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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라스트 로얄 패밀리> 파편화된 유희만 남긴 역사 실험극 [No.125]

글 |송준호 사진제공 |알앤디웍스 2014-03-03 4,169

최근 몇 년간 뮤지컬에도 퓨전 사극 또는 픽션 사극 형식이 도입되고 있다. <피맛골 연가>나 <밀당의 탄생>, <풍월주> 같은 작품들이 그것이다. 이런 작품들은 고증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현대적 코드를 유연하게 과거에 투사한다. 자유로운 상상력을 통해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스토리텔링이다.


‘픽션 사극 뮤지컬’을 자칭하는 <라스트 로얄 패밀리> 역시 구한말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인물의 대사나 상황 설정에서는 현대극의 문법을 따른다.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의 사이에만 머물지 않고 과거와 현재의 가치관, 심지어 극 중 캐릭터와 현실의 배우의 경계까지 거침없이 무너뜨린다. 모든 배우들이 일인 다역을 소화하는 멀티맨 형식은 그 유기적인 변신 자체가 웃음 포인트가 된다. 이처럼 사극의 전형을 깨기로 작정한 이 작품은 극단까지 밀어붙인 상상력과 유머 코드를 무기로 역사의 한 시점을 종횡무진한다.

 

 

코미디를 위해 역사를 차용하는 역발상
<라스트 로얄 패밀리>는 순종의 왕세자 시절인 1888년을 배경으로 하지만, 사실 이 작품에서 이 숫자는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지난해 쇼케이스에서는 수구파와 개화파의 대립, 청나라와 일본 등 열강의 존재 같은 요소들로 시대적 의미를 강조했지만, 이번 본 공연에서는 이런 부분을 대폭 들어냈다. 실제로는 1901년에 조선에 왔던 작곡가 에케르트의 ‘타임 슬립 오류’ 같은 등장만이 이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데, 이 역시도 코미디를 위한 장치로만 기능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개화기로 대표되는 당시의 역사적 징표들도 극의 중심에 서지 않는다.

 

대신 극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코미디를 향한 강한 의지다. 이 작품에서 역사는 주제가 아니라 대부분 소재와 무대 역할에 한정된다. 대사와 넘버에서까지 ‘픽션 앤 픽션’ 또는 ‘뒤죽박죽 얼렁뚱땅 이야기’를 강조하는 작품은 마지막 왕가의 이야기를 파격적인 희극의 재료로 쓰고 있다. 고종과 명성황후와 순종은 ‘힘없는 가장’과 ‘헬리콥터 맘’, ‘질풍노도의 사춘기 청소년’으로 재해석됐지만, 곤룡포와 당의를 벗으면 그냥 시트콤 속 가족 같다. 즉 이 작품에서 ‘로얄 패밀리’는 그런 현대의 가족상에 ‘선택’된 재료로서의 역사다. 이런 성격을 감안하면 비틀스의 멤버 폴 매카트니가 내관으로 순종의 곁을 지킨다는 황당한 설정이나, 10여 년 뒤에 등장해야 할 에케르트가 굳이 1888년에서 방황한다는 무리한 설정도 납득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라스트 로얄 패밀리>는 현대의 여러 코드를 과거의 한 시기에 녹여 넣은 역사극이 아니라, 단지 역사를 ‘소비’하는 현대식 코미디의 성격에 가까워진다.

 

사회자의 증조부 내시가 노트북으로 『라스트 로얄 패밀리』를 집필하는 장면부터, 순번대로 포장지를 벗겨 먹는 삼각김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현대적 소품들의 등장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막 전부터 이 작품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회자됐던 ‘애수앵애수(SNS)’ 음가 차용 말장난도 마찬가지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뒤에 별도의 넘버로 배정된 ‘카카오톡’ 등을 활용하는 소소한 개그들은 사실 그렇게 웃기는 아이디어는 아니다. 그런데 이것을 고종의 익살스러운 춤으로 보완해 기어이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이 작품의 코미디를 향한 집념은 이런 디테일에서 확연히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반복될수록 역사적 사실들과 인물들의 아우라는 자연스럽게 코미디에 잠식돼 그 부속물로써만 기능하게 된다.

 

 

‘컴백홈 서사’의 한계를 극복 못한 보완책
결국 <라스트 로얄 패밀리>의 일관된 가벼움과 역사적 배경의 거리두기는 관객의 웃음을 유도하기 위한 목표에서 의도된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코미디에의 편집증적 태도는 개그가 실패할 때마다 금세 단점을 드러낸다. 상대적으로 평이한 드라마의 한계가 더 크게 부각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사춘기 자녀와 과잉보호 부모 간의 갈등과 그로 인한 방황의 드라마는 이미 너무나 익숙한 설정이다. 청소년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갈등-가출-방황-깨달음-귀가’라는, 이른바 ‘컴백홈 서사’의 도식이 그것이다. 이 서사가 작품 초반에 흥미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과 결합됐다는 사실 하나 때문이다. 하지만 서사의 진행 방향이 파악된 극은 쉽게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 또 다시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개그 열전이다. 몇 초 단위로 등장하는 짤막한 개그와 슬랩스틱 코미디는 그 의도대로 관객의 웃음을 적절히 유발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방황을 끝내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건전한 이야기는 역시 ‘픽션 사극’의 충분조건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지난해 쇼케이스 버전에서 추가로 삽입된 부분이 남사당패 꼭지와 꼭도 남매의 인형극 장면과, 순종과 꼭지의 신분을 초월한 연애사다. 하지만 남사당패의 줄타기 장면을 보여주는 인형극은 전체 줄거리와 무관한 데다 지나치게 길고, 순종과 꼭지의 연애는 작위적인 느낌이 강해 별로 설득력이 없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호흡이 짧고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 특징인데, 새로 삽입된 이 두 부분은 상대적으로 늘어지는 느낌이 있다.

 

오로지 ‘역사의 코믹한 변주’에 방점을 찍은 이 작품의 선택은 여기서 부작용을 드러낸다. ‘픽션 사극’에서 ‘픽션’은 코미디로 충족시켰지만 ‘사극’이라고 하기에는 재해석된 드라마의 매력이 빈약한 것이다. 아무리 코미디를 강조해도 최소한의 드라마적 힘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공허한 콩트가 될 수밖에 없다. 전반부에는 성공률이 높던 짧은 개그들이 후반부에 급격히 지루해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기존의 픽션 사극은 현대적 설정이나 소품들을 등장시켜도 그것을 드라마의 빈틈을 메워주는 부수적 장치로 활용한다. 이와 정확히 반대편에 서 있는 <라스트 로얄 패밀리>는 ‘웃기는 소동극’이라는 면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하지만, 관람 후의 여운은 적을 수밖에 없다. 마치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줄거리가 휘발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같다.

 

물론 <라스트 로얄 패밀리>는 지금도 유쾌하고 발랄한 소동극이다. 소극장의 좁은 공간을 감안한 소박한 무대 장치와 극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넘버들에서는 오랜 시간 고민한 흔적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제작진은 관객이 이 소동극을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즐기기 바란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즐기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조선 마지막 왕가의 숨은 뒷이야기라고 하기엔 의외성이 적고, 사극의 외피를 입은 코미디라고 하기엔 극적 기반이 허약하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차라리 더 뻔뻔하게 코믹 감성으로 밀고 나가거나 상상력을 폭발시켰어야 했다. 하지만 작품은 후반부에서 서사의 전형을 얌전히 따르고 있다. 노선이 정리되지 못하고 모든 것이 ‘얼렁뚱땅 뒤죽박죽’ 전개된 결과, 처음의 흥미로운 설정이 더 큰 재미로 모아지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아쉽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5호 2014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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