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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테레즈 라캥> THERESE RAQUIN [No.132]

글 |조연경(런던 통신원) 사진 |Darren Bell 2014-10-29 4,311
음악에 실린 소설 

약 150년 전에 출간된 어느 소설이 있다. 꽤나 유명해서 누구나 익숙하게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그런 소설. 그 소설을 뮤지컬로 만들어 관객들 앞에 세우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가 1867년에 쓴 소설 『테레즈 라캥』은 출간 당시부터 화제의 중심에 있던 작품으로 유전적인 기질에 좌우되는 인간을 주요 인물로 제시하고, 그들의 행동과 그에 따른 파국을 마치 과학적인 실험을 하는 것처럼 분석적인 필체로 그려냈다. 욕망에 충실한 인간을 집요하게 묘사한 매력에 끌려, 최근 개봉한 찰리 스트레이튼 감독의 영화를 비롯해 여러 번 영화화되며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어 왔다. 또, 국내에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의 모티프가 된 작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친구의 아내와 사랑에 빠져 친구를 죽이는 내용이나 라 여사의 집에서 매주 사람들이 모여 마작을 하는 것 등, 흡혈 신부라는 설정만 빼면 『테레즈 라캥』과 매우 흡사하다. 
이처럼 소재가 강렬하고 작가의 시선이 독특해서 늘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이 텍스트가 이번에는 뮤지컬로 탄생했다. 이미 다양하게 변주된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과정에서 직접 각색을 맡아 가사도 쓰고 연출까지 담당한 노나 셰파드(Nona Shepphard)는 소설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평범하게 줄거리만 따라가는 게 아니라, 에밀 졸라의 딱딱한 문장을 그대로 선율에 올려 작가의 필체와 시선까지 놓치지 않았다. 이 작품이 자연주의의 대표 소설로서 담고 있는 의미를 간과하지 않은 것이다. 또 수미상관 구조를 빌려 서두부터 극의 결말을 들이밀어 관객의 호기심을 이끌어냈고, 뻔히 예상 가능한 극의 결말보다는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인물들이 느끼는 불안정한 심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음악을 맡은 크레이그 애덤스(Craig Adams)는 소설이 무대 위에서 흥미롭게 살아날 수 있도록 날카로운 선율을 여러 번 반복하며 텍스트에 긴장을 불어넣었다. 몇몇 넘버가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 번 리프라이즈 되면서 극 전체의 분위기를 잡아 하나로 묶어줬다. 멜로디의 반복이 많아서 대표적인 솔로 넘버가 없는 공연인데도 오래도록 음악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런던의 소극장 뮤지컬이 으레 그렇듯 작은 워크숍 공연으로 시작된 뮤지컬 <테레즈 라캥>은 올해 봄 런던의 오프웨스트엔드 극장인 핀스버러시어터에서 첫선을 보였고, 호평과 매진 사례에 힘입어 몇 달 뒤 거의 동일한 캐스트로 역시 오프웨스트엔드 극장인 런던의 파크시어터에서 재공연 됐다.



소설의 모든 것을 담다

공연의 서두를 여는 건 에밀 졸라의 문장이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인간 동물들이 있다”는 문장은 긴장을 자아내는 음악을 배경으로 코러스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합창과 작가의 내레이션으로 무대 위에 울려 퍼진다. 작가, 혹은 해설자는 마치 강의를 하는 것처럼 양옆에 테레즈와 로랑을 세워두고 두 인물을 관객에게 소개한다. 다른 모든 인간, 동물들처럼 1분에 수천 번 심장이 고동치고 혈액이 수천 번 순환하는 인물들. 무표정하게 선 두 배우는 작가의 말에 따라 움직이는 마리오네트 같다. 원작자가 소설에서 과학적인 자세로 두 인물을 해부하고 관찰하는 것처럼 거리를 두고 서술했다면, 이 뮤지컬 작품에서는 이런 기질의 두 인물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 이제부터 관찰해볼 거라는 식으로 인물을 제시한다. 이렇게 이 뮤지컬은 단순히 소설의 내용만 담은 게 아니라 서술 방식과 작가의 사고방식까지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대사를 힘 있게 이어가는 에밀 졸라를 받쳐주는 건 코러스를 맡은 배우들이다. 마치 비극을 예고하는 것 같은 웅장한 합창으로 공연의 문을 열고, 내레이션과 똑같은 가사를 선율에 실어 돌림노래처럼 부른다. 코러스는 극이 진행되는 중에도 계속 활용된다. 코러스를 담당하는 ‘강의 여인들’ 세 명은 테레즈의 내면의 소리를 반영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녀를 유혹하거나 비판하는 역할까지 맡아 작품을 음악적으로 심심하지 않게 감싸줬다. 특히 작품 초반에는 테레즈의 움직임이 거의 없고, 목소리도 내지 않기 때문에 이들 코러스의 역할이 컸다.   
무표정하게 무대 양옆에 서 있던 테레즈와 로랑이 서로를 감싸 안은 채 바닥에 누우면 복층 구조의 위층 무대에 선 배우들의 시선이 쓰러져 있는 두 사람에게 차갑게 꽂힌다. 그리고 한 노부인이 두 사람을 앞에 두고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의자에 꼼짝없이 앉아 있다. 노부인의 찌를 듯한 눈길이 두 사람을 향하고 코러스가 노래를 잇는다. “자신의 소중한 아이들을 두 눈으로 살해하고 또 살해하고 살해하는 저 여인의 사연은 무엇일까?” 이후에 장면이 전환되면서 딱딱하게 굳어 있던 라캥 부인이 자신의 사연을 직접 털어놓는데 이때도 음악이 끊어지지 않고 한 장면처럼 계속 이어진다. 그러다 라캥 부인의 아들 카미유가 파리로 이사 가자고 조르는 데서 돌연 툭 끊긴다.
라캥 부인은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병약한 아들과 오붓하게 살다가, 조카 테레즈도 맡아 키우게 된다. 알제리 여인의 피가 흐르는 테레즈와 어릴 때부터 온갖 병을 달고 살았던 카미유는 한 침대를 쓰며 함께 자랐고, 어느 정도 나이가 차자 자연스럽게 결혼한다. 부인이 애지중지하는 아들 카미유와 함께 사는 테레즈는 늘 존재감 없이 조용하다. 라캥 부인은 현재의 아늑한 삶이 좋아 파리로 이사 가자는 카미유의 제안을 거절하지만, 결국 신경질적인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파리 뒷골목의 작은 집으로 보금자리를 옮기게 된다. 아래에는 가게가 있고, 위층에는 테레즈와 카미유가 쓰는 방과 라캥 부인의 방이 있는 작은 집. 카미유는 회사로 매일 출퇴근하면서, 라캥 부인은 작은 가게를 꾸려가면서 둘 다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는 사이, 테레즈는 어떤 욕망이나 기쁨도 없이 살아간다.
밝은 표정으로 즐겁게 노래하는 라캥 부인이나 카미유와 달리 테레즈는 벙어리인가 싶을 정도로 조용하다. 항상 느릿하게 움직이고,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단지 가게를 열고, 멍하니 서 있다가, 가게 문을 닫는 하루를 반복해서 살 뿐이다. 목요일 밤마다 있는 도미노 모임에서도 마찬가지다. 라캥 부인의 옛 친구들과 카미유의 직장 동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테레즈는 그저 가만히 시체처럼 앉아 있다. 어느 날 카미유가 친구 로랑을 모임에 데려온다. 학창 시절 친구를 직장에서 만나 신 난 카미유가 로랑을 소개하고, 라캥 부인도 즉시 로랑을 좋아하게 된다. 로랑은 카미유의 초상화를 그려주기로 하고 매일 카미유의 집에 드나든다. 로랑은 자신을 항상 칭찬하고 좋아하는 카미유와 라캥 부인의 태도에 뿌듯해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림이 완성되던 날, 테레즈와 로랑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하게 되고 그때, 작품이 시작된 지 거의 40분이 지나 처음으로, 테레즈가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내내 존재감 없이 조용히 있던 테레즈였기 때문에 이 변화가 더욱 큰 반전으로 다가온다. 이후 테레즈는 로랑에게 당당한 태도로 말을 하고, 거침없이 행동한다. 라캥 부인 몰래 오후마다 테레즈의 침실에서 둘의 밀회가 이어지는 동안, 테레즈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진다. 카미유와 있을 때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등 밝아지자 카미유도 기뻐한다. 모든 욕망을 감추고 산 채로 매장 당한 것처럼 죽은 듯이 살던 테레즈가 확 피어나는 순간이다.
하지만 여러 달 동안 이어져 오던 테레즈와 로랑의 밀회는 돌연 중지된다. 오후마다 자리를 비우는 로랑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그의 상사가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엄포를 놓은 것. 도미노 모임 자리에서 그 소식을 들은 로랑이 우울한 기색을 보이고, 테레즈도 집 안이 답답해서 바람을 쐬고 싶다고 신경질을 내자 카미유는 다 함께 뱃놀이를 가자고 제안한다. 여기까지 소설의 줄거리를 성실하게 잘 따라가던 뮤지컬은 이 부분에서 살짝 여지를 남긴다. 소설에서는 테레즈와 로랑이 무언의 모의를 해서 카미유를 배에서 떠밀어 살해하는 장면이 묘사되지만 뮤지컬은 그 부분을 빼고 눙쳐서 표현했다. 신 나서 뱃놀이를 가자고 다 함께 노래하는 부분에서 1막이 끝나고, 강에서 누군가 비명을 질러 사람들이 수군대는 장면에서 2막이 시작된다. 그래서 카미유가 사고로 죽은 것인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살해한 것인지 공연 말미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불안

로랑이 죽은 카미유의 시신을 확인하러 가는 시체 보관소 장면은 하얀 시트와 조명만을 이용해 로랑의 불안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손전등을 든 로랑이 하얀 시트를 덮고 누운 시체 사이를 걸으며 불안해하는 단순한 동작만으로 로랑의 불안과 죄책감이 잘 표현됐고, 관객들이 모르는 무언가 숨겨져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뮤지컬 <테레즈 라캥>의 음악은 기본이 반복이다. 극의 첫 넘버와 마지막 넘버가 같고, 라캥 부인이 자신의 아늑한 가정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넘버는 아들 카미유가 죽은 후 테레즈, 로랑과 함께 살아가는 나날을 묘사할 때도 어김없이 사용된다. 매주 목요일 도미노 모임 때 쓰이는 넘버는 로랑을 만나기 전 테레즈가 무료하게 살던 때나, 로랑이 합류하여 모두 평온할 때나, 카미유가 죽은 뒤 라캥 부인이 시름에 젖어 있을 때나, 처참한 진실을 알게 됐으나 충격에 온몸이 마비된 라캥 부인이 사력을 다해 손톱으로 탁자를 긁어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할 때나 변함없이 변주된다. 다섯 명의 연주자가 맡은 음악은 풍성한 선율로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음울하게 이어진다. 클래식한 선율을 기본으로 사용하면서 불협화음을 살짝 섞어서 음악적으로 긴장을 놓지 않도록 했다. 어두운 작품의 주제에 맞게 때로는 피아노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들린다. 전반적으로 무언가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은 불안이 머무르고 있다. <테레즈 라캥>의 음악은 처절하게 무너지는 테레즈와 로랑, 라캥 부인의 감정을 잡아내고 작품 전체를 휘감고 있는 어둡고 음습한 공기를 표현한다.
불의의 사고로 카미유가 익사한 후, 2년이 지나도 목요일의 도미노 모임은 변함없이 이어진다. 모임에 오는 사람들은 우울한 테레즈를 위해 라캥 부인이 아들처럼 아끼는 로랑과의 결혼을 추진한다. 둘의 결혼식 날 밤, 사건 이후 처음으로 한 방에 단둘이 남게 된 두 사람은 예전 같은 관계를 회복하려 하지만 물에 빠져 죽은 카미유의 환영에 밤새도록 시달린다. 그리고 라캥 부인은 아들을 잃은 슬픔 때문에 발끝부터 서서히 온몸이 굳어간다. 테레즈와 로랑은 거동이 불편한 라캥 부인을 극진히 보살핀다. 라캥 부인은 테레즈와 로랑이 바로 옆방인데도 조용하게 지내니 얼마나 사려 깊은지 모른다고 칭찬하지만, 그 와중에 역설적으로 테레즈와 로랑이 싸우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두 사람은 카미유의 죽음을 놓고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점점 큰 소리로 싸운다. 라캥 부인이 불협화음으로 고음을 내며 노래를 부르는 사이 옆방의 테레즈와 로랑의 목소리가 커지고, 배경에 깔려 있던 클래식하고 신경질적인 음악 소리는 점점 줄어들며 멈춘다. 그리고 마침내 진실을 알게 된 라캥 부인은 비명을 지른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라캥 부인은 탁자를 손톱으로 긁어 도미노 모임의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테레즈와 로랑은 죄책감과 불안을 못 이겨 라캥 부인에게 매일 용서를 빈다. 이때 다시 첫 곡이 반복된다. 두 사람이 울고 화내고 싸우고 서로를 죽이려는 동안 코러스가 합창을 하며 한 발짝 떨어져서 그들의 행동을 방관자처럼 관찰하는 것이다. 그 후 로랑과 테레즈는 자신들의 잘못을 후회하면서 자살하고, 다시 첫 장면처럼 온몸이 딱딱하게 굳은 라캥 부인은 바닥에 쓰러진 두 사람을 두 눈으로 살해하고 또 살해한다.



원작의 효과적인 재현

오래된 나무 느낌이 나는 세트는 대체로 라캥 부인의 집이었다. 커다란 장면 전환 없이 그저 테이블을 꺼내면 도미노 게임을 하는 목요일 밤이 됐고, 테이블을 접고 이불을 올려 침대로 만들면 그 공간은 침실이 됐다. 몇 가지 소품만 이용해 효과적으로 장면을 전환했기 때문에 극이 전개되는 속도가 더욱 빨랐다. 1막 초반, 카미유가 문으로 들고 나면서 종소리를 내면 파리에서의 몇 개월이 훌쩍 흘렀다. 소설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들은 소설의 장면들을 빠짐없이 그리려다 늘어지기 쉬운데 이 작품은 소설 속의 사건들을 효과적으로 재현하면서도 경쾌한 속도를 놓치지 않았다.
무대와 소품이 단순하고 소박해서인지, 배우들의 연기가 더 눈에 띄었다. 배우들의 사실적인 감정 표현이 극에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줬다. 특히 주연을 맡은 배우가 거의 1막 내내 말없이 가만히 있어야 하는 상황에 코러스를 활용해 대처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배우들이 그려내는 강렬한 감정들은 음악과 잘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으로 촘촘하게 엮였다.
<테레즈 라캥>은 욕망에 불타는 두 인간, 테레즈와 로랑이 잘못된 선택을 한 뒤 처참하게 망가지는 이야기로 해석되는 경우도 있고, 카미유와 라캥 부인의 등쌀에 모든 욕망이 거세된 채 억압당하며 살던 테레즈가 로랑을 만나 기쁨을 맛보지만, 결국 너무 멀리 가버려 후회하는 내용으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다. 이 뮤지컬은 그 중간에 머무르는 태도를 취했다. 한쪽 편을 들지 않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제시한다. 살해 장면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나중에 에둘러 표현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그런 중립적이면서도 애매모호한 태도가 극의 긴장과 불안을 더욱 높여주고,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겨줬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2호 2014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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