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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Oh! Broadway 브로드웨이의 리바이벌 작품들 [No.78]

글 |지혜원(공연칼럼니스트) 2010-03-29 6,317

이따금 예기치 못한 곳에서 과거 사진을 발견할 때가 있다.
불과 10여 년 사진 속 모습이라고 해도 지금과는 사뭇 다른(조금은 촌스러운) 스타일에 깜짝 놀라곤 한다.
그러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수십 년 전의 노래를 들으면서는 “이 노래 참 좋네” 하기도 한다.
좋은 작품은 시대를 거스르고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같은 콘텐츠, 좋은 알맹이라고 할지라도 어떻게 포장하는가에 따라 감동은 다르게 전해진다. 세상에 태어난 지 반세기가 넘은 작품들도 리바이벌이라는 옷을 입으면 새로운 작품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처럼.  

<스위니 토드>

 

 

새로운 생을 거듭하는 리바이벌 프로덕션
브로드웨이에서 작품을 분류하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장르로는 연극과 뮤지컬로 나뉘고, 초연 시기에 따라 오리지널 프로덕션과 리바이벌 프로덕션으로 나뉜다. 브로드웨이에서 말하는 오리지널 프로덕션이란 한번도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지 않은 신작을, 리바이벌 프로덕션은 기존의 작품을 새롭게 연출하여 다시 무대에 올린 작품을 말한다.

매년 6월 토니상 시상식에서도 작품상 부문은 신작과 리바이벌 작품으로 나누어 시상할 만큼 리바이벌 작품들은 매 시즌 신작 못지않은 관심을 모은다. 이는 리바이벌 작품들이 원작의 답습이 아니라, 전혀 다른 옷을 입은 프로덕션으로 재탄생하기 때문이다.


초연된 지 수십 년이 지나서야 국내에 소개되는 작품들 중에도 세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만치 세련된 감성을 선보이는 작품들이 있다. 특히 리차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콤비로 대표되던 브로드웨이 골든 에이지(1940년대~1960년대)의 작품들 중엔 오랜 세월이 지나도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것들이 많다.

지난 2008년 링컨 센터 시어터에서 리바이벌해 여전히 순항 중인 <남태평양>은 1949년에 초연한 작품이다. 또한 <킹 앤 아이>는 1951년, <사운드 오브 뮤직>은 1959년도의 작품이지만 미국은 물론 여러 나라에서 현재까지도 사랑받는 뮤지컬 레퍼토리들이다. 지난해 리바이벌되어 많은 관심을 모았던 <아가씨와 건달들> (1950년 초연)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1957년 초연) 역시 같은 시기의 작품들로 그동안 4~5차례에 걸쳐 리바이벌될 만큼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브로드웨이의 리바이벌 프로덕션은 오리지널 프로덕션이 폐막하고 난 이후 빠르면 4~5년, 길게는 수십 년이 지난 후에 다시 제작된다. 우리나라같이 한 작품이 시간 차를 두고(혹은 시즌제로 운영하며) 수차례 재공연을 반복하는 상황에서는 오리지널 프로덕션과 리바이벌 프로덕션을 구분하는 일이 다소 모호할 수 있지만, 브로드웨이에서 오리지널 프로덕션을 규정하는 기준은 더욱 분명하다.

 

여러 개발 단계를 거쳐 브로드웨이에 오른 공연은 프리뷰 기간 중에도 수정을 거듭한 후 공식 개막을 앞두고 최종적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그러는 동안 작품의 세세한 연출선이나 동선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크게는 노래나 대사가 더해지거나 빠지기도 하고 캐릭터가 달라지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브로드웨이 신작 중 개막 당일에 공연된 최종 버전이 오리지널 프로덕션이 되고, 그 상태 그대로 저작권의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리바이벌 프로덕션은 재공연이 몇 차례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음악과 대본은 오리지널 프로덕션과 동일하다. 간혹 일부 노래나 대사에 변화를 주기도 하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고, 이 역시 원작자의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같은 연출자가 연출을 맡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연출과 디자인은 새로워진다. 하지만 전혀 다른 스타일로 제작될 수 있는 무대나 의상과 달리 연출이나 안무는 그 경계가 다소 모호한 것도 사실이다.

 

 

                  <아가씨와 건달들>

 

리바이벌 프로덕션이 새로운 연출자와 안무가를 영입해 다르게 제작된다고 하더라고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연출과 안무를 모조리 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프로덕션에서 연출가의 영역을 각각의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것까지를 포함한다고 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많은 리바이벌 프로덕션들은 오리지널 연출, 안무가를 크레딧에 포함시키고 일정 퍼센티지의 로열티를 지급한다.


물론 전부가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오리지널 프로덕션이 크게 성공한 작품의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다를 수 있고, 리바이벌 프로덕션이 오리지널 프로덕션과 전혀 다른 연출과 안무로 제작되는 경우에는 원작의 크리에이티브 팀을 크레딧에 반드시 포함시킬 필요는 없다.

다소 모호하긴 하지만 그 기준은 리바이벌 프로덕션이 얼마나 오리지널 프로덕션에 기대어 있는가에 따라서 프로듀서와 창작자들 사이의 합의가 이루어진다고 보면 된다. 앞선 프로덕션과 비교해서 더 새롭고 나은 프로덕션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리바이벌 프로덕션의 부담감도 적지 않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었던 오리지널 프로덕션 크리에이티브 팀의 노력에 대한 가치 역시 인정해주는 것이다.

 

 

원작의 명성을 잇지 못한 불운의 리바이벌 작품들
지난해 10월 브로드웨이 네덜란더 극장에서 막을 올렸던 닐 사이먼의 연극 <브라이튼 해변의 추억> Brighton Beach Memoirs 이 개막 1주일 만인 11월 1일에 막을 내려 뉴욕 공연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1983년에 초연한 이후 연극으로는 드물게 3년이 넘도록 공연되었던 작품의 리바이벌 프로덕션이라기엔 예상 밖의 결과였다. 지난 시즌 기대를 모았던 리바이벌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의 부진도 안타깝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이 작품은 1950년 초연 이후 수차례에 걸쳐 리바이벌되며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1995년 마지막 리바이벌 작품의 폐막 이후 14년 만에 리바이벌된 이 프로덕션은 뮤지컬 <저지 보이즈>의 연출자인 데즈 맥아너프 Des McAnuff 의 연출로 더욱 많은 관심을 모았다.

프로젝션 이미지를 동원해 더욱 현대적인 감성을 더하고자 했던 이들의 시도는 4개월여의 짧은 공연으로 마무리되었다. 2009~2010 시즌 작품 중에도 이미 막을 내린 리바이벌 작품이 있다. 지난 11월 닐 사이먼 극장에서 막을 올린 <랙타임>은 1998년에 초연되어 많은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오리지널 프로덕션이 막을 내린 후 10여 년 만에 리바이벌되어 주목을 받았지만 평단과 관객의 평가는 좋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20세기 초 격변의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이 10년 만에 다시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는 것 자체가 다소 빨랐다는 지적이 있었다. 추수감사절과 연말연시 성수기에도 부진한 흥행 성적을 면치 못했던 <랙타임>은 결국 지난 1월 공연 두 달여 만에 막을 내렸다.


리바이벌 프로덕션을 제작할 때에는 시기를 잘 선택하는 것이 성공을 결정짓는 요소 중 하나다. 오리지널 프로덕션에 대한 향수가 무르익었을 즈음, 즉 예측가능한 관객의 수요가 흥행과 연결될 수 있을 때 막을 올리는 것이 보다 안전한 선택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분한 시일을 두고 재공연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이번 시즌에 또 한 편의 화제작이었던, 라운드어바웃 시어터 컴퍼니의 <바이 바이 버디>는 오리지널 프로덕션이 막을 내린 지 48년 만인 지난해 10월 브로드웨이로 돌아왔다. 비영리 공연단체 라운드어바웃의 시즌 작품 중 하나로 기간을 정해두고 공연된 이 작품은 예정된 폐막 일에서 2주를 연장해 지난 1월 24일 막을 내렸지만 평단의 평가는 냉혹했다. 특히 1950년대가 배경인 원작의 재미와 감동을 살려내지 못한 연출과 안무, 디자인 등은 혹평을 면치 못했다.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공연이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새롭게 리바이벌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중에는 보다 새로운 감성으로 만들어져 성공하는 작품들도 있고, 그 중 몇몇 작품은 다시 브로드웨이로 자리를 옮겨 공연되기도 한다. 하지만 실패작도 있다. 지난 2007년 막이 올랐던 뮤지컬 <렌트>의 리바이벌 버전인 <렌트 리믹스드> Rent Remixed는 조나단 라슨의 원작을 보다 모던한 연출과 디자인을 가미해서 변화를 꾀했지만 관객과 평단의 외면을 받으며 4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컴퍼니>

 

 

원작에 새로움을 더한 리바이벌 작품들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명성만큼이나 성공한 리바이벌 작품들도 있다. 원작의 감동을 보다 신선하게 요리하여 같은 재료로도 다른 맛을 낼 수 있음을 입증하며 관객들을 사로잡은 작품들이다. 지난 2008년 라운드어바웃 시어터 컴퍼니는 1984년에 초연되었던 스티븐 손드하임의 뮤지컬 <일요일 공원에서 조지와 함께>를 재공연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일요일 공원에서 조지와 함께>

 

이 프로덕션은 지난 2005년 런던의 200석 규모의 작은 극장인 메니어 초콜릿 팩토리> Menier Chocolate Factory 무대에 올라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06년 웨스트엔드로 자리를 옮겼고 그것을 브로드웨이로 가져온 것이다.

이 리바이벌 프로덕션이 주목받았던 것은 무엇보다 프로젝션 이미지의 적절한 활용 덕분이었다. 점묘법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후기인상파 화가인 조지 쇠라 Georges Seurat 의 대표작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A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 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이 바로 주인공 조지가 완성하는 그림의 일부이고 그림이 곧 주인공이 된다.

따라서 프로젝션 이미지의 활용은 이 작품의 본질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었다. 최근 들어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무대디자인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 작품만큼 극과 디자인이 잘 어우러지는 것은 그리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일부 공연 관계자들은 지나친 테크놀로지가 관객의 시선을 분산시킴으로써 극의 내러티브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리바이벌 프로덕션을 만든 창작자들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는 시대의 흐름에 맞는 재해석이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2008년 링컨센터 시어터가 리바이벌한 <남태평양> 역시 기대 이상의 선전을 하며 순항 중이다. 1949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하여 5년 여간 흥행을 이어간 이 작품은 1950년 퓰리처상 드라마 부분을 비롯하여 10개의 토니상을 거머쥐었으며, 1958년에는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전 세계적으로 크게 사랑을 받았다. 60여 년 만에 리바이벌된 링컨센터 시어터의 리바이벌 프로덕션 역시 2008년 토니상 최우수 리바이벌 뮤지컬 부문을 비롯해 남우주연상, 연출상 등 7개 부문을 석권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특히 무대, 의상, 조명, 음향 디자인 등 디자인 부분의 상을 휩쓸면서 리바이벌 작품으로 탈 수 있는 거의 모든 상을 거머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남태평양의 한 섬에 주둔한 미 해군과 섬 주민들 사이에서 일어난 네 남녀의 사랑과 갈등을 다룬 이 작품은 뮤지컬 코미디의 흥겹고 빠른 템포에 식상한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신선한 클래식 작품으로 다가왔다. 화려한 춤과 기교로 쉴 새 없이 볼거리를 선사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로저스&해머스타인의 서정적인 뮤지컬에 대한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스위니 토드>


존 도일 John Doyle 의 연출로 새롭게 무대에 올라간 손드하임의 뮤지컬 <스위니 토드>와 <컴퍼니> 역시 신선한 리바이벌 프로덕션이라는 평가를 받은 작품들이다. 존 도일은 지난 2005년, 1979년에 초연한 <스위니 토드>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새롭게 무대에 올려 2006년 토니상에서 연출상을 거머쥐었다. 이 프로덕션은 오리지널 프로덕션에서 27개의 악기로 연주되었던 오케스트라를 사용하지 않고 10명의 배우들이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동시에 악기를 직접 연주하게 함으로써 주목을 받았다.

 

<컴퍼니>

 

이러한 시도는 그의 2006년 작품인 <컴퍼니>의 리바이벌 프로덕션에서도 이어졌고, 2007년 토니상에서 최우수 리바이벌 뮤지컬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존 도일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자체가 다양한 기술을 요하는 것”이라며 ‘액터-뮤지션’ 버전을 활용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이런 시도는 브로드웨이의 연주자 노동조합과 프로듀서 . 극장주 협회인 더 브로드웨이 리그 사이에 액터 뮤지션에 대한 새로운 계약 조항을 추가할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고, 평단과 관객들에게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시카고>


이 외에도 1957년 초연되어 네 차례에 걸쳐 리바이벌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지난해 원작의 각본을 썼던 아서 로렌츠 Arthur Laurents 가 리바이벌해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아서 로렌츠는 1959년 초연된 자신의 또 다른 히트작인 <집시>의 재공연 중에서도 1974년과 1989년, 2008년 등 세차례나 리바이벌 프로덕션 연출을 직접 맡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시카고> 역시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성공을 뛰어넘는다. 1975년부터 1977년까지 2년여간 공연한 <시카고>는 초연 이후 20여 년 만인 1996년에 연출가 월터 바비 Walter Bobbie 가 리바이벌한 후 현재까지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리바이벌 프로덕션을 제작하는 일은 비록 대본과 음악이 완성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일만큼이나 쉽지 않은 작업이다. 수정을 가할 수 있는 부분이 제한되어 있는 상태에서 이미 기대를 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일은 오히려 더 어려운 작업이 될 수도 있다. 리바이벌 프로덕션의 성패는 작품을 선택하는 프로듀서의 안목과, 이전 프로덕션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연출자와 디자이너의 새로운 시각에 달려있다. 이들의 노력이 더해져 한 생을 마감한 작품들이 또 다른 생을 거듭할 수 있는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78호 2010년 3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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