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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REVIEW] <비스티 보이즈> 작은 차이가 만들어내는 또 다른 가능성 [No.132]

글 |정수연(한양대 연극영화학과 겸임교수) 사진제공 |네오프로덕션 2014-10-26 4,284
비슷한데 다르다                                          



연암 박지원은 ‘비슷한 것은 가짜다(似而非)’라고 말했지만, 원래 사이비란 비슷한 듯 다른 것을 일컫는 말이다. 원본이라는 기준을 설정한다면 사이비는 원본의 아우라를 흉내 내는 짝퉁이자 키치에 불과하다. 하지만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비슷한 듯 다른 모양새는 고유함이자 차별성이니, 대세의 흐름 안에 있으면서도 자기만의 독특함을 유지하는 근거가 되는 셈이다. 창의력이란 비슷비슷한 것들이 넘쳐나는 곳에서 약간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힘이다. 특히나 연간 150편이 넘는 공연이 올라간다는 뮤지컬 동네에서 이런 약간의 차이는 의미가 크다. 바로 이 ‘조금 다른 틈’ 안에서 작품으로서의 자의식이 빚어지고 상품으로서의 정체성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작품으로 보자면 좀 더 치밀해질 것이고 상품으로 보자면 좀 더 볼만해질 것이다. 비슷한 것이 넘쳐날수록 새로움이 배태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가만 보면 뮤지컬 <비스티 보이즈>도 언뜻 비슷비슷해 보이는 공연이다. 동명의 영화를 소재 삼은 무비컬인 데다가, 젊은 남자 다섯 명이 주인공이고, 이들의 직업은 어머나, 호스트란다. 다섯 남자의 ‘누나누나’ 애교 노래 필살기도 있다니, 듣기만 해도 벌써부터 익숙한 느낌이다. 요즘 소극장 뮤지컬의 예상 가능한 트렌드라고나 할까. 예상한 대로 다섯 남자는 충분히 멋있고 ‘누나송’은 늙은 누나도 웃게 할 만큼 애교 충만이다. 이것만으로도 익숙한 예상치는 이미 충족시킨 셈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 익숙함에서 더 나아가 조금은 다른 면을 보여준다. 재료는 비슷한데 마감 처리가 다른 거다. 일단 사랑 이야기가 없다. 한 여자를 사랑하든지 아님 지들끼리 사랑하든지 어쨌든 젊은 남자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의 주된 소재는 금기의 사랑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욕망의 대상은 여자가 아니라 돈이고 권력이다. 인물 사이의 갈등을 부여하기 위해 한 여자가 설정되기는 하지만 여자는 등장하지도 않고 그만큼 중요하지도 않다. 수평의 관계에서 수직의 관계로 변화하는 수컷들의 자리다툼 이야기니만큼 달달하기보다는 제목처럼 비열하다. 꽃미남 로맨스 뮤지컬과는 꽤나 거리가 있다. 
이 작품은 기존의 무비컬 문법과도 거리를 유지한다. 영화를 요약하려는 무의식보다 영화를 소재 삼으려는 태도가 좀 더 분명하다고나 할까. 그 태도의 기준은 영화와의 유사성 여부라기보다는 뮤지컬로서의 완결성에 있다. 한 편의 뮤지컬 안에서 모든 인물이 설명되고 이야기가 연결됨으로써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자기 완결성을 갖춘다면 영화와의 연계성은 어느새 희미해지게 마련이다. 캐릭터 설정에서 등장인물 구성이나 그들의 관계 설정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틀을 만들어 영화와는 다른 긴장을 만들어내는 품새를 보자면 이 작품에는 영화 원작을 향한 강박이 거의 없어 보인다. 
이 작품이 남기는 씁쓸함도 다른 작품의 뒷맛과는 조금 다르다. 달콤함이 느낌으로 휘발되는 감정이라면 씁쓸함은 머리로 남는 감정 아니겠나. 작품이 풍기는 분위기보다 작품이 던지는 말을 은연중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일 거다. 이 작품의 주제는 제법 진지하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 안에서 천박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듯, 밑을 다 드러낸 천박함은 작품의 끝에서도 종결되지 않은 채 반복된다. 꽃미남들이 등장하는데 로맨스는 없고, 소재는 자극적인데 이야기는 가볍지 않으며, 누아르를 표방하는데 허황되진 않다. 이 작품은 비슷한 듯 다른 구석이 많다.


아직은 작은, 가능성                                   



무엇보다 이 작품의 다른 점은 이야기를 다루는 태도이다. 적어도 이 작품은 창작자가 해결해야 할 이야기의 완결을 관객에게 떠넘기지 않는다. 소극장 뮤지컬의 경우 로맨스에서 추리나 심리로 소재의 영역은 확장되어 왔지만, 새로운 소재의 작품일수록 팸플릿 속 작품의 의도가 무대 위 공연의 실제보다 앞서기 일쑤였다. 창작자조차 갈피를 잡지 못한 이야기에는 채워 넣지 못한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데, 그것이 마치 관객을 위해 펼쳐놓은 퍼즐인 것처럼 수수께끼 놀이를 하는 공연을 그동안 심심찮게 봐왔더랬다. 그런데 이 작품은, 로맨스 외의 소재를 다룬 작품 중에서도, 이야기의 완결성에 대한 의지가 커 보인다.
그 의지는 여러 면에서 드러난다. 다섯 명의 인물들에게 뚜렷한 캐릭터를 부여하고, 그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이들이 얽히는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눈에 띈다. 이 작품에서 사건은 특별한 계기로 발생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관계의 역학에 따라 드러나는 ‘잠재성’이다. 즉 각각의 캐릭터가 연결되는 관계 자체가 곧 사건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극적 갈등의 전개에 설득력을 가하는 유일한 동력은 각각 인물의 개연성과 그들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권력의 구조일 수밖에 없다. 순진한 막내에서 비열한 마담으로 변화해가는 인물인 ‘승우’를 해설자로 내세운 점이나, 마담 ‘승우’가 내려다보는 가운데 아직은 모두가 형제 같았던 과거의 한때가 회상 장면처럼 재연되는 것은, 돈과 권력을 향한 인간의 비열함이란 결국 이런 구조의 결과물임을 보여주기 위한 극적 장치인 셈이다. 특히 ‘열심히 사는 것’의 무력함을 증오하듯 냉소하는 마담의 대사는 창작뮤지컬이 만들어낸 명대사 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   
물론 힘에 부치는 부분도 확연하게 눈에 띈다. 예를 들어 관계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형제 같던 관계가 권력 관계로 변화하는 계기가 무엇인지 극은 설명하지 않는다. 극의 논리로 보자면 각자의 욕망이 얽혀 그들 스스로 권력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어야 하지만, 극의 실제로 보자면 이들의 관계는 여전히 착한 편, 나쁜 편의 이분법적 구도이다. 사랑하는 여자를 되찾아 순수했던 과거로 돌아가려는 ‘주노’와 아픈 딸의 치료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순정남 ‘알렉스’는 천박하기는커녕 지고지순하기만 하다. 이들 앞에서 마담은 그저 악의 축일 뿐. 이렇게 보자면 이들이 망가지는 이유는 각자의 비열한 욕망이 아니라 온전히 마담의 욕심에 있는 셈이다. 직업의 귀천 따지지 않는 성실한 직장인들을 착취하는 악덕 기업주 같으니라고. 극은 의외로 단순해져 버린다. 
그런데 이런 단순함에 입체감을 입힌 이들이 여럿이다. 배우의 성실한 연기가 그중 맨 앞이다. 특히 김종구가 연기한 마담은 우정과 권력욕이 미묘하게 교차하는 구체적인 인물로 완성되었다. 식빵을 먹으면서 친구에게 살인을 교사하는 장면으로 이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를 한 번에 보여주는 그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음악도 자기 역할을 영리하게 짊어진다. 혼자만의 고민이나 갈등, 남들 몰래 꾸미는 음모 등 이야기의 특성상 인물들의 독백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어색하지 않게 넘버가 개입하면서 이야기의 흐름에 탄력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음악은 선율이 아니라 내용으로 기억된다. 요즘 유행하는, 배우보다 더 많이 움직이는 설명적이고 장식적인 무대를 보다가 한껏 꾸몄어도 그저 공간일 뿐인 무대를 보니 오히려 신선하더라. 관객의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는 고정 공간으로서의 무대는 소극장 뮤지컬의 한계가 아니라 자산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런 자산 위에서 배우에게는 스타성보다는 연기력이, 창작자에게는 스펙터클을 핑계 삼은 엉성한 이야기보다 훨씬 촘촘한 이야기꾼의 입담이, 시공간으로는 엄청난 투자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직설보다 상징과 은유가 있는 빈 공간의 상상력이, 음악으로는 관객을 압도하는 몇 개의 넘버보다 극과 잘 어우러져 내용으로 남는 극적 선율이, 무엇보다 돋보일 수 있는 법이다. <비스티 보이즈>의 ‘조금 나은 면모’는 이런 미덕을 향한 ‘약간의 차이’일 것이다. 이 ‘약간의 차이’를 지지한다. 이것이 축적될 때 아직은 가능성일 뿐인 새로움을 완성할 수 있을 테니, 프리뷰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이어온 ‘창조적 진화’를 멈추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2호 2014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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