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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정의할 수 없는 자유, 한지상 [No.121]

글|나윤정 | 사진|심주호 2013-11-04 5,566

한지상은 <보니 앤 클라이드>를 이렇게 정의했다. “자유!” 그에게 되물었다. “그럼 한지상은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다른 질문들과 달리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저는 꿍꿍이가 많은 사람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머릿속에 늘 많은 생각들과 상상들이 가득했어요. 그래서 너무 힘들었죠.” 실제로 만나보니 그랬다. 그는 마치 특별한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몽상가의 느낌을 주었다. 달리 말하면 자신만의 세계가 매우 강렬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스스로를 정의한 다음 자연스레 그것과 연기와의 상관관계를 이어갔다. “배우로서 제 안의 꿍꿍이들을 해소시킬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무대를 오르내리는 것! 한지상에겐 곧 내면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꿈의 순간이었다.

 

 

스타일리스트 | 윤미경 어시스턴트 | 장미진 헤어ㆍ메이크업 | 차윤경


 

나를 마주한 편안함
클라이드는 말했다. 자유는 ‘훔치는 것’이라고. 클라이드의 총이 겨냥한 것은 돈이 아니라 자유였을지도 모른다. 한지상은 클라이드의 말에 깊은 공감을 느꼈다. 그는 마치 거울을 보듯 클라이드를 마주했고, 그와 꼭 닮은 자신을 발견했다.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하고, 또 알 수 없는 자괴감에 빠지고…저와 참 비슷해요.” 클라이드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그 감성에 젖어버린 한지상. 그를 보니 배우가 자신의 분신과 같은 역할을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가 생기는지 절실히 와 닿는다.
한지상은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이다. 틀에 박히지 않은 그의 개성은 하나둘 무대에서 빛을 발휘하며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무대 밖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첫 만남에선 으레 스스로를 포장하기 마련인데, 그는 날것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었다. 가식적이지 않은 솔직한 행동, 꾸밈없이 속내를 드러내는 말. 그는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온몸으로 ‘이것이 한지상’임을 표현했다. 클라이드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한지상에게 <보니 앤 클라이드>는 자유의 정점을 찍은 무대였다. 그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총을 들고 거침없이 세상을 누비는 무법자 클라이드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공연 도중에 눈물이 날 정도로 그에게 공감해요. 저 역시 간절히 자유를 원하거든요.” 한지상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클라이드에게 스며들었다. “클라이드는 모래처럼 자연스러워요. 모래가 무너지듯 릴랙스된 상태인 거죠.”
그 자유분방함이 전해주는 느낌은 전작 <스칼렛 핌퍼넬>과 확연히 달랐다. “클라이드가 릴랙스(relax)라면, 스칼렛 핌퍼넬은 텐션(tension)이죠. 그땐 영웅 역할이다 보니 아무래도 스스로 정제돼야 했어요. 정의를 위해 동지들을 설득해야 하니깐 호흡 처리부터 에너지가 다르더라고요. 깔끔하고 뭔가 정리돼 있는 느낌이었죠.” 두 작품 모두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한 것인데 음악적으로도 분위기가 상반된다. “<보니 앤 클라이드>는 자유롭고 세련됨 속에 맛깔스러운 리듬이 있는 반면 <스칼렛 핌퍼넬>은 묵직함과 진중함 속에 귀족스러운 매력이 담겨있죠.” 쉼 없이 작품을 이어가면서도 그는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이 캐릭터를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줬다.

 

 

                       

 


자유 본능의 매력
한지상의 자유 본능은 그의 마음속에 자리한 감옥에서 비롯된다. “제 안에 다양한 자아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차츰차츰 마음속에 감옥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20대 초반엔 그 감옥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요. 늘 그곳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댔죠.” 그의 고민은 연기를 시작하면서부터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소됐다. “연기를 하면서 조금씩 마음의 자유를 맞이하고 있어요. 아직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고 끊임없이 연기를 파헤칠 거예요.” 한창 진지하게 ‘감옥으로부터의 자유’를 논하던 그는 “연기는 제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란 결론에 다다르며 소탈하게 웃었다.
그가 품고 있는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는 유독 범상치 않은 캐릭터와 만났을 때 더 큰 에너지를 분출했다. 그 근저에는 캐릭터의 고착화를 지양하는 그의 배우관이 자리 잡고 있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들의 인생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다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 다양함에 가치를 두고 싶어요.” 그는 특정한 캐릭터나 성향에 고착되지 않고 배우로서 좀 더 다양함을 표출하려고 한다. “제 내면의 다양한 자아들에 대해 좀 더 인지해보고 싶은 이유도 있어요.” 그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내면의 무수한 자아 중 캐릭터와 밀접한 하나를 꺼내 무대 위에 펼쳐 보였다.
그는 정형화되지 않은 그 무언가를 캐릭터에 개성 있게 녹여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이는 <넥스트 투 노멀>의 게이브를 보는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한지상의 게이브는 공기 같았다. 그는 바닥에 발이 닿는 것이 보이지 않을 만큼 3층 철제 구조물 위아래를 유유히 오갔다. 그의 움직임은 한없이 가벼웠지만 그 존재감은 너무도 강렬했다. “게이브는 클라이드만큼 자유로운 역할이에요. 사람이 아니잖아요. 자아도취에 빠진 굉장한 나르시시즘의 소유자고 지독한 악마인데도 매력적이었죠.”
<넥스트 투 노멀>에서의 확신은 곧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여실히 증명됐다. 지저스의 사랑을 이토록 폭발적으로 갈망한 유다가 또 있을까? 그 폭발력이 응축된 ‘수퍼스타’ 장면 하나만으로도 한지상의 유다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유다의 감성을 표현하는 것이 재밌었어요. 고독해 보이면서도 연민도 느껴지고, 또 그는 지저스를 설득하기 위한 사명감으로 목숨을 건 승부를 하잖아요. 그 감성을 표현하는 음악들도 엄청나서 시너지가 컸죠.” 그는 엄청난 고음 때문에 목이 쉬기도 했지만, 힘든 만큼 시원함도 느꼈다. 한마디로 “할 말은 하고 죽는 것 같은 느낌”이었단다.
커튼콜 때의 ‘수퍼스타’는 캐릭터를 넘어 한지상의 매력까지 여실히 느끼게 했다. “그땐 유다가 아니잖아요. 두 시간 동안 극이 진행됐고, 관객들도 힘들게 보셨으니깐 이제 축제처럼 놀면서 다시 질문을 하는 거예요. 현시점에서 지저스의 선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애교 부리듯이 신에게 한번 편하게 물어봤던 거죠.” 그는 어릴 적 동경했던 마이클 잭슨과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의 무대를 마지막 노래에 가미했다. “기왕 노는 거 신나게 저만의 방식대로 놀아보고 싶었죠.” 

 

 

 

 

무대에서 꿈꾸는 자아실현
한지상에게 올해는 “자아실현에 한 발 성큼 다가갈 수 있었던 해”였다. <완득이>, <넥스트 투 노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스칼렛 핌퍼넬>, <보니 앤 클라이드>로 이어진 무대가 ‘한지상의 재발견’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올해 목표는 ‘열심히 하자’였어요. 특별히 차기작을 예상할 순 없었어요. <지저스>를 할 땐 유다만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꼬리를 물고 캐스팅이 되더라고요. 그렇다고 아무 작품이나 택하진 않았어요. 신중하되 쉬지 않고 열심히 달리기로 한 거죠.”
<보니 앤 클라이드> 이후 그는 올해 두 편의 작품에 더 출연할 계획이다. 뮤지컬 <머더 발라드>와 연극 <레드>다. 지난해 뉴욕에서 초연한 섹시 록 뮤지컬 <머더 발라드>는 세 남녀의 뜨거운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탐 역을 맡게 된 한지상은 록 스타일의 노래에 반해 이 작품을 선택했다. “소수의 등장인물의 긴장감을 송스루 뮤지컬로 표현해 굉장히 파격적이에요.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한 새로운 록 뮤지컬의 표본이 되지 않을까요.”
화가 마크 로스코의 삶을 그린 작품 <레드>는 단번에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런 작품이면 꼭 해야겠다! 역할 제의를 받은 지 30분 만에 다시 연락을 드렸죠. 평소 존경했던 선배님과 함께 작업해볼 수 있고, 한번쯤 무언가에 푹 빠지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사실에 끌렸어요.” 무대 이력이 줄곧 뮤지컬로 채워진 그지만 연극에 대한 열정 또한 남다르다. 그의 무대 데뷔 역시 연극이 먼저였다. 2003년 대학교 1학년 때 프린지 페스티벌의 연극 <세발 자전거>에 마을사람3으로 참여한 것이다. 2006년엔 대학 선후배인 김무열, 김대명과 함께 극단 반상회를 창단했다. “첫 시작은 연극이었어요. 걸음마 단계에서 연기의 기초를 다질 때 배웠던 소극장 연극, 그 초심을 잊지 말자는 거였죠.”

 

 

 


한지상의 초심. 학창 시절 질풍노도의 한가운데 있었던 그는 삼수 끝에 연기로 삶의 방향을 전향했다. “예술을 접하고 싶었던 꿈틀거림을 직접 몸으로 해보자! 배수진을 치고 한번 미친 척하고 해보자고 시작한 게 연기였어요. 도박이었죠.” 대학교 1학년 즉흥연기 수업 시간, 그는 모든 수치심을 버리고 자아의 한 껍질을 벗겨냈다. “그동안 느낀 저의 울분과 분노를 하염없이 뱉어냈어요. 어떤 형식도 가리지 않고 정말 솔직하게 감정을 표출했죠. 그때 제 자신에게 놀랐어요. ‘나 잘하는구나!’가 아니라 ‘나도 할 수 있구나!’를 느꼈어요.” 그 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지상이 있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지금, 한지상은 또 한 번 자신의 껍질을 벗겨냈다.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해야죠.” 그는 내년 스케줄을 아직 확정 짓지 않았지만, 다시 목욕재계하는 기분으로 또 다른 색깔을 보여주겠다는 계획을 알린다. 더불어 배우를 길게 하고 싶다는 꿈을 함께 전하며 앞으로의 무한한 변신을 기대하게 만든다. “요즘 저를 핫지상이라고 불러주시던데…(하하). 2013년 제 서른두 번째 해를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제가 가진 것보다 저를 더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려요. 계속 자기 계발을 해서 더 신선한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1호 2013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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