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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YORK] 열정을 담은 펀치를 브로드웨이에 날리다 <록키> [No.128]

글 |박천휴(작가/번역가) 사진 |Matthew Murphy 2014-06-03 4,795
어릴 적 본 영화 <록키>에 가지는 향수 - 후드티를 입은 젊은 실베스터 스탤론이 필라델피아의 거칠고 서늘한 풍경 속을 뛰어다니는 모습, 그 뒤로 흘러나오는 그 유명한 테마송의 멜로디 ‘빠밤 빰 빠밤 빰’? 저마다 무엇에 이끌려서 새 브로드웨이 뮤지컬 <록키>를 보게 되었든,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머릿속에 가장 깊이 남는 인상은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려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화려한 세트일 것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재탄생한 <록키>는 원작의 이야기와 인물들, 그리고 심지어 그 테마송까지 그대로 무대로 옮겨왔지만, 정작 이 뮤지컬의 성격을 결정짓는 것은 무대 전체를 덮는 빠른 속도감의 영상과 절제보다는 과시를 택한 조명과 사운드 이펙트들, 실제 크기의 권투 링을 무대 위로 옮겨버린 그 다이내믹한 스케일이다.



원작 영화의 충실한 재현
이제는 고전이 된 영화 <록키>는 1976년에 개봉해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함과 동시에 커다란 흥행을 기록했다. 영화는 필라델피아를 배경으로, 한 번도 전성기를 누려보지 못한 삼류 권투선수 록키 발보아가, 종종 허름한 클럽에서 또 다른 삼류 선수와 돈이 걸린 권투 경기를 하고, 부업으로는 빚쟁이들 돈이나 받아다 주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세계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와의 경기를 제안 받는 내용이다. 평생을 가난한 동네에서 ‘루저’로 지내온 자신에게 처음으로, 그리고 아마도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찾아온 이 기회를 잡기 위해 그는 모든 걸 거는 각오로 시합한다. 

당시 무명 배우였던 실베스터 스탤론이 직접 각본을 쓰고 주연까지 맡아 비교적 저예산으로 제작됐으나, 큰 성공을 거두며 ‘록키’라는 노동자층 캐릭터는 대체로 우울했던 분위기였던 1970년대 미국 문화에서 탄생한 가장 유명한 영웅 캐릭터 중 하나가 되었다.

뮤지컬 <록키>는 모두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이 이야기를 최대한 충실히 무대로 옮겨오려고 애를 쓴다. 록키와 아드리안의 러브 스토리는 영화와 똑같은 골격 안에서 흘러간다. 등장인물들의 의상, 소품, 헤어 스타일까지 원작 영화와 거의 같고, 심지어 영화에서 록키의 애완동물인 거북이들까지 그대로 무대에 등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주인공 록키 역을 맡은 앤디 칼(대표작 <위키드>, <저지보이스>, <금발이 너무해> 등 출연)은 영화 속 실베스터 스탤론의 어눌한 말투와 몸동작을 흉내 내며 영화와 똑같은 대사와 농담을 한다. 그리고 원작 영화를 회상할 때면 꼭 함께 떠오르는 빌 콘티의 상징적인 테마송, 비공식 제목으로는 ‘빠밤 빰 빠밤 빰’이라고 해도 될 만한  ‘Gonna Fly Now’ 역시 록키가 의지와 승리욕을 불태우는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울려 퍼진다. 

영화를 무대 위에 그대로 옮겨오면서 아마도 난관이었을 장소의 제한은, 영리한 세트 디자인을 통해 극복했다. 영화 속 록키의 허름한 아파트, 아드리안의 펫샵, 체육관 등 일상적인 장소는 세심하고 친근하게 표현되고, 록키가 훈련을 하는 고가 철로 아래와 필라델피아의 시내 풍경은 영상 프로젝터를 이용해 해결하는 등 관객의 얼굴에 들이대는 듯한 최대한 많은 볼거리로 대체된다. 원작 영화의 아이코닉한 배경인 필라델피아 미술관 앞 거대한 계단과, 꽁꽁 언 고깃덩어리들이 주렁주렁 걸려있는 냉동 창고는 꼼꼼히 재현된 세트 디자인과 브로드웨이 특유의 박력 있고 스케일 큰 비주얼에 힘입어 관객들의 눈앞에서 스펙터클한 볼거리로 재현된다. 

<록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권투 시합 장면은 <원스>, <아메리칸 이디엇> 등의 안무를 담당한 최근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가장 핫한 안무가인 스티븐 호겟과 <락 오브 에이지> 등을 작업한 켈리 디바인의 협업을 통해, 마치 실제 권투 시합을 보는 듯 매우 짜임새 있고 사실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안무로 표현되었다. 권투라는 스포츠의 역동성을 무대 예술로 훌륭하게 치환시킨다.



아쉬움을 남기는 음악
원작 영화 <록키>가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권투선수 록키가 분출하는 아드레날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화를 다시 본다면 록키를 둘러싼 드라마는 굉장히 진중하고, 주변 인물들의 감정과 고민은 진실하게 절절함을 느낄 것이다. 뮤지컬 <록키> 역시 이러한 드라마를 무대로 옮겨 오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애니>, <헤어스프레이> 등을 쓴 유명 작가 토마스 미한과 공동으로 직접 다듬은 대본은 영화의 텍스트를 대부분 거의 그대로 가져와 무대 위에 풀어놓으려 애쓴다. 뮤지컬 <록키>는 원작 영화의 러닝타임과 거의 비슷한 시간 동안, 전반적으로 원작의 이야기를 꽤 충실히 재현한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영화와 비교해서 어딘지 모르게 인물들이 지닌 감정의 깊이가 약해졌다는 느낌이다. 예를 들면 록키의 친구이자 아드리안의 오빠인 폴리는 원작 영화에서 전달되는, 출구가 없어 고달픈 인생이면서도 동시에 철없는 하층민 느낌이 무대 위에서는 충분히 재현되지 못한 채 드라마 상 그저 기능적인 주변 인물 중 하나로 흡수되어 버린다. 록키가 다니는 체육관의 주인이자 칠십 대의 베테랑 매니저인 마이키라는 캐릭터가 주는 감정의 깊이 또한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영화 속에서 마이키를 연기한 배우 버제스 메러디스의, 세월을 각인시킨 듯한 주름 가득한 얼굴이 화면에 클로즈업될 때 주는 정서적 힘을 대체할 방법을 뮤지컬 <록키>는 찾지 못했고, 그로 인해 캐릭터가 보여줄 수 있는 깊이가 조금씩 얕아지고 만다. 또한 원작 영화에서 드라마 상 가장 중요한 조연인 록키의 연인 아드리안의 성장, 오빠한테 괄시당하는 미운 오리 새끼에서 록키와 사랑을 나누는 성숙한 여인으로의 발전이 뮤지컬에서는 살짝 평면적으로 진행된다는 인상을 준다. 이쯤 되면 드라마와 관련된 이 모든 약간의 아쉬움과 심심하고 미심쩍은 느낌의 원인은 혹시 음악이 아닐까 하는 의심으로 자연스레 귀결되고 만다. 

<록키>의 음악은 <랙타임(Ragtime)>, <원스 온 디스 아일랜드(Once On This Island)>등의 뮤지컬과 <아나스타샤> 등의 장편 애니메이션 음악으로 매우 잘 알려진 콤비인 작사가 린 아렌스와 작곡가 스티븐 플레어티가 담당했다. 경험이 풍부한 창작자들답게, 원작 영화로부터 물려받은 유명한 테마송 같은 경우는 적절한 장면에서 적절한 정도로 영리하게 잘 풀어냈다는 인상을 준다. 뮤지컬 넘버들이 어느 한 곡도 크게 뒤떨어지는 느낌 없이 보통 제 역할을 다 하는 인상이지만, 반대로 얘기하면 어느 한 부분에서도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관객에게 주지 못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원작이 매우 유명한, 그것도 ‘스포츠 드라마’라는 장르적인 특성상 음악이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와 형식이 어느 정도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널리 알려진 테마송의 느낌에 맞춘 역동적인 음악들이 주가 되어야 하는 가운데,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록키와 아드리안의 발라드 곡들은, 때때로 완전히 진행되지 못한 채 머뭇거린다는 인상마저 준다. 예를 들어, 록키와 아드리안이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듯 부르는 사랑 노래는 클라이맥스까지 진행되지 않고 멈춰버리는 느낌이다. 정서적인 환기가 되려다가 마는 찝찝한 느낌이랄까. 또한 마이키가 록키를 찾아와 매니저가 되어 주겠다며 설득하는 장면에서의 음악도 전체적으로 무난하지만, 영화에서 장면이 드라마 상 얼마나 근사한 장면인지를 생각하면, 뮤지컬 안에서도 음악을 통해 충분히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는 자신의 못다 한 꿈을 록키를 통해 이루기 위해 설득하는 마이키와,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던 마이키에 대한 서운함을 폭발해 내는 록키, 그리고 마이키의 행동이 결국 스스로에게 털어내는 아쉬움이었음을 인지하는 꽤나 절절하고 복잡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뮤지컬 <록키>에서 이 장면은 마이키의 그저 무난한 노래 한 곡으로 처리되어 버리는 인상이다. 이렇듯 지나치게 덤덤한 노래들을 그나마 살려내는 건 록키 역을 맡은 배우 앤디 칼의 안정적인 보컬이다. 록키의 근육질 몸 안에 숨겨진 순정과 예민함은 앤디 칼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빌려 곳곳에서 음악적으로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어 낸다. 이렇듯 지나치게 덤덤한 노래들을 그나마 때때로 살려내는 건 록키 역을 맡은 배우 앤디 칼의 안정적인 보컬이다. 록키의 근육질 몸 안에 숨겨진 순정과 예민함은 앤디 칼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빌려 곳곳에서 음악적으로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원작 영화 <록키>가 관객들에게서 불러일으킨 건 아드레날린뿐만 아니라 눈물도 있었듯이, ‘스포츠 뮤지컬’이라는 매우 독특한 (그만큼 어렵고 선구자적인) 장르적 특성 안에서도 관객들을 감정적으로 쥐락펴락할 수 있는 넘버들이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화려한 세트와 무대장치가 쉴 새 없이 스펙터클을 연출하는 사이에서도 그보다 더 풍부한 감정의 동요를, 뮤지컬이라는 예술 형식의 가치에 맞게 좀 더 음악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면 훨씬 더 경쟁력 있는 브로드웨이 공연이 되지 않았을까.  



뮤지컬 <록키>가 지닌 의미 
1막이 주로 잔잔한 드라마가 진행되는 것과 달리, 록키의 하드 트레이닝과 클라이맥스의 치열한 권투 시합이 있는 2막에서는 현란한 무대 장치와 조명들이 쉴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인다. <블러디 블러디 앤드류 잭슨(Bloody Bloody Andrew Jackson)> 등 과감하고 거친 작품들로 알려진 알렉스 팀버스의 연출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호흡 큰 비주얼 ? 속도감 있게 무대를 가로지르는 흑백의 영상, 예의 그 상징적인 후드티를 입은 록키가 여러 명이 되어 무대 위에서 벌이는 군무,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한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거대한 계단이 무대를 가로지르며 나타날 때의 스펙터클 - 을 무대에 퍼붓는데, 이는 다른 공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볼거리이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이십 분을 채우는 록키 발보아와 아폴로 크리드의 시합 장면에 다다른다.

공연의 클라이맥스에서, 이미 꽤나 현란했다고 느껴졌던 연출은 한 번 더 깜짝쇼를 펼치며 객석 앞쪽에 앉아있던 관객들을 마치 실제 권투 경기장에 들여보내듯, 무대 위로 자리를 옮기게 한다. 그러는 사이 무대는 그 관객석들이 있던 자리까지 전진해서 훨씬 더 앞으로 나온다. 그렇게 전진한 무대가 오케스트라가 자리 잡고 연주하던 피트를 덮어버리는 흥미로운 광경도 연출한다. 천정에서는 현란한 네온 조명들이 내려오고, 경기를 중계할 거대한 모니터들이 곳곳에 세워지며, 중계석을 연출하는 부스도 무대 상단에 자리하게 된다. 이 흥미롭고 격정적인 무대 트랜스포밍이 끝나면, 이제 극장 안은 실제 크기의 권투 링이 놓이고, 중계 모니터들과 카메라맨, 해설자들, 그리고 링을 둘러싸고 앉은 (실제) 관객들까지 합쳐진 말 그대로 권투 경기장에 온듯한 분위기를 완벽하게 연출한다. 이 경이로운 스펙터클과 함께 록키와 아폴로의 권투 시합이 눈앞에서 펼쳐지는데, 경기 장면은 흥미로운 안무와 스테이징으로 잘 짜여 졌다. 굉장한 볼거리들이 늘 그렇듯, 이를 활자로 표현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할리우드에서 권투 영화를 만든다는 건 흥행의 관점에서 봤을 때 상업적으로 자학에 가까운 일이라고 한다. 하물며 권투와 관련된 뮤지컬은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새 뮤지컬 <록키>가 이루어낸 성과는 분명 무시할 수 없다. 이는 마치 이 뮤지컬의 원작인 영화 <록키>가 1976년에 적은 제작비로 무관심 속에서 제작되었으나 결국 전 세계적인 흥행 기록을 세우는 프랜차이즈 시리즈이자 상징적인 스포츠 영화가 되었는데도, 누군가에게는 더러 진부한 이야기란 평을 받았던 것과 동일하다. 원작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진정성이 있게 느껴졌듯, 뮤지컬 <록키> 또한 성실한 만듦새로 무대로 옮겨졌다. 이 공연이 아직 완벽한 챔피언은 아니지만, 브로드웨이에 날리는 열정을 다한 커다란 펀치 한 방임은 분명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8호 2014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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