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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프리뷰] 소설과 연극이 중매해 준 김소진네 사람들, 연극 <장석조네 사람들> + 낭독회 [NO.90]

글 |이민선 사진제공 |극단 드림플레이 2011-03-15 5,809

원작에서처럼 “한 지붕 아래 아홉 개의 방이 한 일(一)자로 늘어서” 있지는 않지만, 배우들이 등퇴장하는, 다닥다닥 붙은 방문의 개수만 보아도 이 집에 세 들어 사는 가족이 한둘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마당 가운데에 놓인 평상과 구석에 위치한 변소, 그리고 수돗가는 세입자들이 공유하는 장소이다. 주말 오전이면 일찌거니 밭일을 마치고 온 박씨, 느지막이 잠에서 깬 최씨와 광수 애비 등이 평상에 걸터앉아 ‘모닝 막걸리’ 한 사발을 나누고, 아침마다 급한 볼일을 해결하려는 아이들은 누렇게 뜬 얼굴을 하고선 변소 앞에 배를 움켜쥐고 서서 몸을 배배 꼬곤 할 것이다.

 


주인 장석조네 집에 세 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냈던 소설 『장석조네 사람들』이 극장으로 옮겨 왔다. 원작은 故 김소진(1963~1997)의 연작 소설로, 서울 미아리를 제 2의 고향으로 삼고 이웃들과 정붙이고 사는 서민들의 일상을 열 개의 에피소드에 담아냈다. 전쟁 통에, 또는 새 삶을 찾아 고향인 함경도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지에서 떠밀려온 이들은 날품팔이나 똥지게질, 구멍가게 운영 등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억양과 어휘가 제각각인 거친 말들 속에 때론 순박하고 때론 비루한 인심이 오간다. 열 개 중 일곱 개의 에피소드가 무대에서 구현되는데, 원작 소설이 워낙에 개성 뚜렷한 캐릭터들과 차진 말맛을 담고 있어서 연극에서도 그 장점은 그대로 발휘된다.
등장인물과 배경에 연결점이 있긴 하나 각 장은 각각 다른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일곱 개의 독립된 극을 보는 듯하다. 집 나간 성금 애미를 데려오는 데 발 벗고 나선 최씨와 도야지 꿈만 믿고 화투판에 부인의 반지를 갖다 바친 양씨, 부잣집 사모님의 반지를 삼킨 오리의 주인 진씨 등 일상에서 예기치 못하게 벌어진 일에 대처하는 이들의 태도가 참으로 능청스럽고 뻔뻔하다. 시시껍절한 일을 하며 먹고 사는 신세를 밤하늘의 별에 빌려 늘어놓는 남정네들의 술주정은 요상하게 씁쓸하기보다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마지막 세 개의 에피소드는 197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에 좀 더 가까이 맞닿아 있다. 사회·정치적 권력에 무지하게, 또 무력하게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현실도 장석조네 사람들은 한 지붕 아래에 산다는 인정의 힘으로 서로를 다독이며 버텨낸다. 공연은 상대적으로 풍족해진 현재를 사는 사람들보다 더 생기 있는 이들의 삶을 충실히 재현하여 관객에게 웃음과 애잔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1월 21일부터 2월 6일까지 남산아트센터 드라마센터의 무대에 올랐던 연극 <장석조네 사람들>의 개막 공연 전, 십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김소진을 추억하는 작가들의 작은 낭독회가 열렸다. 김소진의 문우인 시인 안찬수와 소설가 성석제, 평론가 진정석이 그에 대한 기억 세 토막을 들려주고, 후배 작가인 김연수, 한강, 윤성희는 김소진이 남긴 작품 중 일부를 낭독하는 행사였다. <장석조네 사람들>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김소진 작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김재엽 연출은 그의 소설이 가진 재미와 의미를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
김소진은 한겨레신문에서 일하면서 1991년에 「쥐잡기」로 신춘문예에 당선하였고 1995년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소설 쓰기에만 전념하기 시작했다. 서른다섯이 되는 해에 암으로 사망하기까지, 6년이라는 시간에 비해 꽤 많은 편수의 글을 썼다. 으레 작가라 하면 작품 구상을 빙자한 게으른 생활을 즐기다가 섬광처럼 문장이 떠오를 때 글을 써내려가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집필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던 성석제는, 생전의 김소진이 “선배와 친구들이 일하는 출판사에 보통의 직장인처럼 규칙적으로 출근하여 한편에 자리를 잡고 성실히, 방대한 양의 글을 써 대서” 자신이 가졌던 작가에 대한 로망을 깨뜨렸다며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았다.
김소진이 어릴 적부터 글쓰기에 재능과 관심을 보인 것은 아니다. 그와 함께 학창 시절을 보냈던 진정석 역시 김소진이 작가가 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고 한다. 다른 대학생들처럼 1980년대의 부당한 현실에 맞서던 김소진은 황석영의 「돼지꿈」을 읽고서야 소설의 힘에 감화되어, 미아리 산동네에서 살던 기억을 되살려 서민들의 땀 냄새와 거친 목소리를 담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김소진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캐릭터와 맛깔 나는 표현들은 그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기에 그 진정성과 생명력을 자랑한다. 『장석조네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실제로 ‘장석조네 사람들’과 함께 유년기를 보낸 어린 김소진의 일상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안찬수 시인은 김소진이 떠난 사이에 그가 소설에서 그렸던 무능하고 무기력한 아버지가 자신들의 모습이 되었다며, 어느새 궁색해져 버린 인생을 아쉬워하고 친구를 그리워했다. 그는 낭독회에 참여한 문우들을 포함하여 서른여 명의 작가들이 글로 전한 김소진에 대한 그리움을 『소진의 기억(안찬수.정홍수.진정석 엮음, 문학동네, 2007)』에 담아내기도 했다.

 


친구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은 ‘소진의 기억’ 다음으로, 고인의 작품을 통해 듣는 ‘소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작가 김연수는 『장석조네 사람들』 중 「별을 세는 남자들」을 낭독했다. 김소진이 방위병으로 근무하던 시절 『새우리말큰사전』을 독파하면서 우리말 어휘와 어구, 속담 등을 공부했다는 유명한 일화를 이야기하며, 김연수 자신도 따라 해보았다가 금세 포기했노라 고백해 웃음을 자아냈다. 과연 김소진의 작품에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혀를 튕겨내는 생경함과 이에 감기는 쫄깃쫄깃함을 동시에 지닌 음절들의 조화가 넘쳐난다. ‘갱충쩍다’느니 ‘희떱다’ 같은 단어들이 한 트럭쯤 쏟아져 귀를 간지럽힌달까. 김연수가 낭독한 부분에서 세 남자가 각기 다른 지방의 사투리로 대화를 나눈 덕에, 김 작가는 연기에 가까운 낭독 공연을 선사했다. 아주 어릴 적 ‘장석조네’ 같은 다세대 주택에 살았던 기억이 있는 윤성희는 이사를 가지 않고 더 오랫동안 그 집에 살았더라면 자신도 『장석조네 사람들』 같은 작품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농담으로 선배 작가에 대한 동경심을 드러냈다. 그녀는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의 일부분을 들려주었다. 실수로 깨뜨린 항아리를 눈사람 속에 숨겨두고 혼날까봐 하루 동안 가출했던 소년의 이야기가 윤성희의 소설 『구경꾼들』의 화자를 떠오르게 하여, 그녀가 선택하고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로 전해준 김소진의 이야기가 더욱 흥미로웠다.
<장석조네 사람들>은 3월 17일부터 27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다시 오른다. 3월 공연에는 매 공연마다 작가 한 명이 참여하여, 소설 낭독과 짤막한 소감으로 공연의 문을 열어줄 예정이다. 김연수, 한강, 윤성희 외에 더 많은 작가들이 참여해 본 공연에 앞서 관객과 김소진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것이다. 김소진의 손끝에서 나온 생명력 넘치는 이야기가 어디서 온 것인지는 다리 너머에서 들을 수 있다.

 

3월 17일~27일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 02) 745-4566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0호 2011년 3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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