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올라간 <마마, 돈 크라이>를 생각하면 두 가지가 떠오른다.
공연을 보고 나서도 왜 제목이 ‘마마 돈 크라이’인지
이해가 안 됐다는 점과, 허규라는 배우다.
허규는 시종 일관 무대를 누비며 하이톤의 노래를 쏟아내는데도
끝까지 방전되지 않은 놀라움을 보여주었다.
이번 재공연에서 마니아들의 많은 관심을 받으며
흥행의 청신호를 보이는 것도 초연 때 그의 활약과 무관하지 않다.
허규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이 뮤지컬 무대이기 때문에
내게는 가수 허규보다 뮤지컬 배우 허규가 친근했다.
그러나 실제 만나본 허규는 근본이 가수다.
정체성은 가수
<마마, 돈 크라이>는 어떤 작품이냐고 묻자, “드라마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에요. B급 호러 같은 느낌도 주지만 대중적인 작품이죠”라고 천천히 궁리해 말한 후, “음악으로 말하면 완전 대중적인 것은 아니고 고급스런 대중음악 같아요”라고 덧붙인다. 아직은 극의 세계보다 음악의 세계에서 음악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 편한 그에게는 가수라는 타이틀이 어울린다. 가수 경력만 따지면 벌써 16년 중견 가수 급이니 당연한 일이다. 1997년 대학에서 밴드 동아리 활동을 하다, 홍대 클럽에서 발탁되어 피노키오의 세 번째 보컬이 됐다. 주위 음악 하는 동료들보다 좋은 기회를 잡았고, 첫 음반도 빨리 발매했다. 그러나 운이 계속 따라주진 않았다. 악질 기획사와의 마찰로 2년간 소송에 휘말리는 등 마음고생이 심했다. 또, 천계영의 만화 『오디션』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작업에 캐스팅되는 행운도 잡았다. 당시 인기 록커였던 김종서, 박혜경 등과 함께할 기회였으나, 진행이 순탄치 않았다. 결국 한 해, 두 해 지연되더니 10년이 지난 후에야 결과물이 나왔다. 원작의 인기도, 출연 가수들의 인기도 예전 같지 않았다. 당연히 세상으로부터 주목받기 힘들었다.
그런 그에게 주목받을 일이 벌어진다. 바로 지난해 인기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인 <보이스 코리아>에 출연한 것이다. 타고난 보이스와 독특한 음색으로 몇 차례 안 되는 출연 분량이었지만 10년 가수 생활한 것보다 더 큰 대중적인 인지도가 생겼다. 프로그램이 방영될 때는 길거리에 나가면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10여 년 경력의 가수가 신인들의 경쟁 무대에 출연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제작진의 달콤한 요청에 넘어갔던 거라고 한다. ‘보통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닌, 무명 가수들의 <나는 가수다>라고 생각해 달라’는 말에 그럼 나가보자고 했던 것이다. 프로그램이 제작진의 말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대중적인 지명도 외에 얻은 것도 많다. “노래 잘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본선 배틀에서 떨어졌지만 창피하지 않아요. 그만큼 참가자들의 실력이 뛰어났어요. 자극도 되고 내가 무엇이 부족하고, 뭐가 괜찮은지 알게 된 게 가장 큰 수확이에요.” 그는 최근 강현민, 이윤만 등과 밴드 ‘브릭’을 결성하고 첫 번째 앨범을 내며 새로운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뮤지컬 무대에 서다
2002년 <포비든 플래닛> 출연을 이벤트라고 여겼다. 하지만 인연은 그를 다시 뮤지컬 무대로 이끌어, 2009년 <오디션> 출연 이후 꾸준히 무대에 서오고 있다. 베이스, 드럼, 기타를 연주해야 했던 <포비든 플래닛>도 그랬지만 무명 밴드의 이야기였던 <오디션>이나, 가요로 만든 <광화문 연가>, 콘서트 뮤지컬 형식인 <마마, 돈 크라이>도 가수이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는 역할이었다. 특히 그를 뮤지컬 팬들에게 각인시킨 <마마, 돈 크라이>는 록커로서의 실력이 절대적으로 발휘된 경우다. 1시간 40분 러닝 타임 중 프로페서 V가 부르는 노래는 무려 22곡. 그것도 모든 곡들이 만만치 않은 록을 바탕으로 한 곡이다. “배우가 교체되는 바람에 처음 두 주는 혼자 계속 무대에 서야 했어요. 워낙 소리를 질러대는 노래였으니까요. 게다가 하루 2회 공연을 할 때면 정말!” 그의 말을 듣기만 해도 생목이 아파온다. 그는 이 작품을 하면서 6킬로그램이나 빠졌다고 한다.
그렇게 열심히 했던 작품이지만 재공연이 수월하지는 않다. 먼저 3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그때와 같은 체력이 될까도 걱정이다. 이번 재공연에서는 드라큘라 역할의 비중이 높아졌다. 기존 음악들이 드라큘라 배우의 음역대로 낮춰져 비교적 수월하게 부를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게 걱정이기도 하다. 관객들이 낮아진 음악을 편하게 받아들여 줄까? 연기에 대한 고민도 늘 따른다. 그래서 같이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연기에 대한 질문도 많이 한다. “슬픈 장면에서 어떻게 매일 울어요? 했더니 다들 그 감정에 충실하면 된다고 해요. 그게 연기잖아요. 그 상황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데 아직은 어려운 것 같아요.”
연기에 자신 없어 하지만 방법은 있다.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오디션>의 병태 역도 그랬지만, <마마, 돈 크라이>의 프로페서 V도 소심하고 사회성 떨어지고, 그러면서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한다. 자신에서부터 출발해서 캐릭터를 이해하고 오랜 가수 생활로 몸에 배어온 감성, 그리고 타고난 목소리로 프로페서 V에 다가간다. 이번 허규의 연기는 초연에 비해 더 좋을 것이다. 3년이란 시간이 그의 연기를 끌어올렸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의 독특한 음색이 캐릭터와 만나 특별한 느낌의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상상한다. 참 멋진 캐릭터가 나올 것 같다. 그가 좀 더 다양한 뮤지컬 활동을 해주길 바라는 이유다. “<락 오브 에이지>는 제가 그 시대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이고 정말 하고 싶어서 오디션을 보러 갔어요. 그런데 인지도 때문인지 기회를 주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의 전략은 가수로 인기를 얻어 뮤지컬 무대로 오겠다는 것. 뮤지컬 배우가 하고 싶어 가수를 더 열심히 하겠다는 그의 생각이 재밌지만, 그냥 웃고 넘길 수만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부디 브릭이 성공해서 그를 여러 작품에서 보는 날이 오길.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4호 2013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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