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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시인 황지우의 ‘명작읽기’ - 천년의 눈으로 훔쳐보는 세계의 비밀 [No.80]

글 |김영주 2010-05-25 5,837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넘어 비애를 느끼게 했던 것도 어느덧 1년 전의 일이 되었다. 당사자들에게는 여전히 뜨거운 상처일 것이고, 지켜보았던 사람들은 잊고 있다가도 한번씩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를 생각하게 될 만큼 뒤숭숭했던 그때, 그곳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황지우 시인이 학교 밖의 강단에 섰다.
‘시인 황지우의 명작읽기’. 총장이니 교수니 하는 직함보다 명예롭고 근본적인 이름인 시인으로서 이끌고 있는 이 수업은, 한예종 안에서 오랫동안 전설처럼 회자되던 ‘명작읽기’를 학교 담 너머로 옮겨 온 것이다.

 

시작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끝나는 시간은 없는, 크리스마스고 종강이고 아랑곳하지 않고 진행되는 악독한 수업인데, 한예종 학생들은 ‘이 학교를 다니면서 ‘명작읽기’를 듣지 않는다는 건 일종의 태업이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황지우 총장이 길라잡이가 되어 산맥 같고 평원 같은 장대한 명작 고전을 넓게 아우르고 높이 오르는 지적 여행을 떠났다 오면, 즉물적으로밖에 인식할 수 없었던 현실에서 달리 보이는 것들이 생긴다는 한예종 학생들의 신앙 간증 같은 후기를 듣다보면 질투와 선망이 뒤섞인 마음에 판타지까지 생길 지경이었다. 뮤지컬 팬들에게는 극작가로 더 유명한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의 이희준 교수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예종 재학 시절 가장 기억에 남은 강의로 손꼽기도 했다.
황지우 시인을 학교 밖으로 밀어낸 이들이 바라던 바는 아니었겠으나, 그들 덕에 학교 담 밖에서 부러워만 하고 있던 목마른 이들에게도 그처럼 소문이 자자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감사를 해야 할까. 자유예술캠프와 문지문화원에서 두 차례 진행되었던 ‘명작읽기’는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관에서 새로운 길을 찾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 르네상스로 각각 진행되었던 수업이 고대로부터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는 긴 여정으로 다시 꾸려진 것이다.
강의는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저녁 7시에 세 시간씩 진행된다. 월요일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그리고 아이스퀼로스의 비극 전집을 주 텍스트로 진행하는 ‘명작읽기1’이, 화요일에는 『원탁의 기사』, 『가르강튀아』, 『돈키호테』를 거쳐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이르는 ‘명작읽기2’의 수업이 진행된다.  일요일에 8시간짜리 마라톤 강의가 보강으로 열리기도 한다.

황지우 시인은 번역을 거치면서 실종될 수밖에 없었던 호메로스의 헥사메타를 설명하기 위해 노래하듯 행진곡 풍의 박자를 재현해 보이기도 하고, 수강생들이 『일리아스』의 첫 권을 연극처럼 나눠 읽게 한 후 소요된 시간이 40분임을 확인하면서 전체 24권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니 그리스의 음유시인들이 궁정에서 낭독하려면 먹고 자는 시간을 포함해서 사흘은 걸렸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세월의 풍파를 견딘 대리석 조각 같았던 고대 그리스의 비극이 피와 살과 근육을 얻는 과정이다.
캐멀롯의 스타, 랜슬롯과 트리스트럼 중에 어느 쪽이 남자로서 매력적인가 설문조사를 해보기도 하고, 기사 계급과 상인-부르주아 계급의 오랜 반목이, 합리적 근대정신과 충돌하는 광인 돈키호테를 통해 어떻게 귀결되는지 살펴보기도 한다. 그러는 중에 슬픈 미소의 기사 돈키호테에게 마르케스와 보르헤스가 어떤 빚을 지고 있으며, 돈키호테는 기사도의 꽃, 호수의 기사 랜슬롯의 무엇을 흉내 냈는지 아우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고대 그리스와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에 도달한 다음에는 ‘명작읽기3’과 ‘명작읽기4’가 이어질 것이다.

 

“옛날하고 먼 옛날, 멀고 먼 나라에서…”로 시작하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들이 우리의 어린 시절을 어떻게 매혹시켰는지 기억하는가. 정복자들이 새로운 땅을 찾아 침범하듯 여인들을 농락한 주신 제우스와, 그 아비에 그 아들임을 과시하듯 소년과 소녀를 가리지 않고 사랑한 태양신 아폴론이 각각 하늘의 별자리와 땅의 식물도감을 풍성하게 하는 신화에 넋을 잃다가 왜 이 이야기들이 나를 두근거리게 하는지 궁금해한 적이 있는지. 신들과 인간들이 서로 사랑하고 질투하고 경쟁하고 속고 속이며 뒤엉키는 그 이야기가 3,000년 전 척박한 그리스 땅에서 만들어져 별 볼 일 없는 올림푸스 산과 메마른 산하에 어떤 경이로운 환상을 불어넣었는지를 보면서 지금 이곳의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시인 황지우의 명작읽기’는 그 옛날하고도 먼 옛날 멀고 먼 나라에서 태어나서, 오늘의 우리가 얼굴을 맞대고 있는 세계까지 품어버린 위대한 이야기들을 향해 날아갈 수 있게 돕는다. 황지우 시인이 가르치는 비행은 높이높이 날아오르려는 이카로스의 그것이 아니라, 바람을 타고 활강하는 행글라이딩과 닮아있다. 산만큼 높은 곳에서 한눈에 내려다보기도 하고, 나지막한 집들보다 조금 위에서 살펴보기도 한다. 손바닥만한 LCD 액정화면을 들여다보던 눈앞에 펼쳐지는 그 장관을 말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무엇을 배운다는 것이 수단으로서의 효용 가치밖에 없는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지식욕이 식욕이나 성욕, 수면욕처럼 자연스러운 본능이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성욕을 느낄 수 없는 판다 같은 상태라고 할까. 쓰촨성 판다 번식 기지에서는 좀체 이성에 관심이 없는 판다들에게서 2세를 얻기 위해 아무런 욕구도 없는 그 곰들을 모아 놓고 자연교배 비디오테이프를 틀어준단다. 인간으로서의 지적인 욕구가 그 지경으로 소멸된 본능이 되기 전에, 떠밀리듯 정신없이 매일을 소모하며 살아가는 것에 더 익숙해지기 전에 가능한 지금으로부터 가장 먼 처음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세계를 바라보는 기회를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0호 2010년 5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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