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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LUMN] ​결혼식 뒤풀이라는 이벤트 [No.128]

글 |송준호 2014-06-09 4,206

10년 가까이 연락이 없던 누군가에게서 야밤에 불쑥 전화가 걸려왔다. 그때는 순도 높은 잡담과 효용 제로의 넋두리를 하다가 막차를 놓치기도 했던 사이였지만(물론 술과 함께), 세상사 다 그렇듯 생계의 압박으로 시나브로 멀어졌던 이다. 적당히 데면데면해진 관계임에도 그가 거침없이 전화를 했던 용건은 역시나 결혼 소식. 나는 영혼이 담긴 축하와 함께 계좌번호를 물었지만, ‘돈은 됐고 제발 얼굴 좀 보자’라는 힐난에 어쩔 수 없이 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사실 그런 결정을 한 것은 지인의 힐난보다도 한때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 그날 참석한다는 소식을 들어서였다. 물론 결혼식은 신랑 신부가 축복을 받는 자리이지만, 하객의 입장에서 예식은 큰 의미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충분한 시간과 개성 있고 알찬 프로그램이 준비되지 않는 이상, 결혼식이라는 게 대개 천편일률적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하객들의 머릿속엔 주례자 앞에 선 두 사람의 낭만적인 미래보다 아래층의 식당 메뉴가 채워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식장에 들어서지도 않고 식당으로 향하는 하객들이 많은 이유도 이것이다.



그런 점에서 뒤풀이는 하객들이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다. 오랜만에 보고 싶은 친구와의 조우를 기대하며 결혼식에 참석하는 나 같은 불량한 하객도 있다. 어쨌든 결혼식이 끝나고 ‘이렇게 헤어지긴 아쉽잖아?’라는 분위기에 몸을 맡기면 뒤풀이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결혼식에서 파생된 이 ‘2부 행사’는 이때부터 결혼식과는 별개의 자리가 된다. 신랑 신부가 동문이라면 뒤풀이는 학교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한 사람들이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 자리로 변한다. 사회에서 알게 된 관계라면 해당 분야의 사람들과 교분을 쌓는 네트워크의 장이 된다. 특히 잘 차려입은 사람들과 거나한 파티를 하고 싶은 외로운 싱글이나 ‘돌싱’들에게는 유사 미팅의 기회도 준다. 하객에게는 이래저래 예식보다 뒤풀이가 본 행사인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신랑 신부의 지인들인 이들이 ‘하객’이라는 희박한 공통점만 갖고도 서로를 처음부터 친숙하게 대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내색은 않지만 사실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결혼식 뒤풀이’라는 것은 일회성 이벤트와 같으며, 술에 취해 한 수많은 약속들도 술이 깨고 나면 민망한 추억으로 휘발되는 속성을 지녔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이런 자리에서도 눈치는 필요하다. 상대방이 “3차 갑시다!”라고 한다면 ‘당신들, 재미있는데?’라는 뜻이지만, “저는 일이 있어서 이만…”이라고 하면 그건 ‘여기까지 놀아줬으면 됐지?’의 동의어라는 것을. 이런 뒤풀이의 속성을 감안하면 설령 이날 뒤풀이에서 인기 폭발이라고 한껏 고무되거나, 반대로 소외됐다고 의기소침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결혼식 뒤풀이에서 시작된 우정이나 사랑 이야기를 픽션이 아닌 현실에서도 종종 접하곤 한다. 그런데 그건 운명이 아닌 의지의 문제다. 결혼식을 통해 맺은 부부의 연이든 뒤풀이에서 시작된 인연이든, 그것이 공고한 관계가 되느냐 일회성 이벤트가 되느냐의 갈림길은 당사자들의 부단한 노력에 달려있다는 이야기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8호 2014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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