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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브로드웨이는 지금 안전점검중! [No.89]

글 |지혜원(공연칼럼니스트) 2011-03-16 4,972

지난해 12월 신작 뮤지컬 <스파이더맨>의 공연 중 한 배우가 추락해 중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다. 역대 최대 규모의 공연에서 벌어진 있을 수 없는 사고를 둘러싸고 관계자들은 나날이 현란한 볼거리에 치중하는 브로드웨이 공연의 안전성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뉴욕을 날지 못한 스파이더맨
지난해 12월 20일 브로드웨이의 신작 뮤지컬 <스파이더맨 턴 오프 더 다크> (Spider-Man Turn Off the Dark, 이하 스파이더맨)의 프리뷰 공연 중 스파이더맨의 공중 액션 장면을 연기했던 배우 크리스토퍼 티어니 Christopher Tierney 가 약 1.8m(30feet) 높이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사고는 2막 후반부에 스파이더맨이 연인인 메리 제인을 구출하기 위해 브룩클린 브릿지에서 뛰어 내리는 장면에서 와이어 케이블이 끊어지며 발생했다. 사고를 목격한 한 관객은 처음에는 이 역시 공연의 일부인 줄만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바로 누군가의 비명 소리와 함께 “911에 전화하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서야 방금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믿을 수 없는 사고임을 알았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부상당한 티어니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며 수술 후 수일 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현재는 퇴원해 물리치료를 받으며 안정을 취하고 있다. 병원에서는 약 3달 정도의 후속 치료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사고 이튿날인 12월 22일 저녁 공연과 23일 낮 공연을 취소한 <스파이더맨>은 23일 저녁부터 공연을 재개했으나 여전히 위험요소가 곳곳에서 지적되고 있기에 프로덕션 자체의 안전성 문제에 대해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부분은 <스파이더맨>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리허설 도중 한 배우는 두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으며, 단체 티켓 판매를 유도하기 위한 그룹 세일즈 이벤트 공연에서는 공중 액션을 담당하던 배우 케빈 어빈 Kevin Aubin이 양 팔목이 부러지는 사고가 있었다. 또한 아라크네 Arachne 역을 맡고 있는 나탈리 멘도자 Natalie Mendoza는 11월 28일 첫 프리뷰 공연 중 백스테이지에서 무대장치를 지탱하는 로프에 머리를 맞아 부상을 당한 바 있다. 그녀는 12월 30일 <스파이더맨>에서 공식 하차했으며, 줄리 테이무어의 영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로 알려진 티비 카피오 T.V. Carpio 가 아라크네 역을 대신하고 있다. 또한 멘도자가 부상을 당했던 첫 프리뷰 공연은 기술적인 문제점들이 속속 불거지면서 무려 5번에 걸쳐 공연이 중단되었다 재개되는 헤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첫 프리뷰 공연은 무려 3시간 30분여 동안 공연되었다. 수차례에 걸친 사고 이후 <스파이더맨>의 프로듀서 마이클 콜 Michael Cohl 은 “이 작품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안전이 가장 최우선”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하지만 워낙 복잡하고 위험한 액션 장면이 주요한 요소를 차지하는 작품이기에 공연 관계자들의 우려는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전미 배우조합인 액터스 에쿼니 어소시에이션(Actors Equity Association, 이하 배우조합)은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배우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으며, 몇몇 유명 배우들 또한 <스파이더맨>의 프로듀서와 연출자에게 유감을 표명하며 강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배우의 안전, 배우가 지킨다!
<스파이더맨>의 연출자 줄리 테이무어는 사고 이튿날 이번 사고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배우와 스태프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 하지만 그녀의 입장 표명만으로 동료 배우들을 안심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스파이더맨>의 사고가 일어나자 몇몇 브로드웨이 배우들은 속속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특히 <렌트>의 오리지널 캐스트로 유명한 아담 파스칼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줄리 테이무어를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 역시 지난 1998년 <아이다>의 아틀란타 트라이아웃 공연 중 무대장치 이상으로 부상을 당했던 경험을 갖고 있기도 하다. <넥스트 투 노멀>로 토니상을 수상했던 앨리스 리플리 Alice Ripley 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누군가가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것이냐?”는 다소 과격한 표현으로 프로듀서와 제작진의 안전불감증에 대해 의구심을 들어냈다. 그녀는 이번 사태가 결코 있어날 수 없는 일임을 강조했다. <나인 투 파이브>, <치티 치티 뱅뱅> 등에 출연했던 마크 쿠디쉬 Marc Kudisch 또한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료들이 보다 안전한 상황에서 일하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사고의 수습에는 배우조합과 함께 뉴욕주 노동관리국(New York State Department of Labor)과 미국 근로안전·건강관리국(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이 함께 나섰으며, 이들은 이번 사고가 명백한 `인재(human error)”임을 밝혔다. 배우들이 이처럼 격분한 이유는 일차적으로 배우와 스태프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지 않은 프로듀서와 제작진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였다. 또한 조합원의 안전을 위해 작품의 위험요소를 사전에 보다 세심하게 검토하지 못한 배우조합에도 일부 책임을 묻고 있었다. 
<스파이더맨>에 대한 발언 이후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아담 파스칼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연출자는 항해에 나선 선원들을 책임져야 하는 선장”과도 같은 존재임을 강조하며, 줄리 테이무어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으나 그녀가 프로덕션 전체를 책임지지 못해 생긴 이 사고에 대해 강한 유감을 피력했다. 그는 자신이 당했던 사고의 기억을 떠올리며, 사고 이후 즉시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장면을 삭제했던 <아이다>의 프로듀서와 제작진을 예로 들었다. 무대 위 배우의 안전이 관객의 눈을 현혹시키는 화려한 볼거리보다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배우가 최우선인 브로드웨이 공연의 안전성 심사
<스파이더맨> 사고를 둘러싼 불똥이 배우조합에게까지 미치자 지난 1월 2일 배우조합의 대표 닉 와이만 Nick Wyman은 이번 사건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사고 이후 부상 당한 크리스 티어니와 수 차례에 걸쳐 지속적인 연락을 취하고 있음을 밝히며 배우조합이 이번 사고의 수습을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또한 와이만은 이번 사고로 인해 티어니의 앞으로의 커리어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염려했다. 특히 언론에서 그를 “스턴트맨”이라 지칭하는 것을 바로잡았는데, 그는 스턴트맨이 아니라 다수의 작품에서 활약했던 배우이고 무용수임을 분명히 했다. (실제 크리스 티어니는 <무빙아웃>의 미국 내 투어 프로덕션, <더티 댄싱>의 토론토 프로덕션 등에 출연했다.) 덧붙여 와이만은 “공연이라는 장르의 즐거움 중 하나는 배우와 관객이 함께 나누는 현장성과 에너지일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하지만 이를 위해 “누군가는 만약에 발생할 수 있는 배우의 안전사고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어야 하며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그러나 와이만은 몇몇 배우들의 격한 반응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동료 배우의 사고를 남의 일처럼 여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내비치는 점은 이해할 수 있지만, 배우조합에까지 지나치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각에서는 배우조합의 차원에서 더 이상 <스파이더맨>의 공연을 지속할 수 없게 해야 한다며 작품의 안전성을 사전에 충분히 점검하지 못한 조합의 책임을 묻는 의견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배우조합은 조합원(조합에 소속된 배우)을 대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프로듀서·극장주 협회와 표준 계약서의 조항들을 협의하고, 배우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연기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이다. 표준 계약서는 브로드웨이 공연, 오프 브로드웨이 공연, 투어 공연은 물론, 워크샵, 쇼케이스, 리딩 등 작품의 개발단계에 참여하는 배우들을 위해 상세하게 구분되어 고용인(제작자)와 피고용인(배우) 간의 기본적인 고용 지침들을 제공한다. 하지만 배우 조합의 역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브로드웨이 무대에 공연이 올라가기 전 배우조합의 스태프들은 각 작품의 대본을 숙지하고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에 대비해 위험 요소를 가려내는 작업을 한다. <스파이더맨>과 같은 공중 스턴트 장면은 물론, 불이나 연기를 사용하는 장면, 난이도 높은 안무장면 등 배우에게 위험이 가해질 수 있는 모든 장면은 사전 검토 작업을 거치게 된다. 또한 조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경우 작품의 연출가와 디자이너, 프로듀서들과의 협의를 통해 배우와 관객들의 안전이 확보될 수 있도록 위험한 장면들을 조율한다. 최종적으로 배우조합의 담당자는 연습실에서의 마지막 리허설과 극장에서의 테크 리허설을 관람하며 모든 장면이 배우에게 안전한지를 최종 점검한다. 와이만에 따르면 <스파이더맨>의 경우에도 폭스우즈 극장에서의 리허설 기간 내내 배우조합의 담당자가 상당 시간을 배우와 스태프들과 함께 머물며 여려 차례 점검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훨씬 큰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었을 것임을 강조했다. 또한 와이만은 배우조합의 스태프들이 수십 년 간의 경험을 토대로 배우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각도로 노력을 계속하고 있지만 공연의 스케일이 점차 커지고 무대장치 또한 점점 복잡해지기 때문에 작품의 예술성을 유지하면서 배우의 안전을 도모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고 이야기한다. 이번 <스파이더맨> 사고에 대해서는 향후 미국 근로안전·건강관리국, 뉴욕주 노동관리국, 무대 스태프 조합(Local 1) 등과 함께 프로덕션 측과의 조율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스파이더맨은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까?
누구나 “브로드웨이”하면 대부분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뮤지컬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기존의 연극적인 요소에 춤과 노래가 결합된 형태이다 보니 아무래도 볼거리에 치중하게 되는 것이 전반적인 흐름이 되어왔다. 과거에는 <42번가>나 <코러스 라인> 등 여러 명의 앙상블 배우의 군무를 전면에 내세운 고전적인 스타일의 공연이 인기를 끌었고, 80년대 메가 뮤지컬 시대를 지나오면서 보다 복잡한 무대장치를 도입한 작품들이 관객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90년대 이후 디즈니 시어트리컬이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 등의 애니메이션을 무대에서 재현하는 데 성공한 이후 영화나 애니메이션이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점차 증가해왔다. 이제는 한 시즌에 개막하는 작품 중 오리지널 뮤지컬(영화나, 소설, 애니메이션 등 다른 소스에 기반을 두지 않고 오로지 뮤지컬을 위해 창작된 작품)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기존 흥행작품의 이름값에 기대어가려는 제작자의 안전한 선택이 꼭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잘 만들어진 컨텐츠가 여러 가지 통로로 유통되는 것은 문화예술산업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고무적인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미 영상을 통해 접했던 컨텐츠의 경우 제작진은 관객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무대에서 구현하기 힘든 장면의 무리한 시도를 감행한다는 점이다. <스파이더맨>의 제작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많은 브로드웨이 관계자들의 첫 의구심은 대체 어떠한 무대장치로 시종일관 도심 속을 날아다니는 `스파이더맨`을 구현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물론 공중 액션이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스파이더맨>이 공중 액션 장면만 무려 27개 장면에 이를 만큼 난이도 높은 액션과 특수 효과가 극의 흐름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스파이더맨>은 그룹 U2의 보노 Bono 와 더 에지 The Edge , <라이온킹>의 연출가 줄리 테이무어가 참여한다는 사실 이외에도 브로드웨이 역사상 최고의 제작비인 약 7백억 원($65million)의 제작비가 소요되는 초대형 뮤지컬로 프리뷰 개막 이전부터도 공연 관계자와 관객들의 이목이 집중되어왔던 작품이다. 엄청난 제작비의 확보를 위해 이미 수 차례에 걸쳐 개막이 미루어져 오기도 했던 이 작품은 오는 2월 정식 개막을 앞두고 있던 상황(<스파이더맨>의 공식 개막일은 공연을 더 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최근3월 15일로 재조정되었다.)에서 아직 채 관객과 평단의 평가가 내려지기도 전에 작품의 안전성 문제로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티켓 판매 현황만으로는 아직까지는 크게 사고의 여파에 영향을 받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하지만 7백억 원의 제작비를 거둬 들이기 위해서는 최소 5년 이상 수익을 내며 장기 공연이 가능해야 한다. 계속되는 악재에 프로듀서와 제작진들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줄리 테이무어를 비롯한 제작진이 총 4개월여를 투자하는 프리뷰 기간 동안 이제까지 드러난 작품의 약점들을 영리하게 보안하여 공연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 수 있도록 또 한편의 브로드웨이 흥행작을 만들어내기를 기대해본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9호 2011년 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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