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노트르담 드 파리>, <로미오와 줄리엣>, <십계>로 이어진 프랑스 창작뮤지컬 제작 열풍은 <스타마니아> 이후로 맥이 끊어지다시피 했던 프랑스 뮤지컬의 명성을 화려하게 되살렸다. 그 흐름에 편승 혹은 계승하기 위해 <어린왕자>, <로쉬포트의 아가씨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의 대형 뮤지컬들이 계속 제작되었지만 불행히도 작품성과 상업성 모두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고, 몇몇 소극장용 작품들을 제외한 대형 프랑스 뮤지컬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 빈 자리를 채운 것은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불행이라면 불행인) 브로드웨이 뮤지컬이었다.
이전까지 영미권 음악극이라고 외면해 왔던 뮤지컬 장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프랑스 관객들을 그대로 놓치기 아쉬운 제작자들이 ‘창작’보다는 ‘수입’한 뮤지컬을 제공하는데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나 <페임> 등과 같은 브로드웨이 대표 흥행작들을 시작으로, 밥 포시의 에로틱한 안무로 유명한 <카바레>도 연극 연출가이자 영화 <아메리칸 뷰티>, <어웨이 위고> 등을 연출한 샘 멘데스의 지휘 아래 1994년 리바이벌한 버전으로 파리 모가도르 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예상을 뛰어넘는 관객들의 열렬한 반응에 고무된 제작자들은 앞 다투어 <헤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지붕 위의 바이올린> 등의 브로드웨이 고전들을 프랑스어 버전으로 발표했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중소극장에서 60회 내외의 공연에 그쳤지만, <카바레>에 이어 모가도르 극장에 2007년 10월 4일에 초연한 <라이온 킹>은 2010년 7월말까지 3년여에 걸쳐 총 1백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메가 히트를 기록했다(다른 작품들과 달리, 지방 공연 및 일부 프랑스어권 국가(벨기에, 스위스 등)로 투어공연을 하지도 않았다). 이런 상업적인 성공과 함께 2008년에는 프랑스에서 연극-공연 부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몰리에르 시상식에서 음악극상과 조명상, 의상상을 받기도 했다. 대부분의 프랑스 뮤지컬들처럼 <라이온 킹> 출연자들 중에도 유명한 배우는 아무도 없었다. 무파사를 연기한 지-리, 스카 역의 올리비에 브레트만, 심바 역의 제레미 폰타네가 상당히 인상적인 연기와 노래 실력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몰리에르상의 꽃이라 할 만한 남녀주조연상을 받는 데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상연된 뮤지컬 중에서 이렇게 여러 부문을 동시에 석권한 작품은 <라이온 킹>이 최초라 할 만하다.
백만 관객과 몰리에르 3관왕에 빛나는 <라이온 킹>
뮤지컬 <라이온 킹>은 원작 애니메이션의 인기와 엘튼 존의 음악, 줄리 테이머의 독창적인 무대와 연출력으로 어느 나라에서 상연되든 성공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작품이다. 하나의 단서를 붙인다면, 엘튼 존의 음악과 잘 어울린 팀 라이스의 가사를 해당 언어로 잘 바꾸어야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프랑스 제작자가 선택한 이는 극작가, 각색가로 유명한 스테판 라포트였다. 대사는 유머와 긴장감을 적절히 잘 살려 프랑스어로 아주 맛깔스럽게 잘 옮겼지만, 라포트가 개사한 가사는 엘튼 존의 음악과 잘 붙지 않아 다소 아쉬웠다. 그나마 20여 명의 뮤지션들의 라이브 연주로 진행된 공연은 현장감이 잘 살아서 괜찮은 편이었지만, 프랑스 버전의 음반을 들어보니 타이틀곡이라 할 만한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의 감미로운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아 상당히 아쉬웠다. 이런 몇 곡의 개사 외에는 거의 흠잡을 데가 없었다.
덕분에 이미 여러 번 관람했던 작품이지만, 단순하고 확실한 갈등 구조에서 비롯되는 스토리로 인해 쉽게 극에 몰입할 수 있었고 쉴 새 없이 등장하는 놀랍고 화려한 볼거리로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래서 파리 공연에서 역시 영국과 서울에서 보았을 때와 비슷한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라이온 킹>이 극과 볼거리가 아주 잘 배합된, 아주 뮤지컬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프랑스어 버전을 보고 나니 왠지 그 사실을 부인하고 싶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이 작품이 스펙터클이 아닌, 문학에서 비롯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왜 이런 ‘기묘한’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동화책, 애니메이션 그리고 뮤지컬
뮤지컬계의 살아있는 신이라고 존경받는 스티븐 손드하임이 만든 <컴퍼니>, 가장 성공한 뮤지컬 작곡가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만든 <오페라의 유령>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들에 따라 제각각일 수 있다. 하지만 줄리 테이머가 만든 <라이온 킹>은 그렇지 않다. 뉴욕, 런던, 도쿄, 서울에 이어 프랑스 관객들도 <라이온 킹>에 대한 다른 나라의 관객들과 (거의) 같은 평가를 내렸다. 어떻게 뉴욕의 데이빗, 런던의 제롬, 도쿄의 마사코, 서울의 소미가 모두 한 작품에 대해 같은 생각과 느낌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일차적인 원인은, 원작 애니메이션과 이 작품의 제작자인 월트 디즈니사라 할 수 있다. 잘 알다시피 디즈니는 단순한 제작자가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품들을 통합하는 하나의 브랜드로 작용한다. 즉, <미녀와 야수>, <타잔>, <라이온 킹>, <인어공주> 등은 각각의 작품이기에 앞서 디즈니사가 디즈니 스타일로 만든 작품이란 말이다. 따라서 관객들도 디즈니사가 만든 작품은 ‘디즈니적’이리라 기대하고 보게 된다. 디즈니 작품들은 대체로 스토리가 확고한 선악대립 구조, 권선징악, 해피 엔딩, 유머와 감동의 적절히 배합되어 있어서 모든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다. 이런 특징을 기반으로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아주 잘 풀어내는 디즈니 작품들은 모든 관객들에게 현실을 잊고 꿈을 꾸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 어느 문화권의 누가 보든지 디즈니 작품은 거의 똑같은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코카 콜라를 마시면 누구나 비슷한 반응을 하듯이 말이다.
관객들로 하여금 꿈을 꾸게 만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힘을 거의 그대로 가면과 무대, 의상 등을 통해 공연 장르에 적합하게 재탄생시킨 연출가 줄리 테이머가 바로 이차원적인 이유다. 그로 인해 <라이온 킹>은 분명 지금 내 눈앞의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뮤지컬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극에 몰입된 나는 무대와 객석 간의 거리를 거의 느끼지 못하게 된다. 즉, ‘객석, 무대’를 구별 짓고 있는 가상의 벽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마치 동화책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장면을 상상하듯이, 관객들은 엘튼 존의 음악을 듣고 줄리 테이머의 무대를 바라보면서 <라이온 킹>의 장면들이 불러일으키는 미지의 세계 속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비록 모든 관객들이 상상하는 내용들이 정확히 같을 수는 없지만 줄리 테이머의 <라이온 킹>은 관객을 거의 비슷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게 만든다. 그래서 내게 이 작품은 뮤지컬 작품 중에서 (거의) 최초로 오페라나 미국식 연예물이 아닌 그림형제의 동화, 이솝우화 등 문학에 뿌리를 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라이온 킹>
2007년 10월 4일 ~ 2010년 7월 25일
모가도르 극장 Theatre Mogador
25, rue de Mogador 75009 Paris
www.leroilion.fr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3호 2010년 8월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