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인터뷰 | [Cover Story]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진선규, 이희준, ‘배우’라는 야생의 길 [No.113]

글 |송준호, 이민선 사진 |김호근 2013-02-13 7,230

 

형제도 아니면서 형제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의 두 야생 소년, 진선규와 이희준도 그런 선후배 사이다.
생김새도 성격도 판이하게 다른 두 사람이지만,
익숙한 것에 길들여지지 않는 도전 본능에선 놀랄 만큼의 유사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5년 동안 캐릭터의 원형을 만들고 떠난 사람이나 방송가의 블루칩이 된 사람이
굳이 야생 소년의 세계로 돌아온 이유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마치 짠 듯, ‘그게 배우의 길’이라고 입을 모은 두 사람의 뒷이야기를
커버스토리에 담았다.

 

 

   

 

     스타일리스트|윤미경    헤어·메이크업|테미·현정 (스타일플로어)

 


 

진선규, 독기 품은 야생 소년 본 적 있어요?

 

                            

 

 

“어쩌지? 이거 너무 괜찮은 거 같네.” 마치 수트를 처음 입어보는 소년처럼 한껏 들뜬 그는 기어이 휴대폰을 꺼내 ‘셀카’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왼쪽 위 45도. 얼짱 각도의 불문율을 수줍게 적용하는 10년 차 배우의 풋풋한 모습에 스튜디오의 스태프들은 절로 엄마 미소를 머금는다. 설정이 아닌 성정에서 나오는 순수함. 그가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의 원조 야생 소년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최근 뮤지컬, 연극, 영화, 드라마 등 전방위로 활동 범위를 넓혀온 진선규는 그동안 이름보다 캐릭터로 더 회자됐던 배우다. 유독 바빴던 지난해에는 연극 <칠수와 만수>의 만수, 영화 <개들의 전쟁>의 김무열 ‘왼팔’, 그리고 드라마 <무신>의 갑이로 얼굴을 알렸다. 하지만 그를 가장 오랫동안 보아온 관객들에게 진선규는 변함없이 야생 소년이었다. 2004년 초연 이후 <거울공주 평강이야기>가 수차례 재공연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만들어낸 야생 소년의 인기에 기댄 바 컸다. 처음부터 인연이 닿았던 건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 체대 지망생이었을 정도로 몸 쓰는 데 일가견이 있던 그에게 원래 맡겨진 배역은 환경전환수. “공연 준비 중에 야생 소년을 맡았던 배우가 빠지게 됐어요. 그렇게 갑자기 투입이 됐는데, 애니메이션 <타잔>을 모티프 삼아 두세 달 동안 기어 다니다시피 하면서 준비했죠.”

 

 

                              


 

스물여덟, 혈기왕성했던 당시의 진선규에게 야생 소년은 자신의 신체적 재능과 예술적 목표가 잘 버무려진 아바타였다. 야생에 가까운 몸놀림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근육량과 순발력이 필요했고 젊은 신체는 거뜬히 그것을 버텨냈다. 하지만 장기간 무대에 서다보니 금세 힘에 부쳤다. “많이 하면 1~2년 하겠다 싶었어요. 게다가 솔직히… 그때는 이 작품이 이렇게 오래 갈 거라고 생각도 못했거든요(웃음).” 지난 2008년 재공연 출연을 마지막으로 ‘이제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던 그이지만, 지난해 한예종 연극원 동기이자 ‘절친’인 민준호 연출의 설득에 또 한번 야생 소년으로 돌아오게 됐다. “무엇보다 저의 데뷔작이고, 제일 애착이 가는 캐릭터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연습만 해도 체력이 방전돼서 큰일났습니다.” 자조 섞인 엄살과는 달리 그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친다. 예전엔 빠르고 탄력적인 움직임에만 힘을 기울였다면, 지금은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더 안정적이고 노련한 표현이 가능해졌다는 자신감이 있어서다. 똑같은 야생이어도 이제 ’ 보다는 ‘때묻지 않음’에 방점을 찍겠다는 그는 영화 <늑대소년>의 송중기처럼 키워보고 싶은 ‘펫’ 느낌의 야생 소년을 보여주겠다고 농을 던진다.

 

                              

 

특히 이번 공연은 그에게는 새로운 다짐과 함께하는 무대다. 3월 말에 태어나는 아기 때문이다. 어느덧 한 아이의 아버지,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야생 소년은 그래서 한층 무거워진 책임감을 안고 더 치열하게 연기해보기로 결심했다. “3월부터는 독기를 품으려고요. 봄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것들을 위해 마음가짐을 독하게 할 필요가 있어요.” ‘독하게’를 힘주어 말할 때의 눈빛은 순둥이 같던 그 진선규가 아니다. 욕심없는 사람은 없다고, 아직 발견하지 못한 그의 욕심이 궁금해졌다. 잠깐의 정적 후 그가 내놓은 답은 <맨 오브 라만차>였다. “사실 이번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에 참여한 것도 제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의미도 있어요. 그동안 정극 쪽 경력이 많아서 뮤지컬계 분들이 절 잘 모르시잖아요. 그러니까 이번 공연은 일종의 검증대예요. 진선규에게 돈키호테를 맡겨도 될 것 같다는 확신을 주기 위한.”
그럼에도 진선규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피어나는 시기는 다 다르니까요. 일단은 어떤 역이든 잘 해내고 싶어요.” 자신의 연기 세계를 넓힐 수 있는 기회라면 무대 위와 카메라 앞을 가리지 않겠다는 생각은 과연 최근 몇 년간의 프로필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다만 활동 무대를 넓히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다보면 누구든 위기를 맞게 마련이다. 가령 초심의 문제가 그렇다. 진선규의 경우엔 어떨까. “그래서 전 모든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작품에서든 제작진은 제가 최고의 캐릭터를 보여줘서 그걸로 많은 인기를 끌기를 바라겠죠. 하지만 저는 어떻게 하면 부족함을 보완해서 더 나은 모습을 보일 것인가가 중요하거든요. 과정 자체를 즐기면 현재의 결과에 일희일비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진선규는 요새 잘나가는 조정석이나 이희준처럼 대중의 시선을 한번에 사로잡은 스타는 아니다.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만큼 스타성보다는 오로지 연기의 발전에만 몰두하는 우직한 배우다. 덕분에 유독 부침이 심한 이 세계에서 그의 시간만은 천천히 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기만성형 배우들이 으레 그렇듯, 훗날 길고 알찬 프로필을 자랑하는 것은 결국 그의 몫일지 모른다. 속도 경쟁이 선이 되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그의 해맑은 표정이 그런 예측에 조금의 확신을 더 보태게 한다.

 

                                 

 


이희준이 본 진선규

 

선규 형은 제가 아는 배우 중 연기를 제일 잘하고 훌륭한 사람임에도 정말 겸손해요. 옆에서 보면 저렇게 착하게 웃고, 사람들을 배려하잖아요. 그게 꾸며진 행동이 아니에요. 보이는 그 모습 그대로인 사람이죠. 사람을 사랑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 그러면서도 자기 일은 독하게 해내고야 마는 대단한 사람이죠. 그런데 누가 그런 말을 하면 굉장히 쑥스러워 해요. 자기 자랑을 못하는 사람이라 다른 사람들이 자랑해줘야 해요, 흐흐. 선규 형의 야생 소년 연기를 처음 봤을 때부터, 볼 때마다 매번 감동해요. 이 작품을 오래 해왔는데도 동물적인 감각과 움직임은 물론, 매 순간 살아 있는 걸 보면서 감탄하죠.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요. 선규 형의 좋은 점들, 정말 제가 다 빨아들이고 싶어요! 아, 정말 사랑하는 형입니다.

 

진선규가 본 이희준

 

희준이요? 연예인이잖아요, 하하하. 요새 드라마 찍느라 힘들 텐데도 늘 저렇게 웃는 얼굴로 보는 사람을 기분좋게 하는 동생이에요. 그래서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걸 보면 저에겐 없는 뭔가를 가진 게 아닌가 싶어요. 또 기본적으로 위트가 있는 친구라서 이번 공연도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저 개인적으로도 정말 기대돼요. 어떤 면에서는 저보다 더 야생스러울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처음 해보는 거라 역시 무지하게 힘들걸요? 저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거든요(희준아 미안). 그래도 5년 묵은 저의 야생 소년과 어떻게 다른 야생 소년을 만들어낼지 호기심이 막 생기네요. 아마, 저 얼굴처럼 굉장히 귀여운 야생 소년이겠죠?

 

 

 

                                                 이희준, 그가 믿는 것을 관객도 믿도록
 

                             

 

 

최근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배우들 중에는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보다 숨은 실력자들이 많았다. 물 만난 고기처럼 능란한 저 신선한 얼굴은 누군가 검색하다보면, 그가 이미 다양한 작품에서 조역으로 활약하며 눈도장을 찍은 기억이 나곤 한다. 개중에는 이미 선견지명을 지닌 팬들을 다수 확보한 배우들도 있다. 그간의 노력과 실력을 인정받은 숨은 보석 중 이희준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지난해 드라마 <난폭한 로맨스>와 영화 <차형사>를 시작으로,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과 <전우치>에 연이어 출연하며, 그는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는 동시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대중적 인기를 얻는 데 드라마만한 것이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2012년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천재용 역을 맡아 시청자의 눈에는 하트를, 입가에는 미소를 짓게 했던 이희준이 대학로에서는 이미 알려진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와 <내 마음의 안나푸르나> 등 극단 간다의 작품을 비롯해 <날 보러와요>, <비언소>, <늘근도둑 이야기> 등에 출연한 바 있다. 그가 드라마 <전우치>에 이어 선택한 것은 대학로 소극장 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이미 2008년에 출연했던 작품이고, 그가 철석같이 믿고 따르는 민준호 연출의 한예종 졸업 작품이다. 이미 그의 편에 서 있는 작품, 맘 편한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그에게는 안전하면서도 소박한 선택이라 짐작했는데, 예상을 빗겨 갔다. 이희준은 과거에 맡았던 조역이 아닌, 야생 소년에 도전하기로 한 것.

 

 

                            

 

야생 소년은 손과 발이 모두 네 발이 되어 걷고 뛰며, 인간의 언어가 아닌 동물적인 감각과 영혼으로 소통하는, 그의 야생성이 곧 순수함을 대변하는 캐릭터이다. 그 말인즉슨, ‘이희준표’ 능청스런 대사 연기와 표정 연기로 승부를 걸 수 있는 역할은 아니라는 의미다.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퉁명스럽지만 제 여자에게만은 사랑스러운, 여심을 흔드는 연기를 놔두고, 왜 굳이 그가 몸을 혹사당할 게 뻔하고 어울릴 것 같지도 않은 야생 인간 연기에 욕심을 내는지 의아할 터. 그가 말한 첫 번째 이유는, 이 작품을 처음 본 순간부터 꼭 도전해보고 싶은 캐릭터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스스로와 대중을 납득시킬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는, 청개구리 심보 또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끊임없는 갈증. 한예종 1학년생이었던 이희준은 졸업을 앞둔 민준호, 진선규 등의 선배가 준비한 무대를 보고 “소름 끼치게 좋아서 한동안 설레는 맘에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상상력 넘치는 연출, 감각적인 표현 방식, 예쁘고 순수한 <거울공주 평강이야기>가 좋아서, 이후에 환경전환수 라이 역으로 무대에 서기도 했지만 주인공 야생 소년은 맡지 못했다. 그는 야생 소년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진선규의 연기를 따라 연습하면서 “지방 공연에라도 한번 서게 해달라고 혼자 연습하던 중 손가락을 다쳐 공연 대신 깁스 치료 경험만 얻었다”며 허허 웃더니, “마침내 기회가 왔노라” 기뻐했다. 괜한 시선을 의식했는지 “연예인이 되니까 시켜주더라”며 머쓱한 듯 웃었지만, 그런 이유로 캐스팅을 결정할 수 있는 만만한 역할이 아니란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어리석은 생각일 수도 있는데, 내가 잘하는 것만 하다보면 곧 싫증이 난다. 잘하는 것만 하며 쉬운 길을 가고 싶진 않다. 야생 소년은 내가 쉽게 해낼 수 없는 역이란 걸 분명히 알기 때문에 도전해서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어리석다는 표현으로 신중한 태도를 취하긴 했지만, 그에게서 도전에 대한 두려움은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자신감에 차 있다기보다 의연해 보였달까. “첫 시도의 결과가 아쉬울 때도 있지만, 결국은 늘 해냈다. 작품이 끝나면 부족했던 부분을 확인한 후 그걸 보완하면 된다. 다음에 도전할 땐 더욱 자신감을 갖고 임할 수 있다. 그렇게 내가 잘하는 연기가 늘어날 거다.”

 

                            

 

이희준이 배우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 직업의 근본적인 장점을 언급했다. 한 인물로서는 도저히 실제로 경험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인물들의 삶을 살아볼 수 있고, 그래서 사람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는 게 연기자가 받은 축복이라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는, “열악한 환경에서 연기하느라 고생스러운 순간에, 한 작품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함께하는 동료들이 서로에게 힘이 돼주고 웃음을 주는 걸 봤을 때, 연기를 한다는 게 정말 행복한 일”이란 걸 느꼈단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일하면서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는 동료애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배우들만 느끼는 보람은 아니지 않느냐고 덧붙여 물었을 때,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우린 허구의 무엇을 같이 믿는다. 우리가 서로를 믿지 않으면 가짜가 되고 말 것을 진짜라고 믿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또는 현실 너머의 무엇을 함께 믿는다는 게 얼마나 얄팍하게 낭만적이면서도 위대하게 진지한 것인지, 굳이 사랑이나 신념 등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당신도 공감할 수 있지 않나.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3호 2013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