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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프리뷰] 기슬리 가다르손 <파우스트> - 애크러배틱 파우스트와의 만남 [No.97]

글 |박병성 사진제공 |LG아트센터 2011-10-25 4,836

아이슬란드의 연출가인 기슬리 외른 가다르손은 현재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진 연출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 중 카프카의 <변신>과 뷔히너의 미완성 희곡 <보이체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연극이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다. 그는 2001년 예술대학 졸업과 동시에 동료들과 베스트루포트 극단을 공동 창립하고 그들만의 독특한 작품을 선보이며 세계 연극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첫 작품이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커스 방식을 활용한 연출로 불운한 운명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역동적으로 표현해냈다. <변신>에서는 몸소 그레고리 잠자를 연기하며 벽과 지붕을 거꾸로 기어다녔고, <보이첵>에서는 수족관이란 공간에서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내 마리를 살해하는 보이첵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의 연극은 늘 새롭고 기존 연극의 관습을 파괴하는 연출을 선보였다. 특히 새로운 연기 공간을 창출하고 서커스와 공중 곡예 등 확장된 몸의 언어로 표현 방식을 다각화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애크러배틱 <파우스트> 역시도 제목에서 드러나듯 그의 색깔을 분명히 볼 수 있는 작품이다. 2009년 아이슬란드에서 초연한 이후 큰 성공을 거두고 영국으로 옮겨 와서도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대표적인 레제 드라마로 읽기 위한 희곡이다. 예술, 종교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인문학적 논의와 철학적 배경을 담은 작품이라 무대에 그대로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동안 종종 <파우스트>가 공연되었는데 그것들은 대부분 괴테의 희곡을 상당 부분 축소하고 단순화한 공연이었다. 가다르손은 이를 더욱 단순화하고 현대화한다.
무대는 전직 배우 요한이 머물고 있던 양로원이다. 그곳에서 남은 생을 정리하고 있는 요한은 아름다운 간호사 그레타를 사랑한다. 거실에서 동료가 죽어가던 모습을 지켜보던 요한은 삶의 회의를 느끼고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 줄로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자 크리스마스트리 전구에 불이 들어오고 죽었던 동료가 메피스토로 되살아나 영혼을 건 제안을 한다. 이후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의 거래처럼 요한은 영혼을 팔아 아름다운 그레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복잡한 논쟁은 거의 사라지고 한 나이 든 노배우의 마지막 판타지 로맨스가 전개된다.

 


무대는 관객들의 머리 위까지 확장된다. 관객들의 머리 위로 그물이 쳐지고 그 위에서 요한과 그레타가 공중그네를 타고 사랑을 나눈다. 그물 위를 뛰어다니는 악마들과 그 위에서 벌어지는 난동, 애크러배틱 <파우스트>는 선과 악, 이성과 충동의 심각하고 철학적인 논의를 간소화하고 역동적인 에너지로 무대를 채운다. 젊고 열정적인 작품의 에너지는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해져 보는 내내 유쾌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공중을 질주하는 악마들과 요한을 보며 관객들은 죽음의 강을 건너는 요한의 꿈속에 동참하여 초현실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충동과 이성에 대한 신념의 갈등 속에서 영원의 문제를 질문했던 괴테의 원작은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놀이동산을 뛰노는 아이들처럼 단순해진다. 가다르손은 서사를 꿰뚫는 단순화된 이야기를 몸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따라 텍스트를 구성한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대중들에게 단순화된 이미지로 편하게 다가갈 수 있지만 심오한 깊이를 추구하기는 어려워진다.

 


한때 연극이 정치와 교육의 중요한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그 기능을 잃었다. 그렇다면 재미와 즐거움, 놀랄 만한 감각의 확장, 이것이 연극에게 요구되는 시대정신이 아닐까. 닉 케이브와 워렌 엘리스의 강렬한 음악은 감각적 확장을 도와주는 산파 구실을 한다. 관객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하늘로 날아올라 질주하는 배우들의 에너지가 기존 연극과는 다른 새로운 감동을 줄 것이다.


▷ 10월 27일~30일 / LG아트센터 / 02) 2005-0114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7호 2011년 10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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