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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INTERVIEW] 연기를 하는 한 여전히 청춘인 남자, 김태우 [No.98]

글 |이민선 사진 |박인철 2011-11-23 5,072

배우 김태우와의 첫인사.
잔뜩 충혈된 채 부은 눈을 깜빡이며 그가 고개를 숙였다.
바쁜 연습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인터뷰 전날 눈의 핏줄이 다 터졌다며 미안함과 속상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피곤해 보이는 얼굴에 비하면 의욕이 넘쳐 인터뷰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입지를 굳히고 있는 배우답게 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을 흔들림 없이 전달했고,
자신의 뜻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직접 연기를 보여주거나 극 중 대사를 인용하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연극 연습이 많이 힘드신가봐요. 예상은 했죠. 2인극이고 1인 5역이면 당연히 대사도 많을 것이고 무대에 나와 있는 시간도 길 것이고…. 근데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에 등장하고, 상대 배역은 더블 캐스팅이니 쉼 없이 두 배우와 번갈아가며 연습해야 하고. 보통 무리하고 피곤하면 몸에서 과부하 증상이 나타나잖아요, 몸살이 난다든가. 그런데 전 건강해서 몸이 버텨주다 보니까 눈이 난리가 나더라고요. 아무 일도 없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이만큼 부어 있어요, 벌겋게. 병원에 가서 빨리 낫게 무슨 약이든 처방해달라고 했더니, 약을 투입할 만큼 큰 염증도 아니래요. 조금 쉬면 낫는 건데, 잠을 제대로 못 자니까 빨리 낫질 않는 거죠. 어쩌겠어요, 그래도 공연에 지장을 주는 병이 아니라 다행이죠.


대학에선 연극을 전공했는데 드라마와 영화에서 입지를 굳히셨어요. 연극은 오랜만이시죠? 학교 다닐 때 사실주의 연극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표현주의나 실험극을 좋아했죠. 그런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뉴욕으로 유학을 가고 싶었는데, 이후에 집안 사정이 안 좋아져서 유학 갈 형편이 안 됐어요. 일단 돈을 벌려고 탤런트 시험을 본 건데 한 번에 합격했어요. 그런데 제가 몰랐던, 드라마나 영화도 재밌게 할 수 있는 게 많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시작이 그래서인지 일반 관객들은 제가 연극했던 걸 모르세요. 연극 출연 제의는 별로 받지도 않았지만 간혹 받은 작품 중에 그렇게 하고 싶은 것도 없었어요. 3년 전에 예술의전당 개관 20주년 기념으로 공연한 <갈매기>에 참여했는데,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고 러시아 연출가 유리 부투소프와 작업한다는 데 대한 기대가 컸어요. 그리고 제 기대에 부흥했고요. 원래 뜨레플레프는 되게 소심한 캐릭터인데 완전히 재해석해서 과격한 캐릭터로 재탄생했죠. 연출 스타일도 좋았고 제 성향과 잘 맞았어요. 물론 연기하면서 부족함도 많이 느꼈고요. 지난해에 <광부화가들>을 함께하지 못한 게 정말 아쉬웠어요. 이상우 선생님 연출에, 정말 좋아하는 형들도 출연하고 게다가 <빌리 엘리어트>를 쓴 리 홀의 작품이라 정말 하고 싶었는데 스케줄이 안 됐거든요. 그러고 나서 <블루룸> 출연 제의를 받았는데, 사전 정보가 없는 작품이지만 대본 보고 정말 놀랐어요. 너무 좋더라고요. 그때는 작품에 대한 흥미로 덥석 하겠다고 했는데, 그때 알았어야 했어요. 눈이 터질 만큼 힘들다는 걸. (웃음)

 

<블루룸>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만 봤을 때, 김태우의 출연이 전혀 어색하지 않아요. 19금이라는 거요? 그래요? 제 이미지가 그래요? 제 이미지는 굉장히 성실하고….

 

그건 예전 이미지죠. 아… 내가 착각하고 있구나. 제가 베드신이 있는 영화도 많이 찍었는데도 그런 이미지로 안 보신다고 생각했어요.

 

<블루룸>은 어떤 점에서 흥미로웠나요? 제가 남자 다섯 명을 연기해요. 상대는 다섯 명의 여자를 연기하고요. 그리고 캐릭터마다 각각 두 명의 이성을 만나서, 총 열 커플의 섹스 이야기를 들려주죠. 각 에피소드마다 인물과 상황이 다르고, 또 같은 인물이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관계 속에서 계급이 달라져요. 이 연극을 보고 일단 기본적으로 코미디를 한 편 봤다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정말 재밌어서. 아니면 어떡하지? (웃음) 그리고 성이라는 소재와 노출 등 내용이나 시각적인 면에서 자극적이죠. 웃음과 자극, 이 두 가지는 표면적인 재미일 거고요. 사람이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는 모습, 그런 걸 보면서 나를 돌이켜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누구나 늘 같은 얼굴로 살진 않잖아요. 아버지를 대할 때랑 어머니를 대할 때, 고급 레스토랑에 왔을 때랑 소줏집에 왔을 때 내가 다른 인물이 될 수도 있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성이라는 걸 소재로 삼아서, 여러 인물들이 고리에 엮인 듯 관계를 이어가는 드라마가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그걸 잘 표현하는 게 저희 몫이죠.

 

다섯 인물을 연기해야 하고, 또 같은 캐릭터라도 에피소드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겠군요. 이 인물에서 저 인물로 바뀌는 것보다 한 인물이 다른 두 사람을 만날 때 달라지는 모습을 연기하는 게 더 걱정이에요. 사실 인물이 바뀌면 의상이든 뭐든 외부 장치로 달라 보일 수 있는데, 한 인물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지는 데선 어떤 연결고리를 찾아야 하거든요. 그리고 관객들은 김태우가 한 작품에서 여러 인물로 변신하며 다른 연기를 보여주길 기대할 거예요. 그에 대한 충족도 시켜드려야 해요. 매번 다른 인물로 분하긴 했는데 계속 김태우가 나와서 한다는 느낌을 주면 안 되잖아요. 말의 어미를 바꿔본다든가, 말투나 속도를 달리한다든가 고민하고 있어요.

 

이 작품의 홍보 문구가 ‘육체적 사랑이 충족되는 순간, 관계는 소멸된다’더라고요. 이게 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나요? 주제는 아닌데 에피소드의 핵심은 될 수 있어요. 그 말이 현실에서도 적용된다는 게 썩 좋진 않지만, 공감할 수 있지 않아요? 연애를 시작했을 때 정말 좋아서 손도 잡고 싶고 키스도 섹스도 하고 싶어요. 그런데 이성 간의 관계에서 그게 전부가 아니라, 다른 노력을 하고 다른 의미를 부여하잖아요. 하지만 섹스만 두고 봤을 때는 어떤 사람을 통해 성욕을 충족시키고 나면 그걸로 끝일 수도 있죠. 이 연극 전체를 봤을 때 주제라고 말할 순 없지만, 각 에피소드의 절정만 잘라서 말하자면 맞는 얘기예요. 하지만 이 문구로 인간이 이런 거냐고 말할 수 있는가 하면, 그건 아니죠. 그러면 안 되죠. 저의 삶과 빗대어 이 작품을 본다면 사랑은 단순히 육체적인 충족이 아니라 다른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런데 관계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조차 무의미할 수도 있어요. 뭐, 복잡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어쨌든 이 연극은 사람 사는 게 이런 거라고 보여주는 거죠.

 

 

보통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보고 작품을 선택한다고 해요. 시나리오에서 드라마가 우선인가요, 캐릭터가 우선인가요? 개런티가 우선이죠. 대본 앞 장에 개런티가 적혀 있어야죠. (웃음) 당연히 드라마죠. 어떤 영화를 봤을 때 ‘와, 저 배우 연기 잘했다’고 하는 건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다른 요소들과 균형을 이루지 못했다는 거예요. 배우로서 캐릭터에 대한 욕심이 없을 수 없겠지만 당연히 좋은 드라마를 봤을 때 감동을 받죠. 저는 상업 영화도 찍고 저예산 영화도 찍고, 조연일 때도 있고 주연일 때도 있어요. 저는 좋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거든요.

 

선호하는 드라마가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이기 때문에 취미로서는 안 해도 되는 것까지 해야 해요. 하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걸 물으신다면, 아무래도, 좀 좋게 이야기하면 작품성 있는, 프랑스 영화나 유럽 영화 같다고 생각하시는 것들…. 그래서 질타를 받곤 하죠. ‘너는 말로는 다양하게 해야 한다면서, 취향을 너무 따지는 거 아니냐.’ 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결과물이 그런 걸 보면…. 확실히 저만의 색깔이 만들어졌단 건 좋은 점이에요. 물론 제 색깔을 만들기 위해 작품을 선택하진 않았지만요. 다르게 이야기하면, 많은 관객들이 ‘김태우가 출연하면 연기도 나쁘지 않고 작품도 나쁘진 않은데 어렵고 재미없어’ 그래요. 영화 쪽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신인 감독이 해외 영화제에 출품하고 싶으면 김태우 출연시키면 된다’고 하죠. 정말 제가 출연한 작품의 80퍼센트 이상이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어요. 요즘은 세계 3대 영화제에 갔다 왔다고 하면, 오히려 어려운 영화라는 인식이 생겨서 홍보할 때 그 사실을 언급 안 하곤 하죠.

 

작품을 가려서 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배우의 성향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제가 평생 연기할 텐데, 앞으로 분명 코미디 연기나 악역도 할 거란 말이죠. 제가 처음에는 늘 의사, 검사, 대학원생이다가 홍상수 감독님과 작업하면서 전에 없던 찌질한 이미지가 생겼어요. 그리고 이젠 베드신 많이 찍는 배우…. 남들 보기에 제가 확 달라지진 않아도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바뀌는 거예요. 앞으로도 10년, 20년, 30년 더 할 테니까 아마 다양한 모습을 보실 거예요. 연극도 마찬가지죠. 일부러 영화, 연극, 드라마를 가려서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이러다가 앞으로 연극을 많이 하게 될 수도 있는 거고요.

 

<블루룸>에서 여자 캐릭터는 더블 캐스팅인데, 남자 캐릭터는 혼자 맡으셨어요. 원 캐스팅으로 출연한다는 게 질문 거리가 되는 현실이지만, 매일 무대에 서는 거, 저는 그게 직업인 사람인걸요.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해서 일곱 시에 퇴근하고, 회식 갔다가 다음날 또 출근하는 회사원들은 또 얼마나 힘들어요. 각자의 일마다 힘든 게 있는데, 배우로서 힘든 부분은 제 직업의 일부인 거죠. 제가 어떤 작품에 출연하고 있는데 다른 작품도 정말 하고 싶다면 어쩔 수 없이 더블 캐스팅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전 두 작품을 병행할 능력이 안 돼요. 좋게 말하면 한 작품에 몰두하는 거지만 나쁘게 말하면 재능이 안 돼서예요, 정말로.

 

<블루룸>에 출연하는 송선미와 김태우, 두 분 다 공교롭게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네요. 홍 감독님 영화에 출연하기 전에 그분 영화 마니아였어요. 저희 집에는 TV도 없고 극장 가서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아하는 감독님이에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고는 정말 쇼킹했죠. 제가 가진 영화라는 개념을 바꿔놓을 정도로. 운 좋게도 그의 작품에 출연까지 하게 됐으니 얼마나 좋아요. 사람도 정말 좋으세요. 함께 작업하면 에너지를 쏟는 게 아니라 더 얻어가는 느낌이에요.

 

함께하는 배우와의 호흡이 굉장히 중요하죠? 그럼요. 상대 배우가 제 연기의 반을 해준다고 보면 돼요. 연출과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나눠도 그들은 무대 뒤로, 카메라 뒤로 숨어요. 무대 위, 카메라 앞에 서면 제가 믿을 사람은 상대 배우밖에 없어요. 상대가 말을 정확하게 해주면 저는 그 말을 듣고 답하면 돼요. 대사를 하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말을 하는 것. 그렇게 상대방이 제 연기의 반을 해주니까 제가 잘하면 상대 배우에게도 좋고 나아가 관객에게도 좋은 거죠.

 

 

이전에는 안경 쓰신 모습만 봤는데 변신하셨네요.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도 그렇지만, 특히 배우는 눈빛의 힘이 크잖아요. 오늘은 눈빛이 너무 타오르죠? 시뻘게져서…. (웃음) 작년 6월에 시력 교정 수술을 받고 이미지가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사람이 참 간사한 게, 그렇게 오랫동안 안경을 썼는데 극작가를 연기할 때 안경 썼더니 너무 어색하더라고요.

 

사실 외모로 봤을 때 임팩트 있는 마스크는 아니신데…. 임팩트는 무슨, 딱 회사원인데! 회사원이었다면 ‘음, 저 영업부에 있는 김 대리는 키도 크고 외모 괜찮아’ 이 정도 얘기는 듣지 않을까요? (과연 그럴까요? (웃음)) 제 외모가 그것도 안 될까요? 아, 이건 너무 자존심 상하는데….

 

그럼에도 지금까지 꾸준히 연기해오셨는데… 지겨우세요?

하하, 아뇨. 좋아요.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본인만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냥 아등바등하는 거죠. 배우로서 너무 타고난 데가 없어서 정말 노력하는 거죠. 제가 부족하다는 걸 잘 알아서 계속 바동대면서 애쓰는 게, 제 매력 아닐까요. 이번 연극 하면서 또 내 실력이 들통 나는구나, 스스로 느끼고 있어요. 다른 사람의 평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제 능력은 이만큼이더라도 스스로에게 더 큰 기대를 걸고 노력해서 그만큼 나아지면, 다음 작품에선 그 기준을 조금 더 높이는 거예요. 너무 타고난 게 없어서 속상하지만, 대신 계속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아요. 나이 들어서도 계속 그렇게 노력하는 배우가 되고 싶고요.

 

배우인 게 뭐가 그렇게 좋아요? 지금 이 작품에서 하는 것 같은 거죠. 매번 새로운 인물, 새로운 삶, 도달할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영혼을 만들어 내는 것. 그걸 하면서 희망을 갖고, 더구나 돈도 받고, 어떤 사람들은 나를 보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해요. 정말 매력적인 직업 아닌가요? 저만 잘한다면 말이죠. 관객들에게 더 많이 주려고 즐거운 고통을 감수하는 거고요. 힘들지만 재밌고 욕심도 나요. 제가 연기를 즐기면 관객들도 좋아할 거예요. 무대에 나가기 전에 긴장하고 마음 졸이는 대신에 ‘기대하시라, 내가 나가신다’ 이런 마음으로 즐기면서 연기하면 관객들은 얼마나 재밌겠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8호 2011년 1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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