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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뮤지컬계 밖 올스타 팀이 만든 문제작 <퍼스트 데이트> [No.121]

글 |정예경(뉴욕 통신원) 사진 |Joan Marcus 2013-11-04 4,492

거대한 신작들이 쏟아진 2013년이 하반기에 접어들며 들썩이던 브로드웨이도 점차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이때 갑자기 등장한 작품이 <퍼스트 데이트>다. 신작 리스트 뒤쪽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던 이 뮤지컬은 빠른 속도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급부상의 원동력은 출연진과 창작 팀의 흥미로운 크레딧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푼젤>의 주연 성우이자 NBC 드라마 <척>에서 열연했던 TV스타 재커리 레비와 <스매시>의 크리스타 로드리게즈가 주연을 맡았다. 대본은 <가십걸>을 비롯해 메이저 필름의 극작을 했던 오스틴 윈스버그가 썼다. 음악과 가사는 ASCAP 파운데이션의 ‘리처드 로저스 뉴 호라이즌 어워드’에 빛나는 앨런 재커리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마이클 와이너가 함께 맡았다.
그런데 아무리 TV, 필름 분야에서 종횡무진했던 멤버라고 해도, 브로드웨이 작업은 또 다른 이야기였던 모양이다. <퍼스트 데이트>는 논란거리가 될 만한 장면이 하나도 없는 건전한 작품임에도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다. 이 논란은 <뉴욕타임스>가 유례없이 극단적인 혹평을 한 이후에 불거졌다. ‘대체 얼마나 못 만들었나’,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작품이 브로드웨이에 올 수 있나’라는 의구심이 관객들 사이에 퍼지면서 의도치 않은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다 극장을 찾은 이들이 이 작품을 사랑하게 됐고, 그 팬들이 이제 방패가 되어주고 있다. 평론가와 일반 관객들의 의견이 대치되는 상황은 많았지만, 이 정도로 호불호가 갈렸던 적은 드물어서 흥미를 자아내는 작품이다.

 

 


소개팅 상황으로만 채워진 90분                                        

배경은 현재의 뉴욕시티, 푸짐하게 생긴 백인 웨이터가 분주히 움직이는 어느 레스토랑이다. 유대인 가정에서 교육받아 월스트리트로 진출한 애론은 오로지 진실된 배려만 하다가 고백 한번 못해보고 여친들의 영원한 베스트 프렌드로 남는 남자다. ‘쿨하게’ 옷 입는 방법도 몰라서 소개팅 나갈 때마다 넥타이에 단추까지 꼭꼭 다 채우는, 우리 주위에 꼭 한 명씩 있는 소심하고 착한 남자다. 반면 케이시는 나쁜 남자에게만 끌리는 취향이라 제대로 된 연애를 못해본 다소 차가운 여자다. 그녀는 관계에 대해 회의적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개팅에 나가고, 주머니가 두둑하지 않아도 도도하게 큰소리치는, 자기 의사 표현을 똑 부러지게 할 줄 아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다. 킬힐의 앵클부츠와 가죽 재킷, 몸에 딱 붙는 빨간 원피스를 입는 전형적인 뉴요커다. 이 어울리지 않는 커플의 소개팅이 90분간 리얼타임으로 펼쳐지는 것이 <퍼스트 데이트>다. 
애론은 케이시가 인디적이고 왠지 예술가 같다고 생각하고, 케이시는 애론이 옷을 과하게 정장으로 차려입어 답답한 사람이라고 첫인상을 평가한다. 하지만 어디까지 그건 첫인상일 뿐 사람은 좀 더 사귀어봐야 한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다. 대화가 진행되며 진지한 성격의 애론은 케이시가 유대인이 아니란 말에 단번에 굳어버린다. 데이트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김칫국을 1톤 정도 마시는 애론. 상상 속의 가족들은 유대인 전통 의상을 입고 나와 춤을 추며 ‘이 여자는 네 여자가 아니다!’라고 저주에 가까운 말들을 퍼붓는다. 한편 케이시 집안 사람들은 성가를 불러대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반항적인 10대 아들은 랩을 하며 엄마 아빠에게 종교와 뿌리에 대해 혼란을 준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한편, 케이시의 게이 베스트 프렌드는 소개팅에 혹시 폭탄이 나왔을까봐, 폭탄 처리를 돕기 위해 긴급히 전화를 걸지만 케이시는 받지 않는다. 두 사람은 만나기 전 서로 상대방에 대한 사전 정보를 얻기 위해 구글링을 했다는 민망한 사실을 들키게 된다. 그 순간 무대에 눈이 달린 구글 사인이 나타나며 ‘난 너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지’라는 대사로 관객들을 폭소케 한다. 큰 버거를 먹고 싶지만 돼지처럼 보일까봐 샐러드를 시킨 케이시, 깔끔한 샐러드를 먹고 싶지만 남자답지 못하게 보일까봐 버거를 시킨 애론. 결국 두 사람은 서로 음식을 나눠먹으며 상대방의 메뉴를 칭찬한다.
각자의 친구들은 두 사람의 상상 속에서 계속 끼어들며 조언을 하고, 두 사람은 그들의 페이스에 말려드는 듯하다가도, 시간이 흐르며 점차 서로에 대해 진실된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드러낸다. 사실 두 사람은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다. 나쁜 남자에게만 끌리는 케이시는 숱하게 마음의 상처를 받고 테라피스트를 정기적으로 찾고 있다. 약혼녀에게 결혼식 당일 차인 아픔을 안은 애론은 그래도 그녀를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케이시는 테라피스트에게 배운 대로, 상상 속의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다 쏟아내 보라고 애론에게 권한다. 애론은 그동안 꾹꾹 참았던 심한 말을 상상 속의 그녀에게 다 해버리고서야 마음이 편해진다. 케이시에게 감사를 표하는 애론을 보며 케이시도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즐거운 시간이 흐르자 마침내 나온 계산서. 애론은 생각지 않은 테라피만으로도 정말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고 하며, 자기가 계산을 한다. 그러면서 혹시 두 번째 데이트를 할 마음이 생긴다면 전화를 달라고 한다. 배경이 바뀌어 지하철 역 앞. 케이시는 애론을 쫓아오고, 두 사람은 키스하며 막이 내린다.

 

 

 

 

‘뉴요커’에 대한 설정의 현실성                                          

동부 뉴욕과 서부 로스앤젤레스에는 큰 재력과 미국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을 동시에 지닌 유대인 집안이 많다. 많은 유대인들은 유대인끼리만 결혼을 하기 때문에 그들이 연애나 결혼 상대를 고를 때 하는 고민은 극에 잘 나타나 있다. 애론의 문제는 우리 입장에선 실소를 자아내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이 룰은 미국의 유태인 사회에선 나름 중요하고도 일반적인 고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애론의 가족이 ‘이 교제 반댈세’ 하는 애론의 상상 장면에선 모든 관객들이 공감하며 박장대소하고 휘파람을 불어댄다.
또 식사 후 계산하는 장면의 경우 계산서가 공중으로 떠오르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장면은 참 현실적이었다. 우리나라는 주로 남자가 밥값을 내는 경우가 많고 마음에 드는 상대가 나올 경우는 미국에서도 남자가 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반씩 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 장면 역시 사람들의 공감과 함께 웃음을 자아냈다.
반면 ‘뉴요커’의 설정에서는 다소 현실적이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우선 ‘파이낸스 세계에 종사하는 뉴요커’ 애론이 비현실적이다. 월스트리트 근처 고층 콘도에 살며, 경제적 능력이 월등한 남자, 그중 게이가 아닌 사람들 중에 애론 같은 남자는 단언컨대, 없다! 게이와 여자를 위한 도시 뉴욕에선 여성이 득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잘난 뉴욕 여자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남자들이 바로 이 스펙트럼에 속한 남자들이다(<섹스 앤 더 시티>에서 그 잘난 캐리가 우유부단한 빅에게 휘둘리는 것은 단순히 허구가 아니다). 뉴욕 남자들은 자신들의 희소성을 잘 안다. 그들은 여자를 위해 그 어떤 것도 희생할 마음이 없다. 적어도 애론 나이에는 그렇다. 한꺼번에 여러 명 ‘간’을 봐가며 데이트(성적 접촉 포함)하지만, 그 시간에만 충실할 뿐 연애에 관한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 인스턴트 연애 방식을 ‘뉴욕 데이트’라고 부를 정도다.
케이시의 게이 친구도 문제다. 이 게이 캐릭터는 지나치게 전형적이다. 실제 뉴욕 게이들은 자기를 꾸미는 데 공들이고 자기 인연을 찾기에 바쁘다. 뮤지컬에서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게이의 캐릭터와 이미지를 아무 고민 없이 그대로 써버린 느낌이다. 판에 박힌, 극의 재미를 위해 조미료처럼 넣은 캐릭터로서의 게이다. ‘뉴욕 게이’의 특수성을 좀 더 살려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가령 그 게이 친구가 단지 우스꽝스럽지 않고 애론보다 더 멋있다는 설정은 어떨까. 어쩌면 이편이 더 현실성 있지 않을까. 그랬다면 조금 더 복잡다단하고 미묘한 상황 연출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다만 그가 케이시에게 전화를 걸 때 부르는 넘버는 인상적이다. 일렉트로니카풍 음악과 함께 목소리를 변형시키는 보코더를 사용한 이 넘버에서는 모진 풍파를 헤쳐가며 뉴욕에 정착해 살아가는 기 센 여자들(?) 간의 우정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넘버를 세 번이나 다시 부르는 건 분명 무리수였다.
또 케이시와 게이 친구 캐릭터의 관계의 깊이를 따져보면, 이 작품은 ‘상남자’ 세 명이 모여서 쓴 게 맞다는 확신을 준다. 어떻게 연애 이야기를 ‘보통 남자’ 세 명이 썼는지 모르겠다. 만약 이 중 여자가 한 명만 있었더라도, 뻔한 일일 드라마의 느낌을 벗어나 깊이도 깊어지고 무대가 주는 오묘한 느낌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TV는 짧은 시간 안에 관심을 끌어야 하기 때문에 전형적인 인물을 적재적소에 쓰는 게 효과적이다. 하지만 무대극은 자기 주머니에서 스스로 돈을 꺼내 온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좀 더 특별하고 특이한 캐릭터도 실험해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특별한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있도록 돕는 게 모든 스태프들의 역할이다. 무대 예술은 마술 아니던가. ‘마술 가루’가 조금 더 있어야 했다.

 

 

 

 

평범함 이상의 대본과 진화하는 음악                                  

이 극은 시종일관 시제 변화 없이 흘러간다. 두 사람 사이에 서서히 싹트는 케미스트리를 관객들도 느낄 수 있었다는 건 참 좋았던 점이다. 이렇게 뻔한 데이트 이야기를 맛깔나게 쓰는 것이 사실 알고 보면 제일 어려운 일 아닌가? 기발한 소재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작가의 모든 스킬을 동원해 진부한 상황을 특별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감정의 큰 비약이 없고, 적절한 설렘과 긴장감은 있지만 불편하지는 않게 서서히 핑크빛으로 물들어 가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두 사람 사이에 전혀 공통점이 없고 속내를 숨기고 매뉴얼대로 하는 것 같은데도, 어느 순간 둘 사이에 ‘꽃히는’ 그 포인트를 잘 잡아낸 것은 이 작가의 큰 능력이다.
‘요즘’ 뮤지컬은 진화 중이다. 손드하임, 오스카-해머스타인의 뮤지컬도 여전히 좋지만, 근 10년간 새로 나오는 뮤지컬 음악은 거의 다 ‘팝’이다. 팀파니와 공 대신 드럼 세트가 있고, 많은 바이올린 대신 두 명 이상의 키보드 주자가 있다. 피트의 밴드는 어떻게 이 적은 인원으로 프로듀서들이 원하는 ‘그 소리’를 내냐고 불평하고, 지휘자는 어떻게든 오케스트라의 입장을 잘 대변해서 조금이라도 더 깊은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애쓴다. 이런 시장 사정과 미디어의 변화, 사람들의 변화에 맞춰서 음악 역시 점점 팝적인 음악으로 변해간다. 음악극이 지닌 장점이 사라지는 현실이 아쉽지만, 옛날과 점점 달라지는 브로드웨이 상황과 음악의 성격에 따라 우리가 극을 보는 관점도 이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상상 중에 가족들이 끼어들며 갑자기 우스꽝스러운 노래를 하고 현실로 돌아올 때 브리지가 엉성하다거나, 음악의 장르가 너무 왔다 갔다 한다고 비난할 수 있는 시점은 이미 지나간 듯하다. 게다가 음악과 극의 긴밀한 관계 같은 건 상관없이, 어쨌든 나쁘지 않은 음악으로 1시간 30분을 잘 즐기고 나왔다는 게 어쩌면 관객들에겐 더 중요할지 모른다. 마치 영화를 보는 마음으로. 지금도 뮤지컬은 진화 중인지라, 10년 후의 우리가 생각하는 뮤지컬의 정의나 그림도 많이 바뀌어 있을 것 같다. 

 

 

 

 

극장을 나서며                                                               

확실히 이 뮤지컬은, 평론가가 좋은 점수를 주면 ‘얼굴이 깎이는’ 작품이다.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데이트용으로나 있을 법한 작품이다. 브로드웨이에 입성하기엔 자격 미달인 작품이 스타 캐스팅으로 탄력을 받아 올라왔다는 걸 프로듀서들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온 열정과 인생을 브로드웨이에 다 바쳐온 평론가나 업계 관계자들이 보기엔, 이 작품은 왠지 약간의 피해 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하지만 ‘퍼스트 데이트’를 하는 남녀들이 <마틸다>나 <킨키 부츠>를 보는 건 사실 좀 부담스러울 수 있다. 뮤지컬 마니아가 아닌 일반 관객이라면, 멀지 않은 이웃의 이야기 또는 자신들을 닮은 <퍼스트 데이트>가 더 친근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어쩌면 <퍼스트 데이트>를 본다는 사실보다 ‘90분짜리 인터미션 없는 뮤지컬’을 보고 극장 옆 바에 가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누구도 <나 홀로 집에>를 보고 ‘클리셰 투성이’라고 욕할 수 없는 것처럼, 이 작품 역시 대중에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래도 기왕이면 대중성과 예술성의 간극을 좁힌 대중 예술 작품들이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관객들의 주머니를 노리고 그들이 기대하는 딱 그만큼의 장면을 보여주기보다는, 기대하지 않은 선물처럼 깜짝 놀랄 만한 마술의 순간을 선사하는 것이 무대 예술 본연의 임무이니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1호 2013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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