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골든 슬럼버』에는 주인공의 택배 회사 선배, 일명 록 이와사키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름 앞에 ‘록’이 붙은 이유에 대해 소설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의 입버릇은 당연히 ‘록’이었다. 비상식적인 일이나 따분한 잡무를 떠맡으면 ‘그건 록이 아니잖아’ 하며 발끈 화를 냈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록이네’ 하며 끄덕였다.” 이런 극단적인 이분법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캐릭터를 보며 복잡다단하게 살아가는 나는 ‘멋지다! 역시 록이지’ 고개를 연신 끄덕이다 “록은 역시 우드스탁이야”라는, 뜻을 모르지만은 않을 소리를 혼자 히죽이며 중얼거렸다.
내가 처음 무언가를 “록이네” 하고 받아들였던 것은 한 차원 높은 공교육에 적응하고 있던 중학교 1학년 때 발매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이었다. 전곡이 록 사운드로 채워져 있는 이 신보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앨범이었는데, 나의 심장을 ‘쿵’ 때린 곡은 네 번째 트랙인 ‘교실 이데아’였다. 우리들의 절규를 대신 토해내는 듯한(물론 내 주관적인 해석이지만) 샤우팅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내가 공부하지 않는 것은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똑같은 걸 집어넣는 교육에 대한 반항이자, 사방이 꽉 막힌 시꺼먼 교실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었다는 깨달음을 주었으며, 대학이라는 포장지에 예쁘게 싸일 생각이 없기에 학우들과의 우정을 위해 기꺼이 성적 정도는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그때 내 개인의 문제가 결국은 사회 전체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다.
커트 코베인 사망 3주기였던 1997년에는 몇몇의 개인이 사회에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지 IMF라는 걸 통해서 알게 됐다. 이때 우리의 부모들만이 일자리를 잃었고, 삶의 가치가 화폐 우선순위로 바뀌게 된 것 같다. 물론 이건 록이 아니었다. 오지 오스본이 첫 내한 공연을 했던 그해 처음으로 참여한 대선 투표에서 내가 지지했던 후보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순간을 목격하고, 낮은 곳으로 기꺼이 손 내미는 그분을 보며 “록이네”라고 생각했다.
퀸이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 2014년, 난 요즘 글을 쓴다. 그래서 책을 구매하는 일이 부쩍 많아졌는데 그럴 땐 당연히 집과 가까운 광화문 교보문고로 간다. 거기서 책을 사고 대각선에 위치한 카페 폴바셋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록이네” 하고 무심코 차창 밖을 바라보면, 언젠가부터 전에 없던 광경이 처절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난 안산에도 다녀왔고, 서명도 했어, 그리고 잊지 않을 거야”라며 쓰게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정말 그러면 이제 다 된 건가? 나만 편하고 잘 지내면 그걸로 된 건가? 125일이 지났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가 있고, 체육관에선 그의 가족들이 여전히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 셀 수 없는 많은 촛불이 켜졌지만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내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외면하면 편하다. 안심하면 잊게 된다. 침묵하면 내 양심은 비난받지 않는다. 지금 난 록인가, 아닌가.
다시 『골든 슬럼버』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기댈 곳 없이 위험에 처한 주인공이 도움을 청하자 이와사키는 그리 가깝지 않던 그를 당연하다는 듯이 돕는다. 부담스러운 부탁을 드려서 미안하다고, 이건 전혀 록이 아니라 미안하다고 연방 고개를 조아리는 주인공에게 록 이와사키는 말한다. “아니야, 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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