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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Mr.BONG ESSAY] <프리실라> 아빠의 아들, 아들의 아버지 [No.131]

글 |봉태규 그림 | 봉태규 2014-09-03 4,272
봉태규의 공연 에세이





그는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태어났다. 형제는 3남 2녀로, 남자 형제 중에서 둘째, 전체에서는 세 번째 위치인데, 어디선가 들은 얘기에 따르면 피난길에 여자 형제 한 명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로 남겨진 어머니 밑에서 쉽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학력도 중학교 중퇴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부지런해서 어머니는 그를 유달리 예뻐했다고 한다. 

오뚝하게 솟은 콧날과 쌍커풀 없이 길게 뻗은 눈, 마치 그린 듯한 진한 눈썹, 다부진 입술, 새까만 머리칼, 키는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그는 그야말로 미남이었다. 그는 멋내기도 좋아해 모든 옷을 ‘테일러 메이드’로 입었다. 이태리 피티워모에서도 보기 드문 화이트 더블브레스트 수트를 걸치고 종종 제주도에 내려가 바다를 보며 ‘여기서 살면 좋겠군’이라는 다분히 ‘킨포크’적인 생각을 이미 1960년대 즈음에 했다고 한다. 또한 장사 수완이 좋아 일찍이 종이를 만들어서 내다 팔았는데 성과가 엄청났다. 그래서 이미 이십대 때부터 여기저기서 선 자리를 봐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본인은 절대 내키지 않았지만, 예의 바른 그는 어른들의 수고스러움이 죄송해 최대한 많은 선 자리에 나가 궁극의 예란 이런 것이란 걸 몸소 보여주었다. 하지만 눈을 잡아끄는 여인은 있어도 마음까지 잡아끄는 여인을 만나지 못해 그의 표현대로 쓰자면 모두 ‘유희’에 그쳤다고 한다. 응?

그러던 어느 날 저 멀리 대구에서 모름지기 성인이 된 여자라면 스무 살부터 독립을 해야지 하는 호연지기가 있는 흥 많은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본인보다 열 살이나 어린 이 여자에게 눈과 마음을 모두 빼앗긴 그는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나이 차의 장벽은 하나된 마음 앞에선 손끝으로 툭 치기만 해도 무너져 내리고 마는 하찮은 이유가 된다는 것을, 두 사람의 만남을 반대하는 장인어른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었다고 한다. 여자의 아버지는 “무너져 내린 건 마음이 아니라 너였구나”라며 통탄해 하셨지만, 이미 하나가 된 그들을 말리기엔 너무 늦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들은 전라도와 경상도라는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대통합을 보여주며 부부가 되었다.

결혼 후 여자의 독립심은 이들 부부를 서울로 이끌었고, 두 사람은 당시 누구나 그렇듯 맞벌이라는 시대적 팀플레이를 통해 빠듯한 도심 생활을 버텨냈다. 그 사이 그에게도 아이가 생겼다. 첫째는 딸이었다. 아이의 이름은 그의 장인이 지어 주셨다. 그리고 3년 후에 둘째를 낳았는데, 역시 딸이었다. 이때부터 그보단 주위에서 성급해지기 시작했다. 아들이 당연한 시대에 딸만 둘이라는 걸, 그를 끔찍이 아낀 그의 어머니가 용납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그는 무사태평하게 시대를 앞서는 딸바보의 모습을 보여주며 어머니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고 한다. 그후 5년의 시간이 흘러 고향집에 내려간 그는 꿈에서 삼신할머니를 만나 엄청난 꾸지람을 듣게 된다. 부인을 혼자 두고 여기서 뭐 하냐고 말이다. 놀라 잠에서 깬 그는 부랴부랴 서울에 올라온다. 그리고 오랜만에 분열된 지역 이기주의를 극복한다. 그리고 그의 나이 마흔한 살에 ‘처음으로’ 아들의 아버지가 된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하나뿐인’ 아들이 되었다. 

 
 세상일에 관심 없는 척하지만, 
자신의 눈을 끄는 건 굳이 나서지 않으면서 
참견하기 좋아하는 그런 남자.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1호 2014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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