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첫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리딩작은
시대를 거슬러 스쳐간 사랑을 기억하는 중년들의 이야기 <춘우>이다.
<춘우>는 애틋한 중년의 사랑을 다룬다.
무대의 주요 배경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을 무대에서
직접 보여주는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작품이다.
<춘우>의 창작자 박지훈 작곡가와 이지현 작가를 만났다.
{?작품 소개?}
한 대의 그랜드 피아노, 두 개의 커다란 스크린이 무대의 전부다. 무대 한쪽에서 화가가 그림을 그리면 그것이 배경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조선 시대 잠깐의 인연으로 스쳐 간 화가 춘우와 양반집 딸 화원은 그때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 안타까워 1986년 여대 축제 장소에서 노리개를 파는 여대생과 그 앞을 서성이는 대학생으로, 그리고 현대에서 전시회를 여는 화가와 그곳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로 만난다. 이 세 시간대는 교차되면서 이들의 애틋한 인연이 서서히 드러난다. 스토리보다 음악과 동양화의 이미지 같은 정서적인 요소가 강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발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이지현 둘이 작품 개발을 위해 아이디어를 몇 개씩 제안하기로 했다. 그때 오빠가 제안한 아이디어가 중년의 아련한 사랑에 관한 것이었다. 기존 뮤지컬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소재이고 나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방향이 서지 않았다. 그러다 미술관에 갔는데 나뭇가지에 달이 떠 있는 그림을 보고 이런 이미지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앙상한 나무 같은 남자와 그런 그를 품어주는 여자. 이런 생각을 오빠와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전생 이야기도 나오고 그러다 조선 시대 화가와 양갓집 규수와의 사랑 이야기가 된 것이다.
그랜드 피아노와 빈 도화지가 모던하면서도 잘 어울렸다. 하얀 도화지 두 개를 스크린으로 놓고 동양화를 즉석에서 그려 무대를 꾸민 형식이 신선했다.
박지훈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연출님이 마침 동양화를 그리는 젊은 작가 분을 알고 계셨고, 그분이 흔쾌히 참여해줘서 이런 형식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무대에서 그림이 그려지는 것을 본 것은 (공연 하루 전인) 일요일 테크 리허설 때였다. 그림만 봐도 정말 좋더라. 우리가 생각했던 정서와 굉장히 잘 맞았다. 새로운 시도가 굉장히 좋긴 한데, 한편으론 배우들에게 맞춰져야 할 시선을 뺏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림과 배우에게 집중시키는 부분을 드라마의 흐름에 맞게 잘 배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지현 「춘우」라는 그림이 빈 채로 세 번 나오는데 마지막에 그림이 작아져서 액자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있다. 처음에 대본에 그렇게 써놓았지만 정말 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노래 한 곡 부르는 사이에 그림을 완성해서 작은 액자 안에 넣어야 하는데, 작가 님이 시간 큐를 주면 맞춰보겠다고 하시더니 지금처럼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액자로 그림이 들어갈 때 뭉클해진다. 이 두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구나, 이 사람들이 그린 것이 이거로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그림이 그려지는 장면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상상하던 그림과 실제 그린 그림이 좀 달랐다. 좀 더 예쁜 그림일 줄 알았다.
이지현 작가 분의 고민이 많았다.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니까, 처음에는 바위도 검게 표현하고 전통 동양화에 가까웠는데, 연출님이 심플한 것을 좋아해서 전체적으로 현대적인 느낌으로 바꿨다. 「춘우」 그림도 많이 바뀐 것이다. 인물을 넣느냐, 마느냐부터, 강을 업고 건넜으니까 업는 장면을 넣어볼까 등 많은 논의를 하다 지금에 이른 것이다.
박지훈 피아노 한 대에 스크린 두 개, 그리고 단 정도만 있으면 되는 작품이니까 꼭 공연장이 아니라 갤러리 같은 곳에서도 공연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공연이 끝나면 그려진 작품들을 전시하기도 하고, 그러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조선 시대, 1986년, 그리고 현대, 세 시간대가 마구 교차되면서 복잡한 구성을 이룬다. 왜 이런 구성을 선택했나?
이지현 처음에는 액자식 구성으로 꾸몄다. 액자 안으로 들어가기 전, 갤러리에서 중년의 남녀가 가까워지기 위해 3일의 시간이 필요했다. 갤러리라는 고정된 공간에서 비슷한 사건을 삼일 동안 반복하니 지루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야기가 스펙터클한 것도 아니고 잔잔하다 보니, 몰입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그러다 시간대를 섞어 보게 된 것이다.
조선 시대에 아쉬운 이별을 하고, 환생하여 80년대에 만났다가 나이가 든 후 다시 만나는 구성인데 그런 구성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다. 또한 80년대에서 둘의 관계가 시간을 건너올 만큼 애달프게 느껴지지 않는다. 인물에 공감이 안 된다.
이지현 이 작품에서 전하고 싶은 감정은 아련함이다. 왜 한국 속담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우연히 빗속에서 만난 남녀의 인연을 따라가 보는, 한국적인 정서의 인연을 담으려고 했다. 80년대도 더 깊은 스토리가 있었다. 현재의 화원과 춘우가 노리개로 이어지는 인연을 연결하기 위해 좀 더 스토리를 짰는데, 자꾸 설명하다 보니까 아련한 사랑의 이미지가 약해지더라. 그래서 간단한 느낌으로만 가기로 했다.
박지훈 80년대 여대 축제에서 노리개를 판다는 설정이 흥미롭지 않나. 생뚱맞게 노리개를 팔고 있는 여자와, 무슨 이유로 여대 축제에 왔는지는 모르지만 보통은 관심을 보이지 않을 노리개에 관심을 보이는 남자의 스침. 이런 것들이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무대에 올려보니 흥미를 가질 만큼은 아니더라.
음악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한 노래 안에서도 가사의 반복이 많다. 전체적으로 음악 중심의 극으로 풀어가면서 음악의 일정한 톤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실랑이’란 곡은 대사를 노래로 만든 곡인데, 이전 곡들과 다른 질감일 뿐만 아니라, 노래 자체가 어색했다.
박지훈 개인적으로 이 노래가 튀어 보일 줄은 몰랐다. 오히려 스윙 리듬의 ‘익숙하죠’가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실랑이’는 내러티브를 음악으로 표현한 곡이다. <드림걸즈>에서 에피가 임신한 사실을 알리러 왔는데 자신 대신 다른 멤버가 들어온 걸 알게 된다. 그때 커티스와 싸우는 장면에서 랩도 아니고 멜로디도 아닌 노래를 부른다.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다. ‘실랑이’가 두 번 불리는데 조선시대에 불리는 ‘실랑이’는 약간 국악적인 느낌이 들면서도 재즈적인 화성을 써서 국악이나 때로는 힙합처럼 들리기도 한다. 다른 곡들이 멜로디 위주의 서정적인 곡이라 이 곡을 더 어색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만족하는 곡이다.
이 작품의 음악이 드라마와 긴밀하게 연결된 음악이라기보다 정서적으로 움직이는 곡들이다. 그래서 앞서 말한 ‘익숙하죠’, ‘마이너’는 전체 톤에 어울리지 않는다. ‘마이너’의 경우 너무 현실적인 대사들이 들어와서 이질감을 주기도 했다.
이지현 20대 배우와 40대 배우가 나누어서 연기를 했다면 ‘마이너’ 같은 곡은 안 써도 됐을 것이다. 워낙 젊고 예쁜 배우들이라 옷차림만으로는 구별시키기가 어렵더라. 현실적인 가사를 써야 화원이 대학생 딸이 있는 중년으로 보일 수 있었다. 화원의 노래 부분이 너무 기능적이라 아쉬움이 있다.
춘우는 뜻 없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설정했다. 그래서 초상화를 안 그리고 풍경화를 그리는데, 모델이 된 인물이 있는가. 조선 시대에는 주로 산수화를 그리지 않았나?
이지현 가상의 설정을 한 것이다. 산수화도 절개를 담는다거나, 곧은 기개를 표현한다거나 의미를 둔다. 그런 그림을 그리려면 도화서에 속해서 그렸겠지만, 춘우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붓 하나, 먹 하나 들고 돌아다니며 그리는 사람이다. 가난하고 가진 것 없지만 애착만큼은 남다른 사람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작품에서 주 플롯은 춘우와 화원의 애틋한 사랑이다. 다른 부수적인 플롯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 유일하다면 춘우의 친구가 세 번 결혼했다는 내용이다. 세 번의 결혼을 여러 번 언급하는데 주 플롯과 대비되지도 않고 보조 플롯으로 적당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지현 에필로그에서 둘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세 번의 인연’이란 곡에서 하게 되는데, 그 전에 친구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친구의 결혼도 세 번으로 해보자, 해서 설정한 것인데 생각보다 강조되어 보이더라.
박지훈 춘우의 나이 대에 세 번을 결혼한다면,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인연이라고 생각해서 결혼을 했을 것이다. 우리 작품에서 말하는 것도 인연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설정한 것이다.
그런 의미였나, 그런데 작품에서는 친구가 바람둥이처럼 느껴졌다. 친구는 등장하지 않고 세 번 결혼을 한 정보만 전달되니까 더욱 그 사람의 진정성을 알 수 없었다.
박지훈 그 점은 인정한다. 이번 리딩에서는 너무 시간이 부족했다. 일단 급한 것들 먼저 처리하다 보니 디테일한 감정을 잡고 가진 못했다.
그래서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 ‘익숙한가요’ 이후로는 음악의 비중이 높아지고 호흡이 빨라진다. 정리가 안 된 느낌이 들었다.
이지현 ‘실랑이’ 부분부터는 시간 부족으로 동선을 짜지 못하고 대본을 들고 했다. 정교한 동선과 디테일이 있어야 납득이 가는데, 그저 의자에 앉거나 서서 하다 보니까 충분히 이해시키지 못했다.
박지훈 다음 기회가 주어진다면 디테일한 부분을 보완해서 다시 선보이고 싶다. 음악적인 면에서도 편곡을 못한 부분이 있는데, 악기를 더 사용해서 풍성하게 만들어보고 싶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8호 2013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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