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홍길동전』의 탄생 배경에는 이매창, 유희경, 허균의 러브 스토리가 있었다.
물론 허구이다. 유희경과 이매창이 정인의 관계이긴 했지만,
연배도 다르고 허균과의 삼각관계로 발전시키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하지만 예술은 자유로운 상상의 결과물.
뮤지컬 <균>에서는 이들을 대중 출판물을 만들어내는 풍월향도로 불러온다.
그곳에서 예술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의리와 사랑 속에서 갈등한다.
[작품 소개]
세간 소설을 비밀리에 발행하는 풍월향도는 좋은 소설을 내지 못해 위기에 처한다. 이때 천재 작가 균이 돌아온다. 풍월향도의 수장 희경은 자신의 정인이자 신참 작가 매창을 비롯, 향도들의 글 감수를 균에게 부탁한다. 균은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고 예술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매창에게 매료된다. 매창 역시 괴짜 작가지만 재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균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러던 중 향도들의 활동을 예의 주시하던 이이첨의 음모로 희경은 죽음을 당하고, 균과 매창은 슬픔을 딛고 새롭게 향도를 이끌어간다. 균과 매창 역시 새로운 관계를 이어가려 하는데 죽은 줄 알았던 희경이 돌아온다.
리딩 공연을 올린 소감?
하경진 뮤지컬은 처음이라 배운 것이 많다. 지나고 나니까 아쉬운 점도 많고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2시간가량의 분량을 생각하고 썼는데 100분 내외로 줄이다 보니 많이 잘라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100분 분량에 맞게 써야 관객들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장영지 리딩을 본 적도 없고 설명만 들어서 어떤 것인지 감이 없었다. 좀 더 짜임새 있게 줄였더라면 우리가 보여주려고 했던 부분을 더 잘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특히 풍월향도에서 창작되는 이야기는 흔한 소재가 아닌데 충분히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
소재 자체는 굉장히 흥미로웠는데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이이첨과 허균의 대립이 보여주는 정치 드라마와, 균과 희경, 매창의 러브 스토리도 있고, 홍길동전 창작 비화로도 읽힌다.
하경진 허균이 『홍길동전』을 남기는 이야기와 로맨스가 섞인 구조다. 리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있었는데, 관객들이 글을 쓰는 이야기에 집중하면 지루할 수 있을 것 같아 로맨스 위주로 편성했다. 원래는 작가들이 사랑하고 만나는 과정이 하나의 작품으로 태어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극 초반에 풍월향도를 설명하는 데 오랜 시간을 들였는데도 그것이 어떤 곳인지 명확하게 들어오지 않는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한글을 만들던 공간과 영화 <음란서생>이 떠올랐다.
하경진 <음란서생>에서처럼 춘화풍은 아니다. 일반 베스트셀러 소설들이라고 보면 된다. 잘 쓴 소설이 어떤 정치가의 연설문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선생은 수백 명의 제자에게 영향을 주지만, 책은 수십만 명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실제 조선 시대에 책 한 권의 내용 때문에 중전 자리를 박탈당하고, 세자 책봉을 받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니 세간을 떠도는 소설에 예민했을 것이다. 원래 풍월향도는 유희경이 만든 시문 모임인데 작품에서는 드라마나 출판 시장에 빗대 설정했다.
장영지 첫 장면에 그런 설정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많았다. 백성들이 쓰개치마를 쓰고 책을 사러 오면 관군들이 쳐들어와 부수고 불을 지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풍월향도가 비밀리에 활동하던 시기로 넘어온다. 너무 설명적이라고 해서 들어냈다.
죽었다고 알았던 희경이 돌아오는 지점부터 이야기가 지지부진해지고 반복되는 느낌을 받았다.
하경진 희경을 돌아오게 한 것은 균과 매창 사이에 긴장감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희경과 균이 향도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지만 희경은 조선을 유지한 채 이루려 했고, 균은 좀 더 급진적인 생각을 한다. 그런 대비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이첨이 희경을 죽이지 않고 살려둔 이유를 모르겠고, 탈옥한 희경이 도망가지 않고 향도에서 무용담을 늘어놓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경진 무대상으로 보여줄 수 없었지만 향도가 있는 곳이 지하 비밀 아지트이다. 희경을 살려둔 이유도 미행해서 균을 잡기 위해 살려둔 것이다.
조역들에게도 사연을 주는 것은 작가로서 좋은 태도이지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조역들조차 자신들의 사연을 늘어놓으니 이야기가 복잡해졌다. 월화가 매창의 어머니인 것은 알겠는데 아버지 이야기는 이해가 안 갔다.
하경진 일화가 있었는데 들어내면서 남은 흔적이다. 원래 월화의 스토리가 별도로 있었다. 매창의 아버지는 기방 악공인데 기녀와의 사이에서 매창을 낳았다. 월화는 기방의 행수였는데 그녀 역시 악공을 사랑했다. 매창의 어머니가 자살을 하고 악공은 병이 드는데 월화가 그를 돌보며 매창의 양어머니가 된 것이다. 균과 희경, 매창이 그렇듯 월화 나름대로 사랑의 방식이 있다.
뮤지컬은 처음이라고 했는데, 음악이 처음 작업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드라마를 잘 담아냈다.
장영지 뮤지컬을 좋아해서 보기는 많이 했다. 곡을 쓴 시간보다 극본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 작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묻고 확인했다.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생각이 일치되면 악상이 빨리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나와 작품이 잘 맞았다. 처음 작품을 받았을 때 밝지만 슬프고, 어둡지만 우울하지 않은 느낌을 받았는데, 내가 좋아하는 곡들이 다 그런 식이다. 장면에서 음악적 모티프들 중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들이 많은데 그것들은 신경미 음악감독이 힌트를 주셨다.
곡이 굉장히 긴 편이다. 처음 극본부터 그렇게 길었던 건가?
장영지 원래는 더 길었는데 수정을 거치면서 많이 줄어든 것이다. 작가님이 음악이 흐르는 동안 이만큼의 드라마가 전개됐으면 좋겠다고 하길래 해보겠다고 했는데, 굉장히 길어서 사실 어려웠다. 그래서 많은 부분을 부탁해서 줄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제목만 쭉 보면 마치 트리트먼트를 보는 것 같다.
하경진 뮤지컬이니까 음악 제목만 봐도 플롯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사는 노래와 노래를 이어주는 정도의 역할을 하면 된다고 봤다.
장영지 리딩 준비를 할 때 1차에 다섯 곡, 2차에 열 곡을 제출해야 했는데 사건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을 음악으로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성스루 뮤지컬 같은 느낌이 난다. 작곡가가 굉장히 부담스러웠겠다.
하경진 전문가 리뷰를 받는데, 작가 때문에 힘들었을 거라고 하더라. 처음이라 힘들 거란 생각을 못했다.
장영지 나도 처음이라 이게 힘든 건지 몰랐다. 그냥 원래 이렇게 하나 보다 했다. 잘된 거지.
무대에서 구현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하경진 무대를 상상하고 해놓은 것들이 많다. 그런데 스태프 분이 ‘여긴 브로드웨이가 아냐, 상상한 대로 다 안 돼’ 하시더라. 그런데 쓸 때만큼은 그런 것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여기는 한국이지만 작가라면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릴 것처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 되면 고쳐 가면 되는 것이고.
허균이나 이매창, 유희경 모두 실제 인물에서 모티프를 가져왔지만 상당 부분이 새롭게 창조됐다. 『홍길동전』이 등장하는 허균은 그렇다고 해도 두 사람은 변화가 큰데 굳이 실명을 사용할 필요가 있나?
하경진 반대로 묻고 싶다.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나? 아이디어를 잡은 것이 그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공연은 허구인데 굳이 피할 필요가 있을까. (역사적 사실에 영향을 받을 수 있고, 또 후손들의 문제 제기도 고려해야 한다.) 후손들 문제는 여러 사람에게 들었는데, 일단 허균은 능지처참을 당해서 후손이 없다. 매창도 기생이라 그렇고 유희경만 있는데, 그래서 유희경이 멋있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웃음)
사전 인터뷰를 보니 국악기를 안 쓴다고 했던 것 같은데, 실제로는 사용했다.
장영지 국악기를 사용하되 너무 많이 사용해서 토속적인 전통 음악 느낌을 주고 싶진 않았다. 작가님도 조선의 집시 음악을 원했고, 다양한 악기가 조합되길 바랐다. 나도 그게 맞다고 봤다.
하경진 뮤지컬은 음악이 치고 나가는데, 주도적인 음악도 좋지만, 언니가 영상 음악을 전공해서 드라마를 보완해서 음악이 긴장감을 높여준다거나 하는 언더스코어를 굉장히 잘 넣어줬다.
장영지 작가님이 이 음악은 이런 곡을 생각하면서 썼다고 알려주거나 어떤 이미지를 제시해주었다. 그게 많은 도움이 됐다.
하경진 나는 정확하게 음악을 제시한 게 아니라 이미지만 준 건데 그걸 채운 것은 언니였다. 음악이 나오면 내 상상이 너무 초라하구나 느끼곤 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9호 2013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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