “언젠간 하게 되는 날이 있겠죠.” 어색하게 웃던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남자다운 역할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저는. 하하.” 

김무열은 오늘 인터뷰에서 연습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편안해 보였는데, 지금 이렇게 다시 연습실에서 뛰고 있는 것 자체로 행복하다고 했다. “군대에선 평일에 TV를 못 봐요. 주말에 밀린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가끔 미치도록 ‘아, 연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시 하고 있잖아요. 행복하죠.” 행복한 건 행복한 거라고 해도 오랜만에 연습실에서 치열하게 자신과 부딪치면서 힘든 건 없을까? 오랜만에 다수의 노래를 소화해야 하는 건 또 어떻고? “노래 실력은 향로봉대대 컨테이너 노래방에서 성대를 단련하고 와서 괜찮습니다.” 모든 질문에 대해 여유 있게 받아치는 그를 조금 괴롭혀 볼 마음에 마지막 질문으로 토니상을 거머쥔 2013 브로드웨이 최고의 히트작이라는 타이틀을 책임질 자신이 있냐고 물었다. “제가 <킹키부츠>를 선택한 건 타이틀 때문이 아니고 작품이 좋아서이기 때문이니 거기에 충실하려고요. 이게 흥행에 대한 저의 핑계입니다. 열심히는 하겠지만, 안 되면 말고. 하하.” 김무열이 다시 환하게 웃는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5호 2014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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