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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번지점프를 하다> 김지현, 유연하게 삶을 리드한다 [No.120]

글 |박병성 사진 |심주호 2013-09-11 5,811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억 속의 김지현은 쾌활하고 밝고 통통 튀는
햇살 같은 배우였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이
한예종 작품을 일주일간 묶어서 공연했던
상업화되기 이전의 <김종욱 찾기>에서였다.
거기서 여자 역을 맡은 김지현은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인물이었다.
두 번째 <거울 공주 평강 이야기>의 연이로
만났을 때도 그런 이미지는 이어졌다.
그래서 오히려 영화 <작은 연못>의 수더분한
선생님으로 만났을 때 저런 역도 어울리네,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막상 만나본 김지현은
전자의 모습이 없지 않았으나 후자에 가까웠다.
자신을 낮출 줄 알고, 적당히 낯도 가리는
김지현은 배우 같지 않은 배우였다.

 

                              


?우연을 따라가다 만난 직업                               

상대방을 배려하고 조화를 중시하는 우리 정서상 아직도 많은 이들이 사람들의 주목을 부담스러워한다. 그러나 배우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야 하는 직업이다. 무대 위에서 주목받는 것을 즐길 줄 아는 것이 배우의 중요한 덕목이다. 그래서 배우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내세우는 것이 익숙하다. 그런데 김지현은 달랐다. 우선 칭찬을 민감하게 밀어낸다. 스스로 자신을 내세워야 하는 경우에도 깍아내리는 말을 덧붙인다. 아름다운 옷을 처음 입어보는 신데렐라처럼 충분히 잘 어울리는 옷인데도 낯설어한다. 그런 그녀가 한 시간 정도의 인터뷰에서 딱 두 번 자신을 칭찬하는 말을 했다.
그 하나가 ‘무난하다’였다. 한예종 연극원 연기과 출신인 그녀에게 대학 시절 어떤 걸 잘하는 배우였냐고 묻자, 칭찬이라고 한다는 말이 ‘무난하다’였다. “사람들과 작업하는 데 불편하지 않고, 무언가 크게 못하지 않고, 어떤 일을 맡기든 무난하게 잘했어요.” 스스로도 이 말을 칭찬이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배우는 A플러스 아니면 F여야 하는데, 저는 무언가 강렬함이 없다고 선생님들이 말씀하시곤 하셨어요.” 칭찬을 묻자 배우로서의 결점을 말하는 게 바로 김지현이다. 그러나 자기 비하는 아니다. 자신을 낮추지만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그대로를 받아들일 줄 안다. 이런 태도는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 강한 확신이 없다면 유지하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무난하고 유약해 보이지만 누구보다도 강한 사람이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좀 더 하기로 하고, 먼저 이렇게 자신을 내세우지 못하는 그녀가 어떻게 배우가 됐는지를 들어보자.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아이가 오더니 ‘연극반을 만들려고 하는데 같이할래?’ 하는 거예요.” 이 모르는 아이를 따라 연극반에 들어가면서 처음 연극을 접하게 됐다. 그 아이는 중학교 때부터 연극 교육을 받았던 터라 그때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연극반을 꾸렸다. 나름 공부를 잘하는 학교였던지라 선생님들의 좋지 않은 시선을 감수해야 했다. 그렇게 나간 시 주최 청소년연극제에서 상을 받게 된다. “우리가 잘한 건 아니고, 참가 단체가 다섯 개 정도밖에 없어서…” 제대로 연극반도 꾸리지 못한 팀이 다섯 팀 중 일등을 한 건데도 칭찬 알레르기 센서가 작동한다. 이렇게 해서 울산여고에 연극반이 생겼다. 자신을 연극으로 이끌었던 친구는 일반 회사원이 됐지만, 김지현은 연극원을 거쳐 직업 배우가 됐다.
연극원의 일원으로 <김종욱 찾기>와 <거울공주 평강 이야기>
를 비롯 ‘극단 간다’ 작품에 참여했고, 무엇보다 이상우 연출과 인연을 맺게 됐다. 대학 3학년 때 대학로 유명 연출가인 이상우 선생이 연출과 교수로 왔다. 이상우 연출의 작품에 몇 번 참여한 것을 인연으로 졸업 이후 연극 <마르고 닳도록>, <변>, <양덕원 이야기> 등 극단 차이무 작품과 이상우 연출이 감독한 영화 <작은 연못>에서도 꽤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다. 극단 차이무와의 작업이 많아서인지, 그가 참여한 연극과 영화들을 보면 사회 참여적인 성격이 강하다. “사회적인 거 잘 몰라요. 단지 내가 존경하고 믿는 분들이 하는 말이니까 맞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작품 속 이야기가 내가 이해하는 선에서 맞는 이야기고요. 굳이 그런 작품을 찾아 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 제가 좋아하는 분들과 작업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포기할 줄 아는 배우                               
‘무난하다’는 어느 정도 단점이라고 생각한 대답이었다면, 스스로 한, 두 번째 칭찬 ‘포기가 빠르다’는 얼핏 이게 자랑인가 싶지만 그녀는 확실히 자신의 장점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은 캐릭터에 다가가는 방식을 이야기하다 나왔다.
그녀는 무난한 성격상 카리스마가 강하거나 캐릭터가 센 역할은 힘들다고 한다. 최근 맡은 <카페인>의 세진은 너무 밝은 캐릭터라 부담스러웠다. “더블 캐스팅된 (윤)공주가 잘 어울리고 잘하더라고요. 같은 배역의 배우와 경쟁을 한다거나 상대가 잘한다고 해서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아요. 공주가 잘하는 부분이 분명 있는데 제가 그대로 한다고 해도 안 되거든요. 이상하게 해서 어색해지는 것보다 포기하는 편이에요. 나에게 그 역할을 제의했을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그랬겠죠. 공주가 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니까 욕심 부리지 말고 버릴 것은 버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에요.”
이제 앞서 밀어두었던 이야기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녀는 욕심이 없어서 무난하고, 그래서 포기도 빠르다. 흐르는 대로 흐르다 만나는 대로 반응하는 물처럼 그녀는 유연한 태도를 지녔다. 우연이 이끄는 대로 연극배우가 되고 지금까지 온 것 같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자신이 있었다. 그녀의 장점을 하나 덧붙이자면, 자신을 매우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가 나오고, 무엇보다도 어떻게 해야 더 행복한지를 잘 안다. 무난하고 욕심이 없지만 강단이 느껴지는 이유다.

 

                             


드라마와 영화, 연극과 뮤지컬을 넘나들지만 현재로선 공연이 자신에게 제일 잘 맞는 옷 같다고 한다. 드라마 <대풍수>에 출연하느라, 근 1년간 공연을 하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풍월주> 일본 공연에 출연했더니 편하고 좋았단다.
작년 드라마 <대풍수>에 들어가면서 놓쳤던 작품이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였다. “실제 촬영 스케줄이면 해도 됐는데, 그때는 어떻게 될지 몰랐고 피해가 될까봐 사양했어요. 인연이 있으면 또 기회가 오겠지. 속상하니까 마음 편히 먹었죠. 객석에서 보면서 많이 아쉬웠어요. 노래도 정말 좋고, 태희 캐릭터도 매력적이고.” 그녀의 생각대로 인연이 있는 작품이었는지 앙코르 공연에 다시 출연 기회가 왔다. 즐거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태희의 사랑이 전체적으로 보면 이상적인 사랑이긴 하지만 연애하는 모습은 소소하거든요. 비 맞으면서 싸우고 연애 초기에 다들 그러잖아요. 내가 지금 이런 연기를 하기엔 너무 가식적인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걱정이에요.” 또 하나의 걱정은 태희 캐릭터에 관한 것이다. “태희는 강한 뭔가를 하지 않는데도 예쁘고 매력적인 캐릭터거든요. 관계 안에서 소소한 행동들이 매력을 주어야 하는데 그걸 할 수 있을지 고민이에요. 한 남자의 평생을 지배하고 있는 여자잖아요. 어떤 사람으로 인우에게 남아 있길래 그럴 수 있을까요?” 김지현은 강하게 드러나는 매력은 없지만, 매력적인 것만은 명확한 태희를 연기하기 위해 고민 중이다.
김지현이 캐릭터에 접근하는 방법은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 “나로부터 시작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안에서 확장시켜서 그 캐릭터에 맞게끔 접근해요. 그게 잘 살아나면 캐릭터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코미디나 지나치게 밝은 캐릭터, 강한 캐릭터들은 조금 부담스럽다. 아직까지는 굉장히 강한 캐릭터들의 제안이 오지 않았고 스스로도 욕심내지 않았다. 욕심이라니. 김지현에게 욕심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무난하고 욕심 없는 배우 김지현. 그러나 조금만 달리 보면 세상의 흐름에 욕심내지 않고 자기의 흐름을 유지하며 산다는 게 요즘같이 욕망이 넘실대는 세상에서 단순히 무난하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유연하게 삶을 자기 식으로 리드할 줄 아는 배우, 그래서 김지현이 연기하는 헤다 가블러, 김지현이 연기하는 메디아가 보고 싶다. “그런 캐릭터가 주어지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 안에 없진 않겠죠. 뭐가 더 크고 작으냐의 차이이지. 일상생활에 잘 나타나지 않는 면들을 연기할 때 힘들지만, 그것을 내 안에서 소화하고 나면 배우만이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있어요. 간단히 말하면 평상시 하지 않은 일을 하면서 느끼는 희열 같은 거요. 잘 소화돼서 나오면, 힘들지만 즐거운 작업일 것 같아요.” 어떤가 여러분도 궁금하지 않은가?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0호 2013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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