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한 편의 뮤직비디오에서 시작됐다. 폐허가 된 전장 속에서 만난 한국 병사와 베트남 소녀의 짧지만 순수했던 만남과 사랑을 그린 조성모의 ‘아시나요’ 뮤직비디오가 바로 그것. 한 남자의 애틋한 사랑을 담아낸 이 뮤직비디오를 뮤지컬로 탄생시키고 싶었던 코어콘텐츠미디어의 김광수 대표와 설앤컴퍼니 설도윤 대표가 의기투합해 3년여를 공들인 대형 창작뮤지컬 <천국의 눈물>이 2011년 2월 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첫선을 보인다.
<천국의 눈물>은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한국군 준과 순수한 매력을 지닌 여인 린, 그녀와 함께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미군 대령 그레이슨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를 주축으로 한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도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오페라 가수 티아나. 그녀를 찾아온 한국인 남자는 그녀와 꼭 닮은 여인의 낡은 사진 한 장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 사연의 주인공이 바로 준과 린, 그리고 그레이슨 대령이다. 1967년, 베트남 전쟁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은 풍요롭고 고요한 사이공의 한 고급 클럽에서 노래하는 린은 매혹적인 모습으로 모두의 눈을 사로잡는 여인이다. 동료들과 클럽을 찾은 한국군 준 역시 그녀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지지만 미군 그레이슨 대령의 총애를 받으며 미국행을 앞두고 있던 린은 그에게 무관심하기만 하다. 하지만 우연한 만남이 거듭되면서 린은 준에게 운명적인 끌림을 느끼고 미국이 아닌 한국행을 결심한다. 그녀를 따라 미국으로 떠날 계획이었던 친구 퀴엔은 두 사람의 관계를 그레이슨 대령에게 전하고, 권력을 이용해서라도 린을 차지하고 싶은 그레이슨 대령은 린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대령으로부터 린을 지키기 위해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고 전투에 자원한 준은 베트콩에 포로로 붙잡히지만 베트콩의 일원인 린의 오빠 썽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탈출한다. 하지만 이미 준의 사망 소식을 접한 린은 망연자실하며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는데….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은 준을 통해 사랑이 만들어낸 용기와 믿음,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천국의 눈물>은 기획 단계부터 아시아, 유럽을 비롯해 브로드웨이 진출을 목표로 제작됐다. 주목할 부분은 브로드웨이에서 활동 중인 크리에이터들이 대거 참여한다는 점이다. 물론, 지난 2007년 창작뮤지컬 <댄싱 섀도우>가 세계적 보편성과 해외 시장 진출을 목표로 아리엘 도르프만, 에릭 울프슨 등의 해외 유명 스태프들을 투입하고 7년여의 준비 끝에 무대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거둬들였던 것을 생각하면 <천국의 눈물>의 행보에 기대만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킬 앤 하이드>, <몬테크리스토> 등을 통해 중독성 강한 멜로디와 감성을 건드리는 섬세한 선율로 한국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참여는 불안함을 잠식시키기에 충분하다. <천국의 눈물>에서 그는 클래식과 팝을 주조로 그랜드 오페라(대가극), 재즈, 카바레 등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30여 곡의 뮤지컬 넘버를 선보일 예정이다.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음악들은 드라마를 더욱 극적으로, 갈등은 더욱 첨예하게, 감동은 더욱 진하게 끌어주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준과 린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이렇게 사랑해본 적 없어요(I`ve Never Loved Like This)’와 헤어진 준과 린이 서로를 그리워하며 부르는 ‘내 말이 들리나요(Can You Hear Me)’, 전장 속에서 준이 부르는 ‘배워야만 했어(I`ve Had To Learn)’, 린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을 노래한 그레이슨 대령의 ‘앞으로 나아가야 해(Moving On)’, 사랑에 대한 굳은 의지를 표현한 솔로곡 ‘천국의 눈물(Tears of Heaven)’ 등은 섬세한 멜로디로 귀와 가슴을 사로잡는다. 웅장한 선율의 합창곡 ‘세상의 끝(The End Of The World)’, ‘비처럼 내리는 불길(Raining Fire)’ 등도 매력적인 음률과 중독성 강한 멜로디가 돋보이는 곡이다. 공연 개막에 앞서 영어 OST와 K-POP 디지털 싱글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지금까지 음악 작업 중 가장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작업이었다”고 말하는 프랭크 와일드혼을 주축으로, <멤피스>, <스위니 토드>, <와일드 파티>로 연출상을 받은 배우 출신의 연출가 가브리엘 베리(Gabriel Baree), <드라우지 샤프롱>으로 토니상을 비롯해 드라마데스크상, 외부비평가협회상 등 미국 메이저 상을 모두 휩쓴 무대디자이너 데이비드 갈로(David Gallo),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작사가로 활동하며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한 작사가 로빈 러너(Robin Lerner) 등이 <천국의 눈물>에 참여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중 상당수가 이미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는 점이다. 연출가 가브리엘 베리는 <까미유 끌로델>과 <카르멘>을 통해, 대본을 쓴 피비 황(Phoebe Hwang)은 <루돌프>와 2011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될 신작 <원더랜드>를 통해,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이며 영화 <피아니스트>와 뮤지컬 <뱀파이어와 춤을>의 음악수퍼바이저로 참여한 적 있는 애드리안 베럼(Adrian Werum)은 <카르멘>을 통해 프랭크 와일드혼과 팀워크를 이룬 바 있다.
브로드웨이 최고의 디자이너로 꼽히는 데이비드 갈로 역시 <멤피스>에서 호흡을 맞췄던 연출가 가브리엘 베리의 제안으로 합류했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화려한 세트는 물론, 사실적인 영상에 모던한 무대 세트를 극명하게 대비시켜 현실감을 살리고, 빛과 그림자를 동원해 인물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등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현대적인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평화로운 아침을 맞은 사이공의 거리(‘아침이 오네요(Morning Comes)’)나 전쟁의 한가운데 놓인 사이공의 거리(‘세상의 끝’, ‘비처럼 내리는 불길’) 등은 영상과 무대 세트의 스펙터클한 조화를 기대해도 좋을 장면. 빛과 그림자는 작품 전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준이 티아나에게 과거 이야기를 들려줄 때 그 순간순간들을 같이 보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활용하게 됐다”는 것이 연출가의 설명이다. 그는 “티아나에게 과거가 어렴풋하고 그림자처럼 존재했다면, 실루엣으로만 존재했던 이미지들이 준의 이야기를 통해 빛으로 돌아와서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려 한다”며 작품 속에서 빛과 그림자가 내포하는 의미를 전했다.
정상급 크리에이터들을 한데 모으는 것으로 시작된 <천국의 눈물> 글로벌 프로젝트는 시나리오 작업을 위한 베트남 현지 방문과, 미국, 체코, 일본 등 5개국을 넘나들며 진행된 크리에이터들과의 미팅, 작품의 점검과 현지 반응을 체크하기 위한 두 차례의 브로드웨이 워크숍, 최대 4개국을 연결한 국내외 크리에이티브 팀의 화상 회의 등 다양한 노력이 더해져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가 무엇보다 의미가 있는 것은 글로벌 뮤지컬을 표방한 이전 작품들과 달리 한국의 정서를 반영하고 작품 고유의 색을 잃지 않기 위해 한국 프로듀서가 중심축을 이뤄 팀워크를 이끌어낼 뿐만 아니라, 한국 공연 이후의 판권, 배급권 등 모든 권리를 한국이 갖는다는 점이다.
<천국의 눈물> 월드 프리미어 프로덕션의 첫 문을 여는 한국 공연은 연출 가브리엘 베리의 지휘 아래 윤정환 연출과 안무가 이란영, 음악감독 한정림, 조명디자이너 구윤영, 음향디자이너 김기영 등이 참여해 해외 크리에이터들과의 환상적인 호흡을 선보일 예정이다. 세 차례의 오디션과 프라이빗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된 배우들의 면모 역시 화려하다. 지난해 <모차르트!>로 화려한 뮤지컬 데뷔 무대를 치른, 아시아 최정상의 인기를 자랑하는 가수 겸 뮤지컬 배우 김준수와 뮤지컬 배우 정상윤, 전동석이 준 역으로 참여하고, <오페라의 유령>, <지킬 앤 하이드>로 한국 무대를 경험한 브로드웨이 정상급 배우 브래드 리틀이 그레이슨 대령 역으로 출연해 눈길을 끈다. 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린과 그녀의 딸 티아나 역으로 윤공주와 여성 듀오 다비치의 이해리가 캐스팅되어 매력적인 무대를 기대하게 한다.
2월 1일~3월 19일 /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 02) 501-7888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8호 2011년 1월 게재기사입니다.