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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INTERVIEW] 김여진, 그녀가 말한다 <버자이너 모놀로그> [No.99]

글 |김영주 사진 |김호근 2012-01-02 4,719

둥근 눈, 부드러운 선으로 이루어진 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파격적이라는 수식이 부제처럼 따라붙는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중심에 서 있는 여배우로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에 숨김이 없는 드문 배우로서도 의외의 모습이었다. 같이 작업을 해보자는 제안을 몇 해 전부터 들어왔고, 언젠가는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배가 부른 채로 할 줄은 몰랐다면서도 ‘연습을 하면 아기가 좋아해요’라고 귀띔한다. 태교에 괜찮은가 걱정을 하는 사람들에게 ‘행복하려면 솔직해야 하는데, 솔직해지자고 하는 작품이니까’라고 쿨하게 말하는 여배우 김여진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언제부터 연습 시작하셨어요? 처음 만난 건 10월 초부터였어요. 이 작품은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하는 작품이잖아요. 본격적인 연습은 10월 말부터 했는데 그런데도 시간이 부족한 거 같아요. 대본이 확정되어 있는 걸 열심히 파면 되는 게 아니라 완전히 해체해서 다시 구성을 하는 느낌이에요. 그러니까 2011년 버전인 거고 전에는 없던 새로운 이야기들이 들어오는데 토크쇼 형식이니까 본인들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많이 녹아있어야 해서 연습보다도 수다를 많이 떨고 있어요.


흔치 않은 스타일인데 어렵지 않으세요? 최근에 토크 콘서트 사회를 많이 보고 강연도 많이 해서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거나 사회를 보는 것 자체가 어렵진 않은데 이 공연은 자기의 내밀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거잖아요. 그런데 또 이건 연극이니까 극적으로 합은 맞아야 한단 말이에요. 중간 중간에 아주 연극적인 모놀로그가 들어가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 균형을 맞추기가 어려워요. 토크쇼면 토크쇼, 연극이면 연극, 이러면 편한데 그 경계를 계속 넘나들어야 하니까요. 진짜 김여진이었다가,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사회를 보는 김여진이었다가, 다시 또 극중극 안으로 들어갔다가 빠져나와야 하는 식으로 여러 겹이 있어요. 그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들어야 하는게 쉽지 않아요.


연습을 하다가 고질적으로 걸리는 순간들이 있나요? 모놀로그와 모놀로그 사이의 브리지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교훈을 남긴다거나 가르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감정, 본인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건데 그렇게 잘 안 돼요. 결론을 자꾸 내야할 것 같은 거죠. 각 이야기마다 남자는 나쁘고 여자는 어떻고 하는 식으로 한참 갔다가 지금 다시 되돌아와서 그 의미와 결론은 관객들이 각자 생각할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거라고 정리를 하고 있어요. 이게 강연이 아니라 공연이잖아요. 공연이라는 건 자기 나름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해석을 하기 위해서 보는 건데 답을 줘버리면 그 순간에는 아 그렇구나 할 수 있지만 돌아서면 사실 재미가 없어요.


지금까지의 <버자이너 모놀로그>와 상당히 다른 작품이 될 것 같은데요. 많이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배우의 성향 자체가 달라요. 예를 들어 서주희 선배님 같은 경우는 굉장히 뜨거운 배우인데 저는 그에 비하면 훨씬 담백하고 차가워요. 아마 색채가 좀 달라지긴 할 거예요. 지난해 토크쇼 형식으로 세 분의 뮤지컬 배우들이 했던 것과도 다를 거라고 보고요. 그분들은 굉장히 흥이 많으시잖아요. 저희도 아주 시원시원하게 말을 하지만 디테일 위주의 정극만 했던 배우들이 있어서…


매해는 아니어도 계속 연극 무대에 서왔는데,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뭐였을까 궁금하던데요. 일단 생각보다 그렇게 작품이 많이 들어오지 않아요.(웃음) 들어오는 작품 중에 먼저 시기가 맞아야 한다는 게 크고, 그리고 제가 작품을 봤을 때 재미가 있어야 하죠. 연기자로서 이전에 관객으로서 개인적인 취향과도 맞아야죠.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너무 뜨거운 느낌이거나 아니면 패턴이 딱 정해져 있는 양식적인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단순하게 그냥 끌린다, 끌리지 않는다로 나뉘는 거 같아요.


어떤 연극을 보면서 하고 싶다, 재밌다고 느꼈는지? 오래전에 본 작품인데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라는 작품이 있어요. 굉장히 시적으로 각 장면을 보여주는데 배우들이 매우 정교하게 연기를 해야 하는, 어떤 면에서는 공연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재미있는 작품이에요. 그리고 이윤택 선생님이 하셨던 <어머니>라는 작품도 되게 재밌었어요. 주로 창작극을 좋아해요. 번역극 중에서는 글쎄요. 뭐가 있을까. 아주 클래식한 연극 중에 내가 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한 작품들이 있죠. <갈매기>라든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같은. 아직 한번도 안 해봤거든요.


전공이 독문학이시니까 그쪽 희곡 이야기를 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언급을 안 하시네요. 독일 희곡들을 잘 몰라요. 학교를 열심히 안 다녀서.(웃음) 대표적인 브레히트나 베케트의 작품들은 연기자로서 크게 매력을 못 느꼈어요. 여성 캐릭터가 흥미로운 역할을 하는 작품이 많지 않은 거 같아요.


배우로서 처음 연기를 하게 되었을 때 상황이 궁금합니다. 그건 뭐. (웃음) 몇 번 인터뷰에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대학 때 열심히 학생운동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딱히 할 게 없었을 때였어요. 그런데 대학교 4학년 마지막 겨울 방학 때, 대학원 시험을 친 상태에서 처음으로 연극을 봤어요.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였는데, 그 작품을 보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그날로 달려가서 ‘포스터 붙일게요!’라고 한 거죠. 그때 생각에는 어차피 방학이 있으니까 한 달 정도만 경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극단 생활도 그렇고 무대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그런데 기회가 온 거죠. 포스터 붙이고 전단 돌리고 난 후에 공연을 매일 봐서 대사를 다 외우고 있었는데 박상아 씨가 슈퍼 탤런트 대회에 나갔다가 대상을 타면서 갑자기 공연을 못하게 됐어요. 제가 무대에 서는 건 공연을 시작하기 15분 전에 결정이 났고요. 단원들끼리 대사를 맞춰보는 건 해봤지만 무대에 서서 리허설을 해본 적도 없었는데 그렇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했어요. 내가 연기 전공이라도 했으면 오히려 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경험도 없고 배운 적도 없으니까 내가 못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인 거예요. 그러니까 부끄러운 일도 아닌 거죠. 대표님께서 올라가서 일단 해보고 정 안 되겠으면 불을 끄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끝까지 했어요. 그리고 그 공연을 1년 동안 했죠. 그렇게 시작했어요.


첫 공연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세요? 그럼요, 다 기억이 나죠. 공연 직전에는 그냥 떨렸고요. 첫 대사는 엄마가 언니한테 ‘얘가 무슨 말 하는지 한번 들어봐’라고 하면 19살짜리 역을 맡은 제가 ‘나 결혼한다고’라고 하는 건데, 그 대사를 하면 관객들이 ‘풋’ 하고 웃어야 해요. 그런데 웃었어요. 그 웃음에 싹 풀렸던 것 같아요. 그 다음부터는 그냥 했어요. 보아온 대로, 아는 대로. 저보다도 오히려 같이하는 분들이 떨렸다고 하시더라고요. 무슨 실수를 할지 몰라서.(웃음)


그렇게 배우가 되고, 이름이 알려진 배우가 되고, 꾸준히 연기를 하다가 어느 날부터 자기 목소리를 내는 배우로 더 많이 알려졌어요. 그리고 지금 준비하는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분류하자면 세상에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작품이잖아요.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건데요. 제가 트위터를 즐기면서 거기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 오가는 이야기의 70퍼센트가 정치 이야기예요. 그러다보면 당연히 제 생각이 나오는데, 일인 시위 같은 경우는 좀 다른 성격의 일이었지만 그 외에는 사적인 공간인 트위터에서의 발언이었거든요. 그게 적극적인가?하는 의문은 들어요. 제가 열심히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는데 개인적으로 제가 저를 봤을 때는 굉장히 게으른 사람이라…


배우로서 열연을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말씀하셨고, 실제로 저도 지금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보기 드물게 차분한 여배우라고 느끼지만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김여진 씨의 목소리는 굉장히 뜨거웠다고 기억해서, 그 간극이 신기해요. 뜨거울 때가 있죠. 한진중공업이나 홍대에서 있었던 일 같은 경우에는 절박함이 있었어요. 왜냐면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알고 친해졌기 때문에 저 스스로도 감정적이 되었고, 다른 분들의 감정에 호소하게 되었던 면이 있죠.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제가 누군가를 굉장히 미워하거나 엄청난 투쟁을 하자고 한 건 아니에요. 그저 지금 어떤 상황이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제가 보고 느낀 만큼 전달을 한 것뿐이에요. 보시면 알 거예요. 저는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트위터를 통해서 해온 이야기들에 비해 돌아오는 말들이 너무 날 서고 독한 것 같지 않으세요? 아뇨, 저는 독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정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거였고 그보다는 오히려 호응이 너무 커서 그게 의외였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몇 퍼센트 정도는 어떤 공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전쟁을 보고 그 참혹한 시절을 겪은 분들에게는 나라가 망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 그러니까 나라님이 하는 일에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는 그런 심리가 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 세대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그 마음들을 알게 돼요.


세상이나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편인가요? 사실은 무관심한 편이에요. 예를 들어서 친구도 많지 않지만 그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도 썩 좋아하지 않아요. 좀 남자 같은 면이 있어서 동성 친구들에게 무심하고 냉정하다고 원망을 듣기도 해요. 그런데 그런 나조차도 울컥할 정도로 아픈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한번 마음이 움직이면 몸이 같이 움직이는 편이에요. 직접 가서 보고 확인을 해야하죠. 그런데 일상에서는 아주 무심한 편이에요. 특히 나에 대한 평가에는.


처음 국내에서 공연한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한번 싸워보자는 거였다면 지금은 오히려 끌어안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저는 끌어안자보다는 직시하자는 거예요. 똑바로 보고 제대로 알자. 누구 탓할 거 뭐가 있겠어요. 분명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있고 고쳐 나가야 하는 것들이 있지만 자기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알려고 애쓰지 않으면서 남에게 그래 주기를 바라고 원망하는 식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자꾸 피해자의 자리에 자기를 놓는 것이나, 누군가를 탓하고 슬퍼하고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지금 현재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어디까지 와 있어요? 시간이 갈수록 풀리는 게 아니라 점점 더 어려워지는 작품이에요. 지금까지는 한 작품의 한 캐릭터에 몰입해서 하면 됐는데 이번에는 해야할 게 너무 많아요. 그런데 그 많다는 게 예를 들어 뮤지컬의 앙상블들이 일인다역을 하듯이 빠르게 여러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게 아니에요. 아주 짧은 순간에도 사연과 페이소스가 드러나야 해서 피상적으로 보여서도 안 되는데 깊이 들어가서 보여주기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너무 짧고, 그러면서 또 바로 발을 빼고 아주 객관적인 사회자의 모습이 되어야 하니까, 참 어려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신나고 기쁜 순간들은요? 같이하는 배우 분들의 연기를 보는 게 정말 즐거워요. 그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예를 들어 이지하 언니와 정영주 선배는 정말 대비되는 극과 극의 캐릭터인데 그 모습이 무대에서 그대로 보이는 게 재미있어요. 정말 진솔한 대화에서 나오는 액션과 리액션을 보다보면 지금 이대로 무대에 옮겨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습을 계속하다보면 아주 날것의 생생한 느낌은 줄어들 수밖에 없잖아요. 그게 아까울 정도로 좋아요.

 


배우는 무대에서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네.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마다 연기하는 스타일이나 철학은 달라요. 그런데 저는 속이려야 속일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 속이려는 시도조차 보이거든요. 요만큼 할 수 있는 사람이 이만큼 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용을 써 봐도 다 읽히니까 그냥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이고, 그게 자기 자신의 폭이라는 거죠. 저는 연기가 가면을 쓰는 거라고 생각을 안 해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면 중 하나를 끄집어내는 거죠. 자기도 사실 모르고 있었던 모습일 수는 있지만. 저는 한 사람 안에 모든 면이 다 있다고 보는데 착하기만 한 사람도 없고 나쁘기만 한 사람도 없고, 상냥하기만 한 사람도 없고 냉정하기만 한 사람도 없어요. 제가 자기 연민을 싫어한다고 말했지만 어떨 때는 정작 제가 지독한 자기 연민에 빠질 때도 있어요. 그런 여러 가지 모습을 끄집어내서 쓰는 게 연기죠. 가면을 쓴다는 건 환상인 것 같아요. 물론 탈춤이나 일본, 중국의 전통극처럼 진짜 가면을 쓰는 극이 있지만 그건 다른 차원인 거고요. 평소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경험 속에서 아주 섬세하게 느끼고 자각하려고 애쓰는 게 중요한 거죠. 무리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버자이너 모놀로그>라는 작품에 대해 여전히 부담스러워 하는 관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세요? 새로운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여러분이 갖고 있는 부담을 저도 똑같이 가지고 있거든요. 여전히 그 단어를 쉽게 말하지 못해요. 일상에서 편하게 말하게 될 날이 과연 있을까 싶어요. 이제 무대에서는 말하게 되겠죠. 그런 경험치나 감정이 같을 거라는 거예요. 나는 이렇게 당당하게 이야기하는데 넌 못하지! 이게 아니에요. 나도 어렵고 당신도 어렵지만 한번 해봅시다, 라고 비슷한 수준에서 말을 건네는 거니까 부담스럽게 푸시를 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9호 2011년 1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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