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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실화에서 영화로, 스크린에서 무대로 <킨키 부츠> [NO.116]

글 |정예경(뉴욕 통신원) 사진 |Matthew Murphy 2013-05-27 5,192


영화를 뮤지컬로 만드는 데 특별한 공식은 없다. 큰 성공을 거뒀어도 스토리와 연출의 특성상 영화일 때 빛나는 작품이 있고, 소박한 흥행을 했어도 무대화되었을 때 훨씬 풍부한 연출이 가능한 작품들이 있다. 가령 <스파이더 맨>은 영화로는 세계적인 블록버스터였지만 뮤지컬로는 구설수에 오르다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바뀌었고, <원스>는 초저예산 독립영화로 시작했지만 브로드웨이에 입성한 후 토니상을 죄다 휩쓸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뮤지컬의 영화화보다 영화의 무대화가 훨씬 어렵다는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화한 <킨키 부츠> 역시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작품 자체가 무대에서 더 빛날 수 있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그런 까닭에 이 작품은 ‘뮤지컬로서’ 훨씬 더 큰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진정한 나’의 상징, 킨키 부츠                                             

<킨키 부츠>는 비록 한국에서 극장 개봉에는 실패했지만 TV를 통해 여러 차례 시청자들과 만난 바 있다. 영국 노스햄튼, ‘프라이스 앤 선스’는 3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신사화 공장이다. 하지만 유행에 따라 다양한 디자인으로 한철 신고 버리는 값싼 제품들의 출현에 명품 퀄리티의 신사화 제조만을 고집하는 프라이스사는 위기를 맞는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아들 찰리 프라이스는 가업을 물려받아 얼떨결에 사장이 된다. 그는 신발을 만드는 것에 열정도 없고, 많은 회사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 부담스럽다. 게다가 허영심만 가득한 여자친구는 결혼을 앞두자 공장을 팔고 직원들을 해고하라고 계속 압박을 넣는다.
그러던 어느 날, 찰리는 우연히 드래그퀸 쇼의 주연이던 ‘롤라’를 만나 영감을 얻고 회사를 살릴 묘안을 깨닫는다. 찰리는 틈새시장을 공략하기로 결심하고 여성용 부츠를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3주 뒤에 열리는 밀라노 슈즈 패션쇼에 출전하기 위해 롤라를 디자이너로 영입한다. 롤라가 신발 공장으로 출근하자 남자들은 강한 거부감을 나타낸다(롤라는 보통 여자들보다 훨씬 더 여성스러운 드래그퀸으로 나오지만, 게이인지는 확실치 않다). 결국 롤라는 나름대로 공장의 분위기에 적응하기 위해 남성 정장을 입고 완벽한 남자의 모습으로 출근을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수군댄다.
롤라는 찰리와 화장실에서 만나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실 롤라는 과거에 복서였던 아버지에게 학대에 가까운 강훈련을 받으며 프로 복서로 키워진 ‘남자 중의 남자’였던 것. 하지만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권투 글러브보다는 남몰래 빨간 구두와 드레스를 좋아하던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아 드래그퀸의 인생을 택했다. 다만 드래그퀸의 인생을 선택한 대가로 병든 아버지와 의절하는 아픔을 평생 품고 살아야 했다. 찰리 역시 위대했던 아버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한다.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를 공유하며 열정에 따라 살려고 하는 두 사람은 진정한 친구가 된다.
롤라는 공장 여자들 사이에서는 활력을 불어넣는 존재지만, 마초 중의 마초인 남자 직원들은 그를 부끄럽게 여겨 골려줄 계획만 세운다. 그 무리 중 ‘돈’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롤라를 무시한다. 급기야 ‘넌 남자답지 못한 남자’라며 롤라를 자극해 승자의 소원을 들어주자는 권투 시합을 성사시킨다. 롤라의 과거를 모르는 돈은 자신만만하지만, 막상 링에 오르자 복싱으로 단련된 롤라에게 시종일관 열세에 몰린다. 하지만 마지막 라운드에서 돈은 의외의 역전으로 찜찜한 승리를 거머쥔다. 경기 후 롤라를 찾아간 돈은 고의로 져준 것을 알고 있다며, 롤라에게 그간의 일들을 사과한다. 롤라는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노력해봐’라고 쿨하게 충고한다. 역시 남자들은 싸우다 친해진다는 말이 떠오르던 장면이다.
한편 찰리는 밀라노 패션쇼가 가까워질수록 긴장감으로 사람들을 닦달하고, 직원들은 이에 반발하여 공장을 떠난다. 이때 공장 사람들을 설득해 돌아오게 한 사람이 다름 아닌 돈이다. 롤라의 충고를 실천해 찰리의 입장을 헤아린 것. 공장은 순조롭게 돌아가고 멋진 부츠가 완성된다.
찰리는 패션쇼를 위해 전문 모델을 고용한다. 하지만 롤라는 자신이 디자인한 부츠를 선보일 때 드래그퀸 쇼걸들이 패션쇼에 등장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찰리가 영입한 모델들의 계약을 마음대로 취소해버린다. 찰리는 “왜 처음부터 ‘이상한’ 이미지로 낙인찍힐 짓을 하느냐”며 롤라를 질책한다. 이에 롤라는 “역시 너도 위선자였다”고 말하며 찰리를 떠난다. 모델도 없이 밀라노에 도착한 찰리는 롤라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남자의 기준이 ‘용감함’에 있다면, 너는 내가 아는 가장 남자다운 남자일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팬티 차림으로 빨간 롱부츠를 신고 우스꽝스럽게 패션쇼장에 나온 찰리. 런웨이에 오르자마자 높은 굽 때문에 후덜거리다가 넘어지는데, 때마침 메시지를 듣고 마음을 풀어 밀라노로 달려온 롤라와 드래그퀸들이 채찍을 휘두르며 화려하게 등장한다. 관객들은 멋진 ‘반전쇼’라며 환호하고, 드래그퀸들의 화려한 부츠 패션쇼는 대성공을 거둔다.
철없는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힘든 시절을 함께한 공장 직원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찰리,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낸 롤라와 드래그퀸들, 절대 좋아할 수 없을 것 같던 사람을 이해하고 우정을 나누는 마초 돈. 극장은 행복과 희망의 에너지로 넘친다. 그리고 패션쇼 마지막엔 여자, 남자, 마초, 게이가 모두 하나 되어 ‘자유’와 ‘나다움’의 상징인 롤라의 킨키 부츠를 신고 춤추며 막이 내린다.

 

                           

 

 

뮤지컬의 진짜 재미를 아는 창작진                                      

천재적인 창작 팀과 노련한 프로듀서들은 우리가 극장에 왜 가는지,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지, 어떤 요소에 돈을 쓰는지 얄미울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보고 싶어하는 걸 다 보여주고, 숨기고 싶은 우리의 얄팍한 취향까지 다 충족시켜줬다. 그러면서도 민망함이 들지 않게 삶의 철학까지 적절히 가미하는 경지라니. 사실 <킨키 부츠>는 특이한 캐릭터가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클리셰 중의 클리셰다. 하지만 그 뻔함을 요리하는 방식은 필자를 비롯해 시니컬한 뮤지컬 마니아들조차 눈물 찔끔하며 기립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일등 공신은 연출가다. 원작 스토리는 이미 검증된 바가 있으니, 이 작품의 성패는 당연히 연출가의 역량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브로드웨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단순한 화려함을 기본으로, 연출가의 외침이 관객에게 전해져올 만큼 공들인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1막 엔딩 부분은 우리가 극장에서 기대하는 걸 다 보여준다. 신발이 생산되는 컨베이어에 올라가 사람들이 춤을 추는데, 이때 컨베이어를 공장 직원들이 빠르게 움직여, 노래의 단락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대형을 만든다. 각 대형들은 노래가 진행되면서 사람들 간의 관계를 보여주도록 설계되어 있다. 주연들이 모두 똑같은 레벨의 스테이지에서 노래하다가 움직이는 컨베이어로 갑자기 뛰어올라 달리면서 안무를 시작하는 순간, 역동적인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단순히 움직이는 구조물을 활용해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발상은 놀랍다. 컨베이어를 무대에 가득 채우고 주연배우들이 다 올라와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은 이곳이 브로드웨이임을 실감시켜 준다. 이 장면과 동작이 어떻게 보이고 움직임이 어떤 의미를 지닐 것이라는 것을 정확히 포착해내는 직관력, 민감한 움직임에 대해 즉각 반응해 만들어낸 아이디어들이 작품 속에 여실히 녹아 있다. 그래서 이 극은 안무가 출신 연출가가 왜 필요한가를 정확히 설명해준다.
두 번째 공로는 연출가를 잘 받쳐주면서도 자신의 창작욕을 불태운 영리한 무대디자이너의 몫이다. <빌리 엘리어트>의 오리지널 무대 디자인은 효율과 예술성의 극치를 보여준 바 있는데, 이 작품의 무대가 흡사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디자인이었다. 무대 한가운데에 2층의 계단 구조물을 만들어 공장 감독실을 표현하고, 이 구조물을 360도 돌려가면서 4면을 다 활용한다. 1층은 드래그퀸 쇼 홀, 화장실 등 순식간에 다양한 공간으로 변한다. 무대가 단순히 예쁘거나 세트가 화려한 것 때문에 멋지다는 것은 아니다. 자기의 재능을 드러낼 수 있는 디자이너들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전환이 빠르고 안무와 연출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물론, 아기자기하고 깨알 같은 개성과 아이디어를 넣을 수 있는 디자이너는 결코 흔치 않다.
세 번째는 그래미상에 빛나는 아메리칸 대표 여성 싱어송라이터 ‘신디 로퍼’가 음악을 맡았다는 점이다. 프로듀서들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브로드웨이적인’ 작품을 팝송 싱어송라이터에게 맡겼는지 의문스러운데, 그녀의 음악이 미국의 전설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간다. 아마도 주요 곡들이 히트송이 될 수 있다면, 뮤지컬적 어법이 필요한 부분들은 뮤직 에디터들이 대신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프로듀서들이 맞았다.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그녀의 노래들은 신나면서도 이 극과 딱 맞아 떨어진다. 컴퍼니의 노래들은 후렴구도 간단하면서도 후크송의 면모를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사실 뮤지컬 고유의 어법을 잘 살려서 써야 하는 브리지는 인상적인 부분이 없었고, 송 모먼트도 다소 갑작스러운 곳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전반적으로 그녀의 음악 자체를 평가절하할 순 없다. 신디 로퍼는 손드하임이 아니니까. 또 문제가 있는 송 모먼트 등은 프리뷰 기간이 지나면 매끈히 조정이 되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작품은 참 뻔하다. 하지만 낯간지런 대사도 감동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착한 작품이다. 

 

 

 

생생히 살아있는 캐릭터 ‘롤라’                                            

이 극의 주인공은 찰리지만, 변화무쌍한 변덕과 곧 죽어도 섹시미를 강조하는 드래그퀸 롤라의 강한 캐릭터는 주인공보다도 더 인상적이다. 하지만 만약 롤라를 제1의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면 극이 이처럼 재미있지 않고 ‘드래그퀸의 자아 찾기’ 정도의 이야기에 머물렀을 것이다.
롤라가 매력 있는 이유는 그녀가 변화무쌍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유치한 사내들의 싸움에 끼어들어 그들과 친구가 되고, 또 특유의 유쾌함과 뻔뻔함으로 여자들조차 실행에 옮기기 어려워하는 대담한 패션을 선보인다. 채찍을 휘두르며 등퇴장할 때마다 마녀처럼 과장되게 “꺄~하하하하!” 하고 웃으면 관객들은 처음에 어이없어하다가, 그녀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부러워하고 결국 사랑하게 된다.
어쩌면 롤라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우리가 모두 꿈꾸는 ‘이상’, ‘꿈’을 모두 합쳐놓은 캐릭터인 것 같다. 그녀에게 공감이 가고 친구가 되어주고 싶은 이유는 ‘나는 누가 뭐래도 나답게 산다’를 온몸으로 실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나’가 되고 싶어하지만, 남이 기대하는 나로 살아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얼마 전 미국 저작권 협회에서 주최하는 뮤지컬 워크숍에 참석했는데 <위키드>의 작곡가 ‘스테판 슈월츠’가 워크숍의 멘토였다. 그는 캐릭터를 창조할 때 ‘문제가 있으면서도 뭔가 매력이 있는 인물’로 만들라고 작가나 작곡가들에게 조언했는데, 아마 롤라가 정확히 바로 그 예가 아닌가 싶다. 여태껏 게이나 드래그퀸 캐릭터는 많이 봤지만 이렇게까지 인간적으로 이해가 가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또 친구가 되고 싶은 캐릭터는 없었다. 그는 강한 소신이 있지만 한편으론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침울해하다가도 바로 박차고 일어나 히스테리컬하게 웃으면서 자기 갈 길 가는 캐릭터다. 오지랖도 넓어서 남을 도와주다 상처도 받고, 자신이 공격당할 땐 똑같이 상대방을 때려주면서 욕할 수 있는 당당하고도 인간적인 캐릭터다. 어쩌면 롤라는 우리의 평상시 모습과 우리가 꿈꾸는 모습 중간에 있는 인물이 아닌가 싶다.

 

 

<킨키 부츠> 그리고 Etc                                                    

The Kinks라는 밴드의 ‘롤라’라는 팝송이 있다. 이 노래의 내용은 클럽에서 만난 여장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팝송이다. <킨키 부츠>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캐릭터의 이름이나 제목의 작명에 이 팝송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노래 가사에서 묘사되는 롤라를 듣고 있으면 스크린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사실 <킨키 부츠>는 우리에게 익숙한 뮤지컬 <라카지>의 소재나 주인공들의 캐릭터 특성이 겹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훨씬 더 모던하고, 더 다양한 주제를 유쾌하게 다루고 있다. 그리고 <라카지>의 인물들보다도 훨씬 더 문제적이지만 친구로 만들고픈 사랑스런 캐릭터들이 나온다. 쉽게 말하자면 <킨키 부츠>의 드래그퀸 주인공은 <라카지>의 게이 주인공과 <시스터 액트>의 우피 골드버그를 합쳐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올해는 <모타운>, <피시>, <마틸다> 등의 기대작들이 쏟아지지만, <킨키 부츠> 역시 특유의 화려함과 대중성, 유쾌함에 힘입어 다음 토니 어워즈에서 여러 부문에 노미네이트가 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다만 작정하고 대중적으로 만든 티가 너무 나기 때문에, 작품성 면에서 점수를 얻는 다른 작품들과 겨루어 수상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6호 2013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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