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계에서 활약하는 파워 우먼들 중
이들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형제는 용감했다>와 <리걸리 블론드>에서
호흡을 맞추며, 유쾌한 웃음과
뜨끈한 감동을 동시에 전했던
장유정 작가 겸 연출가와
장소영 음악감독이 그들이다.
젊은 나이에 이미 많은 히트작을 내놓았고
워킹맘이라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워커홀릭인 그녀들이
다시 한번 힘을 합쳐 <그날들>을 내놓는다.
장소협찬 | 아르페이스엔(02-318-1336)
<그날들>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가 가수 김광석의 노래를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점이고, 전작 <형제는 용감했다> 역시 그 시작은 김광석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왜 김광석인가?
장유정 어려서부터 김광석을 무척 좋아했다. <형제는 용감했다>를 만들기 전에 PMC프러덕션과 주크박스 뮤지컬을 계획하고 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 식 드라마에, 각각 이문세와 박진영, 이승철의 음악을 붙여 세 편의 작품을 썼는데, 결국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무산됐다. 마지막으로, 김광석이라면 써볼 자신이 있다고 해서 나온 게 <형제는 용감했다>의 초고였다. 그 역시 저작권 문제로 주크박스 뮤지컬이 되진 못했고, 새로 음악을 작곡해 창작뮤지컬을 완성했다. 이번에 다시 김광석 주크박스 뮤지컬 창작을 제안받았을 때, 선뜻 하겠다고 했다. 주크박스 뮤지컬 몇 편을 쓰면서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을 알게 됐지만, 그래도 김광석 뮤지컬이라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계획돼있던 영화 작업 일정이 딱 적기에 미뤄지면서 <그날들>을 쓰게 됐다.
장유정 연출은 김광석 음악을 즐기던 세대도 아닌데, 왜 그렇게 좋아했나?
장유정 좋아하는 데 이유 없잖나. 목소리만 들어도 좋았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달까. 내가 맑아지고 차분해지는 듯했다. 중학생 때부터 다양한 음악을 즐겨들었는데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었다.
장소영 그저 좋아하기만 하다가, 왜 그의 음악을 좋아할까 생각해보니, 그의 목소리와 노래들이 한국인의 정서를 자극하는 것 같더라. 김광석이 노래 부를 때 연주했던 하모니카와 기타, 그 소리들은 추억과 낭만을 불러일으키고. 게다가 지금 이 세상에 없고, 미스터리한 죽음을 맞았다는 점에서도 애잔함을 느끼게 하는 뮤지션이다.
장유정 <그날들>을 쓸 때 그의 음악을 반복해 들었는데, 그의 노래만 들으면 술 생각이 나는 거다.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대학 초년생 때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살면서 이번 작업 때 술을 가장 많이 마신 것 같다. (웃음) 집필할 때는 물론이고, 취재 겸 안부 인사 겸 김광석과 함께했던 동료 뮤지션들을 만나서도 엄청 마셨지. 그 세대의 선배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지냈고 어떻게 놀았는지 이야기 많이 들었다. 덕분에 내가, 좋게 말하면 성숙해졌고 나쁘게 말하면 좀 늙었다. (웃음)
<그날들>은 청와대 경호원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어떻게 소재를 얻었나?
장유정 영화 <김종욱 찾기> 홍보차 지방에 갈 때나 전국체전 개회식 연출을 맡았을 때 경호원들을 많이 접했다. 눈여겨봐 뒀다가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두었다. <그날들>의 창작 의뢰를 받은 후, 그동안 생각해두었던 소재들을 하나씩 그의 음악에 대입해보았다. 내가 갖고 있던 오케스트라 이야기랑 청와대 경호원 이야기, 그리고 실종 소재, 각기 다른 세 가지 소재를 섞어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결국 다른 이야기들은 빠지고 수정돼서, 경호원 이야기만 남았다. 경호원은 누군가를 지키는 임무를 띤 사람들이다. 김광석이 죽은 데 대해서, 나는 팬으로서 일종의 마음의 짐을 갖고 있었다. 그의 친구들을 만나보니, 그들이 그런 말을 입 밖에 꺼낸 것은 아니지만, 그들 역시 김광석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을 갖고 있더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 그리고 미안해하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장소영 김광석의 명곡들을 편곡하는 것도 정말 어렵지만, 그 이전에 이런 드라마에 김광석의 노래를 붙이려고 시도했다는 게 조금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떻게 이 내용에 이 노래를? 그런데 이상한 건, 무척 잘 어울린다는 거다. 김광석이 등장하지도 않고 김광석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는데도, 김광석이 느껴진다. 뮤지컬 넘버가 아니라 드라마 속에서 김광석이 느껴진다는 게 신기하다.
장유정 하지만 장 음악감독의 첫 반응은 저렇지 않았다. 대본을 보고 내뱉은 첫마디가 ‘장유정 작품 같지 않은데?’였다. 별로였다는 의미지. (웃음) 그렇게 솔직히 말씀해주시는 게 나는 정말 좋다. 장 음악감독이 대사가 너무 많다고 해서, 하루 만에 열 페이지 분량을 덜어냈다. 내가 그만큼 그녀를 신뢰한다.
장소영 에이, 내가 얼마나 알겠나. 내가 잘 알면, 어디가 어떻게 부족하다고 콕 집어서 말했겠지. 그저, 대사가 많다고 했잖나. (웃음)
장유정 나도 마찬가지다. 음악에서 장조가 어떻고 박자가 어떻고 그렇게 말 안 하지 않나. 그냥 음악이 좀 이상하다, 그런다. (웃음) 그런데 중요한 것은, 비전문가가 그렇게 말해도 전문가는 알아들어야 한다는 거다.
유명 뮤지션의 음악을 활용한 주크박스 뮤지컬에 대한 부담감이 컸을 것이다.
장유정 7080 또는 8090 식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히트곡들을 모은 것도 아니고, 김광석의 히트곡이 아바처럼 엄청 많은 것도 아니다.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곡이 고작 48개였다. 저작권 때문에 사용하지 못한 곡이 10개 정도인데, 그걸 다 가져다 썼어도 50개가 넘는 정도다. 기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곡의 수가 무척 적어서 어려움이 컸다.
장소영 게다가 그중 빠른 곡은 한두 개에 불과하다. 그것도 과거엔 빠른 곡이었는지 몰라도, 지금 들어보면 전혀 빠르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뮤지컬 음악은 영상에서보다 훨씬 더 호흡이 빨라야 생동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김광석의 노래는 대부분 감성적인 멜로디에, 박자가 느리다 보니 관객들이 공연 보다 자기 십상이겠더라. 하지만 최소한의 양질의 재료로 아주 맛있는 요리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렵기 때문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크다.
<그날들>의 등장인물들이 뮤지션도 아니고, 보통의 북 뮤지컬처럼 음악이 드라마를 이끌어야 하니 극과 노래를 연결하는 작업이 무척 어려웠겠다.
장유정 노래 앞뒤에 대사만 붙인다고 주크박스 뮤지컬이 되는 게 아니지 않나. 노래의 시작이 드라마랑 맞는다 해도 끝날 때 안 맞기도 한다. 아는 노래가 나오는 순간 관객들이 드라마를 놓아버리게 될까봐, 어떻게 관객들을 드라마에 붙잡아 둘지 고민이 많았다. 선곡하는 데만 3개월이 걸렸다. 노래들을 엄청나게 듣는 수밖에. 김광석 노래를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모르는 노래도 많더라. 일단은 곡 분석부터 했다. 그건 장소영 음악감독에게 배운 거다. <형제는 용감했다>을 함께할 때 보니, 음악을 분석하고 그래프로 만들더라. 와, 이렇게까지 통계화하다니! 그걸 보고 따라한 거지. 각 곡들의 가사 내용, 리듬과 빠르기, 정서 등을 전부 분석해서 그중에서 작품에 넣을 곡들을 골랐다. 제약이 많으면 한계가 주는 자유로움이 있달까.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이 재미있다. <아메리칸 이디엇>은 하물며 한 앨범의 곡으로만 만들지 않았나. 언젠가는 그런 작업도 해보고 싶다.
김광석의 음악이 워낙 좋아서, 음악 연습을 하다보면 배우들도 감상에 젖을 것 같다.
장소영 그렇지 않다. 극 안에 넣었더니, 다들 이걸 뮤지컬 넘버로 생각하더라. 사실 <그날들>이 김광석에 젖어 있는 작품도 아니고, 각자의 캐릭터에 빠진다면 모를까 딱히 김광석 노래라고 인식하지 않는 듯하다. 원곡들이 뮤지컬의 드라마에 잘 어울려야 하면서도 원곡에 대한 관객들의 추억을 건드리지 않아야 해서, 그 경계를 지키기가 무척 어렵다. 위험한 말일 수도 있지만, 김광석을 기리는 마음으로 편곡하는 한편, 김광석과 내가 같은 음악가로서 대등하게 만났다는 생각으로 결과물을 내고 있다. 그래서 원곡에 종속돼 단순한 편곡만 한 것은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다. <그날들>이 김광석의 음악으로 만들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작품을 보는 동안 관객들이 김광석을 의식하기보다는 극에 몰입해 봐줬으면 좋겠다.
이번 작업을 통해 이전에도 알던 김광석 음악에 대해 재발견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장소영 김광석의 음악이 사랑받던 시절이 불과 20여 년 전이다. 그런데 음악의 템포는 거의 두 배 정도 빨라졌다. 김광석의 미디엄 템포는 지금의 미디엄 템포와는 무척 큰 차이가 난다. 음악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속도도 얼마나 빨라졌나. 과연 빠르게 사는 게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나무’라는 곡은 ‘나아는~ 소리쳐어~ 부르지이~ 않아도 좋소~오~~’ 한 문장 부르는 데 어찌나 오래 걸리는지 요즘 사람들은 속이 터질 거다. 그런데 그게 매력 있다.
하지만 원곡이 무대에서 처지거나 심심하게 들리지 않도록 만드는 장치가 필요할 텐데?
장유정 김광석 노래가 대부분 미디엄 템포인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지금 우리가 느끼기에는 거의 안단테다. 이 곡들로도 속도감을 느낄 수 있도록, 미스터리 구성의 드라마를 쓴 것이다. 비밀스러운 사건의 전말을 하나씩 벗겨 나가면서 관객들이 ‘그다음 사건은 어떻게 되나?’ 궁금하도록 드라마가 긴장감 있고 속도감 있게 전개되니, 음악이 굳이 그렇게 빠르지 않아도 된다. 드라마에서 누군가가 사라지고 그들을 찾는 상황들이 반복되니, 음악은 반대로 조금 느려도 괜찮겠다 생각했다. 음악이 나올 때 관객이 쉬어갈 수 있는 거지. 그런데 뮤지컬 넘버로서 들을 땐 원곡과 비슷한 템포라고 생각했는데, 음악만 유심히 들어보니 원곡에 비해 엄청 빠르게 편곡된 곡도 있더라. 하지만 뮤지컬 안에 들어갔을 땐 원곡을 훼손하지 않아 보이게 했다는 게 중요하다.
장유정 연출은 영화감독으로도 활약하다 신작 뮤지컬은 오랜만에 내놓는다.
장유정 뮤지컬 배우와 스태프들이 5년 전보다 훨씬 더 바빠졌고, 관객들의 기대치도 더 높아졌더라. 그렇다면 이럴 때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는 게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영화 작업 경험을 살렸다. 영화의 경우 프리 프로덕션의 단계가 무척 중요하다. 아무 데나 가서 곧바로 찍을 수는 없으니, 촬영하기 전에 공간 배치나 배우와 카메라의 움직임을 미리 다 계산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현장에서 달라지는 부분이 엄청 많지만. <그날들>도 본격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 연출부와 함께 큰 그림을 미리 그렸다. 그래서 대본 리딩을 한 후에 곧바로 1막 런스루를 했다. 미리 만들어놓은 전체적인 동선대로 해본 거다. 무대 세트나 음악이 완성되기 전에도, 일단 메트로놈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안무의 전체적인 윤곽도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본이나 음악에서 수정된 부분이 많다. 하지만 배우와 스태프들의 의견을 수렴해 수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큰 줄기를 유지하면서 각 장면에서 수정하고 보완해야 할 부분들을 다듬어나갔다.
장유정과 장소영 콤비의 활약도 오랜만이다.
장유정 이번에 함께하는 배우들이 무척 열정적이어서 감사하지만, 장소영 음악감독처럼 호흡이 잘 맞는 파트너가 있다는 게 정말 큰 힘이 된다. 새벽 시간에도 아랑곳 않고 전화 통화를 하곤 한다. 마치 전쟁터에서 보초 근무할 때 교대할 동료가 있다는 든든함이 느껴진달까. 그동안 뮤지컬 산업이 성장해 사람들이 다들 무척 바쁘더라. 신작 창작뮤지컬을 만드는데, 바쁜 사람들이 모여 띄엄띄엄 일해서는 큰일 나겠다 싶었다. 연출가와 음악감독이 오직 이 작품에만 올인할 수 있는 상황이라 다행이다. 연습 시간은 한정돼 있고, 배우들은 바쁜 데다 캐스트 수도 많아서 효율적인 연습 일정표를 짜는 게 엄청 큰일이다. 그런데 배우들 모두 열심히 하고, 가끔은 나보다 더 투지가 불타올라 놀랍다. 어떻게 보면 연출가와 음악감독이 엄마와 아빠 같은 역할인데, 우리가 서로 잘 맞는다는 건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장 음악감독에게 감사하다. 음악 작업하기 무척 어려운 작품을 도와달라고 부탁해서 큰 빚 졌다.
장소영 아유, 지금은 오히려 권유해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어렵지만 무척 재밌고, 나한테 굉장히 중요한 작품으로 남을 듯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5호 2013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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