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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영화를 잊게 하는 매력적인 무대 <캐치 미 이프 유 캔> CATCH ME IF YOU CAN [No.93]

글 |김슬기(매일경제 문화부 기자) 2011-07-05 5,510

1964년부터 1967년까지 팬암 항공기 조종사를 사칭하고 2백만 마일에 이르는 거리를 공짜로 비행한 남자가 있다. 심지어 이 남자는 같은 기간 조지아 병원의 소아과 수석 전문의는 물론, 루이지애나주의 차장검사로도 ‘위장취업’에 성공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어리고 성공적인 사기꾼. 해외 26개국과 50개 도시에서 위조수표를 4백만 달러치나 사용했던 프랭크 아비그네일 주니어는 이 모든 일을 19세 이전에 이뤄냈다.

 

 


이 매력적인 이야기를 눈 밝은 제작자들이 그냥 둘 리 없었다. 첫 번째 타자는 스티븐 스필버그. 흥행 보증수표 톰 행크스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투 톱으로 내세운 이 5,200만 달러짜리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이하
 캐치 미) 은 2002년 개봉해 3억 불을 벌어들이며 쏠쏠한 재미를 봤다.


10여 년이 흘러 쇼 제작자들이 다시 이 작품에 손을 댔다. 브로드웨이 뮤지컬로의 재탄생. 시애틀에서 2009년부터 트라이아웃을 거친 이 작품은 <헤어스프레이>의 홈코트였던 브로드웨이 닐 사이먼 극장에서 3월 11일부터 프리뷰를 시작했다. 초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고만고만한 신작들 사이에서 나쁘지 않은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데다 6월 12일 열리는 토니상에도 <북 오브 몰몬>, <시스터 액트>, <스코츠보로 보이즈> 등과 함께 베스트 뮤지컬상 후보에 오르는 등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첫인상부터 말하자면 <캐치 미>는 볼거리와 귀에 감기는 음악으로 무장한 전형적인 쇼 뮤지컬이다. 대중적이고, 즐길 거리가 풍부했다. 브로드웨이의 전통적인 팬인 중년 관객을 겨냥한 흔적이 역력해 보였다.

 

 


150분 여정의 시작은 비행기의 엔진 소리와 함께 열린다. 관객의 눈앞에는 구름이 둥둥 떠있는 파스텔 톤의 막이 기다린다. ‘위이이잉’ 굉음 소리가 들려오는 이곳은 1964년 12월 마이애미 공항. 소리를 지르며 프랭크를 쫓는 FBI요원들과의 숨바꼭질이 객석과 무대의 경계 없이 펼쳐진다. 영화와 마찬가지의 ‘액자 구성’. 시간은 거꾸로 거슬러 오른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했던 프랭크의 어린 시절에 대한 소묘가 이어진다.


“양키스가 왜 항상 이기는지 아니? 양키스 유니폼에 기가 꺾여서야. 핀스트라이프 무늬가 전부지.” 어린 프랭크의 인생을 바꾼 것은 아버지의 이 한마디였다. 그의 재능은 일찌감치 드러났다. 가세가 기울어 뉴욕에서 조용한 시골에 전학을 가게 된 프랭크는 전학 첫날부터 임시 교사를 자처한다. 무려 1주일이나 학생들을 속인 뒤 부모님이 학교에 불려오게 만들고야 만다. 아버지는 아들이 오히려 자랑스럽다. 갑작스레 부모님의 이혼이 찾아오자 낙담한 그는 뉴욕으로 도망친다. 수중에 쥔 돈은 단 2달러. 영화 속에서 프랭크의 첫 사기는 꽤나 어려운 난관을 거쳤다. 아버지에게 배운 현혹하는 말솜씨와 여성들을 공략하는 방법으로도 번번이 퇴짜를 맞은 뒤 팬암의 유니폼을 입은 뒤에야 ‘양키스 유니폼’의 힘을 얻는다. 하지만 뮤지컬은 이런 마술을 좀 더 쉽게 극화한다. 3.5달러의 티켓에는 모자란 2달러를 몇 마디 말로 4달러로 둔갑시키는 기술. 그러곤 일사천리다.


 

 

 

열여섯 소년의 눈에 스튜어디스와 팔짱을 낀 채 돌아다니는 항공기 조종사는 처음으로 도전할 만한 대상이 된다. 유니폼을 갖춰 입는 것만으로 파일럿이 된 그에겐 옷을 갈아입는 것만큼 쉬운 것이 신분 바꾸는 기술이다. 모든 것은 유니폼의 힘이라는 진리. 말 몇 마디와 상대의 눈을 현혹시키는 기술로 수백 달러를 빌리고 수표를 위조하면서 그는 점점 대담해진다. 점점 더 그럴듯한 ‘무장 해제 기술자‘가 되어간다. 그의 존재를 눈치챈 FBI 금융 수사 요원 칼 헨레티가 그의 족적을 밟으면서 극은 흥미진진해진다. 그가 이름을 조금씩 바꿔가며 수표를 위조하고, 파일럿에서 의사로 또 변호사로 신분을 바꿔가는 ‘사기의 기술’을 흥겨운 노래와 춤으로 엮어낸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상황이 풍부한 유머로 곁들여지는 것도 물론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마이애미 공항의 탈출 장면은 극에서 재현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묘사되던 이후의 이야기도 사라진다. 비행기 안에서 탈출에 성공하는 기상천외한 도주 행각도 마찬가지. 프랑스까지 사기범의 족적을 쫓아가기엔 극의 부피가 너무 커질 위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약혼자 브랜다의 집에서 정체가 탄로 나 마이애미 공항으로 달아나는 그 순간이 오프닝에서 벌이던 숨바꼭질의 장면이다. 6년여를 거슬러 현재로 돌아온 극은 흥겨운 커튼콜로 극을 마무리 짓는다.

 

 

 


원작 영화의 매력이 기상천외한 사기 행각을 지켜보는 재미에 있다면 뮤지컬의 매력은 쫓고 쫓기는 두 남자의 코미디 호흡에 있다. 숭고할 만큼 헌신적으로 프랭크를 쫓던 헨레티를 연기하던 톰 행크스는 일견 장 발장을 쫓는 자베르 형사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집요한 추적, 그리고 혀를 내두르게 하는 탈출. 그 긴장과 이완의 리듬이 영화적 완성도를 구현해 냈다면 뮤지컬은 오히려 ‘톰과 제리’의 추격전에 가깝다. 쇼에서는 기상천외한 위조의 수법을 보여주기보다, 쫓고 쫓기다 끝내 애정(?) 어린 관계로까지 발전하는 프랭크와 헨레티 요원의 ‘밀당(밀고 당기기)’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매년 크리스마스면 적에게 전화를 걸어 외로운 마음을 확인하기까지 하는 두 사람은 적당한 간격으로 웃음 폭탄을 만들어낸다.

 

두 배우의 연기 호흡이 극 완성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남자 주인공은 국내 미드 팬들에게도 눈에 익은 인물이다. 드라마 <가십걸>에서 네이트 아치볼드의 야망 넘치는 벤더빌트가의 사촌으로 등장한 바 있는 애런 티베이트(Aaron Tveit). <넥스트 투 노멀>로 알려진 이 금발의 배우는 귀여운 보조개를 지닌 소년 같은 모습으로 무대 위를 미끄러진다. 그가 연기한 사랑스러운 사기꾼 역할은 앞으로 많은 남자 배우들이 침을 흘리며 탐낼 만한 배역이었다. 늘씬한 여배우들 사이에서 바람둥이의 매력을 뽐내며 영화 속에선 대체 불가능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마저 머릿속에서 잊게 만든다. 그리고 노버트 레오 버츠(Norbert Leo Butz)의 연기엔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위키드> 등으로 토니상을 거머쥔 바 있는 그는 천연덕스럽고 능청스런 FBI요원을 120% 완성해낸다. 웃음의 대부분은 그에게서 빚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치 미>는 <헤어 스프레이>의 두 콤비, 연출가 잭 오브라이언과 작곡가 마크 샤이만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때>, <아담스 패밀리> 등 수십 편의 영화음악을 썼던 샤이만의 달짝지근한 음악은 스윙 재즈에서 록까지 종횡무진. <시카고>에서처럼 무대 2층에 자리 잡은 15인조 브라스밴드가 흥을 돋운다.
이 작품에서 무대 연출은 화려하기보단 기능적이다. 집에서 항공사로, 다시 병원으로 옮겨지는 장면전환은 무대장치를 통해서가 아닌 코러스들의 의상을 통해 이뤄진다. 10명의 늘씬한 금발 미녀들이 유니폼을 바꿔 입고 잘짜인 군무로 관객들의 눈을 현혹한다. 객석으로 배우가 등장하고 퇴장하기도 하면서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는 이 작품은 몇 번이나 극 스스로를 패러디하는 재치도 보여준다. 프랭크는 관객에게 “내 얘기 한번 들어보시겠어요?”라고 말을 걸며 해설자를 자처하고 마지막 곡인 ‘스트레인지 벗 트루(Strange But True)’에서 “이제 해피 엔딩의 시간. 쇼는 끝났고, 이제 진짜 삶으로 돌아갈 시간”이라고 노래한다. 열광적인 커튼콜의 한 가운데서 쇼가 끝났음을 넌지시 알려주는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쇼에서 영화의 잔상을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 정도면 충분히 영리한 각색이라고 칭찬해도 되지 않을까.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3호 2011년 6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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