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뮤지컬&컬처 | [뮤지컬 인사이드] <콘보이쇼-아톰> 무엇이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의 자유 [No.89]

글 |김영주 사진제공 |콘보이하우스 코리아 2011-02-22 5,253

안전지대의 서정적인 포크송 ‘카린토 공장 굴뚝 위에’를 한 편의 시처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하는 <콘보이쇼>는 어떤 카테고리 안에 넣을 수도 없고, 그래서 비평적으로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지 판단하기가 어려운 작품이다. 출발점으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놀이와 공연의 중간 어디쯤에서 펄펄 뛰는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 종잡을 수 없는 공연의 아버지, 이마무라 네즈미를 만나보았다.

 

<콘보이쇼>는 보고 나오면서 누가 극작과 안무, 연출을 했는지, 어떤 이력을 가진 사람이 만들었는지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공연 쪽 일을 시작한 것이 꽤 늦은 나이인 스물여섯 때였는데, 더 이전에는 배우가 되려고 스무 살에 무작정 도쿄에 상경해서 작은 극단에 들어가서 배역도 없이 몇 년 시간을 보내면서 고민하는 시기가 있었다. 계속 배우 일을 하다보면 누군가 알아주고 불러주고 기회를 주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다면 내가 직접 쇼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웨이터 일을 하면서 탭댄스도 공연하는 바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처음으로 <콘보이쇼>의 전신이 된 공연을 하게 됐다. 그런데 그 가게가 문을 닫게 되면서, 술집이라고 해도 공연할 수 있는 무대가 있었다가 하루아침에 일이 없어져 버렸다. 불러주는 곳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어졌기 때문에 직접 공연을 할 수 있는 극장을 빌렸다. 그것이 본격적인 <콘보이쇼>의 시작이다.

                                                                                           

10년을 넘기는 동안 시리즈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콘보이쇼 - 아톰>은 <콘보이쇼>라는 공연을 시작한 지 10년째 되는 해에 만들어졌다. 어떤 방향성을 의도했던 적은 없다. 처음에는 노래, 춤, 콩트, 토크를 쭉 늘어놓고 보여주는 형태였는데 공연을 끝낼 때마다 주위에서 언제 다음 공연을 볼 수 있냐고 물었고 그때마다 다음 공연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변에서 찾았다. 어쨌든 10년 동안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해서 보여주는 쇼의 형태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막이 열리면서 시작한 드라마가 막이 내리면서 끝나는 극 안에서 배우로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콘보이쇼-아톰>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바에서 공연을 할 때부터 함께해 왔던 멤버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서 ‘내가 있기 때문에 네가 있고, 네가 같이 존재함으로 인해서 나도 있을 수 있다’라는 아톰의 테마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던 시기에 동네에서 산책을 하다가 중고 음반을 파는 곳에서 ‘카린토 공장 굴뚝 위에서’라는 오래된 곡을 발견했다. 먼저 말씀드린 그 테마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노래를 들었을 때, 그림이 떠올랐다. 그 그림은 곧 하나의 시가 되었고, 그 시 안에 세계가 있고, 그 세계 속에 한 사람, 그리고 또 다른 한 사람이 존재하는 것을 생각하다가 ‘시인의 모임’을 떠올리게 됐다. 그 ‘시인의 모임’에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철학적인 고민 안에서 도달하게 된 것이 ‘아톰’, 원자라는 개념이다.

 

주인공들이 서로를 부르는 철학자의 이름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된 것인가?
기준은 전혀 없다. 당시 철학 입문서를 읽고 있기는 했다.(웃음) 일본에서 공연을 했을 때 유명한 철학과 교수님이 찾아와서 여러 가지 심각한 질문을 하면서 의미를 물어서 ‘죄송합니다. 저는 사실 그런 건 잘 몰라요’라고 말했던 곤란한 기억이 있다.(웃음) 어렸을 때 전차 놀이나 엄마 아빠 놀이를 하지 않나. 배우들에게 이건 철학자 놀이고, 무대에서 이런 놀이, 저런 놀이를 계속하는 거라고 말했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모여서 놀 때는 대장이 한 명 있고, 괴롭히는 놈도 있고, 도와주는 아이도 있지 않나. 거기에는 어른들이 정해주지 않아도 아이들 나름의 규칙과 도덕 즉, 아이들의 세계가 있었다. 이 극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배경은 그런 것이다.

 

 

왜 인터미션이 없나 궁금했는데, 그런 ‘놀이’라면 중간 휴식이 없는 게 당연한 것 같다.
시작하면 끝까지 멈추지 않고 관객들을 이끌어 가면서 함께 달리는 것이 <콘보이쇼>의 스타일이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이 ‘재미는 있는데 이게 연극이야, 뮤지컬이야’라고 묻는 이야기가 많이 들렸다.
일본에서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고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요즘은 ‘<콘보이쇼>가 대체 어떤 장르냐’는 질문을 들으면 ‘그냥 콘보이쇼’라고 말을 한다. 어떤 장르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콘보이쇼>를 만든 것은 아니었고, 좋아하는 것들을 모으다보니 <콘보이쇼>가 됐다.

 

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한 작품 안에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의 춤이 들어가는 건 흔치 않다. 초반과 중반, 종반의 변화가 큰 작품인데 처음부터 이러한 배치를 구상해놓고 그에 적합한 음악과 안무 스타일을 찾아나간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안무를 처음부터 준비해놓았던 것은 아니고, 좋아하는 곡을 계속 들으면서 그 곡에 적합한 시를 찾고 안무를 만들거나, 아니면 어떤 내용의 시가 있는데 여기다 어떤 곡을 붙이면 좋을까 고민해서 결정한 경우도 있었다. ‘시인의 모임’ 신을 만들 때는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배우들에게 여러분이 실제로 좋아하는 시를 가져오라고 했다. 배우들이 가져온 시를 들으면서 이 시에는 어떤 음악이 어울릴까, 어떤 춤이 좋을까를 여러 가지로 생각하면서 답을 찾아갔다.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흐름이다. 막이 열린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내용적인 흐름도 중요하겠지만, 음악의 흐름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이 골라온 시나 노래를 가지고 꾸미는 ‘시인들의 모임’ 장면은 일본과 한국 공연이 다르게 갈 수밖에 없었는데 어떤 차이가 있나.
어떤 신의 대사는 음악을 정한 후에 그 음악에 맞게 쓴 것이다. 한국 배우들이 암송하는 시가 일본에서 사용했던 음악이나 안무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경우는 일본 공연과 동일하게 가기도 했다. ‘목련의 꿈’과 ‘킬리만자로의 표범’, ‘춤을 추고 싶다’ 그리고 유재하 씨의 ‘사랑하기 때문에’는 모두 한국에서 새롭게 만든 신이다. 유재하 씨의 노래를 듣고 나서 그 곡을 가지고 온 배우에게 이 가수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는데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또 그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분을 꼭 무대 위에 모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유재하 씨를 무대 위에서 다시 한번 살아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곡을 어레인지해서 다 같이 합창을 하게 됐다. 조용필 씨는 일본에서도 잘 알려진 가수인데,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처음 듣고 너무 특이해서 웃음이 났다. 도대체 이 노래는 무슨 노래인가, 과격한 것 같기도 해서 내용을 물어봤더니 그 내용 역시 희한한 거다.(웃음) 이 곡을 안 쓸 수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탭댄스와 ‘볼레로’는 시는 다르지만 음악과 춤은 같다.

 

 

 

 

 

 

 

 

 

 

 

 

 

 

작품 속에 아주 다양한 춤이 쓰였는데, 대부분은 뮤지컬 장르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스타일인데 한꺼번에 버무려 놓아서 독특한 것이었지만, TV 가요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아이돌 군무 느낌의 댄스는 그 자체로 상당히 낯설게 느껴졌다. 각 장을 열고 닫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그런 아이돌 군무 스타일의 춤이 나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의도한 바가 있는가?
구성을 다 마치고 보니까 그렇게 들어가 있었던 것이기는 하다. 그런데 작품을 만들면서 한 가지 의식하고 있었던 것은 ‘뮤지컬이니까 이러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겠다는 것이었다. 뮤지컬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아이돌 댄스를 넣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지만, 뮤지컬이어야 하니까 아이돌 같은 춤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 틀을 버리고 싶었다. 물론 뮤지컬적인 뮤지컬을 부정하는 것은 아닌데, 그런 작품이 있으면 이런 작품이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한국 배우들의 성향이나 기질은 일본과 상당히 다르다. 배우의 역할이 보통 뮤지컬 작품보다 훨씬 중요한 <콘보이쇼>를 외국 배우들과 만드는 것은 어떤 경험이었나.
지금은 내가 만든 작품을 해외에서 공연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행복해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한국에서 이곳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처음부터 고정된 틀을 둔 작품도 아니고 내가 극을 쓰고, 노래를 고르고, 안무도 했으니까 한국에 와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고 편하게 생각을 했다. 배우로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출연을 할 때 어쩔 수 없이 작품과 배우 사이의 거리를 느낀다. 일본인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흑인 역을 하는 위화감 같은 것 말이다. 배우가 작품에 다가가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콘보이쇼>를 하는 한국 배우들을 위해 작품이 배우에게 다가가는 것도 가능한 만큼 다 해주고 싶었다. 일본에서 배우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 나간 것처럼 한국에서도 똑같이 하겠다고 생각했다.  

 

한국과 일본의 관객들이 보이는 반응에도 차이가 있었을 텐데.
작품에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 한국 관객들의 특징인 것 같은데, 공연을 하는 사람의 입장으로는 한국 관객들이 더 좋다. 일본에서 한국 가수들이 아주 인기가 많다. 노래와 춤, 모두 굉장히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다. 한국 가수들을 보면서도 생각한 것이지만, 이곳에서는 서툰 사람이 점차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본다기보다는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한 사람이 무대 위에서 대단한 무엇을 보여주는 데 더 익숙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확실히 한국인들은 무대 위에 서는 사람들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 상당히 엄격하다.
배우들도 정말 공부를 많이 한 것 같다. 대부분 대학에서 전공을 한 분들이고. 스태프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이 작품에 참여한 사람 중에서 가방 끈이 가장 짧은 사람은 나인 것 같더라.(웃음)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내내 무용 쪽으로 어떤 교육을 받은 사람인가 궁금했다.
스물다섯에 처음 춤을 배웠다. 극단에서 연기는 조금 해봤지만 춤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굉장히 늦은 편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서른 살 때 브로드웨이에 갔다. 두 달 반 정도 체류를 했는데 티켓을 끊어서 듣는 댄스 수업을 하루에 여덟 시간씩 들었다. 뉴욕까지 가서 하루 종일 신나게 춤만 추다가 돌아온 셈이다. 그렇게 춤을 추는 동안에도 계속 연기, 연극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의 경험은 춤이나 탭, 퍼커션이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드라마의 일부로서 기능하는 <콘보이쇼>의 스타일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이 작품에서 반복되는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너는 누구인가’이지만, 그 주제를 감싸 안는 정서는 아련한 향수였다. 지금 현재의 내가 그 질문에 몰두해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한 시기의 추억과 함께 잠겨 있는 질문을 끄집어내 보면서 그때를  그리워하는 듯한 느낌이다.
나에게 분명 그런 취향이 있다. 오래된 창고를 열었을 때 그 안에 있는 물건을 꺼내 들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생각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지금 이 작품의 세트 자체가 오래된 창고를 재현한 것이다.

 

계산을 하는 연기로 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 배우들이 모든 것을 내던지듯이 해야 성립될 수 있는 공연이라고 느꼈다. 연습 과정에서 배우들에게 무엇을 요구했나?
서로 가진 것을 다 보여주자고 말했다. 연기를 할 때 머리로 하지 말고 손끝, 발끝, 온몸을 다 사용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넘치든 모자라든 옆에 있는 배우들이 모두 알 수 있게 다 내보이자고. 그렇게 자기 자신을 알리고 남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하는 공연이라고 했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연기, 연극이라는 것이 의외로 심플한 작업인 것 같다. 사람에게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있고, 그 감정이 서로 닮은 듯하면서도 각자 다르고 그 표현도 다르지 않나. 이 슬픔이 어디서 온 슬픔이고, 너는 너이기 때문에 그 슬픔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이 기쁨은 나이기 때문에 어떻게 표현이 되는가 하는 것들을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이 극이 아닌가 싶다. <콘보이쇼-아톰>에서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친구가 되고 싶다는 놈이 하나 나타나는 것뿐이다. 모두가 그 녀석에게 어떻게 반응하고 결국 어떻게 하나가 되어 가는지 보여주는 과정을 통해 너와 나를 내보이는 것이 전부다. 극의 마지막 순간에 ‘네가 있어서 내가 있고, 우리는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어’라는 대사를 할 때 관객들이 정말 그 의미에 공감할 수 있게 만들면 성공한 공연이다. 인물들 사이에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일본에서는 연말 같은 때에 마을 단위의 작은 축제-마츠리를 하는데 그때 몇 명이 모여서 노래를 한다고 치면, 누가 그 보상으로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상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일년 중 한때를 위해 여름부터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서 다 같이 연습을 하는 거다. 이 공연도 그와 비슷하다. 어린이들이 놀이터에서 친구들을 만나서 해질 무렵까지 놀고, 저녁이면 집에 들어와서 잠이 들었다가 다음 날 다시 또 놀이터에 나가면 또 친구들이 있어서 좋은, 그런 순수함과 맞물려 있다. 어른이 되면 그 감성을 잃어버리게 되고, 소홀히 하게 되지 않나.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9호 2011년 2월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