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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누구를 위해 막을 올리나<시스터 액트> [No.70]

글 |구지혜{런던통신원] 2009-07-13 7,057

 

바야흐로 여름이다. 영국의 여름은 사계절 중 단연 최고의 계절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 속에 낮에는 적당한 바람이 코 끝 위로 행복을 실어다주고, 10시가 다 되도록 해가 지지 않아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

 

갖가지 문화예술 행사도 풍성한데 템즈강 주변에서는 매일같이 연주자와 배우, 미술가 등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거리 예술제가 열리는가 하면,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Shakespeare`s Globe Theatre)을  비롯한 오픈 에어 극장(Open  Air Theatre), 켄싱턴 공원 극장(kensington gardens theatre) 등 야외극장에서의 관극은 여름날  영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이벤트다.

이  여름, 영국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 또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지난 6월 12일 시작된 신작 뮤지컬 <시스터 액트(Sister Act)>다.

 

 

 

그대의 변신은 무죄 그러나 변질은 유죄
뮤지컬 <시스터 액트>는 1992년 영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당시 영화는 톡톡 튀는 개성만점 수녀들의 코믹 연기와 ‘I  follow him’, ‘Oh Happy  Day’ 등의 불후의 명곡으로 화제가 됐었다. 그러나 <시스터 액트>의 가장 큰 화제는  뭐니 뭐니 해도 델로리스 역할을 맡은 영화배우 우피 골드버그의 재발견이었다.  호소력 있는 그녀의 목소리와 노래,  그리고 눈썹만 움직여도 웃음이 절로 나는 유쾌 상쾌 통쾌한 연기는 수많은 영화 팬들을 행복하게 했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이번 뮤지컬 <시스터  액트>에서 배우가 아닌 프로듀서로서 공연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2009년판 <시스터 액트>는 30여 년이라는 세월의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가장 먼저  무대를 대폭 손질했는다. 막이 열리면 두 눈이 휘둥그레해질 만큼 빨갛고 파란 화려한 무대와 온갖 색깔의 조명이 눈부시다. 이곳은 델로리스가 일하고 있는 리노의 한 카바레. 우피  골드버그 대신 델로리스 역을 맡은 배우 파티나 밀러(Patina Miller)는  노래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에너지는 우피 골드버그보다 조금 덜 하지만 배우로서의 신체적 조건은 더 낫다.

영화 속에서 우피 골드버그가 친근하고 편안했다면 무대 위의 밀러에게서는 섹시한 몸매와 젊음이  물씬 풍긴다고 할까. 하지만 밀러가 만들어내는 델로리스는 매력 있지만 우피 골드버그의 델로리스에 비해 기름 쏙 뺀 감자칩의 맛처럼 뭔가 부족하다. 


<시스터 액트>는 영화에서 뮤지컬로 새롭게 태어나면서 주인공 델로리스의 변신을  비롯해서 달라진 것이 많다. 먼저  알란 맨켄(Alan Menken)의 새로운 음악과  글랜 슬래터(Glenn Slater)의 새로운 가사로 음악적 변화를 줬다. 오스카상을 여덟  번이나 수상한 작곡가 알란 맨켄은 <알라딘>, <미녀와 야수>를 비롯한 다수의 디즈니 뮤지컬 음악과 뮤지컬 <리틀 숍 오브 더 호러스>의 음악을 만든 유명 작곡가다. 글랜 슬래터 역시 알란 멘켄과 작품을 여러 번 같이 한 작사가다. 우피  골드버그는 한 텔레비전 토크쇼에서  <시스터 액트>의 새로운 노래들이 영화와는 차별된 점이 있다고 홍보한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본 <시스터 액트>의 음악은 그녀의 호들갑스러운 홍보가 무색하게  ‘빛 좋은 개살구’ 처럼 왠지  싱겁다.

알란 멘켄의 음악 스타일이 본래 친숙하고 편안하다고는 하나,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멜로디와 가사들은 새롭다는 느낌 대신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들을 잘 선별해서 모아놓은 듯 조잡스럽다. 무엇보다 그의 음악에서 새로움과 열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더 실망스럽다. “왜 이래. 아마추어처럼” 이라는 유행어처럼 알란 맨켄의 음악에는 프로정신이 결여되어 있다.

 

 


음악 다음으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무대의 변화다. 오프닝  신에서의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한 조명의 카바레 무대를 시작으로 거대한 성당을 그대로 무대 위로 옮겨놓은 듯 엄청난 규모의 세트와 우뚝 서있는 황금 옷을 입은 대형 성모상, 지하 동굴과 이층 분장실, 수녀원 기숙사, 거리 등 다채롭고 거대한 무대는 관객을 압도한다. 게다가 수녀들은  영화에서의 흰색, 검정색의 옷 대신 금빛과 은빛이 반짝거리는 색다른 수녀복을 입고 있다. 하지만 브로드웨이 극장가를 처음 갔을 때 눈에 보이던 약간은 비현실적인 커다랗고 영화 세트장 같은 간판과 거리 풍경들이 어떤 느낌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그와 꼭 닮은 <시스터 액트>의 무대가 예술적, 감각적, 미학적인 것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무대란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신기한 것’과 ‘호감 가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지만 분명히 다르다. <시스터 액트>의 무대는 신기하지만 호감은 전혀 가지 않는다. 단 한 가지. 2막에서 리노 일당과 델로리스, 수녀들 간의 쫓고 쫓기는 한판 승부가 펼쳐지는 영화의  편집된 장면을 보는 듯한 바둑무늬의 여러 개의 무대는 이례적으로 독창성이 엿보였다.  


전체적인 스토리와 극의 이미지가 달라졌는데, 먼저 델로리스를 돕는 형사, 에디는 영화와는 달리 자신감 없고 소심한 형사로  등장한다. 그는 델로리스를 오랫동안  짝사랑하다가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참  빤하고 작위적인 설정이다. 한편 영화 속에서 수녀원의 수녀님들, 특히 원장수녀님이 델로리스와 극단적인 두 세상(세상과 수녀원 안에서의 삶)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는 팽팽한 갈등을 보여준 데 반해, 뮤지컬 <시스터 액트>의 수녀원은 이 두 세계가 부딪치는 갈등 대신 델로리스라는 특별한 인물의 등장과 함께 축제의  현장이 되는데 초점을 맞춘다. 결국 무대,  노래, 의상, 그리고 스토리까지 무대 위에서 새로운 변신을 꾀하려는 시도는 좋았지만 본래 갖고 있던 <시스터 액트>의 좋은 점들이 감소된 꼴이다.  작품의 무한 변신은 무죄지만 변질은 유죄다.

 

 

 

‘우피 골드버그 효과’ 유통기간
리노의 카지노 카바레 무대에서 일하는 삼류 가수 델로리스는 리노 암흑가의 황제이자 그녀의 애인인 상크(shank)가 부하직원을 살해하는 모습을 우연히 발견하고 자신을 죽이려는 샹크 일당을 피해 도망간다. 그녀를 도우려는 형사 에디. 그는 어릴 적부터 델로리스를 짝사랑한 소심하지만 정의로운 형사다. 에디는 그녀에게 가장 안전한  곳은 수녀원밖에 없다며 그녀를 수녀원으로 대피시키고 이로써 델로리스는  가짜 수녀 행세를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델로리스가 들어간 수녀원은 형식과 율법만을 강조하며 바깥세상과 담을 쌓고 있다. 교인이라고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 명도 없고, 수녀님들로 구성된 성가대는 도저히 눈뜨고는 못 봐줄 정도로 형편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제난에 시달리는 교회의  한쪽 구석에는 채 완성되지 못한 성모 마리아상이 쓸쓸하게 누워있다. 델로리스는 처음에는 수녀원 생활에 불만이 가득하지만 차차 순수한 수녀들을  보면서 그녀들에게 동화된다.

 

그리고  자신의 노래 실력을 발휘해서 성가대를 부활시키고, 어려움에  빠졌던 교회를 다시 살린다. 한편  그녀를 쫓던 악당 샹크는 형사 에디 손에 잡히고 에디와 델로리스는 행복한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키스를 한다.

뮤지컬 <시스터 엑트>는 원작보다 한층 강조된 흥미 위주의 스토리와 화려함만이 돋보이는 거대한 무대,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 방식까지 모든 것이  전형적인 브로드웨이 상업 뮤지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인지 뭔가 영국의 기존의  다른 창작뮤지컬들과는 달리 마치 주소를 잘못 찾은 우편물이나 남의 옷을 빌려 입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처럼 어색하다. 극장에서 만난 영국의 골수 뮤지컬 팬들의 표정들 또한 어쩐지 떨떠름했다. 깐깐하고 까칠한 영국의 평론가들이 상업적이고 가벼운, 게다가 영국적인 것이 전혀 없는 ‘하하 호호’ <시스터 액트>를 달갑게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주요 언론사의 중견 평론가들은  <시스터 액트>를 ‘가볍고 쓰레기 같은 작품’, ‘예술성이라곤 전혀 찾아볼 없는 가치 없는 뮤지컬’ 또는 ‘원작 영화를 망쳐버린 문제작’이라고 악평했다. 만일 <시스터 액트>가 브로드웨이에서 초연을 했더라면 이 정도로 홀대 받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시스터 액트>가 웨스트엔드의 전통 대형 극장,  팔라디움 (Palladium)에서 월드 프리미어, 초연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제작비 때문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브로드웨이보다 적게 드는 웨스트엔드에서 초연을 하고 어느 정도 홍보가 되고 난 뒤 브로드웨이, 고향으로 돌아갈 계산을 하고 만들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피 골드버그’라는 한 배우의 힘이 공연 전체를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관객들의 <시스터 액트>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극장 앞에서 만난 많은 관객들은 한결같이 오리지널 영화가 준 좋은 인상과 함께 <시스터 액트>를 찾은 이유를 단연 우피  골드버그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피 골드버그는 자신의 강한 이미지가  뮤지컬에 영항을 미칠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공연이 올라가기 전 나름대로 여러 가지 작전을 폈다. 

 

 <시스터 액트>의 포스터에는 주인공 수녀들의 사진 대신 카툰처럼  그려진 심플한 만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데 우피 골드버그에 따르면 “나의 이미지가 영화에서 너무 강하기 때문에  새로운 뮤지컬의 이미지를 상쇄시킬 것을 우려해서 아예  배우들의 사진을 포스터 속에 넣지  않았다” 고 한다. 반면 우피 골드버그는 프로듀서로서 공연의 홍보를 위해 온갖 토크쇼에서 마치 자식을 소개하는 엄마처럼 <시스터 액트>를 소개한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 이상한 점은 자신의 이미지가 강해서 포스터에서 카툰 이미지를 썼고,  자신과는 다른 이미지의 젊은 배우로 델로리스 역을 대치했다는 그녀가 자신의 옛 이미지를 이용해서 작품을 다시 홍보하려 했다는 것이다. 어쩐지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이는 행동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우피 골드버그의 홍보 효과는 대단했고 관객들은 <시스터 액트>를 보기 위해 극장에  몰려들고 있다.

하지만 <시스터 액트>의 진짜 문제점은 ‘우피 골드버그 효과의 일관적이지 못한 방향성’이 아니라 공연 자체의 본질에 있다. 신나고 경쾌한 음악과 춤, 게다가 쫓고 쫓기는 총격 신과 사랑, 거기에 강렬한 비주얼의 거대한 무대까지, <시스터 액트>는  일반적으로 관객들이 좋아할 법한 관객 흥행몰이의 모든 요소는 갖췄다. 하지만 웃고 떠드는 공연장 속에 여운은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영화가 갖고 있었던 인간애에 대한 그리움과 인간의 본성, 도덕성 앞에 선 개인적 갈등과 혼동은 뮤지컬 속에서 철저하게 묵살돼 버렸다. 마치 뮤지컬  <헤어스프레이>가 원작 영화 속에서 다뤘던 1960년대 당시 미국 사회의 가장 민감했던 흑백문제를 용기 있고 과감한 메시지로 꺼냈지만, 뮤지컬로 만들어지면서 이런 심각한 이슈들을 말랑말랑한 상업주의 뮤지컬의 문화 사회적 도구(Social and cultural  commodification)로서  이용했듯이. 영화에서는 델로리스가 수녀원에 엉겁결에 들어온 뒤 수녀원장과 수녀들의 모습 속에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자기 안의 선과 인간적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것은 물론이요, 형식과 율법만이 강조된 극단적인 수녀원 속에  훈훈한 사랑을 전해 줌으로써 수녀들과 델로리스, 양쪽 모두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따뜻한 드라마와 감동이 있었다. 

 

 하지만 델로리스에게 인간적인 갈등과 종교적 깨달음, 타인에 대한  배려까지 알게 해주던 원장 수녀님은 그녀의 존재를 무색하게 할  만큼 처음부터 델로리스에게 리더 자리를  망설임없이 내어주고 그저 뒷짐 지고  앉아있을 뿐이다. 한술 더 떠서  <시스터 액트> 속의 모든 수녀들은 마치 그동안 모두 수녀원을 뛰쳐나가고 싶어서 누군가 새로운 구세주를 기다린 불만투성이들처럼 아무런 갈등도 의구심도 없이 너무나  급작스럽게 델로리스를 따른다. 거의 추앙하는 수준이다.  이렇게 본질을 무너뜨리는 공연 수준은 극적 갈등의 미비함과 서툰 플롯 구성이 원인인데, 열성적으로 노래하는 배우들의 땀과 노고, 그리고 열심히 한 흔적이 역력한 안무가 아쉬울 뿐이다.

 

우피 골드버그만을 믿고 가라고 하기엔  <시스터 액트>는 어쩐지 너무  벅차 보인다. 우피 골드버그의 유통기한이 언제까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작품은 ‘뮤지컬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로서의 가치가 중요한가 아니면 엔터테인먼트 이상의 무엇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가’라는 뮤지컬의 존재가치에 대해 근원적(根源的) 질문을 다시 하게 만든다. 엔터테인먼트로서 흥행 이전에 인간적인 따스함을 전해줄 수 있을 때 그 공연은 관객들에게 더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관객은 그저 표값을 낸 소비자가 아닌, 하나의 뮤지컬을 비로소 완성시켜주는 피붙이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제2의 <빌리 엘리어트>’를 꿈꾸는 사람들


<빌리 엘리어트>가 토니상 열 개 부문을 휩쓸면서 웨스트엔드 뮤지컬 시장은 여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쳐있다. 이런 분위기에  맞춰 하반기에는 <오페라의 유령  2>를 비롯하여 많은 신작 뮤지컬들이 ‘제2의 <빌리 엘리어트>’를 꿈꾸며 관객들을 만날 준비가 한창이다. 하지만 ‘제 2의 <빌리 엘리어트>’를 꿈꾸기에는  <시스터 액트>의 정체성이 모호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과거 속 첫사랑과의 재회를 하기 전후의 마음, 만나전의 설렘과 기대, 그러나 만남 뒤의 알 수 없는 상실감처럼 차라리 <시스터 액트>도 옛 영화 속 향수를 간직하는 게 나을 뻔했을지도 모른다.  <시스터 액트>는 단기적인 흥행성은 보장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왜 내 마음은 이리도 쓸쓸한 것일까?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시스터 액트>는 막을 올리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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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 액트(Sister Act)>는 현재 런던의 팔라디움(Palladium) 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티켓 구입 문의는 https://www.sisteractthemusic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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