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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No.130]

글 |정예경(뉴욕 통신원) 사진 |Joan Marcus 2014-08-25 4,820
극보다 돋보이는 음악의 존재감 
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천재 작곡가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이 브로드웨이로 돌아왔다. 그런데 생각보다 반응이 별로여서, 개막하자마자 순식간에 간판을 내리고 세계 투어 준비로 자금 회수에 돌입했다. 그래도 지금 이 사람만큼 브로드웨이에서 운이 좋은 사람은 세계를 제패한 <겨울왕국>의 로페즈 부부 외에는 없는 것 같다. 할리우드에서는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가 영화화되고 있고, 브로드웨이에서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토니상 작곡 부문, 오케스트레이션 부문 등 음악 관련 상을 모두 거머쥐었으니 실속은 다 챙긴 셈이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세계적으로 흥행한 소설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 주연으로 영화화되어 또 한 번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원작 소설이 중년의 여성들에게 워낙 인기가 있어서, 이 소설을 무대로 옮기는 것은 관객의 대부분이 중노년층인 브로드웨이에서 통할 만한 시도였다. 그러나 필자에게 원작 스토리는 다소 평면적인 데다 분위기가 너무 고루했다. 그래서 서정적이고 멋진 뮤지컬 넘버는 나오겠지만 표현에 한계가 있으리라 점쳤는데, 예측이 맞았다. 역시 브로드웨이는 꿈의 장소이자 한편으론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곳이다. 



평범한 삶 속의 특별한 일탈

전쟁 후, 미국 시골 농가로 시집와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가는 이탈리아 이민자 프란체스카의 생활은 단조롭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반복되는 삶이 달라질 가능성은 없다. 밤낮 아웅다웅하는 사춘기 아들과 딸, 사소한 감정 표현은 고사하고 ‘사랑’이란 단어조차 쑥스러워 입에 못 올리는 투박한 농부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그녀는 그나마 몇 안 되는 노년의 이웃과 가끔 수다를 떠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4일 동안 일리노이주 박람회로 떠나고, 그녀에게는 짧은 자유가 주어진다. 그 시간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금방 지날 것 같았지만, 뜻하지 않은 방문자를 만나 그녀의 인생은 바뀌게 된다. 로즈먼 브리지의 위치를 묻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를 안내해주며, 프란체스카는 새삼스레 떠오른 자신의 옛 추억과 이탈리아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에 젖는다. 로버트는 그런 그녀를 필름에 담고,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으며 가까워진다. 프란체스카는 오랜만에 여자가 된 자신을 느끼며 빨간 드레스를 사서 입고, 로버트와 격정적인 이틀을 보낸다. 로버트는 열정에 눈뜬 이상 이렇게 인생을 낭비하지 말자며 그녀에게 함께 멀리 떠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온 아이들과 여느 날과 다름없이 세련되지 못한 남편, 수다를 떨며 나눠 먹을 음식을 가져온 이웃을 보니, 웬일인지 그렇게 떠나고 싶었던 그곳을 떠날 수가 없다. 남편은 뭔가 달라 보이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 묻는다. 프란체스카는 그냥 자기 인생이 너무 한심해서, 그냥 계속 이렇게 살다 죽는 건가 싶어서 그런다고 어렵게 말을 꺼낸다. 하지만 그는 그런 그녀를 이해해주기는커녕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며 화를 낸다. 

로버트는 멀리서 안타깝게 그녀를 바라본다. 그가 누구냐고 묻는 자식들에게 그녀는 ‘로즈먼 다리를 알려줬던 사람’이라고 짧게 대답하며 그를 외면한다.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이다. 두 사람은 평생 연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로버트는 그녀를 평생 추억하다 죽은 뒤 로즈먼 다리에 유골로 뿌려진다. 세월이 지나 프란체스카의 남편도 죽고, 그녀 역시 임종을 맞는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비밀을 자식들에게 글로 알린 뒤, 자신은 평생 할 만큼 했으니 죽은 뒤에나마 로버트와 함께할 수 있게 해달라며 화장해 로즈먼 다리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정통 신파의 굳건함과 당연한 실패

이야기의 패턴은 너무나도 일반적이다.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드라마 <불꽃>, <아내의 자격>, <밀회> 등도 비슷한 패턴이지 않나 싶다. 한마디로 바로 이런 이야기가 여자들이 보는 포르노그라피인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시대를 막론하고 대중적 인기를 얻는 이유는 사람의 인생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하기 때문 아닐까. 사랑인가 싶어 결혼하고 출산까지 했는데, 곧 경제 문제, 육아 문제, 배우자의 비협조와 변심으로 사랑은 사그라진다. 이미 무섭게 적응해버린 지리멸렬한 생활에서 탈피할 최소한의 용기도 없고 실제로 닥칠 여러 골치 아픈 일들 때문에 타협하며 살아가는 게 대다수 여자의 일생이다. 너무 잔인한가? 어쨌든 그 와중에 여자들은 자신의 희생으로 한 가정이 온전히 유지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 나름의 보람을 느끼고 살아간다. 이웃들은 그런 그녀를 모범 주부라 부른다. 그 칭호가 그녀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영광스런 이름이다.  

이런 이야기가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주인공이 참고 또 참는 모범 여성이어야만 한다. 원래 날라리 출신 주부가 바람이 나는 스토리는 공감을 전혀 얻지 못한다. 일반 주부들의 판타지를 실현시켜주려면, 주인공은 ‘보통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소위 말하는 ‘바람’, 다른 말로 ‘사랑’이라는 ‘두근거림’이 찾아온다. 현실은 여기서 두근거리다 말든지,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거나 아무도 모르게 바람을 피우든지, 깊어질 것 같다가 여자가 쿨하게 끝내거나 내연남이 먼저 지레 겁먹고 도망을 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주부들의 욕구를 완벽하게 충족시킨다. 여자는 가정을 깨지 않고 모범 주부의 타이틀을 지키고 계속 인고의 삶을 살기 때문에 한때의 장난은 불륜이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우리가 서로를 알게 된 이상, 이전과 똑같이 살 순 없소. 나와 함께 갑시다, 프란체스카”라고 하는 로버트의 캐릭터는 아무리 판타지라지만 참 생뚱맞다. 아마 옛날엔 작품의 정서가 공감을 얻었을 것이다. 전후에 미국으로 건너온 많은 사람들, 가난에 찌든 삶, 유럽에 두고 온 가족 이야기는 바로 이 사람들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이야기의 얼개는 유지해도 상황에 적합한 변용이 필요한 듯하다. 

음악으로 시작해서 음악으로 끝나는 작품 

이 작품은 ‘뮤지컬’이라기보단 ‘음악극’에 가까워 보인다. 음악으로 시작해 음악으로 끝나는,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의 자신감과 종횡무진 독주로 점철된 작품이다. 사실 음악이 너무 좋은 게 문제라면 문제다. 음악을 쓴 사람이 혼자 총대 메고 작품을 썼기 때문에 오히려 음악의 낭비가 심하다. 터질 듯한 감수성으로 충만한 음악으로 완성된 장면에서 연출이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게 뮤지컬이 되길 원했다면 한 번 더 발전을 시켰어야 했다. 음악만 멋지게 완성된 중극장 사이즈의 작품에 그치고 말았다. 천재를 견제할 만한 다른 천재, 가령 토머스 미한이나 수잔 스트로먼 정도가 극본이나 연출로 들어와 브라운과 재능을 겨뤘다면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물론 이 작품도 퓰리처상까지 받은 작가가 썼지만,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호흡을 알아야 하는 뮤지컬에선 시원찮은 결과를 보여줬다.  

뮤지컬은 대개 궁극의 협업 예술로 간주된다. 아이디어가 한쪽에서만 일방적으로 분출되면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천재가 작업한 부분은 특히 도드라지니 그가 거의 모든 일을 하게 되고, 따라서 전체의 그림을 놓고 보면 좋긴 좋으나 어딘가 불균형적인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다른 어떤 극작가나 연출가도 브라운의 호흡을 쫓아가질 못했다. 겨우 이 극을 이해해서 최선을 다해 쫓아간 건 주연과 조연 여배우 두 명뿐이다.   

연출은 참 ‘인디적’이다. 배우들이 리딩 때처럼 무대에 앉아있다가 주인공들이 대화를 할 때 나와서 사연을 노래로 들려주고 끝나면 뒤의 의자로 들어가 앉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연출을 굳이 이 작품에서 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특히 프란체스카가 로버트를 로즈먼 다리로 인도하며 드라이브하는 장면은 나름 중요한 부분인데 차에 앉아 앞만 바라보고 노래만 몇 분 하니, 팝 음악 콘서트장에 온 느낌마저 들었다. 

열정이 넘치는 천재 작곡가는 대본을 받고 떠오르는 것을 음악으로 옮겼을 게다. 그래서 많은 장면이 노래로만 이루어지고 음악의 길이가 길다. 프로듀서나 연출가가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이를 냉정하게 잘라야 했는데, 음악적으로는 나름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아까워서’ 안 버린 부분이 있다. 이런 식으로 그냥 넘기다가 얼렁뚱땅 길어진 부분들이 많다. 노래 하나 하나는 참 좋지만, 전체 넘버 구성이나 플롯 구성은 ‘극’답게 흘러가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브라운의 음악을 위해 다른 부분이 희생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걸 보면 스테판 슈월츠와 비교가 된다. 그는 자기 노력이나 재능을 적극적으로 다 쓰기보다는, 조금 물러서서 남들 설 자리를 마련해주며 같이 빛나는 케이스다. 협업, 영원한 숙제다. 특히나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 같은 드문 완벽성을 갖춘 천재에게는 더욱 더. 

브라운이기에 가능한 오케스트레이션 

어쨌든 극이 끝나자 음악만 남았다. 가정을 버리고 떠날 만큼 끌렸던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라면 그 화학작용이 머리에 강하게 남아야 하는 법이고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감정이 이입되어야 하는데, 그런 건 없었다. 대신 OST는 몇몇 뮤지컬 넘버가 음악 자체로 참 좋아서 눈물을 자아낼 정도였다. 흥행에 처참한 실패를 했어도 이 작품이 음악상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이런 점 때문이다. 최근 브로드웨이 작품 중 극이 좋아 흥행이 된 경우는 꽤 있었지만 음악이 좋은 건 이 작품을 제외하면 단 한 작품도 없었다. 올해 브로드웨이는 내내 음악 기근이었다. 브라운에게 음악상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도였다. 

베스트오케스트레이션상도 받은 만큼, 이 부분에 대해 언급을 안 할 수가 없다. 오케스트레이션은 상당히 대담하다. 편곡자가 따로 있었다면 절대 이렇게 나올 수가 없고, 작곡가가 직접 편곡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오케스트레이션은 정말 유기적이다. 보통은 볼륨을 크게 하기 위해서 드럼을 쓰고, 결과적으로 현악기나 다른 파트들이 상대적으로 왜소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가진 게 브로드웨이 오케스트라 편성이다. 그렇다고 그 비싼 현악기 뮤지션들을 더 고용할 순 없는 노릇. 그래서 모두를 적당히 잘 살려내는 센스 있는 편곡자가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브라운은 드럼을 과감히 포기하고 스틸 기타와 피아노, 베이스가 그루브의 중심을 이루는 하이브리드 실내악 형태의 앙상블 편성을 선택했다. 이런 클래식과 유사한 편성을 택함으로써 훨씬 더 자유롭게 강약과 빠르기의 조절을 음악에 활용하는 게 가능했고, 또 현악기가 메인 비트의 장식 역할에 머물지 않고 좀 더 독립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 가능했다. 흥미로운 것은 예전에 <빅 피시>가 작품의 성격 때문에 유기적인 사운드로 흘렀다면, 이 작품의 편성은 오로지 브라운의 음악적 성향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만약 편곡자가 이런 이례적인 편성을 택했다면 극 흐름과 컨셉에 대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전문 편곡자는 작품 전체의 성격을 책임질 수 없는 피고용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이런 편성을 지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사운드는 브로드웨이에서 듣기 힘들다. 작곡가가 직접 편곡하고 그 책임을 져야만 가능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굳이 쓴 편성이었다. 또 요즘 브로드웨이에서 볼 수 없는 오픈된 오케스트라 또한 이 작품만의 특징이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누가 봐도 음악이 주인공인 음악극이다. 오케스트레이션의 편성에서 브라운이 자기의 능력을 얼마나 믿고 자신 있어 하는지 볼 수 있다. 가슴이 허한 프란체스카의 마음의 풍경이 고스란히 전해져와 마음이 스산해져 차라리 외면하고 싶어진다. 여자 등장 신에서는 클래식한 현악사중주나 중주 편성, 남자가 등장할 때는 주로 어쿠스틱 스틸 기타를 사용한다. 영화음악의 기법과 극음악의 기법이 적절히 섞인 영리한 편곡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0호 2014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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