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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INTERVIEW] 박해수, 전미도 - 빛을 더해 가는 별을 보는 재미 [No.99]

글 |이민선 사진 |심주호 2012-01-02 10,842


3년 전 <사춘기>에서 방황하는 청소년을 연기했던 신출내기들이 금세 이렇게 주목받는 배우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꾀부리지 않는 성실한 태도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패기라는 공통점을 지닌 두 배우가 눈에 띄게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굉장히 흐뭇한 일이며, 머지않아 그들이 더 큰 배우로 자리매김할 거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어졌다. 서로에게 영양제와 청량제가 되어 주며 외롭지 않게 발맞춰 나아가고 있는 두 사람이 <갈매기>의 뜨레플레프와 니나로 한 무대에 선다.

 

 

<더뮤지컬>이 두 분을 처음 만난 건 뮤지컬 <사춘기>에 출연할 때였어요. 관객들도 그때 두 배우를 알게 되기 시작했을 거고요.
박해수
  그때 기억나요. 인터뷰를 처음 해본 거였거든요.


벌써 3년이 지났네요. 두 분 다 데뷔 이후에 활발히 활동해서 3년이 굉장히 빨리 지나갔을 것 같아요.
박해수
  그러게요. 인복이 많았죠. 여러 극단에서 불러주시고, 또 좋은 길로 걸어가도록 연출님들이 잘 가르쳐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전미도  운이 따르기도 했고요.


두 분은 <사춘기>에서 처음 만나 <영웅>에도 함께 출연했고, 같은 작품에 참여하는 건 <갈매기>가 세 번째네요. <갈매기>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전미도
  극단 맨씨어터의 우현주 대표님이 전에 했던 공연을 보시곤 같이 해보자고 말씀해주셨어요.
박해수  연륜 있는 선배님들과 함께하니까 정말 배울 게 많고 재밌어요. <갈매기>는 텍스트 자체가 굉장히 폭넓고 깊이 있잖아요. 텍스트 분석하는 걸 배우는 재미도 있어요.
전미도  연습 초반에 즉흥 연기 훈련을 아주 많이 했어요. 대본을 완전히 숙지하기 전에 연출님이 준 상황에 따라 만약 이 인물들이 이랬다면 어땠을지 가정해서 연기해보곤 했는데, 그게 굉장히 재밌었어요.


<갈매기>는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무대화된 적도 엄청 많잖아요. 이번 공연에선 다른 어떤 걸 볼 수 있을까요?
박해수
  비어있는 무대가 매력적이에요. 뜨레플레프는 그가 존재하는 곳이 좁고 답답해서 죽는 게 아니라 너무 광활해서, 외로워서 죽어요. 너무 넓어서 갈 곳을 모르고 죽는 거죠. 4막이 끝나면 저는 죽고 공연은 끝나지만 이후에 또 다음 막이 있는 것처럼 반복되고 순환되는 느낌을 줄 거예요.
전미도  드라마가 배우들의 연기로만 전달되는 게 아니라 그걸 더 극대화시킬 수 있는 음악과 춤이 더해져요. 세트나 소품이 거의 없는 빈 무대에서 인물들의 의도를 보여줄 수 있도록 실제로 연주를 하고, 왈츠 안에 드라마를 압축해 넣기도 했어요.
박해수  3막의 끝엔 진짜로 장대비가 쏟아지고요. 4막이 끝나면 갈매기가 날아가는 것처럼 흰 종이가 떨어져요. 정말 예쁠 것 같아요.
전미도  그 종이가 상징하는 게 여러 가지가 있어요. 니나가 명성을 꿈꾸며 날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꼬스차가 제 갈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것일 수도 있고요. 같은 물건도 누가 들고 있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지니, 그런 걸 눈여겨보면 더 재밌을 거예요.


관객들에게 많이 알려진 고전일수록 공연될 때마다 새로운 것을 보여주길 바라죠.
전미도
  이전 공연과 다른 걸 보여주지만, 연출님이 ‘어떻게 하면 새롭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서 내놓은 결과물은 아닌 것 같아요. 이 작품을 바라보는 연출님만의 미학이 있어서 이런 연출 아이디어가 나온 것 같아요.


텍스트 자체에 그 많은 레시피들이 내재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전미도
  그렇죠. 뼈대만 있고 살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서 모양이 달라지는 게 가장 좋은 작품인 것 같아요. 이 작품이 이렇게 오래도록 많이 공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대학 시절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땐 별로 기억에 남지도 않고 굉장히 밋밋한 연극이라고 생각했는데…
박해수  그렇게 격정적일 수가 없어요.
전미도  지금 다시 이 작품을 보니, 관객 각자가 다른 이야기를 볼 것 같아요. 뜨레플레프와 니나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긴 하지만, 등장하는 인물들 각자가 명확한 드라마를 갖고 있어서 모든 캐릭터가 다 주인공이 될 수 있어요. 어떤 이의 인생에 닿아있는가에 따라서 관객들 저마다 감정을 이입하는 인물이 다를 거예요. 그래서 더 많은 삶을 수용하고, 더 많은 사람을 공감시키는 작품인 것 같아요.


<갈매기>에서 인물들 간에 얽혀 있는 애정 관계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문학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도 계속 나누잖아요. 배우, 예술가로서 예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전미도
  니나의 마지막 대사 중에 이런 게 있어요. ‘글을 쓰건 연기를 하건, 중요한 것은 명예도 광채도 내가 그렇게 꿈꿨던 명성도 아니라 참아낸다는 것’이라고요. 그 대사가 제게 주는 뭔가가 있더라고요. 내가 좋아서 이 일을 시작했는데, 과연 지금도 출발했을 때의 그 마음 그대로, 또는 더 진하게 사랑하고 있을까? 내가 이 역할을 잘 소화해서 ‘전미도 진짜 잘한다’ 이런 얘기를 듣는 거 말고,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겪는 모든 과정들을 다 받아들이고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정말 이 일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제대로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고요.
박해수  예술이 뭔가, 아, 어려운데요. 연기를 하는 건, 삶이 예술로 흘러나오는 것이기도 하죠.
전미도  맞아요. 나의 일상과 일이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작품을 이해하려고 애쓰다 보면 사람을 알게 돼요. 끝까지 악한 사람도, 끝까지 선한 사람도 없고, 결국 인간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걸 알게 돼요. 물론 그걸 알면서도 실제로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게 쉽지는 않죠. 나랑 안 맞는 사람과도 함께 일하고 어울려야 해요. 하지만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다 보면 얻는 게 있죠. 그게 제 인격이나 소양을 쌓게 하고, 그러면 또 제가 다른 작품에 임하는 데 좋은 영향을 미치겠죠.


그동안 두 분이 출연했던 작품들을 돌아보니, 독특한 형식으로 화제를 낳았던 것들이 많아요.
전미도
  우리 둘 다 연극성이 짙은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직 어리니까 어렵고 힘들더라도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작품을 경험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의도적으로 그런 작품을 선택하기도 했죠.
박해수  저도 좀 극단적인 드라마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무대를 채워가는 창작 공연들이 좋아요.
전미도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스트레스 받을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작품과 어렵지만 도전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후자를 택하는 게 제 성향인 듯해요.
박해수  사실 전 제의가 들어오는 족족 한 거예요. 선택의 기로는 없었어요. 그런 작품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박해수 씨에겐 왜 그렇게 거칠고 힘들게 연기하는 역할 제의가 많이 들어왔을까요?
전미도
  오빠가 검객 역할을 할 줄은 몰랐어요. 외모는 이렇지만 어떤 면에선 저보다 더 섬세하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역이 잘 어울리더라고요. 수염 때문인가?
박해수  수염을 기른 이후로 이렇게 된 것 같아요. 뭐, 거친 이미지 좋아요. 하지만 저 속은 정말 따뜻한 남자입니다. 손현주 선배님처럼 평범한 옆집 사람의 느낌을 가지면 좋겠어요. 그것도 쉽지 않죠? 따뜻한데 거친 옆집 아저씨가 되려나.
전미도  저도 특별한 이미지를 갖길 원하지 않아요. 제가 카리스마 있는 강한 인상은 아니잖아요. 뭘 입혀도 어울린다고 생각되면 좋겠어요. 그동안은 어려보이는 외모의 영향을 받은 역할을 많이 맡았는데, 그런 이미지에 묻히고 싶지 않았고 다른 연기도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서 작품 선택에 신경을 썼어요.
박해수  저랑은 완전히 반대죠. 우리 둘이 고작 한 살 차인데, 전 노안이라….
전미도  오빠는 역할이 점점 젊어지고 있어요. 이번에 꼬스차도 맡고.


<사춘기>로 가까워져서 함께 배우고 성장하고 있는데, 같은 작품에서 만나면 서로 의지가 되죠?
박해수
  전 개인적으로 많이 도움 돼요. 제가 많이 물어보거든요.
전미도  너무 많이 물어봐서 짜증나요. 하하. 농담이고요. 작품에 대해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죠.
박해수  미도가 연기를 잘하니까, 배우로서 한 번 만나보고 싶었어요, 진심으로. 연기 배틀 붙고 싶었어요. 흐흐.


하하. 그래서 몇 번 붙어봤잖아요.
박해수
  대패하고 있습니다. 전패했죠.


두 사람의 연기하는 스타일이 다를 것 같은데요?
박해수
  미도는 생각이 깊어서 작품을 넓게 바라보고 극의 흐름을 쭉 따라가요. 전 대사 하나를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요. 꼭 공부 못하는 사람들이 그러죠. 그만큼 다양한 표현 방법을 연구해요. 그래서 대본은 엄청 지저분한데, 결국 나오는 표현은 단순하고.
전미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중에 보면 오빠의 연기가 더 깊어요.


서로를 쭉 지켜보다 보면 내가 못 보는 걸 상대가 더 잘 보기도 하잖아요.
전미도
  그럴 땐 이상하다고 직접 말하죠. 오빠가 어떤 정서를 표현할 때 늘 나오는 표정이나 제스처, 소리가 있어요. 그럴 땐 다른 표현을 찾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하죠.
박해수  미도가 못하는 게 굉장히 많지만, 저는 무조건 잘한다고 말합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표현해?’ 하고요.
전미도  뭐야, 나만 지적하는 게 됐잖아. 전 굉장히 자신감이 부족해서, 주눅이 잘 들어요. 잘한다 잘한다 해줘야 힘이 나죠.


무대 위에서 강단있는 이미지라 외부의 시선에 의연할 줄 알았어요.
전미도
  지금은 그러려고 노력하지만, 예전에는 항상 새 작품을 시작하면 바닥까지 내려갔다 올라오곤 했어요.
박해수  미도는 머리로 이해가 되기만 하면 그 감정이 표현되나 봐요. 그래서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한 거죠. 전 이해는 되는데, 그 감정이 발화돼 나오는 게 쉽지 않거든요.
전미도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알고 이해해서 표현이 가능할 때도 있겠지만, 논리적으로 설명하거나 이해할 순 없는데 본능적으로 표현될 때도 있지 않나요?
전미도
  <갈매기>에선 그래요. 그래서 이 작품이 저한테는 좀 남달라요.
박해수  사실 저는 본능이 이성보다 더 빠를 거라고 생각해요. 나의 분석에 앞서 내 몸이 먼저 표현하는 게 더 진실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본능적인 표현은 매일 달라진다는 거죠. 기억으로 저장되지도 않고. 그래서 연기가 좋을 땐 무척 좋은데, 아닐 때 정말 안 좋고. 그래서 연기 연습하기 전에 작품을 제대로 분석해놓는 게 저한테는 무척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본능적인 표현을 좀 더 정확하게 만들어 주더라고요.


같이 작업하면서 서로에게 받은 영향이나 자극이 있다면 뭔가요?
전미도
  해수 오빠가 본능에 충실하게 연기하는 거, 그게 제일 부러워요. 전 그런 데 대한 두려움이 좀 있거든요. 즉흥적으로 하는 것도 어렵고. 이번에 같이 연기하면서 많이 배웠고, 또 두려움 대신 재미를 느끼게 됐어요. 배우한테 본능적인 표현도 중요하구나, 이성과 감성, 본능이 함께 표현되면 정말 좋겠다고 깨닫게 됐죠.
박해수  미도에게도 배울 점이 참 많아요. 작품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표면적인 게 아니라 내면을 보는 능력. 전 겉을 보고 표현 방법을 찾으려고 목적 없이 두리번대곤 하는데, 얘는 왜 이 말을 하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려고 하죠. 감수성도 엄청 뛰어나고요.
전미도  저도 사람이다 보니 연습하기 싫은 날도 있거든요. 몸이 피곤할 때도 있고, 날씨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그런데 오빠는 자기 컨디션에 상관없이, 어떻게든 집중해서 하려고 노력하는 게 엿보여요. 피곤하고 하기 싫어서 늘어져 있다가도 오빠가 열심히 하는 걸 보면 자극받아서 저도 마음을 다잡게 돼요. 이런 것도 정말 배울 점이죠.
박해수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는 것뿐인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 더 잘하고 싶은 욕심으로 하는 게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겠죠.
전미도  제가 부정적인 생각도 하지만, 끝내는 옳은 생각을 많이 하려고 노력해요. 근데 그런 건강한 생각을 이 오빠한테서 많이 배웠어요. 해수 오빠는 부정적인 데가 없어요. 항상 긍정적이에요. 제가 만약 같은 내용의 지적을 받았다면 전 밤새도록 스트레스 받았을 것 같은데, 오빠는 ‘오케이, 하면 되지 뭐’ 이래요.


서로의 연기를 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떤 작품에서였나요?
전미도
  해수 오빠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스탠리의 언더로서 무대에 선 적이 몇 번 있어요. 처음으로 스탠리를 연기하기 전날, 리허설하는 걸 봤어요. 그때 정말 잘하더라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느낀 대로 연기했나 봐요. 내가 아는 박해수가 아니었어요. 이후에 본 공연을 보러 갔는데, 그땐 달랐어요. 리허설 때 자기가 어떻게 했는지 기억을 못하더라고요.
박해수  그땐 언더여서 연습을 많이 못했어요. 전 특정 작품보다는 미도가 잘했던 장면 장면이 떠오르네요. <화려한 휴가> 첫 장면에서 할머니 역할도 잘 어울렸고, <김종욱 찾기>에서 토하는 장면…. <영웅>에선 중국 옷 입은 게 그렇게 잘 어울리더라고요. 중국 여자 같았어요. 이게 칭찬이야, 뭐야.
전미도  지금 <갈매기> 할 땐 그렇게 러시아 여자 같대요. 아, 정말! 오빠가 되게 웃긴 사람이거든요. 지금은 자꾸 진지하고 무거운 연기만 하다 보니 유머 감각이 많이 사라져서, 센스 없는 말 던질 때마다 안타깝지만. 다음엔 코믹한 작품에 출연해도 좋을 것 같아요. B급 코미디.
박해수  뭐든 다 경험하고 싶지만 따뜻하고 재밌는 작품도 해보고 싶어요. 어른들과 함께 가족적인 분위기에서요.
전미도  전 <갈매기>를 하다 보니 고전이 정말 재밌더라고요. 이런 거 또 해보고 싶어요. 또 아주 신나고 가벼운 코미디도 해보고 싶고요.
박해수 올해에 본 공연 중에서 최고로 기억에 남는 게 <3월의 눈>이에요. 나이 먹고 나서 저렇게 연기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더라고요.
전미도  그 공연 정말 좋았어요. 공연 보는 내내 선생님과 연애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요. 근데 우리 그런 거 하려면 50년 더 있어야해.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9호 2011년 1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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